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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 1-5
오래 전에 영국 런던의 한 다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불쌍한 노인이 다리를 건너다니는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불쌍한 사람들이 하모니카를 불면서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모니카를 주로 부는데, 영국의 이 노인은 낡은 바이올린을 켜면서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노인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 버리고, 동전 한 푼 던져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한 외국인이 그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노인에게 다가가서는 노인이 켜고 있는 낡은 바이올린을 좀 볼 수 있겠느냐고 묻고는 그 낡은 바이올린을 빌려서 켜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의 손에 들려진 노인의 낡은 바이올린에서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심코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그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이나 음악을 감상하더니, 노인의 모자에 동전을 던져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신비로운 바이올린 가락에 매혹되었던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조그만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혹시 파가니니 아닙니까?” 옆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도 자세히 보니까 그는 틀림없는 ‘파가니니’였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파가니니(N. Paganini)는 당시 전 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비록 낡은 바이올린이었지만,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늙은 노인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같은 낡은 바이올린이라 하더라도 천재 연주가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는 매혹적인 음악이 연주되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라는 사람은 어쩌면 초라하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늙은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광야에서 지낸 40년 동안은 초라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내 양도 아닌 장인의 양을 치며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고, 그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는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초라하게 살던 모세가 80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로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음악가와 같은 그런 참으로 멋진 생애를 살았습니다. 120년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40년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값지고 귀중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초라하게 늙어가던 모세가 능력 있고 멋진 생애를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그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애굽에서 특별한 특혜를 받으며 왕자로 40년 동안이나 왕궁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당시 애굽의 문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고, 그 최고의 문화 속에서 왕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지식과 경험을 갈고 닦았던 사람입니다. 나이 40이 되어 ‘이제는 내가 내 민족을 위해서 무언가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어서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갔지만 동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결국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쳐야 될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만만한 모세를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광야로 도망친 모세는 내 민족을 위하여 뭔가를 해보겠다는 젊음의 열정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양을 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모세는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40년 동안이나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한 인간의 인격이나 한 민족의 정체성이 완전히 새롭게 바꿔지기 위해서 필요한 기간이 40년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에서 자기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그 모든 자신감을 포기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 날도 모세는 여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양떼를 몰고 푸른 풀밭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지난 40년 전에 의기양양하고 자신감 있던 모습은 모조리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초라한 노인으로 ‘이거 아니면 먹고 살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것에도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제 애굽으로 돌아가서 고통 당하고 있는 내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조상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가라”하는 막중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세가 보인 태도는 ‘하나님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절망적인 고백뿐이었습니다. 40년 전만 같았어도 ‘그래요 하나님,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그랬을텐데, 이제는 아무 것에도 자신이 없고 초라하게 늙어버린 이 모습으로는 그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함께해 주겠다.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막무가내입니다. ‘내게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낼 능력도 없고 바로와 맞서 싸울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선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연 나를 따라 줄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었습니다. 아무튼 모세는 모든 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해 주겠다’ 말씀하실 때에 ‘아멘 감사합니다’ 하며 그 약속을 믿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데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40년 동안 철저하게 아무 것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아온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눈이 보이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시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모세는 주저하지 않고 “지팡이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모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은 양을 칠 때 사용하는 지팡이뿐이었습니다.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 지팡입니다. 산에 가면 어디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지팡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그 지팡이 하나면 된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해 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아주 당황했습니다.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지팡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한 지팡이도 아닙니다. 손오공의 여의봉 같이 길어졌다 줄어졌다 하는 요술 지팡이도 아닙니다. 그저 마른 막대기 지팡이일 뿐입니다. 어쩌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물어보실 때에는 이 지팡이 말고 다른 무언가 내 손에 쥐어주실 것으로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지금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바로 앞에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권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하고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말라깽이 지팡이 달랑 그것 하나만 가지고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큰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에도 흔히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봉사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기도 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제게 능력을 주옵소서.’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제게 힘을 주시면 그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에 아무 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렇게 말씀하실 따름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마.”
