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茶는 향ㆍ맛부터 다르지”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녹차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식사 후 커피나 청량음료 대신 녹차를 마시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쉽게 마실 수 있는 티백으로, 또 찬물에 타서 마실 수
있는 녹차까지 나와 있으니 외국에서 들여 온 홍차 못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마시는 녹차가 실은 우리차를 밀어 내고 들어온 일본차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선암사 주지로 있는 지허 스님이 쓴『지허 스님의 차』는 이러한
차(茶)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알려주고 우리 고유의 차 문화를 찾고자 하는 책이다. 전남 순천시 승주군에 있는 선암사는 신라 진흥왕 3년(542년)에 세워진 사찰로 태고종의 본산이다. 여기에 있는
5,000여평 규모의 칠전선원 차밭은 자생 차나무 밭으로는 국내 최대이다.
지허 스님은 인간의 욕심과 편리함이 우리차의 쇠퇴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일제시대 일본에서 늘어나는 차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심은 일본 차나무(야부다기 종)를 대기업이 대량생산하면서 본래의 맛과 향은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식 ‘녹차 상업주의’는 티백(Teabag)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싼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묵은
잎이나 쭉정이까지 집어 넣은 티백 녹차는 편리함과 차의 정신을
맞바꾸었다.
대기업이 일본 차나무를 선택한 것도 재배의 편리함 때문이다. 자생 차나무의 특징은 뿌리가 곧게 땅속 깊이 들어가는 ‘직근성’에 있는데 비료를 쓰면 뿌리가 옆으로 퍼지는 ‘횡근성’으로 변하고 맛도 변한다고 한다. 차잎을 따고 보관하는 과정도 세심함과
정성이 필요하다. 가을에 새 잎을 따서 만드는 차와 겨울에 묵은
잎을 사용하는 차는 그 맛이 전혀 다르다.
제대로 만들어 진 우리차는 은은한 숭늉 빛깔로 구수한 맛이 난다.
우리가 녹차의 특성으로 알고 있던 잎사귀 맛이 살짝 나는 녹색 빛깔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저가의 제품은 현미 녹차라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차를 재배할 때 농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요즘 일본에서는 오히려 차가 건강에 해롭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맑은 물을 데워 무공해로 재배된 선암사의 진짜 우리차를 마셔보고 싶게
이끄는 책이다.
--- 한국일보 책과세상 김범수기자 (2003년 1월 20일 월요일)
우리茶를 일본녹차와 비교말라
《늘 차를 곁에 두기를 좋아하던 터에 차에 관한 좋은 책 한권을
만났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서 전통차의 다맥(茶脈)을 잇고 있는 지허 스님의 글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한국 자생차에 관한 일깨움에 새삼 부끄러움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무조건 작은 찻잎, 어린 찻잎이 좋은 줄 알았다. 우리는 우전(雨前)이니 세작(細雀)이니, 때로 작설(雀舌)이니 하는 말에 쉽게 현혹되곤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실상 차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이름이나 크기가 아니다. 찻잎의 크기로 차의 품질을 따지는 것은 지리적, 기후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
‘일창이기(一槍二旗·찻잎 석장이 한 자루의 창에 두 개의 깃발이 달린 형상)’의 모양을 제일로 치는 한국 자생차는 5월 중순이어야 완숙기에 이른다는 대목에서 독자는 무릎을 치게 된다.
한국의 자생차 나무만큼 성실하면서 소박한 나무가 또 있을까. 차나무는 크지 않다. 다 자란 나무도 키가 어른 허리 만큼밖에 안 된다. 웃자라려고 애쓰지 않지만 기개는 어느 나무보다 당차다. 차나무 뿌리는 몸보다 3배나 길다. 뿌리는 곁눈질하지 않고 밑으로만
파고든다. 터를 단단히 잡고 1년을 준비하고 나서야 엄지손가락
만한 찻잎을 만들어 내민다. 이른 봄에 나온 첫 순을 따면 그 자리에 또다시 소박한 잎을 수줍게 키운다. 올곧게 중심을 버티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모양새가 우리네 선비를 연상시킨다.
지허 스님이 손수 차를 따고 만드는 과정도 어찌 보면 경이롭다.
