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써놓았다가 여독과 그 다음주의 행사가 겹쳐 완전 탈진상태가 됐던 터라 접어놓았던 글입니다. 뭐 다 지난 얘길 꺼내 올려놓기 무안하지만 철판 깔고(-_-;;;) 나름대로 서울팬께 여행기 겸 체육관안내기 삼아 읽어 주십사 하고 올려놓습니다.
KTF와 LG의 홈을 찾아서...
◇ 금정체육관 가는 길
창원경기장과 금정체육관을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다 마침 경기 일정표도 괜찮고 해서 큰맘 먹고 양 팀 홈을 모두 가보기로 했습니다.
기아 초창기 열혈 팬으로 오랫동안 농구를 안 보다 최근 다시 열혈 KTF팬이 되신 h님, TG와 KTF를 사랑하시는 k님, 그리고 TG팬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0개 구단에 각기 촉수 서너 개씩 골고루 드리우고 있는 해파리인 저, 이렇게 셋은 오월동주, 동상이몽 각자 다른 동기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서울역에서 8시 출발 KTX를 타니 10시 40분에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번 여행은 전적으로 KTX 덕입니다. 물론 열성 서포터들 중에는 심지어 비행기 타고 응원하러 가시는 분들도 없지 않은 줄 알지만 지갑이 얄팍하고 직장에 매여있는 저로서는 KTX가 없었더라면 쉽게 내려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했을 겁니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예전에 아주 맛있게 먹었던 남포동 꽃게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직 제철이 아닌 탓에 비록 지난번 같은 감동을 맛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푸짐한 게찜을 먹고 금정체육관으로 출발했습니다.
금정체육관에 대해 가기 힘들고 교통이 안 좋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상당히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 놀랐습니다.
거의 1호선 끝인 남포동(부산역에서 2정거장 뒤로 후진)에서 탔는데 노포동 종점까지 45분 남짓, 그리고 거기서 바로 대기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금정체육관까지 5~6분 정도였습니다. 총 교통소요시간 50분 남짓... 셔틀버스 안 다니는 평일에야 좀 귀찮겠지만 그래도 마을버스와 택시도 있으니 다니기 어렵다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어지간히 교통편한 곳에 살지 않는 한 서울팬들 역시 잠실체육관까지 1시간 이상 거리에서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겁니다. 아니 농구장 아니라 서울에서는 어딜 가려고 해도 차로 1시간 거리쯤은 기본입니다.
잠시 부산지도를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다 깨달은 것은 부산시민의 통념상 평균이동시간은 3,40분 남짓이겠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면 원주 경기장도 터미널에서 택시로 3000원 남짓, 전주 경기장은 2000원 미만, 창원경기장도 터미널에서 택시로 2000원 정도 대구 경기장 역시 동대구 역에서 따져봐야 4, 5천원입니다. 대부분 지방 경기장은 역에서 택시로 20분 안팍의 거리에 위치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뭐 금정체육관이 꽤나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서울의 열악한 교통환경에 대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_-;;
아무튼 다시 금정체육관으로 돌아와 본다면 좋은 성적에 비례해 높아진 농구열기를 반영하듯 이른 시간에도 많은 부산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와 계셨습니다.
처음 본 금정체육관은 크고 깔끔했습니다. 넓은 대지에 여러 개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나머지엔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겨울이라 약간 썰렁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농구장이 위치한 건물은 어찌 보면 체육관이라기보다 왠지 예술의전당 같은 공연장 같았습니다.
특히 구장내 매점은 대리석 바닥 위에 깔끔한 비치 테이블이 놓여 있어 왠지 컵라면 먹기엔 송구(!)스러워 보였습니다.
금정체육관 매점은 어지간한 슈퍼보다 싼 물건값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더군요. 잠실체육관은 캔음료 하나에 1천원이라는 폭리를 취하는데 여기는 450원에 영수증(!!!)까지 주더군요.
또 한가지 멋진 점은 KTF 홈에는 팬들을 위한 다양한 팬용품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색다른 응원도구, 홈용과 원정용으로 나뉜 2가지 색깔의 서포터용 유니폼, 화려하고 멋진 팬북, 역시 홈과 원정 두 가지 색깔의 실모자(비니)와 구단 모자(야구모자), KTF스티커등...
