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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담발라피는 날 원문보기 글쓴이: 무소의 뿔처럼
책으로 바라본 쩡옌 스님의 인간불교사상과 그 실천 | |||||||||||||||||||||||||||||||||
이상미 국립 대만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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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아낙네로서 결혼하여 장바구니를 들어가며 남편과 자식을 잘 공양하는 것도 인생의 행복이겠지만, 유한한 생명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우리 인간들의 복된 삶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처녀는 ‘천하의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 중생에게 복 짓는 일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그 다음해에 그녀는 홀로 타이똥(臺東)의 서왕모 사당에 들어가 시우따오(修道) 스님과 함께 <법화경>을 공부하다가, 결국 스승의 인연을 만나지 못해 1962년 스스로 삭발을 감행 출가를 한다. 이 처녀가 바로 오늘날 ‘푸른 하늘, 흰 구름(藍天白雲, 자제공덕회 자원봉사자의 복장. 파란 상의에 흰 바지여서 이렇게 비유됨)’이라 묘사되는 전 세계의 400만 회원을 갖고 있으며, 자선 및 의료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불사를 국내, 국제적으로 행하고 있는 타이완의 4대 불교단체중 하나인 자제 공덕회의 회주이며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으로 칭송되고 있는 쩡옌(證嚴)스님이다.
“靜寂淸澄, 志玄虛漠, 守之不動, 億百千劫(고요하고도 맑고 뜻이 심오해서 항상 넓고 편안함이라. 억백천겁(億百千劫)을 지키되 동하지 아니하며)”스님은 이 네 구절처럼 불변의 의지로 세상의 가난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우고, ‘일보일각인(一步一脚印)’의 정신으로 그것을 실천해 나갔다. 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인간불교’ 또는 ‘실천불교’라 불리는 쩡옌 스님의 지업(志業)과 그 사상을 발현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스님의 몇 권의 저작과 한 작가가 서술한 스님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불교, 또한 항상 좋은 마음을 갖고 수행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방편을 이 책들을 통해 제시해 보고자 한다 쩡옌 스님은?
그러던 중 1952년 15살 때 모친의 위궤양 수술과 60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생명에 대해 깊히 사고하다 1961년 9월 출가의 뜻을 굳히고, 수행을 시작했다. 우주적인 생명을 향한 자비심으로 충만했던 스님은 일단 유발 제자로 출가하여, 자비와 사랑이란 화두를 마음에 두고, 인연이 무르익어 1963년 2월, 인순(印順) 대사를 은사 스님으로 모셔 수계식을 치른다. 인순 대사는 ‘쩡옌(證嚴)’이란 법명과 ‘후이장(慧璋)’이란 자(字)를 내리며, 그 자리에서 “불교를 위해 중생을 위해 살도록 하여라(爲佛敎, 爲衆生)”라며 법문을 하셨다. 그 뒤, 1964년 가을무렵, 스님은 제자 덕사(德慈) 스님 등 몇몇 제자들을 데리고 보명사에 돌아와 기거하며 함께 수행하게 된다. 스님과 제자들은 스스로 ‘첫째 경참(經懺)을 서두르지 않고, 둘째, 법회를 열지 않으며, 셋째, 탁발하지 않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수행 청규(淸規)를 세우며, 제자들도 함께 자급자족의 정신으로 소박한 수행생활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렇게 조직된 자제공덕회는 벌써 40년의 역사를 지녔는데, 1964년 공덕회가 설립된 후 40여년 동안 스님은 첫 10년은 자선 사업에 주력했고, 그 뒤 10년은 의료 사업에, 또 세 번째 10년은 교육 사업에 또 최근 10년은 문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자제공덕회 구호 조직은 항상 전 세계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니며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 가장 빠르게 도착하여 도움을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의료부문에서는 1986년에 세워진 화리앤의 ‘자제 의학 중심’을 시작으로 2005년5월에 건립된 신띠앤(新店) 의 ‘자제의원’까지 6개 지역에 ‘자제의원’을 건립하기에 이르러, 그 지역 사회 주민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그 당시 정부의 외면을 받았던 타이완 동부 지구의 낙후됐던 화리앤 지방에 병원을 세우려 했던 판단력과 지혜는 탁월하다. 1982년 스님은 병원 건립을 발기한 후에, 우수한 의료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중요성을 느껴 그 해부터 혜거(慧炬) 출판사를 통해 ‘자제의학청한장조학금(慈濟醫學淸寒奬助學金)’을 설립해, 학생들에게 학비를 보조해 주었으며, 그 후 1986년에는 ‘자제도려문화복무중심(慈濟道侶文化服務中心)’이 성립되면서, 불학 예술 장학금 등의 항목을 늘려 시행하였다.