여러분,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다른 그 어떤 능력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마’하신 약속과 함께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 하나면 족하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을 받을 때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 어쩌면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에 내게 있는 줄도 잘 의식하지 못했던 것 바로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 것 없지만 내게 주어진 것, 내 손에 들려 있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귀하고 중요한 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손에 들려져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작은 것 하나,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손에 들려져 있는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도 굉장한 열등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도 그랬습니다. 특히 저는 두 종류의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첫 번째가 찬송 잘 부르는 사람이고 두 번째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더 부러운 사람은 찬송도 잘 부르면서 영어도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으로 감사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만약 제가 영어를 잘했다면 이렇게 좋은 우리 전주남성교회에서 목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영어만 좀 잘 했다면 미국에 유학을 갔을 거고, 그러면 여러분과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에도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많이 공부했습니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효관이는 계속 공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 유학도 가고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금새 포기해야 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영어 못한다는 것 때문에 시험에 떨어져본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시험만 치면 제가 아는 것만 나와서 영어 시험에 합격을 한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영어를 잘하면 제가 제 잘난 맛에 살 것 같으니까, 영어를 못하게 하시고, 대신 필요할 때만 합격하게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노래 잘하는 사람이나 영어 잘하는 사람 때문에 주눅 들거나 열등감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보면 아직도 부럽기는 부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것으로 주십니다. 내게 꼭 맞는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기에 특별한 것, 남들이 보기에도 ‘아- 대단하다’ 그렇게 우러러 볼 수 있는 것을 가질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래 전에 서울 남대문 시장 한 가게에서 가게 앞에 청바지를 하나 걸어 놓고 ‘이 옷이 몸에 맞는 사람에게 이 옷을 공짜로 주겠습니다’ 하는 광고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옷의 크기가 -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 아마 80 몇인가 그랬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허리 둘레가 30-34정도입니다. 그러니 그 청바지는 보통 사람이 입는 것의 거의 3배 가까이 되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그 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공짜로 준다고 해도 그 옷이 내게 맞지 않으면 있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아무리 남의 신발이 좋아 보여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내 발에 맞지 않으면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게 있는 것, 내 상황,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충분히 봉사하며 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다른 특별한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주셔서 내 손에 있는 작은 것으로 봉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송명희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태어날 대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글을 배웠고, 성경을 30여번 이상 읽고나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할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24권의 책을 썼고, 그녀가 쓴 찬송시에 곡이 붙여져 불리고 있는 찬양만도 100여개가 됩니다.
송명희씨가 자전적인 시를 써서 찬양으로 많이 불린 찬양 가운데 ‘나’라고 하는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 장애 때문에 많은 재물을 가질 수도 없고, 지식을 많이 쌓을 수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지만,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가질 수 있었고, 남이 듣지 못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남이 받지 못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의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고치신 대신 그 장애를 통하여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뇌성마비 장애 때문에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녀는 건강한 다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이 시대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쓰신 하나님, 그 우리 하나님은 오늘 가진 것 별로 없고, 아는 것 별로 없는 우리도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그 작은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그 지팡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던지라 그러시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던졌다는 것입니다. 양치는 사람에게 지팡이는 필수품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하지만, 험한 산을 넘어야 하고, 오랫동안 길을 걸어야 할 때는 지팡이가 없으면 안 됩니다. 또 때로는 이리나 늑대가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 달려올 때 그 짐승들을 쫓아내는데도 이 지팡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기에 양치기들에게 지팡이는 꼭 자기 손에 잡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도 그 지팡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없으면 양치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 그랬습니다.
땅에 던지라는 것은 ‘네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자신을 지탱해주고 자신을 지켜주던 바로 그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그 하나까지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는 ‘이것만은 절대로 안됩니다. 이건 비록 보잘 것이 없는 것이지만 제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땅에 던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땅에 던지지 않았다면, 모세의 지팡이는 평생 모세의 지팡이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 또한 평범한 노인으로 그의 인생이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던지라고 하시니까 던졌습니다. 그 때부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땅에 던져진 모세의 지팡이는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버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네 것을 포기하라’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조금은 아깝더라도, 또 때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라도 과감하게 포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을 말씀에 순종하여 땅에 던질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내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땅에 던지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제 그 지팡이는 네 지팡이가 아니라 내 지팡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제까지는 모세가 양을 치기 위해서 사용했던 모세의 지팡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 지팡이가 모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그래서 20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말라깽이 나무 지팡이가 금지팡이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말라깽이 나무 지팡이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손에 있을 때는 내 지팡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에 갖다 오더니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이기 때문에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면서 수없이 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모세의 능력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바로 앞에 가서 기적을 베풀 때에도 지팡이로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까 하수의 물이 다 피로 변했습니다. 모세가 강과 운하와 연못을 향하여 지팡이를 드니까 온 지면을 덮을 만큼 많은 개구리들이 육지로 올라왔습니다.
