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갈증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마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다니는 거처럼, 그것과 합체돼야 비로소 완성되고, 그래야 그 원인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갈증이나 헛헛함 같은 것 또는 끊임없는 불안이 사라진다.
그 합체됨에는 소유나 폭력이 없다. 그 정반대로 자신을 그에게 완전히 넘겨주고 내어주는 것이다. 아기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고 아기 볼을 깨물며 아기를 삼켜 먹을 거처럼 하는 행동은 그 아이와 하나가 되고 싶은 엄마의 바람일 거다. 그 바람은 폭력적인 소유가 아니라 그에게 자기 생명도 내어줄 수 있다는 마음일 거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그런데 사랑은 소유나 종속이 아니라 봉헌이나 헌신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도전이다. 간절히 바라면서도 도전인 거다. 예수님을 믿는 게 그렇다. 믿으면서도 못 믿는다. 예수님은 하나뿐인 생명을 당신의 인생을 하느님께 바쳤다. 하느님을 죽도록 사랑하셨다. 우리의 사랑도 예수님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을 향할 때 부활한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깜짝 쇼가 아니라 하느님처럼 변화하는 거다. 철부지 남자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빠가 되어가고,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는 거처럼 사람은 내어주는 존재로 변해 간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한 남자에게, 한 여자에게, 자식에게, 또는 어떤 특정한 일에 자신을 넘겨 내어주는 것도 그런 것일 텐데, 왠지 모르게 그런 헌신과 봉헌으로는 그 갈증이 다 해소되지 않을 거 같다.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운 것과 그들에게 받는 서운함 등이 그 증거가 될 거다. 하느님께 헌신함으로 받는 보상은 없고 그분과 함께함은 느낄 수 있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 갈증이 없어진다. 신비다. 신앙은 마음의 위로가 아니고 구체적인 생활이고 삶이다. 하느님 사랑이다. 지금 여기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말을 안 하고 또 잘 못해서 그런 거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런 고민과 갈증이 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럴 거다. 오늘 미카 예언자는 이런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하느님이 아니면 그 갈증, 헛헛함,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게 없다.
예수님,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이 일으키신 기적을 저에게는 하지 마십시오. 그러시면 또 다른 기적을 바라게 되고, 제 믿음의 순수함이 없어질 거 같습니다. 차라리 의심하면서 믿고 따라서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만 희망을 두며 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영원한 집을 찾아가는 이 순례를 잘 마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