차 만들기는 정성에 다름 아니다. 여덟 번에서 열두 번을 무쇠솥에서 덖고 멍석 위에서 조심스럽게 비벼야 향과 맛을 품게 된다. 우리 차를 ‘덖음 차’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 흔히 숙지황(熟地黃)을 만들 때 ‘구증구포(九蒸九曝)’를 한다지만 차를 덖는 일도 이
못지않은 수고다. 게다가 차 만들기는 경륜이다. 덖는 횟수를 결정하는 것도 경험에 따른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차를 볶는 일도 여러
해 연륜이 필요하다. 차 볶기는 맛을 결정한다. 아궁이의 열이 지나치면 탄내가 나고 열이 덜하면 차의 향(香), 색(色), 미(味)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 솥 안에서 찻잎이 ‘댓잎에 첫눈 내리는 소리’를 내고 ‘한겨울 봄날 같은 햇볕이 숲에 비칠 때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 같은 김이 올라야 비로소 볶기가 완성된다.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겨울이 삼한사온이라는 건 이제 옛말, 변덕스레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은 내일을 가늠하기 어렵다.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하늘을
보면 문득 차 한잔이 그리워진다. 주전자에 물을 반쯤 채워 끓인다. 벌써 살포시 차 향내가 배어 올라오는 듯하다. 찻잔에 입을 대면서 일전의 여행을 떠올려본다. 일본의 시즈오카(靜岡) 지방을 몇
차례 다녀본 적이 있다. 일본 차의 본향이라는 곳이다. 도로변으로
줄지어 늘어선 차밭을 보며 “참 장관이다” 탄성을 올렸다. 야부기다(數北)라는 일본 차나무 수만 그루를 산줄기를 따라 심어놓고는 둥글둥글 다듬어 놓은 모양이 마치 녹색 구름밭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허 스님은 겉모양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한다. 가지를 친
것은 기계 생산을 위한 것이요, 많은 양을 따려니 비료를 쓰고 농약을 뿌린 탓에 맛이 떨어지고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다. 일본 차는
찻물 색깔도 녹색이고 풋내가 난다. 다갈색에 구수한 맛이 나는 우리 차와는 다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녹차가 우리 생활에 파고들어 마치 한국의 전통차인양 행세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400년 전 침굉 스님부터 선암사의 선다맥(禪茶脈)을 이어오기를 지허 스님까지 벌써 16대째. 선암사 일주문 밖 자생차밭이 더욱 대견해 보이고 더욱 늠름해 보이는 것도 바로 일본의 녹차가 우리 차 대접을 받고 있는 세태 때문일 것이다.
언제고 선암사에 발길이 닿게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차 한잔을 청해 마시고 싶다. 지허 스님의 이야기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타고난 성정대로 차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다도(茶道)가 아닐까. 차가 곧 마음이라면, 선암사에서 평생을 전통차와 함께 보내온 지허
스님의 마음 한 조각을 얻어올 수도 있을 법하다.
--- 동아일보 책의향기 주성원 기자 (2003년 1월 18일 토요일)
마음 한잔 마시고 가게
‘맑은 경쇠 소리에/다시 햇차를 딸아 난간에 기대니/묵은 비 겨우 개고 가볍게 바람 쐬어/묵은 비 겨우 개고 가볍게 바람 쐬어/
빈 발의 낮기운 수정처럼 차갑네’(한용운의 중상사 난간에서 차
마시기).
한 잔의 차는 고요와 안정을 가져다준다. 차를 마시는 것은 곧 마음을 닦는 일이다. 그래서 당나라의 조주선사는 ‘끽다거’(喫茶去·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라는 화두를 던지지 않았던가.
나무(木)의 어린 싹(艸)을 사람(人)이 가공하여 마시는 차(茶)는 그
역사가 5,000년 가까이 된다.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차가 들어온 것은 2,000여년 전. 기록에 따르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금관가야에 시집오면서 차나무와 차씨를 가져와 처음 소개했다. 이어 백제시대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불교와 함께 차를
들여와 호남지방에 심었다. 본격적으로 차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전통차가 처한 현실은 참혹하다. 대부분 전통차라고
알고 있는 녹차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란 차나무가 아니라 일본이 대량생산을 위해 품종을 개발한 야부기다 차나무의 잎으로 더욱더 새파란 색을 내기 위해 쪄서 만든 차다. 게다가 일본의 다도가 우리 고유의 다도로 둔갑해 알려져 있는가 하면, 기후나 풍토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곡우 전에 딴 차가 우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서 최상품 대우를 받으며 팔린다.
