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77]‘벗길맛’ 부안 상설시장을 가다
세밑이다. 나라 전체가 어쩐지 뒤숭숭한 듯하다. 말도 안되는 이태원참사 유족 엄마의 절규를 차마 들을 수가 없는데, ‘책임있는 당국과 당국자’들은 모두 못듣는 체 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흥분할 일이 아니던가. 잠깐 공인임을 망각했다는 어느 지역 시의원의 망언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어느 ‘개가족’의 가족사진을 여러 장 보았다. ‘개자녀’를 한 마리 더 입양해 모두 13마리라던가. ‘어여쁜 개자녀’를 보듬고 활짝 웃는 ‘개엄마’와 ‘개아빠’가 이 나라 대통령이고 대통령의 부인이다. 어찌할 것인가?
어쨌거나 임실에 십수년래 폭설이 왔다. 거의 ‘눈폭탄’ 수준으로 60cm 가까이 내렸다한다. 그 소식을 접한 ‘왕회장’이 좀이 쑤셨나보다. 당장에 내려오겠단다. 그것도 혼자서. 고속도로야 문제없겠지만, 그런 용단이 대단해, 한 친구의 동행을 추천했다. 일요일 오후 1시, 깜짝쇼처럼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아하-, 반가울손! 좋은 일이다. 남춘천IC 근처 CC들이 유명한 모양인데, 그 근처에서 해장국을 하는 친구는 봄, 여름, 가을 아주 바빴다고 한다. 겨울에 한숨을 좀 돌리자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친구인지라 엉덩이가 들썩일 것은 뻔한 일. 아니, 이 적적한 시골의 친구와 놀아주겠다며 불원천리 달려온 친구가 반갑지 않으면 누가 반가울까?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임실 산타축제도 다녀왔다. 춘향전에도 나오는 구홧들(국평마을)에 사는 형관우 친구(전북지역 회장)가 귤 한 박스와 비둘기탕 그리고 약간의 주류를 갖고 달려왔다. 비둘기탕이라니? 이제 산토끼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대신 산비둘기가 판을 치는 요즘이다. 귀한 비둘기탕을 가져온 6회회장의 우정이 고맙다. 막3인이 다슬기수제비로 저녁을 해치운 후 오락도 잠깐 즐기다 같이 잠이 들다.
이튿날 아침,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아욱을 뜯어 아욱된장국을 끓여 선보이다. 재경회장이 완주에 있다가 달려왔다. 함께 뒷산에 올랐다. 순백색의 세계,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것인가. 온몸을 병풍처럼 휘감은 신천지, 별세계, 은세계이다. 가객을 자처하는 친구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정PD가 핸드폰 동영상을 돌렸다. 항암 치료중 예기치 않게 두어 달 전에 숨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어찌 외면할 일이겠는가. 남원에서 ‘반짝 문상’을 하니 친구의 부인이 고맙고 미안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불과 두 달 사이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형수의 황당함과 황망함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여수 친구는 세밑이라 저녁 약속이 있다하여 차를 전북 부안 상설시장으로 돌렸다. 임실에서 족히 1시간 40여분, 제법 멀다. 가는 도중에 친구가 돌아가신 춘부장께 인사를 드린다한다. 명당에 자리잡은 산소는 눈이 엄청 쌓여 무릎 중간까지 푹푹 빠진다. 여기도 아무도 먼저 걷지 않은 길이다. 춘부장 묘소 근처에 특이한 묘가 있다. 비문이 <벽송당 지응대사 선비先妣지묘>이다. 아니, 스님의 어머니 묘를 이렇게 잘 관리를 해온 까닭이 무엇일까? 검색을 해보니, 그럴 듯하다. ‘벽송당 지응대사’를 쳐보시라. 조선중엽 풍수지리에 아주 능한 스님의 애틋한 사모곡이다.