최근 10년은 ‘인류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라 여겨 98년 1월 대북, 화련 등 5개 지역에 위성방송, 라디오 등 대중매체를 갖춘 대애(大愛)TV도 개국했다. 이를 통해 쩡옌 스님은 사심 없이 사랑을 베푸는 ‘대애사상’을 실천하고 있으며, 격주간 신문 <자제도려(慈濟道侶)>나 중문, 영문, 일문 등 3개 국어로 발간하는 월간 잡지 <자제> 등을 발간하며 불교의 자비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올해 초 자제공덕회는 타이페이의 관뚜(關度)에 ‘자제인문지업중심(慈濟人文志業中心)을 건설하여, 기존에 설립했던 평면 잡지, 방송국, 출판 부문 등 문화 사업에 관련된 사업 부문을 이 곳으로 옮겨와 좀더 체계적인 인문 환경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의 정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로써 간략하게나마 쩡옌 스님의 그간 족적을 훑어 보았다. 오늘날 쩡옌 스님과 자제공덕회는 긴밀한 연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자제공덕회의 근본 사상이나 운영 방향은 스님의 깊은 지혜에서 비롯되어 그 지혜의 발현시키고 있다. 하지만 스님은 이제 자제 조직이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인류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불사가 법륜이 돌 듯 계속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 소개
인연이란 말이 불교에서는 중요하듯, 쩡옌 스님과 필자와의 인연도 매우 컸던 모양이다. 타이완에서 조금이라도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스님의 법명을 들어봤을 것이다. 스님의 법어집 <정사어>는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셀러로서 타이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이미 영어, 독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도 조만간 독자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정사어>(2000년 개정판)는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지고 간결하면서도 인생을 꿰뚫고 있는 스님의 깊은 사고를 엿 볼 수 있는 초기 저작이다. 두 권 모두 앞 부분은 스님이 느낀 삶의 이치들을 두 세 줄로 쓰고 있으며, 뒷 부분은 신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나, ‘계정혜’, ‘탐진치’처럼 간단하지만,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지침이 되는 불교 용어에 대해 그 뜻을 설명하고 실천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형식이다. <정사어> 몇 구절을 읽어보자. “미래는 망상이요, 과거는 잡념이지요. 지금 이 시각의 사랑하는 마음을 잘 보호하고, 자신이 바로 지금 마주한 본분을 조심스레 지켜나가세요.” “무릇 범부의 마음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그저 책을 열어 스쳐지나가듯 본 몇 가지 글귀들이지만, 여러분은 이 몇 마디의 말로도 책의 면모를 느낌과 동시에 스님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불교의 <백유경>을 본떠 만든 백유경 시리즈의 1권 <일초와 한 평생(一秒鐘和一輩子)>(2005년 출판)와 2권인 <관문을 넘어(過關)>(2006년 출판)은 <정사어>와는 달리 간략한 법어 형태나 신도와의 문답 형식을 생략, 각각 100개의 간단한 일화나 짧은 불교 이야기를 통해 스님이 느끼고 사고했던 삶에 대한 지혜와 불자의 보살행을 조심스레 전달하고 있다. <유리 동심원>은 판슈앤(潘煊)씨가 스님과 자제 공덕회의 불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서술하며 쩡옌 스님의 자선, 의료, 교육, 문화 등의 자제 4대 지업을 소개한 책이다. 자제공덕회의 초기 시절인 ‘대나무통 세월’부터 40주년이 되었던 2003년까지 네 분야로 나누어 자제 위원들의 삶과 자제 사업에 몸을 담게 된 인연, 그들이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선택하여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었던 스님과의 교류, 스님의 이념과 그 실천의 구체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스님의 사상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수수하면서도 훈훈한 필체로 써내려가고 있다. 판슈앤씨는 화리앤의 자제정사를 일년 넘게 드나들며, 쩡옌 스님을 비롯한 정사의 스님들과 함께 생활하며 집필하였다. 이 책 마지막 장인 ‘유리원심(琉璃圓心)’편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유리처럼 정화하고자 하는 스님의 바람과, 평면적 원에서 입체적 원으로 자제를 승화시켜 불사를 지속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 책들은 비교적 쉬운 언어로 쓰여져 있다. 