홍해를 가를 때에도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키니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낼 때에도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까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반대로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손이 대단해서 전쟁을 이기고 지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 들려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하나님의 지팡이가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고 그랬던 것입니다. 결국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을 이기게 만든 것이 바로 모세의 손에 들려져 있던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그 지팡이가 단순히 모세가 양치기 할 때 쓰던 모세의 지팡이였다면 그런 능력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그것이라도, 그게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내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이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내 재능이 내 것이면 내 능력 밖에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그러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힘, 작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지팡이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 한 개가 5,000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손에 있던 그 도시락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져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니까 그런 엄청난 기적을 낳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손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건 그저 어린아이가 한끼 먹을 정도의 도시락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손에 들려지니까, 5,000명이 먹고도 남는 거대한 식량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손에 들려 있는 것, 그것이 비록 작고 보잘 것이 없다 하더라도, 혹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에 이것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손에 들려지면,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최고의 인생 연출가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어 주실 것입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마른 지팡이뿐입니다.” “그거면 됐다. 그걸 땅에 던져라. 그리고 그걸 다시 잡고 애굽으로 가라.” 모세는 그 지팡이 - 이전에는 내 지팡이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그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냈습니다. 마른 막대기 하나뿐인 모세에게 하나님의 지팡이를 주심으로 큰 능력으로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가 우리의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도 큰 능력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승리하며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출 4: 1-5
서론
제 대학 동창 가운데는 한국의 유명한 야구해설가가 있습니다. 그분이 대학 졸업파티
에서 한마디 하라고 하니까 유명한 한마디를 했습니다. “저는 방망이 하나 들고 와
서 방망이 하나로 졸업합니다.” 그는 방망이 하나만 잘 썼을 뿐인데 대학공부 4년 끄
떡없이 했습니다. 졸업한 후에도 야구해설을 하면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
람은 방망이 하나만 잘 써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방망이보다 더
힘이 없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지팡이입니다. 그러나 지팡이 하나 잘 써가지고
남자만 60만, 여자까지 200만이였던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이룬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천국에서 골프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 선수들이 누군지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세 사람이 나오더니 공을 쳤는데 세 사람 모두 그만 골프공을 물 속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물 위를 걸어가더니 공을 물속에서 꺼내서 물 위에 올린다음 쳐서
그린에 올렸습니다. 누굴까요? 베드로, 물위를 걸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 선수도 공
을 물에 빠트리자 이 사람은 갈 것도 없이 잠깐 기다리니까 물고기가 공을 물어서 밖
으로 토해냈습니다. 어느 선수일까요? 요나입니다. 세 번째 선수도 물 속에 빠뜨렸습
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연못가로 가서 골프채를 내미니까 연못이 쫙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에 떨어진 공을 쳐서 그린에 올리고는 마른 땅처럼 걸어 나왔습니다.
누구겠습니까? 모세입니다.
이 지팡이 하나 가지고 큰 기적과 역사를 이룬 분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나이가
80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습니다. 미디안 제사장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40년 치다가 하나님께서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
고 모세에게 분명한 소명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에 보면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받은 사명은 애매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애굽에 의
해 압박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는 출애굽의 지도자고 쓰겠다. 그러니 너는
애굽으로 가라.” 이것입니다. 명확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소명을 금방 이룬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변명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금
방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1. 모세의 네 가지 변명
모세가 맨 처음 한 변명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3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나
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데 바로에게로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
이까?” 모세는 지금 자기가 자격 없는 사람이라고 변명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 일을 하기에 내가 자격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처럼 “주여 내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은 ‘모세야 이제 네가 되었구나 이제
쓰일만한 사람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변
명으로 씁니다. “하나님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누구관데 이 큰 역사를 이루겠
습니까? 내게 무슨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3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
은 모세에게 “모세야 네가 네 능력으로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는 줄 아느냐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가리가 내가 너를 쓰리라 그러니 걱정 말고 가라” 하고 말씀하고 계