아직은 시험단계겠지만 모기업인 통신회사에서 쌓은 경험으로 프로구단 다운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입해 마케팅에 힘써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금정 체육관의 특석은 그리 편하지 못했습니다. 좌석간 너비가 좁고 경사와 발받침 사이 텀이 커 오히려 일반석에 앉는 쪽이 더 편하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안양체육관처럼 코트보다 높아 특석에서도 시야가 확보된다는 점은 장점이더군요.
◇ 1월 22일 KTF vs 오리온스 (94:85)
탄탄한 가드라인, 빠른 속공, 무시무시하게 확률 높은 외곽슛을 갖춘 오리온스는 KTF에게는 코리아텐더 시절부터 부담스러운 팀입니다. 더구나 현주엽이 부상당한 상태에서 어떻게 오리온스를 맞상대할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KTF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현주엽-미나케-맥기 이 삼각편대를 제외한 국내멤버들의 공격에서 적극성입니다. 그러나 현주엽 없는 경기에서 KCC를 만나 보여준 파이팅과 조동현과 정락영의 슛감만 살아난다면 꼭 불리한 시합은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어찌됐던 앞으로의 판도를 가늠할 흥미로운 시합이다 싶었습니다.
또한 오리온스의 새 용병 매지크가 얼마나 해줄지도 꽤 궁금했습니다. 오리온스에 부족부분은 무엇보다 강력한 인사이드입니다. 그 부분만 보강된다면 상위권 순위다툼은 또다시 향방을 알기 어려워질 겁니다.
이날 경기의 키플레이는 뭐니뭐니해도 현주엽이고 그리고 빛났던 것은 정락영이었습니다. 우리 현주엽군 비록 뛴 시간은 22분39초에 불과하지만 코트를 장악한 느낌은 진짜 에이스구나 싶은 감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받쳐주는 정락영의 파이팅은 언제나처럼 빛을 발했습니다.
또다른 숨은 공신은 현주엽의 부담을 덜어준 석명준 입니다. 에이스 대신 식스맨이 나갔을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무엇보다 공격력입니다. 공격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공격의 적극성이 현저히 떨어져 다른 팀원들의 공격시도도 위축시킨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석명준 선수 이날 모습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1쿼터에 점수차는 28대 25로 단지 3점차 밖에 나지 않자 그 정도면 앞으로 경기도 해볼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반면 오리온스는 공격이 김승현과 존슨으로 집중되었습니다. 잭슨이 빠지면서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공격의 부담을 나누어줄 선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존슨은 스코얼러지 2대2 플레이에 능한 선수가 아닙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오리온스는 앞으로 용병을 간택할 때 무엇보다 김병철과의 궁합을 보고 나서 선발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김병철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자연히 박재일도 살아납니다. 김병철이 바깥에서 두들겨주면 박재일이 안을 흔들어주면서 공격리바운드에 참가해 상대수비를 무력하게 합니다. 김병철이 픽앤롤, 박재일이 컷인플레이...또는 그 반대 이렇게 오리온스는 한번 흐름을 잡으면 무섭도록 몰아치는 힘이 있습니다. 대개 오리온스의 승리가 대승이 많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스코얼러라도 혼자 힘으로는 파도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팀 전체가 흐름을 탈 때 제힘을 발휘하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오리온스의 강점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이죠. 공격이 제대로 이루어 질 때 수비에서도 힘을 받는 팀이 오리온스입니다. 트레이드로 오리온스의 틀을 바꾸지 않을 생각이라면 용병을 찾을 땐 국내 주공격수들과 호흡을 맞춰줄 선수를 찾아야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매지크 선수는 머리가 나쁜 선수는 아닌 것 같은데 골밑에서 지나치게 힘이 약합니다.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고른 선수겠지만 아쉽습니다. 오리온스가 아니라면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오리온스에서는 센터용병의 역할이 큽니다. 때로는 팀수비의 핵심축이 센터용병에게 걸려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5번자리를 메울까를 걱정하기에 오리온스는 첩첩이 쌓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 김간지와 현총통
기량발전상이 말 그대로 기량이 늘어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면 김승현과 현주엽이 공동수상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현주엽은 기술적으로 볼 때는 기량이 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상의 여파로 운동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떨어집니다. 김승현 이외에 기술적인 기량 발전 선수를 따진다면 양희승과 이병석, 그리고 신기성을 지목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현주엽은 이전까지 뛰어난 선수였지 한 팀을 이끄는 에이스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니 실은 국내선수를 아우르는 팀의 주장이라 할만한 선수야 팀 당 하나씩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용병 국내선수 모두를 아우르는 에이스라 할만한 선수는 드뭅니다. 더더구나 현재의 용병제도 속에서는 새로운 에이스가 탄생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현주엽은 스타플레이어로서 내가 아닌 팀 속의 나,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팀을 이루어 냈습니다. 물론 지속적인 컨디션유지와 회복 그리고 다시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겠지만 이대로 앞으로 반지만 딴다면 그는 리그에서 가장 팀장악력이 높은 에이스로 꼽힐만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마인드 면에서 현주엽은 일취월장 성숙해졌습니다. 쇠는 두드리면 강해진다고 했던가요? 현주엽이야말로 강철로 다시 탄생한 것 같습니다. 현재의 KBL 환경 속에서 현주엽의 에이스로의 성장은 가슴 찡할 정도로 기쁘고 감동적입니다.