특히 쩡옌 스님의 책들은 간결하여 쉽게 불교에 접근하며, 불교의 기본적 가르침도 함께 배울수 있는 ‘현대적 설법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스님의 이 책들은 모두 그 분의 실천과 경험에서 얻어진 것을 내용으로 하였기 때문에 불교의 실천을 생각하고, 불교의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각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스님의 인간불교 사상 앞서 언급했듯이, 스님이 자제 공덕회를 조직했던 때는 스무 살이 갓 넘은 시기였다. 한 명의 비구니 스님이 이렇듯 방대한 사업을 지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화리앤의 허술한 통나무집에서 편안한 생활과 가족과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출가를 했던 그 뜻은 어디에 있었을까? 혼자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던 그 일을 어떻게 서로 다른 유정중생들을 이끌며 여기까지 왔는지? 필자는 그 해답을 찾고 싶었다. 불교를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爲佛敎, 爲衆生) 내게 사심이 없음을 믿고, 사람들이 사랑이 있음을 믿어’ (信己無私, 信人有愛) 자비(慈悲)심의 승화: 동체대비(同體大悲) 이런 거대한 불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의 ‘동체대비’ 사상이다. 불교는 자비라고 우리는 말한다. 쩡옌 스님은 말로써 자비를 베풀라 말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비록 나의 친척도 친구도 아니지만 그들이 힘들면 나도 힘들고, 그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네요. 고통은 그들이 겪지만, 근심은 내 마음에 있고, 상처는 그들의 몸에 있지만, 그 아픔은 내 마음에 남습니다.” (<정사어>, 31페이지)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게 되면 자비의 출발점은 다르다. 내가 있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닌, 내가 그들과 함께 느껴 도와주게 되는 것은 그 출발이 확연히 틀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님은 불자들에게 얘기한다. “자비의 눈으로 이웃을 살펴가며 무형을 형상화하고 이론을 행동으로 옮겨, 항상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리’ 라는 대자대비한 구제의 정신을 발휘하세요.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속세도 극락 정토가 될 수 있습니다.” (<정사어>, 32페이지) 1999년 9월21일 타이완 중부 지역에 리히터 7.3규모의 강진이 일어났다. 진앙지역 부근인 타이중 및 지진 지역에는 구조대원들조차도 접근하기 전에, 2만 자제공덕회 회원들은 벌써 도착해 신속하게 구호 물자를 전달하며 구제활동을 펼쳤다. 그 때 스님은 ‘생명공동체’의 관념으로써 자원 봉사자들에게 이재민을 자신의 친척, 가족처럼 여기며 봉사해 줄 것을 당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가서 봉사하세요. 그러면 제 때의 선행이 주는 ‘무엇이 지구촌 가족인가?’에 대한 메세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유리동심원> 86페이지) 아울러 복구 작업에 있어서 스님은 수재민에게 3년 살이 집이 아닌, 3대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주어야 하며, “자신(자제 봉사자)이 살고 싶은 집을 이재민에게 지어 주어야 해요.”(<유리동심원> 98페이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체 중생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아가 자신의 가족도 사랑할 수 있다.’ (<관문을 넘어> 2권 31페이지)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실천하는 삶,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란 쉽지만 실천하기 쉽지는 않다. 내가 남이 아니듯이, 남도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쩡옌 스님은 ‘내가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리’라는 마음을 내는 것이 진정한 삶이며, 그리하면 고된 중생의 마음을 내 아픔처럼 느꼈던 부처님의 마음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자비와 지혜는 함께 가야 자비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스님은 항상 발현되게 할 수 있는 지혜의 수반을 강조한다. 스님은 정신적 지혜가 발현된다면, 믿음, 끈기, 용기라는 정신적 지혜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이러한 지혜는 능히 일체 중생의 연관성을 투시하여 대애심(大愛心)을 발휘하게 하여, 그것이 만약 능히 불법을 일상생활 속에 응용할 수 있다면, 아비가 된 자는 아버지의 도를 다할 수 있고, 아들된 자는 효를 다할 수 있고, 가정은 반드시 화목하고 행복할 것이라(<관문을 넘어> 2권 32페이지)고 말한다.