신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13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
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
리이까?”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당신의 하나님이 나를 지금 지도자
로 보내셨으니 내 말을 들으시오”라고 말하면 백성들이 신학적인 질문을 할 것이라
는 것입니다. “네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보냈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 하나님의 이름
을 아느냐?” 이것은 굉장히 신학적인 질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40년 교육을 받기
는 했어도 신학교는 다니지 못했습니다. 침례신학교도 못 다녔고 광나루 장신도 못 다
녔고 총신도 못 다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을 알겠
습니까? 지금 모세는 그런 신학적인 질문을 하면 나는 대답할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
문에 자신은 신학교육이 부족한 사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름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아십니까? 이
름 모르시는 분은 출애굽기 3장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
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
로 있는 자’입니다. “I am that I am” 영원 전부터 자존하였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
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분이시라,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하나님의 이름은 히
브리어 자음 네 글자를 사용해 씁니다. 이 네 글자는 여호와라 발음하는지 야훼라 발
음하는지 모음이 안 붙어 있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발음 하
는 것도 정확하지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라고 부
르지 않습니까? 히브리어로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입니
다. 하나님의 이름은 알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공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부처가 아닙니다. 천하인간에 하나님은 단 한 가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 주
셨을 뿐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영원 전부터 자존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
리는 자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름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라
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또 다시 세 번째 변명을 합니다. 변명이 4장 10절입니다. “모세가 여
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이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
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말하는 데는 은사가 없으니
자기를 보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면 말하기 힘듭니다. 목
사는 일주일에 열 번, 혹은 열다섯 번, 어떤 때는 심방하면 스무 번도 설교합니다. 목
사가 이렇게 많은 설교를 해도 일주일 정도 휴가 다녀와서 다시 하려면 자꾸 발음이
틀리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40년을 지팡
이 하나 가지고 양만 인도하던 모세가 어떻게 말을 잘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
서 뭐라고 하십니까? 4장 11-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
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러나 모세
는 그래도 또 변명을 합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러니까 하나님께
서 이번에는 화를 내시면서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아론은 말 잘하는 자이니까
아론을 붙여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애굽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세 가지 변명을 했습니다만 한 가지 변명이 더 있습니다. 원래는 순
서적으로는 그것이 먼저이지만 메시지의 전개상 나중으로 돌렸습니다. 네 번째 변명
이 4장 1절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이
네 번째 변명은 하나님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시기는 했지만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가서 말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 뻔한데 그러면 어떻게 하겠
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네가 거짓 것, 헛
것을 보고 와서 우리를 미혹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하겠
습니까?
2. 세가지 이적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세 가지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이적의 목적
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이적입니다. 모세가 이런 변명을 하니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모세야 네 손
에 지금 든 것이 무엇이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목자인 모세는 지팡
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양이 잘못된 곳으로 가려고 하면 양을 치고 구덩이에 빠지면
목에 걸어서 끌어올릴 때 쓰는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입니다. 모세는 그것 하나밖에 없
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지팡이가 갑자기 뱀이 되
는 것입니다. 모세는 뱀을 무서워하여 도망을 갑니다. 성경에는 뱀을 피했다고 했습니
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시 “모세야 너는 뱀을 잡으라.” 뱀을 잡는 데 뱀의 꼬리
를 집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뱀을 잡을 때는 어디를 잡습니까? 머리를 잡습니다.
꼬리를 집으면 물리게 되는 것입니다. 뱀의 머리를 잡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행하니까 뱀이 다시 지팡
이로 변한 것입니다.
이 기적은 왜 이루셨을까요? 5절이 그 목적입니다.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
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
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니라” 기적의 목적은 불신앙을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
분 올해 안에 여러분 삶 가운데 기적이 많이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기도할 때 “하나님 2005년에는 내 삶에 여호와의 기적을 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믿기는 믿지만 내 속에 솔직히 불신앙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보여 주셔
서 내 불신앙을 올해 깨뜨려 주시옵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적의 목적은 불신
앙을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 두 번째 이적을 보여주십니다. “모세야 네 손을 한번 품에 집어넣어 보
아라.” 품에 집어넣었다가 빼니 손이 눈같이 희어지고 문둥병이 발병했습니다. 그러
니 모세가 얼마나 걱정을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손을 다시 품에 집어넣으라고
명하셨고 그대로 행하니까 그 손이 여상(如常)하여 전과 같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했습
니다. 모세는 이 문둥병의 기적을 또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기적을 인하여