언젠가 제가 김승현의 플레이를 두고 간지 난다고 한 적 있죠? 요즘 KBL에서 가장 눈에 띄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 김승현입니다. 어시스트가 아닌 단순한 패스 하나도 멋있습니다.
뭐 01-02시즌부터 쭈욱 멋있었다고 김간지의 팬들은 강변하겠지만 그 무렵은 정체된 신인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돌풍이었다면(태풍은 오리온스라는 팀 자체였고) 지금은 성장하고 있는 태풍입니다. 그만큼 올 시즌 김승현은 기술적으로 어떤 경지에 올라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게임운영 능력, 노련미, 코트외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능력이 더해지겠지만 올 시즌 같은 기술적인 비약은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매년 놀라운 발전 속도로 팬들의 예상을 깼던 것처럼 내년에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저를 비롯한 많은 농구팬들을 경악케 하고 열광시킬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기술적인 발전보다는 진정한 팀의 에이스이자 플레이메이커로 우뚝 서는 김승현을 바라게 됩니다.
한 팀의 에이스로서 김승현과 현주엽의 영향력 차는 말하자면 트로츠기와 레닌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체게바라와 카스트로에다 비겨볼까요. 카리스마는 김승현을 더 쳐주고 싶지만 가진 영향력은 현주엽이 더 커 보입니다. 비유가 좀 괴상하지만 적절한 표현력 부족으로 이해해 주십시오.(개떡같은 글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시는 읽는 분들의 혜안을 바랍니다.;;;)
저로서는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들고 예쁘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더 쳐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농구는 팀 스포츠니까요.
물론 김승현의 즐기는 농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고 그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힘이기도 합니다. 그걸 바꾸기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에이스라면 승리도 패배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끌어안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김승현은 패배를 너무 쉽게 털어 버립니다. 그러나 고통 없는 기쁨이란 설탕만의 단맛 같이 깊이가 얕습니다. 즐거운 농구와 패배가 분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습니다. 팀의 에이스가 패배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면 팀원들이 에이스를 전폭적으로 믿고 120%를 발휘하며 따라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건 김승현을 비판하려고 하는 꺼낸 얘기가 아닙니다. 언제나 '더~, 더~'를 바라는 농구팬의 욕심입니다. 뭐 어쩌면 김승현은 78년생이고 현주엽은 75년생인 차이인지도 모르죠. 지난해까지 현총통에게도 그만한 역량이 없었으니까요.
△ 미나케와 백인선의 충돌
백인선의 끈질긴 밀착 수비를 두고 몇번 심판에게 불평을 하더니 주먹을 올린 미나케. 깡패도 아니고 번번히 보여주는 어이없는 매너에 와락 성질이 나는 데 심판 양반께서는 모르쇠로군요. 물론 그 순간 못 봤다는 건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나중에라도 상황을 알았으면 퇴장명령을 내렸어야 하는데 흐지부지 지나가는군요. -_-;
결국 직접 복수에 나선 백인선. 파울인 것처럼 하고 통렬하게 후려치더군요. 솔직히 백인선의 행동 역시 운동선수로서 용서할 수 없는 짓이지만 사나이로서 맞고 참지 않겠다는 의지는 이해 못할 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서장훈이거나 김주성의 입장이었다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서장훈, 김주성 선수는 그러지 않고 있고요.^^) 그게 무슨 편견이냐고 하겠지만 실력으로 누를 수 있다면 코트에선 실력으로 눌러 주는 게 훨씬 멋있습니다. 에이스에겐 에이스에게 어울리는 태도가 있는 것입니다. 허재가 코트에서 무수히 맞았지만 그걸 직접 폭력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사내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탁월한 우리의 심판님 눈앞에서 본 그 뻔한 폭력에도 역시 눈감아 버리십니다.
