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야산방에 조그만 텃밭은 가지고 있으니 아주 작은 농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봄철이 되면 화야산방 이곳 저곳을 손질하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것은 텃밭 가꿈입니다. 정말 몇평 안되는 텃밭이지만 농부들이 느끼고 부딪히는 일은 대충 다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경험속에 터득한 것은 서두르서는 되는 게 없다 입니다. 처음 모종을 사서 심고 나면 언제나 자랄까 자주 들여다 봅니다. 하지만 모종이 금방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잡풀들은 잘도 자라는 반면 기대하면서 손길을 주는 작물을 더딥니다. 잡풀들 자라는 속도에 반에 반도 안됩니다. 잡풀들은 가뭄에도 잘도 자라는데 모종들은 자주 물을 공급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뿌리가 활착하면 성장속도가 빨라집니다. 또한 채소들의 성장에는 자연의 마음이 절대적입니다. 물론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경우가 많지만 노지 재배의 경우에는 자연의 도움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연이 심술을 부려 가물거나 엄청난 폭우가 쏟아질 경우 농사는 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요즘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자연앞에서는 그야말로 코끼리앞에 비스켓입니다.
처음 텃밭을 가꾸면서는 조바심도 많이 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텃밭을 가꾸거나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부들 입장에서는 심은 모종이 어서 자라 많은 수확을 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인생사가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야말로 순리대로 서두르지 않고 지켜보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 적절하게 움직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가뭄때 양수기로 물을 퍼올리거나 강한 비바람이 칠 때 식물들이 넘어지지않게 지지대를 받혀주는 것 정도이지요. 너무 가물어도 너무 비가 많이 와도 농사에는 치명타입니다. 하지만 그 자연의 마음을 어찌 인간이 알겠습니까.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저는 텃밭을 가꾸면서 작물을 심고 기르는 것이 개혁을 하는 것과 참으로 많이 닮아있다고 느낍니다. 개혁이라는 모종을 심은 뒤 조바심에 자꾸 모종을 만져보고 왜 빨리 자라지 않는지 애를 태우면 그 모종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아니 너무 물을 많이 주거나 거름을 과다하게 주면 오히려 성장은 커녕 생명조차도 잃게 됩니다. 정말 순리대로 서두르지 않는 것 만이 최선의 방도입니다.
왜 빨리 자라지 않느냐고 채칙질을 한다고 모종이 잘 자라겠습니까.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적 사회적 합의로 이뤄내려는 그 개혁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토양을 조성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런 방식으로 서로 자기식으로 조속한 개혁을 이뤄내려다가는 졸속내지는 하지않는 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서둘러서 성공한 개혁은 단 한 것도 없습니다. 개혁이란 모종을 심기위해 어떤 종류를 심을 것인가부터 엄청난 사회적 논의를 이뤄야 합니다. 정권을 잡은 특정 세력이 하고 싶다고 마구 개혁이란 모종을 심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이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적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이룬뒤 가장 합리적인 것을 택하고 그것을 실사회에 심는 그런 작업이 서둘러서 되겠습니까. 토양과 자연환경에 맞지도 않은 모종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열대 식물을 온대지방이나 한대지방에 심으면 그 모종은 당연히 버티지 못합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종이 성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밥을 지을 때 왜 빨리 끓지 않느냐면 자주 뚜껑을 열어보면 밥을 망치기 마련입니다. 고기를 빨리 굽겠다고 조급하게 고기를 뒤집으면 오히려 익는 속도를 더욱 늦추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묵묵히 개혁이란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가고 그런 작은 변화에 만족하고 주어진 국민적 사회적 노력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행한 언론개혁과 부동산 개혁 그리고 문재인정권에서 추진한 사법개혁 그리고 현정권에서 추진하려는 의료개혁이 왜 실패했고 엄청난 갈등을 유발했고 그런 전철을 또 밟는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너무 서둘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니함만 못하지는 않지만 너무 서둘러서 실패한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모종의 종류를 선택하기 위한 또한 모종을 심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부족했고 모종을 심고 왜 빨리 자라지 않느냐고 모종을 잡아당기면서 생긴 부작용때문입니다. 자신의 임기때 개혁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그 조바심이 개혁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개혁이란 모종은 하루아침에 성장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가능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2백년이상 이런 저런 혁명을 거쳤지만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서양의 유명한 대성당들이 완성되기까지 수백년의 세월이 그냥 흐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무리하게 서두르지 않는 공사와 기다림입니다. 묵묵히 기다리면서 완성의 날을 기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농사나 개혁이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은 동서고금을 통해 증명된 명확한 진실입니다.
2024년 5월 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