다맥의 전통이 16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선암사에서 차를 기르고
덖어온 지허스님이 말하는 우리 차의 현실이다. 스님은 지난 10년간 매달 일반인을 상대로 ‘지허스님의 산중다담’을 열어 차를
마시며 우리 차 이야기를 나눠왔다. 이를 바탕으로 이 책 『지허스님의 차-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 전통차의 참모습』을 펴냈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 차라고 예찬하는 저자는 자생 차나무의 특징을 몇가지로 요약한다. 우선 뿌리가 곧추 뻗어나가는 직근성으로, 예로부터 차나무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된 이유다. 또 꽃과 함께 전년에 맺은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다. 풋내가 아니라 구수한 냄새가 나고 다갈색이 감도는 전통차는 낱낱의 새순이 아니라, 삼지창처럼 차순에서 세 장의 잎이 올라와 한 몸을 이룬 ‘1창2기’를 따서 만든다. 딴 찻잎은 솥에서 덖어 이를 멍석에 놓고 손으로 비비기를 아홉번 이상 되풀이해야 수분이 빠지고 차성분이 농축된다. 그래서
차를 만드는 일은 도를 깨우치는 일과 같다.
저자는 다도도 지적한다. 형식에 치우치는 것은 일본식. 일체의 형식을 배제하고 눈으로는 색을 보고, 코로는 향을 맡고 입으로 그
맛을 음미하면서 그저 각자 성품에 따라 차의 진정한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다도라는 설명이다. ‘차를 즐기되 알고나
즐기라’는 노스님의 꾸짖음이 가슴을 울린다.
책에는 이밖에도 다도와 다례, 선암사의 다맥 등이 엮어져 있으며
1954년 불교 분규 사건 등도 실렸다. 책 첫머리를 살펴보면 이름이 낯익은 문화예술인들이 눈에 띈다. 영화감독 임권택씨가 책을
총감독했고, ‘취화선’에 장승업 대역으로 출연한 김선두 중앙대 한국화과 교수가 그림을 맡았으며, 표지 디자인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안상수 교수 작품이다.
--- 경향신문 책마을 윤민용 기자 (2003년 1월 18일 토요일)
정성으로 덖고 우려낸 고유 차문화 '은은'
신라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은 신문왕에게 화왕게를 올리며 “백성들이 차로써 정신을 새롭고 맑게 해야 한다”고 간했고, 다산 정약용과의 교유로도 유명한 초의선사는 『다신전』에서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저장할 때 건조하게 하며 마실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는 완성된다”고 말했다.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차의
역사 속에서 우리 고유의 차문화가 꽃피었고, 그것이 일본의 형식주의 다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선암사 주지 지허 스님은 이 책에서 일본의 개량종 녹차나무와 달리 곧은 뿌리로 자라는 자생 차나무의 특성, 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덖어내는 고유의 차만들기 과정, 선과 차가 하나가 되는 우리의 명상적 차문화 등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일개 그릇에 지나지
않지만 찻물을 끓이기에 주전자에는 한자의 존칭 ‘자’가 붙었고, 옮겨심기 힘든 차나무의 생태에 착안해 시집가는 딸의 가마에
차씨를 넣었다는 스님의 입담이 전통차처럼 구수하다.
---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임주환 기자 (2003년 1월 18일 토요일)
형식에 매달리는 茶道는 일본식
우리 전통차의 명줄이 끊기지 않고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을 통해
이어져온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백제가 전해 준 전통차
문화에 사무라이식 ‘형식미의 극치’를 얹은 일본 다도(茶道)가
우리 차문화로 둔갑하는 현실이지 않은가.
한국자생 덖음차의 다도는 모든 형식을 배제하고 차의 진정한 내용에 몰입해 각기 자기 성품에 따라 즐겁고 편안하게 차를 마시는
것이다. 일본이 대량생산 품종으로 개량한 야부기다종 녹차문화에 우리 전통차문화는 질식돼 왔다. 선암사 지허스님이 일제치하와 해방후 조계종-태고종 분쟁, 여순반란사건등 현대사의 아픔과
비극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한국 전통 사찰의 아름다움과 전통차의 맥을 고스란히 간직해왔기에 비로소 전통차문화 중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4세에 선암사에 출가해 50여년동안 차에 관한 소임을 맡는 다각(茶角)으로 일한뒤 선원장(禪院長)이 된 스님은 이 책에서 ‘선다일여(禪茶一如·참선과 차의 경지는 하나)’의 진경을 펼쳐보인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다서(茶書)의 고전인 당나라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나 차의 중흥조 초의선사의 ‘다신전(茶神傳)’ ‘동다송’의 오류도 걸러내고, 우리 차역사와 차문화에 대한 그릇된 상식을 이책은 바로잡아준다.