미나케는 오히려 한 짓이 있어서 맞고 웃고 말았는데 현주엽은 상황을 잘 몰랐던지 꽤 많이 화가 난 듯 나서서 백인선에게 따지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그 사이에 끼어 들어 얼른 성질난 현주엽의 허리에 탁 매달려 애교애교로 녹여 버리는 김승현.
현총통께서는 김간지의 애교에 왜 그리 약하신지... 후후
그러나 김승현의 애교는 현주엽뿐만 아니라 개판 5분전의 플레이에 성질 난 팬의 마음까지 스르륵 녹여줬습니다.
△ 의자 3개 짜리 선수
최근 무리한 출장시간으로 가뜩이나 좋지 않은 무릎과 발목이 더욱 안 좋아진 듯 현은 온몸으로 피로를 발산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맹렬히 뒤를 추격하는 오리온스와의 맞대결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듯 자신의 최대치를 발휘합니다. 몸이 너무 안좋아 보여 제 경기력을 보여주기 어려울 거라 걱정했는데 몸을 던지는 허슬플레이가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완벽한 승기를 잡아온 현주엽은 4쿼터 초반 5반칙으로 코트를 물러났습니다. 좌석에 돌아온 현주엽 자연스럽게 팔걸이에 어깨를 걸치고 의자 3개를 차지하더군요. 후후후~ 허코치님이 은퇴하신 후 처음으로 본 의자 3개 짜리 선수에 왠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농담처럼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의자 3개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벤치에서 방만한 자세로 앉아있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는 얘기고, 또한 그만큼 팀 공헌도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못한 선수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의자까지 침범해서 앉아 있질 못합니다. 앉음새 하나에서도 인간관계의 미묘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드러난다는 점이 농구의 또다른 매력입니다. ^^
다시 경기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현주엽 퇴장후 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
경기의 흐름이 안좋아지자 현주엽은 무릎과 발목에 아이싱을 칭칭 감은 채로 일어서서 한순간 한순간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경기를 보더군요. 달라진 현주엽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 아리따운 부산의 치어낭자
금정체육관의 치어리더들은 상당히 예쁘더군요. 무엇보다 우선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 빛나 보였습니다. 좋은 팀분위기를 반영하듯 태도나 표정에 활력과 열정이 녹아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다리가 예쁘시더군요.
평소에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인이 아닌 한 얼굴보다는 몸 그것도 가는 몸이 아닌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더 아름답다고 여기는 취향 탓에 치어리더보다는 여자운동선수 쪽이 훨씬 아름다워 보입니다만 눈앞에 서 계신 치어낭자 드물게도 아름다운 다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저에게 농구장의 치어리더는 갈비탕의 계란지단 같습니다. 있으면 예쁘고 좋지만 없어도 크게 문제되진 않습니다. 치어리더의 댄싱 시간은 벤치를 바라보고 있거나 아니면 물 마시고 한숨 돌리는 저 한테도 휴식시간이라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금정체육관에서 직접 보니 부산에 치어리더 팬이 많은 거 이해 갑니다.
But,
그래도 지난 시즌 팀을 옮기고 나서 경기장에 치어리더 피켓 드신 분들을 보면서 상처받았던 건 잊을 수 없습니다.
돈 내고 들어간 관객이 치어리더 피켓을 들던 응원단장 피켓을 들던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원인력 빼고 나면 1천명, 아니 500명도 못 미치는 관중들 속에 선수 플랭카드를 든 사람은 어쩌다가 그것도 여수에서부터 보던 눈에 익은 것밖에 없고 경기장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썰렁하고 오로지 치어리더 팬들만 응원보드를 휘두르며 즐겁게 경기를 보는데 가슴이 울컥 했습니다. 어쩌다 여수에서 떠나 저런 대접을 받고 있나 생각하니 속이 상하더군요.