믿지 아니하는 자라도 이 두 번째 기적을 보고는 믿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리고 세 번째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물이 변해서 피로 변하는 이적입니
다. “모세야 너는 하수에 가서 물을 취해서 육지에 부어라” 그러니까 하수가 변하
여 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 세 가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첫째 목적은 우리
의 불신앙을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깨뜨리고 하나님이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보내셨다 하는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올
한해에 “하나님이여 기적을 보여 주셔서 내 불신앙을 깨뜨려 주소서 모세에게는 세
가지를 보여주셨지만 하나님 내 삶에 많은 기적을 보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기적 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
시는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모세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세는 먼저 영적
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단, 마귀, 귀신들이 얼마나 횡횡합니까? 십자
가 아래를 제외하고는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다가 귀신에
접할 수도 있고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뱀의 꼬
리를 집게 하심으로 이 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뱀을
집는다 하는 것은 벌써 사단을 정복하고 마귀를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또 다른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슨 두려움일까요? ‘내가 이 나이
에 80이 되어 가지고 60만 대군을 이끌어 가다가 피곤해서 넘어지면 어찌하는가? 내
가 그러다가 병 걸리면 어찌하는가?’하는 육신적인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입니
다. 여러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내가 이러다가 심근경색, 혈압, 당뇨라
도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으실 것입니다. 모세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문둥병이 발했다가 치료하는 이적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모세는 자기가 사십년 전에 저지른 살인죄로 인해 받을 형벌에 대한 두려움
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했습니다. 피는
무엇입니까? 죄 씻음을 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저지른 형벌에 대해서 벌을 받
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이 피로 변하는 기적을 통해서 모세에
게 용기를 주시고 말씀을 통해 확신을 시켜 주십니다. 출애굽기 4장 19절에 보면 “여
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국 모세는 영적인 두려움, 육신의 질병에 대
한 두려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담대하게 애굽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
다. 하나님의 이적의 목적은 첫째는 불신앙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둘째는 우리 인생
에 대한 두려움을 깨뜨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려움도 있고 불신앙도 있
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의 삶에 기사와 이적을 보여주실 때에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며 나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실 때에는 멀리 있는 것을 가지고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
십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음료회사의
광고 문구입니다. 생각나시나요? 하나님은 하늘에서 별을 따다가 손에 담아 놓으라는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네가 평소
에 잘 쓰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늘 가까이 하고 모세가 별
로 귀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사소하게 여기는 지팡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
을 쓰시게 되면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는 방편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모세 지팡이의 역할
모세가 그 손에 든 지팡이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이 지팡이로 말미암아 행한 역사
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나갈 때에 바
로왕의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에 금방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 때 몇 가지 재앙을 내렸
습니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이 열 가지 재앙 가운데 지팡이로 일으킨 것이 다
섯 가지입니다. 맨 처음 재앙이 하수가 피로 변하는 재앙입니다. 7장 17절에 보면
“모세야 네 지팡이로 하수를 치게 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하수에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날 것이라” 두 번째는 8장 5절에 나와 있는 개구리 재앙입니다. “여
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들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팔
을 펼 때에 강에 있는 개구리가 다 올라옵니다. 바로왕의 밥그릇, 국그릇, 침대에도
개구리가 가득 찹니다. 이렇게 되니 얼마나 괴롭습니까? 세 번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서 땅에 티끌을 칩니다. 그러자 티끌이 변해서 이가 되었습니
다. 티끌이 변해서 이가 된 재앙도 다 지팡이로 된 것입니다. 일곱 번째 재앙은 우박
의 재앙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합니다. “너는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
라” 하늘 향해서 지팡이를 드니까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농산물 다 망
칩니다. 여덟 번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입니다. 10장 13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애굽
땅 위에 지팡이를 들메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
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인지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박으로 인해 그나마 남
은 농산물을 메뚜기들이 와서 남김없이 먹어버린 것입니다. 모세는 열 가지 재앙 가운
데 다섯 가지 이 재앙을 지팡이 하나 가지고 일으켰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6절에 홍해가 갈라질 때에도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위로 내
밀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도 지팡이 하나 가지고 된 것입니다. 17장 6절에 이스라
엘 백성이 광야에서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백성들이 목이 말라 불평을 합니다. 그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까 반석이 터지고 그곳에 생수가 나와서 이스라엘 백
성이 해갈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다섯 번의 재앙을 내리
고, 홍해도 가르고, 생수도 나오게 하는 엄청난 기적을 일으킨 지팡이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하나님께 드려지지 아니했으면 그것은 평범한 양치는 지팡이에 불과한 것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질 때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한 무기가 된 줄로 믿습
니다.
