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위친계원들과 여수를 여행하고
1958년도에 처음 만난 코흘리개들이 58년 만에 여수를 당일치기로 여행을 갔다 왔다. 2016년 12월 5일 월요일이다. 토, 일요일 주말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다. 출발지는 공주시 계룡면사무소 앞이다.
나는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관계로 아침 3시 반에 기상해서 4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아직도 새벽공기 싸늘한 푸른 하늘에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시푸른 별빛을 머금은 새벽 산야가 활동사진처럼 지나쳐 고속도로가 밤길의 서정에서 황홀하게 펼쳐진다. 더욱이 부인과 동행하니 운전에 지루함은 덜했다. 새벽이라 고속도로 사정은 양호하고 시간은 단축되었다. 집결지에 도착하니 공주 관광버스가 아직 미도착했고 몇몇 친구들이 부부간에 면사무소 정문 농협 앞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공주방향에서 오는 친구들이 내려오는 관광버스에 같이 탑승하고 도착했다. 총원 19명이다. 병원 입원해서 수술하는 친구, 몸이 불편한 친구, 가정사 관계 등으로 부부간 8명이 불참했다. 우리들은 1949년-1951년생들로 주로 50년과 51년생들이 많았다. 당시 나이가 한국나이 69세에서 67세다. 모두가 연륜을 속일 수 없어 주름은 골이 깊어지고 살결은 윤택이 사라졌다. 머리는 흰 머리칼이 염색으로 검은머리로 장식했다. 운전수는 3시간 내에 여수에 도착한다고 전한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시간대다. 일단 출발해서 대전 – 통영 고속도를 올라타 달렸다. 총무가 준비한 떡과 술, 음료수 등을 마시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무가 이어졌다. 시골에서 열심히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짙게 드리우고 그 향이 노래 속에 묻어난다. 노래는 모두 애환의 노래를 즐기고 겉으로는 노래를 부르지만 속으로는 수 십 년 세월의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숨 고르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지난날들을 털어버리려는 목소리가 자기 처지에 맞는 노랫말을 가락에 실어 개운하게 회포를 풀려는 독백으로 목청을 높였다. 한잔 술이 곁들여지면 과거의 회포가 노을 사라지듯 옅어져 동심으로 돌아간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우리들은 거나한 한잔 술에 삶에 지친 회포를 목청껏 풀었다. 어려운 말을 빌리자면 유주학선(有酒學仙) 이고 무주학불(無酒學佛)이라는 대원군의 말을 빌려본다. 술을 마시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라는 뜻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봉명동 서당을 다녔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해본다. 우리들은 모두 신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삶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시대는 전쟁의 폐허위에 굶어죽지 않는 것이 최상의 목표였던 시대에 태어나 문화라는 것은 광석 라디오가 있는 것이고 문명이란 석유 등잔불을 밝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당시 석유가 떨어지면 들기름 불도 켰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가루우유를 배급받고 강냉이 가루도 받아왔다. 이렇게 우리들이 거쳐 간 세월만큼 인생의 중력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것인지 더 가라앉은 것이지 구분이 안 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이 목숨이기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부자다. 위친계원 1/2이 흙으로 떠나고 타향으로 떠난 것 같다. 관광버스는 금산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고 볼일을 보도록 했다. 12월 겨울 날씨치고는 푸근한 느낌이 든다. 우리들은 자라면서 식량자급을 위해 증산 건설에 이바지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쳤고 결혼 후에는 못 배운 한을 이념을 달리하는 신세대 자식들에게 대리만족시키려 허리가 휘었고 부모를 모셔야하는 도리라는 명분 속에 속앓이를 할 때도 있었다. 전통 유교이념에 충실했지만 장래에는 양로원 생활을 꿈꿔야 한다. 금산휴게소 산야는 황량한 낙엽만 둥글고 조용히 지나간 무더위에 지친 가지마다 잠들어있다. 다시 버스는 달리고 한 시간 후면 여수에 도착한단다. 우리 동창들은 고지식하게도 현실과 야합할 만큼 영악스럽지도 못했고 그처럼 비양심적이지도 안았기에 오늘을 이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 그 파릇했던 인생의 봄은 아련한 기억이요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인생의 여름은 전설처럼 남겠지만 진짜인생은 우리가 살아난 가을에 있고 그 결실은 겨울에 존재한다.
돌산도 거북선대교를 지나 잠시 정차하고 전망대에 오르니 이곳 여수는 이순신 장군의 도시 같다. 이순신 광장, 이순신대교, 거북선대교 등이 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대교는 그 규모가 상당하다. 교대 주탑이 하늘 높이 뻗혀있고 아래로는 시푸른 바다로 모든 선박이 통행을 한다.