KTF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팀이 아닙니다. 코리아탠더 시절 돌풍은 말하지 않는다 해도 광주 나산부터 골드뱅크로 이어지며 끈질긴 투지의 농구로 질 때 지더라도 절대 쉽게 지지 않는 매력적인 팀입니다. 신생팀으로 일면식 없는 선수들도 아니고 농구를 봐왔다면 충분히 알만한 팀인데 저렇게 홀대받나 싶으니 화가 나더군요.
지금이야 금정체육관도 꽉꽉 들어차 전국 어느 팀 못지 않게 열기가 넘치고 선수들 플랭카드로 물결을 이루고 있으니 우스개 삼아 섭섭한 기분을 다 털어놓습니다. 말도 안 되는 '강짜'에 '시비'라고 그냥 흘려 넘겨주십시오. ^^;;;
△ 해운대 금수복국
부산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선뜻 회가 동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금수복국에서 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 시원한 국물맛과 복어의 쫄깃한 살맛은 정말 엄지손가락을 두 번 들고 싶을 정도입니다.
서울서 먹었던 1인분에 2만원 넘는 복어전골보다 금수복국의 8천원짜리 은복국이 더 맛있습니다. 부산가실 분들 꼭 들려보십시오. 해운대에서 광안리 방향으로 걸어가 메리엇 호텔을 찾으시면 거기 뒷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복국을 먹고나와 광안대교의 야경이라도 바라볼라 치면 요코하마의 베어브릿지나 센프란시스코의 골든브릿지도 부러울 게 없습니다.
인원이 3명이고 편안히 자겠다는 생각으로 찜질방 대신 모텔을 들렸습니다. 가격은 뭐 찜질방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내부도 현대식의 깔끔한 건물이라 괜찮다 싶었는데 방에 들어가니 얄딱구리한 원형 침대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우하하핫~ 영화에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입니다.
모텔도 가장 수수하고 깔끔해 보이는 곳을 들렸고 우리들 차림새도 H님은 응원용 저지에 경기장에서 받은 싸인볼을 들고 있었고 배낭을 짊어지고 청바지 차림의 여행객이었는데 저런 방을 내주다니 음~ 평범한 방(숙소로서 모텔;;;)이란 없나 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여행도 안다니나요? 이런말 하는 저도 낯선 지방에 가면 찜질방을 주로 애용합니다만... -_-;
낄낄거리고 한참 웃던 짓궂은 우리는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H님의 항의를 무시하고 KTF 저지와 싸인볼 팬북들을 원형침대에 올려놓고 에로틱 KTF라는 제목으로 한 장 찰칵 찍어두었습니다.
△ 창원 가는 길
실은 저로서는 금정체육관 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경기장이 창원 구장이었습니다.
해운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이면 창원에 도착하더군요. 거기서 택시 타고 2천원 거리에 종합운동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창원구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로 입장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는데 벌써 간이 농구대를 차지하고 노는 청소년들과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선 팬들이 꽤 많았습니다. 티켓을 끊기 위해 줄을 섰던 친구가 전하는 말로는 점프볼 무료티켓 교환권을 들고 있던 분들이 꽤 많다고 하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주위에서 옆구리에 점프볼을 끼고 보는 분들이 제법 됐습니다. 수도권이나 다른 구장에선 농구장에 자주 가는 분들은 계셔도 잡지를 열심히 보는 분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점프볼은 유일한 KBL잡지고 국내농구 사정 전반을 알려면 필수적인 잡지인데도 구독률이 낮은 걸로 압니다. 오죽하면 요즘은 갖춰놓은 서점도 드물어 대형 서점에 나가도 사기 어렵더군요.
뭐 자기가 응원하는 팀 정보라면 신문기사와 구단 홈페이지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창원이 얼마나 농구에 관심이 많은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증거란 생각도 듭니다.
창원구장은 새로 지은 첨단구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팬들의 니즈(needs)를 충실히 반영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스탭들은 절도 있고 친절하며 준비한 이벤트나 팬상품들은 다른 구장에서 보기 어려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반찍이고 있었습니다.