하나님은 큰 것을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데 왜 큰 것을 쓰시겠습니
까?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작은 것
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작은 자가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는 작은 자가 소중합니다.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그것도 결단코 여호와
께서 상급으로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언제 큰 것을 가지
고 기적을 일으키신 적이 있습니까? 다윗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과 싸울 때에 갑옷
을 입고 나가서 큰칼을 가지고 싸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가진 작은 물
매를 쓰셨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가 우상 숭배하는 아합왕과 대항할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
다. “내 말이 있지 아니하고서는 이스라엘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리라” 삼년 반 동
안 어마어마한 기근이 임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도 기근이 임하니까 먹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셨고 그 과부가 엘리야에게
준 작은 것, 가루 조금과 기름을 통해서 삼년 반의 기근을 겪는 동안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9절에도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가 드린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의 작은 도시락을 가지고 큰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그 아이의 도시락이 큰 것이었습니
까? 애가 먹어도 배고픈 도시락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것을 축사하시자
다 먹고 몇 광주리 남았습니까?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2절
에도 한 과부가 전 재산이었던 두 렙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시
고 저 과부가 생활비 전체를 넣었으며 가장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
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서 우리는 그분의 스토리를 영원히 기억
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그 과부를 만나면 “두렙돈 아주머니!”하고 반갑
게 인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론
올해 우리는 여호와의 대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여화와의 큰일을 보기를 원하는 것입
니다. 그런 역사를 보기에 우리가 가진 것은 너무나 작고 미미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부족합니다. 그래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이 있고 불신앙이 있
고 가진 것이 작을 지라도 “내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보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능력은 크나 작으나 별 차이 없습니
다. 모세가 능력이 많아서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루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
력으로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고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를 하나님
께 드렸습니다. 그 때에 그런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능력
(Ability)”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드리느냐(Availability)”가 중요합니
다. 여러분 재능이 있으시면 올해 하나님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쓰시고 하나님을 위해
서 조금이라도 드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능력이 있으시면 올해
그 작은 능력이라도 여호와의 손에 드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작은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대 역사를 이루시게 될 것
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작은 것을 여호와
께 드릴 때 그것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
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의 지팡이
(출 4:1-5)
어느 목사님의 설교문에 나온 퀴즈입니다. 천국에서 골프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세 사람이 나오더니 공을 쳤는데 이 선수들이 누군지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세 사람 모두 그만 골프공을 물속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물 위를 걸어가더니 공을 물속에서 꺼내서 물 위에 올린 다음 쳐서 그린에 올렸습니다. 누굴까요? 물위를 걸은 베드로입니다. 두 번째 선수도 공을 물에 빠트리자 이 사람은 갈 것도 없이 잠깐 기다리니까 물고기가 공을 물어서 밖으로 토해냈습니다. 어느 선수일까요?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온 요나입니다. 세 번째 선수도 물속에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연못가로 가서 골프채를 앞으로 내미니까 연못이 쫙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에 떨어진 공을 쳐서 그린에 올리고는 마른 땅처럼 걸어 나왔습니다. 누구겠습니까? 모세입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 가지고 큰 기적을 일으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냈고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지팡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마 우리나라 만화에 나오는 산신령들이 들고 있는 멋진 지팡이를 상상하실 것입니다. 크기는 한 2m 정도 되고 윗부분이 멋지게 휘어져 있는 지팡이를 상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사용했던 지팡이는 그런 멋진 지팡이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피(Topkapi) 박물관’을 가면 모세의 지팡이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박물관에 전시된 그 지팡이의 볼품없는 모양에 실망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지팡이하면 ‘십계’라는 영화에서 찰톤 헤스톤이 들고 있던 크고 멋지게 생긴 지팡이를 연상합니다. 그런데 톱카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세의 지팡이는 길이가 겨우 1미터 남짓에, 굵기는 대나무보다 더 얇아 지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약간 굵은 회초리라고 하는 편이 훨씬 어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이드에게 ‘정말 모세가 사용하던 지팡이가 맞느냐?’고 질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경을 통해 우리는 모세의 지팡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법궤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을 보관했습니다. 하나는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돌비입니다. 또 하나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5장을 보면, 언약궤의 길이는 2 규빗 반, 넓이는 1 규빗 반, 높이는 1 규빗 반입니다. 1 규빗이 약 45cm라고 할 때, 언약궤의 길이는 약 112.5cm 정도이니 그 안에 넣을 수 있는 아론의 지팡이 길이는 그보다 짧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모세의 지팡이도 1미터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다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볼품없는 지팡이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본문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한 첫 번째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시면서 지팡이를 통한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물으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지팡이라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시니 모세가 잡았습니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자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 없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면 비참함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그동안 하나님 없이 80년을 살았습니다. 80세가 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손에 있는 것을 샘해보니 지팡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모습입니다. 80세의 모세는 자기 양을 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불쌍한 모습입니다. 그동안 모세는 가지열심과 자기노력으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왔는데 80세가 되어 자기 인생을 정리하니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았던 모세가 80세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살게 됩니다. 그가 80년간 하나님 없이 살았던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었는데 이후 40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의 인생은 정말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이 됩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분은 땅콩 농사를 짓다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세상 가치로 볼 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미 카터는 임기말년 이란에 인질로 잡힌 대사관 직원을 구하기 위해 미 특공대를 투입했지만 헬기가 떨어지면서 구출작전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히 미국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경제가 활기를 띄면서 미국경제는 위축되고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불안함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으로 레이건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백악관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플래시는 새로운 대통령 레이건을 향해 터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운데 백악관을 외롭게 떠나야 했습니다. 대통령 지미 카터는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동분서주 해 보았지만 남은 것은 실패뿐이었습니다. 역사 속에 길이 남는 실패자, 오명을 씻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만 것입니다.