관광유람선을 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풍악에 시끄러운 노래 소리에 물결도 출렁이며 춤을 춘다. 4박자 에 몸을 흔들어대는 밴드소리에 우리일행들도 어울려 춤을 춘다. 물 만난세상이다. 사방에서 모여든 남녀노소가 바다 위 유람선속에서 한바탕 미쳐 날뛴 사이 유람선은 선착장에 도착했다. 하늘위엔 해상 케이블카가 높이 떠 오간다. 우리도 탑승하고 바다 위를 날아갔다. 도착한 곳이 돌산공원이다. 저녁이 다가오니 오색등불 터널이 눈을 부시게 한다. 지난봄 여수박람회 때에 설치한 네온사인 가득한 나무들이 공원에 빼곡하다. 여수의 백미는 올빼미 야경투어다. 이것은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기사 겸 가이드의 여수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올빼미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엘지 칼텍스 정유공장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그 규모면에서 보는 눈을 놀라게 한다. 24시간 수 십 만등의 전기불이 켜져 있고 하루 전기요금이 몇 백 억 원?이라니 가히 놀랄만하다. 이 야경 투어의 요금은 일인당 1만 2000원이고 올빼미관광은 기사 겸 가이드의 입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정말로 탄성을 지른 것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대명사 여천공단의 야경이다. 바다건너 바라보는 여천공단의 수 백 만개의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눈부신 불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케 한다. 올빼미관광의 마지막은 거북선대교 전망대 앞 광장에서 기사는 트럼펫을 들고 연주를 하고 승객들은 춤을 추는 것으로 관광일정은 마무리 된다. 지면상 많은 일과가 생략되었지만 여수는 일일관광지로서 괜찮은 장소인 것 같다.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다. 저녁 8시 우리는 다시 공주관광 버스로 갈아타고 귀가 길에 올랐다. 돌아다니느라 지친 몸 잠시 숨고르기 시간이다.
친구여! 사노라면 이를 악물고 쓰라린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남들처럼 가난이란 이유로 학구열을 접어둔 채 살 떨리는 치욕의 세월을 억척스런 삶으로 견뎌낸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처자식을 위해 우리들은 가슴속에 꿈 하나를 숨기고 자신을 팔기위해 무거운 가방과 농기구와 일거리 연장을 들고 생존을 위해 정글 같은 세상으로 인생을 팔기위해 나갔었다. 아직도 그 누구는 지금도 그곳에서 인생을 팔고 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노랫소리는 힘차다. 처녀같이 수줍은 모습으로 오늘을 같이한 부인들도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숨겨 놓았던 애창곡을 구성지게 불렀다. 운명에 굴레에 묶인 우리 모두의 실존의 절규는 죽느냐 사느냐 이었다. 처절한 사랑과 고뇌와 방황 그리고 금쪽같은 자식을 낳아서 기르며 가르치고 장군들 부인이 갑질하는 군대를 보내고 어려운 이웃과 아픔을 나누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 이것은 죽은 뒤에 천당 가는 것보다도 거룩한 일일수도 있다. 이러한 부인들이 있기에 오늘의 위친계원들이 존재한다.
버스 속 노래방 가사에 부인들의 목청은 아련하고 곡조는 구성지기도 하지만 목소리는 힘차다. 시간이 지나고 거나한 술기운에 모두다 레퍼토리가 독났다. 부를 노래가 없는 것 같다. 이어지는 대목은 입씨름이다. 이런 재미로 관광한다. 수 십 년 인생 속에 켜켜이 박혀있는 우리네 삶의 슬픈 진실 그 서럽고도 아름다운 애환의 속삭임들이 저녁 불빛에 흐드러진 겨울 도시 고속도로를 거치며 별빛 찬란한 벌판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휘몰아간다. 어제의 애잔함과 오늘의 아픔을 뒤로하고 내일의 꿈을 재촉하는 새벽종이 울릴 듯하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며 노래방 마이크에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찬바람 부는 날도 비 오는 날도 땀방울에 눈물적신 인생의 역로 지금은 황혼 길을 가고 있지만
아! 가슴이 무너지던 슬픈 역사도 술 취해 울던 때도 옛날이야기 바람 부는 네거리에 낙엽과 같이 이제는 석양 길에 홀로 섰지만 . . .
이미자의 노래 말인 내 노래 소리가 끝날 무렵 버스는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우리 모두는 오늘 하루가 행복했다.
친구여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2016년 12월 7일
율 천
첫댓글 사람살아가는 삶 적나라 하게 잘쓰여져 잘보았습니다 희 노애락 글내용 한줄한줄 조목조목 잘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