그 중 멋지다고 느꼈던 걸 하나 소개하자면 선수들에게 응원메세지를 주렁주렁 걸어놓는 이벤트가 있더군요. 응원메세지를 적을 엽서를 사는데 드는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됩니다. 선수마다 늘어나는 엽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멋집니다. 선수 팬마다 경쟁도 될테고 자체로서도 충분히 볼거리입니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구장의 밝기입니다. 경기장 상단에서 자연광이 들어오게 설게된 데다 조명을 많이 보강해 보통 다른 구장보다 좀더 밝더군요. 이런 구장에서 사진 찍으면 꽤 잘 나올 것 같습니다.(<-그러나 본인은 사진기도 없는 인간;;;)
△ LG vs KTF 1월 23일 (91:93) 페니가 - 인정받지 못한 에이스
이날 페니가의 크레이지 모드는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꽂으면 다 들어간다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슛감을 보여줬습니다. 페니가의 총득점은 52점, 아마 이번 시즌 KBL 최고 득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도 1쿼터부터 4쿼터까지 고른 득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득점상황 속에서도 LG 선수들은 기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10점 이상 리드 상황에서도 뭔가 쫓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상대는 미나케도 출장하지 않은 KTF였는데 말입니다.
미나케는 어제 오리온스전의 주먹질로 인해 2경기 출장정지를 먹었습니다. 좀 웃겼던 건 백인선에겐 어떤 징계도 내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원천적인 잘못은 미나케에게 있었고 징계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비디오를 돌려 봤다면 뻔히 백인선의 주먹질도 눈에 띄지 않았을 리 없는데 그건 그대로 넘어가더군요. 매사에 무슨 일이든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KBL의 모든 일처리를 당장 그 순간만 넘어가면 그만인 식으로 해결합니다.
원칙을 세우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역사가 짧은 KBL로서는 더더구나 지금 떼어놓은 한발 한발은 한국농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백인선 입장을 보면 억울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코트에서 주먹질을 했으면 당연히 벌금이든 경고든 징계가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번에 파울을 가장해서 주먹질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경기에 대해 다시 얘기하자면 페니가에게만 뭐라고 하는 건 어렵지만 페니가를 빼고 그 자리에 허수아비 센터라도 세워놓는 편이 LG로선 훨씬 팀이 활기 있어 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번 시즌에 희망이 없다고 보고 그대로 이끌고 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로라면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줄 의무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LG처럼 팬들에게 사랑 받는 구단이라면 더더구나 그렇고요.
반면 KTF는 미나케가 빠진 빈자리가 컸습니다. KTF는 득점력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4쿼터 페니가에게 지나치게 공격이 집중되면서 LG는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정체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여기서 KTF가 조금만 공격의 활로를 뚫어주면 되는데 맥기 혼자만의 득점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외곽에서 좀 터져 줬으면 싶었는데 그 순간 아무도 못 던져 주더군요.
3쿼터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준 정락영도, 이런 순간 한방 해줘야할 슈터인 손규완도 4쿼터엔 자신감 없는 슈팅으로 매번 튕겨져 나올 뿐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3점 라인에서 훨씬 멀게 서있던 현주엽이 공격찬스도 아닌데 갑자기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연속 3점슛을 성공시키자 갑자기 승기는 KTF쪽으로 급격히 쏠렸습니다.
소름이 쫙 돋더군요. 에이스라면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2점이라도 승기를 잡아오는 득점 있는데 이 순간 현주엽의 득점이 그랬습니다. 반면 LG는 점점 더 정체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더구나 LG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득점을 내주고 있던 슈터 조우현이 5반칙으로 빠지고 나자 뒤집힐까 싶었던 점수차가 뒤집혀 LG는 허쿠하게 연패를 이어갔습니다.
참 LG 팬들의 속에 불을 지르는 어이없는 패배였습니다.
△ 열정적인 앤더스(창원 서포터즈)
TV로 볼 때도 신기했는데 창원구장 특석 한가운데 있는 솟아오르는 응원탑 그거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하게 박력 있더군요.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위에 올라간 응원단장의 몸짓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데 솔직히 멋있다 못해 좀 무섭습니다.^^
팀 성적이 안 좋다 보니 매시즌 매진에 가깝게 들어차던 창원구장도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습니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본 창원 구장의 열기만은 다른 어떤 구장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홈 응원이 무시무시하기로는 원주와 전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수도권 원정응원이 절도 있고 박력 있기로는 KCC나 오리온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응원조직이 없었어도 지금보다 훨씬 열광적이던 팬들도 그동안 쭉 봐왔습니다만 그래도 창원팬들의 응원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팬이 많은 팀도 성적이 좋지 않고 더더구나 시합에서 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응원의 열기가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요즘 LG같이 경기를 하면 응원하고 싶어도 맥 빠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포터를 중심으로 홈팬들은 시합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어서서 열광적으로 응원하더군요.