대통령 자리에서 외롭게 물러난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를 버려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넌 나에게 여전히 귀한 존재야.” 이 때 지미 카터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카터재단을 세우고 고통과 분쟁이 있는 지역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기도하며 모든 일을 행하였습니다. 퇴임 후 대통령이 갖는 일반적인 안락한 노후생활을 거절했습니다. 그의 인생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음을 확신하고 실패를 툴툴 털고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있던 시절보다 더 명예롭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우둑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으므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미카터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은 그를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보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더 큰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 없이 살면 비참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냐,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세계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영원까지 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영광스럽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최후의 심판대에서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고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비참한 인생을 살았던 분들이 계시다면 모세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시작하십시오.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 밖에 없던 모세를 위대하게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약한 것도 강하고 위대하게 쓰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한 것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써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모세가 가진 지팡이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고 천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통해서 모세를 깨우쳐 주셨고 그 지팡이로 온갖 기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볼품없는 지팡이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20절에 보면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합니다. 이 지팡이는 모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80세의 노인 모세는 자기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로 기적을 행하시며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셨듯이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영국 런던의 한 다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한 불쌍한 노인이 다리를 건너다니는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노인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 버리고, 동전 한 푼 던져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한 외국인이 그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노인에게 다가가서는 노인이 켜고 있는 낡은 바이올린을 좀 볼 수 있겠느냐고 묻고는 그 낡은 바이올린을 빌려서 켜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의 손에 들려진 노인의 낡은 바이올린에서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심코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그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이나 음악을 감상하더니, 노인의 모자에 동전을 던져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신비로운 바이올린 가락에 매혹되었던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조그만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혹시 파가니니 아닙니까?” 옆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도 자세히 보니까 그는 틀림없는 ‘파가니니’였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파가니니는 당시 전 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비록 낡은 바이올린이었지만,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늙은 노인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같은 낡은 바이올린이라 하더라도 천재 연주가의 손에 들려졌을 때에는 매혹적인 음악이 연주되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누가 그 인생을 주장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모세의 인생처럼 아름다고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서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하찮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처럼 아름답고 위대하게 쓰임 받고 싶습니다. 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써주세요”라고 기도하십시오.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힘은 놀랍습니다. 작년 1월 15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항공기 사고가 있었습니다. 승객 150여명을 태운 비행기가 허드슨 강의 차가운 물속으로 추락했습니다. 이륙한지 4분 만에 새떼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기관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장이었던 슐렌버그 씨는 비행기가 기관고장으로 허드슨 강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고 있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승객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비명소리와 함께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 때 한 승무원이 두 손을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승객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 비행기에 탑승했던 린다 한이라는 남가주 사랑의 교회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집사님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불시착 중인데 무사하도록 중보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집사님은 중보기도 팀에게 연락해서 중보기도팀원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허드슨 강에 착륙하여 승객과 승무원 155명 모두가 무사했습니다.
그 비행기의 조종사 슐렌버그는 ‘허드슨강의 영웅’이 됐습니다. 만약 강에 착륙할 당시 비행기가 1도만 기울었어도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기적같이 안전하게 허드슨강에 불시착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슐렌버그 기장이 침착하게 비상착륙을 잘 해서 무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하나님이 승객들의 기도와 중보 기도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기장이 훌륭해도 어떻게 수백 Km/h로 달리는 비행기의 수평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출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중보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면 엡 3:20 말씀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역사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 7:7,8에서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가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응답이 오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이번 여름은 길고 지루했습니다. 덥기도 무척 더웠지만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연일 계속되는 비였습니다. 태풍 피해도 컸고 계속적으로 비가 와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는 농부들을 생각하니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에 정상적인 일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작은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물론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지난 한 주간은 정상적인 일기로 돌아왔고 우리들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사는 인생 의미 있게 삽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고 복되게 삽시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람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인생을 삽시다. 비록 내가 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셔서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 신앙생활은 상식이나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합시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주저함 없이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뱀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뱀을 잡을 때는 머리를 잡는 것이 상식입니다. 만약 꼬리를 잡는다면 뱀에게 물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가 가진 상식대로 뱀의 머리를 잡지 않고 꼬기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뱀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창 3:15에 보면 사단은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고 주님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 말씀대로 사단에게 조종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사단은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흘 만에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뱀의 머리는 주님이 깨드리실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꼬리만 잡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모세는 뱀은 머리를 잡아야 한다는 상식보다 꼬리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상식을 따르고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신 것은 그 당시에는 상식 밖의 명령이었습니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산 위에 짓게 하셨습니다. 강가나 바닷가가 아닌 산 위에 만들라고 하셨는데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사건도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삭이 흉년 중에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로 축복을 받은 이야기도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상식 밖의 사건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우리는 상식보다 성경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가 가진 상식, 우리가 가진 지식들은 우리의 인생에 기준을 잡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우리의 인생의 기준입니다.