부안 상설시장내 ‘삼순이집’에서 비단장사 왕서방같은 친구가 흥정을 벌였다. 홍어 1마리 7만원, 갑오징어, 겨울숭어회, 죽합(맛조개), 생합 등을 15만원에 사, 반찬값과 밥값만 받는 근처 ‘고향식당’에서 회식을 하다. 상다리가 휘어진다. 여사장이 미모가 출중하다. 그제서야, 오늘의 오찬이 올해의 마지막 ‘벗길맛’ 여행임을 깨달았다. ‘벗길맛’은 ‘벗따라, 길따라, 맛따라’의 준말이다. 얼마나 섹시한 이름인가. 누가 지었는지 멋지다. 날짜 등을 정하지 않고 마음 내키면 ‘벙(번)개팅’으로 떠도는 무리들의 부정기적 모임이다. 지난 1월 입춘때쯤에도 졸지에 여럿이 모여 거제도까지 역사-문화-정치-미각여행도 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3박4일이었다. 그 흥겨웠던 때가 생각나 지긋이 눈을 감는다. https://cafe.daum.net/jrsix/h8dk/1119
홍어애(창자)는 아시겠지만, 막 잡은 홍어애를 드셔보지 않은 분들도 많을 터. 홍어 껍질을 어떻게 벗기는지도 아시는지? 펜치로 쭈욱 잡아 늘어빼면 껍질이 홀라당 벗겨진다. 홍어래를 기름소금에 손가락 마디만큼 잘라 입에 넣어보셔라. 혀로 휘휘 돌려보시라. 순전히 ‘이 맛’에 1마리가 15만원이 되어도 사먹어야 하는, 우리는 미식가인가? 최근 인천과 군산 앞바다에서 홍어가 많이 잡혀 값이 많이 내렸다한다. 홍어애와 홍어뼈들을 넣어 끓인 게 홍어애탕이다. 보리싹을 넣어야 제맛이지만, 보리싹이 어디 흔한가. 부추잎을 넣거나 미나리를 넣어도 좋다. 아무튼 입맛 까다로운 친구들은 삭힌 홍어회를 좋아한다지만, 생홍어회가 더 좋다는 친구들도 많다. 생합과 죽합은 비린데도 잘만 먹는다. 피꼬막은 북한산이라 한다. 예전에 어느 재래시장 피꼬막 앞에 <통일되면 국산>이라는 안내글을 보고 ‘그렇지, 통일 되면 국산이지’하며 크게 웃은 기억이 있다.
오후 눈 덮인 김제평야를 바라보며 돌아왔다. 점심을 워낙 든든히 한지라 저녁시간이 돼도 배고픈 줄을 모르겠다. 밤8시 귀빈들이 들렀다. 운봉의 친구부인과 아들, 딸이다. 지난번 친구의 문상이 큰 위로가 되었다며 봉투를 놓고 간다. 친구와 일화를 몇 가지 말하니 우신다. 참 딱하다. 가만히 등을 두들기고 손을 잡아주었다. 9시쯤 라면 3개를 끓여 맛있게 먹고 잠들다. 사흘째, 졸지에 내려온 교장선생님이 선약이 있어 올라가야 한단다. 오수면 맛집에서 닭볶음탕을 먹고, 무인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며, 왕회장은 사업 궁리를 하다. 그렇게 2박3일의 벗길맛여행은 끝이 나고, 나만 호올로 고향집에 남아 연말을 보낼 것이다. 곧 만나자. 우리 이제 코로나 탓에 3년째 못한 신년인사회도 하기로 했으니, 서운해도 그때 보면 되지 않겠냐. 먼 길 잘 올라가라. 운전도 교대로 하고. 본채와 사랑채 대청소를 1시간 반 정도 하니 곤피곤피.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니 5시 반. 아침으로 착각했는데, 밖이 환한 걸 보고서야 6시도 안된 대낮인 줄 알았다. 이런 착각, 국민핵교때 하고 처음인 것같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