왕버들, 주산지에 이어폰을 꽂다
이소율
처음부터 물거울에 마음을 꺼내줄 생각은 없었다
물고기 지느러미의 고단한 흘림체를 읽다가
구름의 마술을 보는 한 폭의 파노라마에 지나지 않았다
거울 삼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거칠어진 살결이나 비춰보고 있는 나에게
수심 깊이 감추어놓은 아지트를 열어준 너, 주산지
에 몸의 반쪽을 밀어 넣고 슬며시 이어폰을 꽂는다
캄캄한 밤마다 뒤척이며
몸을 닦아내는 애처로운 숨소리,
사계절을 이어주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린 물방울 변주로
졸고 있는 나를 찰랑찰랑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깊은 밤 밀어를 속삭이는 물길에서
파닥파닥 물고기처럼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곤 한다
치명적인 몽환의 밤이 지나고
네 영혼은 안개로 피어오른다
어느새 눈이 맑아지고 귀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발톱의 푸른 독도 다 빠지고
좌선이나 면벽 없이 옹이도 다 풀린다
구름 속에 솟은 산, 꽃, 풀잎을 데려와
한 폭의 수채화로 품고 있는 주산지
나는 산 말뚝으로 서서 필생을 지켜주기로 한다
겨울 연못
카페에 불이 꺼졌다
댓글 한번 달지 않고
들락날락하던 바람도 발길을 끊었다
기웃기웃 눈길 스치며
마음 한 줌 내려놓지 않는 달
악플이라도 그리운 시간이다
인기 치솟아
검색창에 불이 나던 가시연꽃
순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밤새 채팅하던 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새벽
악플이라도 그리운 시간이다
진초록 치마 펄럭이며
무성하던 소문 잎을 떨어뜨린
홍련, 백련 줄기
제 몸 시들어가는 신음으로
혹한을 견디고 있다
악플이라도 그리운 시간이다
—계간 『시에』 2012년 겨울호
이소율
충남 청양 출생. 2012년 『시와문화』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