초의선사가 곡우 5일전에 딴 우전차가 상품이라고 한 것을 두고,
국내 녹차 생산자들이 그 지방의 기후와 그해의 절기는 고려치 않고 곡우 전에 우전차를 만들기 위해 차나무에 비닐을 씌우는 식으로 재배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온전한 자생차의 향(香)·색(色)·미(味)를 얻기 힘들다고 스님은 질책한다. 자생차는 지축을 향해 뿌리가 깊숙이 내려가 암반층에 있는 담백한 수분과 무기질을 섭취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데도 일본 야부기다 차나무는 차나무의 본성인, 이 ‘직근(直根)’성을 거세하고 옆으로 뿌리가 자라는 ‘횡근(橫根)’성으로
변질됐다. 비료와 농약 없이는 살수 없게 된 이 야부기다 녹차를
마시고 수전증환자가 증가해 일본에서조차 이 녹차는 양식있는
다인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자생차는 야부기다종이나 변종 자생차가 감히 흉내내기 힘든 세계적인 문화상품이다. 스님은 1980년대 일본차의 일인자라 자부하던 오가와 에이코 여사 일행이 8년동안이나 우리 전통 덖음차
제조법을 배우려고 했으나 결국 흉내만 냈을 뿐이란 일화까지 소개한다. 솥에서 손으로 덖고 멍석에 비비는 것을 9차례 넘게 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된장맛·김치맛·숭늉맛등 가장 한국적인 맛을 종합적으로 은은하고 담백하게 나타낸
것이 바로 우리 차의 맛이다.
이 책 제작에 관여한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선암사에서 ‘취화선’을 촬영한 임권택 감독이 그 인연으로 이 책의 제작총감독을 맡았고, 안상수씨가 표지디자인을 했으며 기획은 최성민 한겨레신문기자가 나서는 등 호화배역이 책의 배면에 깔려 있다.
--- 문화일보 북리뷰 정충신 기자 (2003년 1월 17일 금요일)
차와 선의 진정한 관계
한국의 차는 백제시대 불교 전래에 맞춰 들어와 전라도 일대에 퍼진 이래 오늘날 문화 명품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전통차는 야생 차나무에서 난 잎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덖어 만든 것으로,데쳐서
말린 일본 차와는 완전히 다르다. 근대 선승 10인 가운데 하나인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은 50여년 동안 다각(茶角:절에서 차밭을 가꾸고 차를 만들며 다례를 올리는 등 차에 관한 일체의 일을 하는
사람)일을 맡아온 다인. ‘선다일여(禪茶一如)’라는 차와 선의 진정한 관계, 선암사에서 전통차 다맥이 살아남게 된 사연 등을 들려준다.
--- 대한매일 (2003년 1월 17일 금요일)
"구수한 우리茶, 일본 녹차와 달라요"
한국 전통차를 보존하고 알려온 전남 승주 선암사 주지 지허 스님(62)은 "차는 대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예찬한다. 하지만 깊은 산중의 산사마저 커피자판기가 점령하고,차례(茶禮)상이 술판이 돼버린 현실을 보는 심정은 편하지 않다.
더욱이 일본에서 유래한 녹차를 한국 전통차로 오인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개탄을 금치 못한다. 『지허 스님의 차(茶)-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 전통차의 참모습』(김영사,1만2천9백원)은 그래서
나온 책이다.
이 책에서 지허 스님은 "우리가 전통차로 오인하고 있는 녹차는 일본의 풍토에서 일본인의 입맛과 체질에 맞게 쪄서 만든 일본차"라고 지적한다. 한국 전통차는 완전 야생으로 자생하는 차나무의 잎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덖어서 만든 것으로,데쳐서 말린 일본 차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차나무의 종류와 향,색깔,맛,효능도 전혀 다르다. 일본차는 데쳐서
말린 것이어서 우리면 녹색이 나고 약간 풋내가 나서 녹차라고 하는 데 비해 전통차는 덖어서 만들어서 다갈색이 나고 구수한 숭늉내가 난다는 것이다.
지허 스님은 "그런데도 일본의 '다도'라는 것과 함께 녹차가 들어와 전통차 행세를 하고 있다"며 우리 차의 정체와 효능,자생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만드는 방법,차를 달이고 마시는 법,일본차인 녹차 확산의 문제점,선다일여(禪茶一如)가 말하는 차와선의 관계 등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 한국경제신문 서화동 기자 (2003년 1월 16일 목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