인도에서 귀한 선교 사역을 하여 현대 선교의 성자라 불리는 스텐리 존슨 선교사님은 삶이 매우 경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늘 하나님 가까이 사는 것 같은 그를 보고 한번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답니다. “스텐리 선교사님, 바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같이 선교사님도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으십니까?”, “아니오, 나는 일생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성경을 통해 날마다 듣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 상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기쁨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십일조를 7만원씩 하셨답니다. 장로님이지만 돈이 없으니 교회 큰 일이 있을 때는 앞장서서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흥회 중에 부흥사 목사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작정헌금을 하도록 권면을 하셨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부흥사목사님의 설교말씀에 순종해서 작정을 하는데 그 장로님만 작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로님에게 부흥사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지면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장로님이 담대하게 적금을 탄 천만 원을 헌금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장로님의 순종을 보시고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장로님이 전에는 출판 사업을 하던 분인데 사업이 망해서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게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로님이 아는 사람 가운데 교육 사업을 크게 하시는 사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장로님에게 말했습니다. “제 사업장의 모든 인쇄물을 맡아서 해주십시오.”, “저는 돈이 없습니다. 사장님 사업장의 인쇄물을 맡아서 하려면 인쇄기도 필요하고, 사무실도 있어야 하는데 저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무실 얻을 돈과 기계 값을 제공할테니 시작해보세요” 이렇게 해서 장로님이 인쇄 사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은 십일조를 100만 원 이상 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로님이 목사님에게 “곧 십일조를 300만 원 씩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이제는 남전도회 모임이 있을 때면 남전도회 회원들에게 “심어야 복 받습니다. 열심히 심으세요”라고 권면을 한다고 합니다. 부흥사 목사님을 통해서 주신 설교 말씀에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렇게 복되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도 잘 들어야 하고,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도 잘 듣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한 도시의 목사님이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 가게에 가면 방황하는 영혼이 있을 것이니 어서 가서 전도해라.’하는 감동이 자꾸만 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런 사건이 있습니다. 선지자 아나니아가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고 있을 것이니 그에게 안수하여 보게 하라.’하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아나니아가 직가로 가서 성령께서 명하신 집에 가 보니 정말 사울이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그 때부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목사님도 성령께서 자꾸만 감동을 주시는 것 같아 그 가게에 가 보았더니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을 붙잡고 복음을 전하니 처음에는 거절하던 청년이 나중에는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 귀가한 청년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제 저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니,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얘야, 네 영혼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삼일 전부터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오늘부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은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시고 목사님에게 그 청년을 찾아가도록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목사님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말씀대로 살 것을 유언했습니다. 다윗은 일생 동안 자기 생각을 따라 살므로 인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해보았습니다. 자기 아이디어로 했을 때는 쓰라린 현장을 만나게 되고 후회하게 되고 낭패를 당하게 되고 전염병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는 무엇을 해도 형통했고 어디에 가도 승리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에게 “솔로몬아, 내 말을 잘 들어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말씀대로, 계명대로, 증거대로만 살아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다”라고 유언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말씀과 설교말씀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 등을 중히 여기고 그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950년도에 월트 디즈니가 한 친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랑 가 볼 곳이 있네. 함께 가 보세.” 디즈니는 친구를 L.A에서 40km 떨어진 허허 벌판에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수년 내에 이곳에 환상적인 낙원이 건설될 걸세. 그러면 이 지역의 땅이 금값이 될 테니 땅을 조금 사두게.”, “에이, 이 사람. 무슨 꿈같은 소리를 하나? 허허 벌판을 사두었다가 뭘 하게?”, “수년 내에 이곳에 내가 분명히 낙원을 만든다니까. 환상적인 낙원을 만들 거라니까. 그러면 금값이 될 테니 땅을 사두란 말일세.” 그러나 그 친구는 디즈니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1955년 7월, 거기에 디즈니랜드가 세워졌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땅 값이 금값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 친구가 디즈니의 말을 듣고 땅을 사두었으면 미국의 재벌이 되었을 텐데, 귓등으로 들었다가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친구의 말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예언,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설교 말씀 그리고 성령의 음성은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 없이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면 비참함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약한 것도 강하고 위대하게 쓰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한 것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써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셋째, 신앙생활은 상식이나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합시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