다음시즌이든 다다음 시즌이든 LG 성적이 좋아지면 꼭 다시 창원 경기장을 찾아오고 싶습니다. 선수가 팬을 만들어낸다면 팬은 농구장의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농구는 오페라가 아닙니다. 앉아서 응원 없이 경기만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만 직접 큰소리로 응원하며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 넣어주면 평소보다 120%는 재미있을 것입니다.
멋진 경기를 보여준 KTF 선수들을 멀리서 눈으로 배웅하고 우리는 창원역으로 갔습니다. 농구인기가 높은 원주나 전주에서도 시합 끝나 택시라도 타고 돌아올 때면 기사 분들이 승패부터 물어오십니다만 창원역에 서있는 시민들의 잡담 속에서도 창원이 농구도시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시합에 왜 졌는지 명쾌한 분석부터 장일 감독이 중대로 부임했다는 보통이라면 쉽게 알 수 없는 최신 농구계 소식까지 정말 다양한 얘기가 오가더군요.
좋은 글이네요 어제 경기도 그렇고 올시즌 경기 박빙의 상황일땐 대부분 추일승 감독도 현주엽선수에게 1:1이나 알아서 하라고 전권을 주더라구요 판단력이 좋으니 자신이 직접 득점 시도하다가도 자신에게 수비가 몰리면 언제든 어시스트를 하기도 하고 어제처럼 용병들이 다소 막히면 직접 뚫기도 하는등 정말 달라졌습니
다 특히 어제 2분 남기고 혼자서 11득점을 단 한차례의 실패도 없이 연속으로 성공 시키는거 보고 티맥 타임,밀러타임처럼 현주엽 매직 타임이 생각 났습니다 LG전이나 모비스전,SBS전 등등 올시즌 4쿼터 막판까지 수차례 결정적인 상황에서 현주엽선수가 결정지어내는 경우가 많았죠
첫댓글 부산,창원까지 원정 가셨나 보네요? 수도권 경기랑 원주에 자주 가시는걸로 아는데 농구 열정이 대단 하십니다
좋은 글이네요 어제 경기도 그렇고 올시즌 경기 박빙의 상황일땐 대부분 추일승 감독도 현주엽선수에게 1:1이나 알아서 하라고 전권을 주더라구요 판단력이 좋으니 자신이 직접 득점 시도하다가도 자신에게 수비가 몰리면 언제든 어시스트를 하기도 하고 어제처럼 용병들이 다소 막히면 직접 뚫기도 하는등 정말 달라졌습니
다 특히 어제 2분 남기고 혼자서 11득점을 단 한차례의 실패도 없이 연속으로 성공 시키는거 보고 티맥 타임,밀러타임처럼 현주엽 매직 타임이 생각 났습니다 LG전이나 모비스전,SBS전 등등 올시즌 4쿼터 막판까지 수차례 결정적인 상황에서 현주엽선수가 결정지어내는 경우가 많았죠
잘읽었습니다~^^ 금정경기장 주변이 참 아름답죠..^^ 하얀집도 있고^^;;;; 노포동전철역에서 걸어가도 한 15분남짓...
와 좋은글 잘읽었어요~ 금정체육관 예술의전당같다는말 동감,,ㅎ서울에서 부산,창원까지 오시고 대단해요~^-^
저두 창원까진 가봤는데 부산은 아직 음..한번 가봐야겠네요~~
역시 글을 재밌게 잘 쓰시네요. 한편의 기행문을 읽은 느낌^^ 부럽습니다. 창원, 부산과 멀지않은 거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가보질 못했네요. 시간과 돈을 핑계로...^^;; 무뭉님의 글을 읽으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습니다. 금수복국은 꼭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요즘 현주엽의 포스는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금수복국은 기회 되시면 꼭 드셔보세요.^^ 승리의 축하주나 패배의 화풀이 술 이후에 복국으로 해장하는 것도 그야말로 환상적이고요.
장편의 글을 이리도 지루하지 않게 써주신 무뭉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부산에 살면서도 금정체육관 가는것이 무슨 대행사 치르는거처럼 마음이 무거운 저를 반성하게 하시는네요ㅎㅎ 무뭉님 농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