자비심의 끝은 어디일까? 어떤 이가 스님의 생신을 물었다. 스님은 ‘매일 아침 눈을 떠 일어난다면, 그 날이 제가 새로 태어난 날이자, 제 삶의 시작이예요.’(<정사어> 2권 320페이지)라고 대답하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이 떠나셔도 그 조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믿음이 지금과 같이 한 곳으로 모일 수 있을까’를 염려한다. <유리동심원> 작가인 판슈앤씨의 후기는 사람들의 염려에 대한 쩡옌 스님의 의중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하나의 동그라미(圓)를 보았다. 위와 같은 이 동그라미 그리기가 바로 안으로 비(悲)와 지(智)를 품으며, 쉼 없이 회전하고 있는 정신적 역량이다. 스님은 간단 소박한 마음으로 매일 매일 살아, 해야 할 일을 계속 해나가면 그 반복의 원은 끊어짐 없이 계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원의 회전 속에서 지혜를 쌓고, 자비를 베풀면 자제는 충분히 그 자체로써 스스로의 순환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스님이 매일 매일 조회를 하고 한달에 한 번씩 행각을 하고, 일년에 한 번씩 축복의 발걸음을 떼듯이 그렇게 말이다. 쩡옌 스님과 현재의 관계는 한 종교자가 인류의 재난과 침륜, 절망을 직면하면서 나온 반응과 회향이다. 스님은 ‘동그라미’라는 조직과 정신 이념으로 전 세계 자제인의 영혼의 힘과 실천력을 발휘하게 하였으며, 세계에게 위로와 발전과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자제인들은 이제는 평면적인 원 그리기에서 벗어나 보다 내실있고 체계적인 단단한 조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입체적 원 그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닌, 원 자체가 끊임없이 회전할 수 있는 스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동심원’으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반복되는 원 그리기에 밑바탕이 되는 ‘간단함’을 눈여겨 봐야 한다. 처음부터 큰 원을 그리겠다는 욕심보다는 쩡옌 스님은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열심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하루 하루 달마다 해마다 최선을 다한다면, 동그라미 그리기는 계속될 수 있다고 여긴다. 끝없이 윤회하고 있는 삶이기에 자제공덕회는 스님의 한 사람의 역량이 아닌 제보살의 사랑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자제인에게 힘주어 말한다. 작고 평면적인 원이 입체적으로 되면 간단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쩡옌 스님은 우리에게 당부한다. 어떤 이가 복잡함과 간단함의 차이를 물었을 때, ‘간단함이 복잡함이요, 복잡함이 간단함이예요. 밥을 먹는 일은 정말 간단한 일이지만, 순간 방심하면 음식이 목에 걸려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정사어> 2권 312페이지)’라고 스님은 대답했다. 이 말은 밥을 먹는 일은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간단한 동작이지만, 자칫 방심하거나 복잡하게 사고하면 씹는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져, 음식이 목에 걸리게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며, 단순하게 보는 사고를 다시 한 번 충고한다. 원의 의미는 시작도 끝도 없다. 계속 묵묵히 그 원을 그려가며, 그 원안에서 지혜를 발휘하고 자비를 발휘하여 윤회하고 있을 뿐. 이러한 쩡옌 스님의 소박하면서도 간단하지만, 영원을 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매우 크다. 정화인심(淨化人心) 인간불교의 목표는 무엇일까? 사람 마음의 정화이다. 스님이 자제의 문화 사업을 일으킨 마음을 엿보면 이에 대한 스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자제는 자선으로 일어났어요. 그리고 종국적 목표는 사람의 마음의 정화입니다.” (<유리 동심원> 36페이지) 스님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정진이나 수행에만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정화를 기반으로 하여 나아가 뭇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을 인간불교의 이념으로 삼았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강조한다. “보살의 사명은 ‘안정’만이 아니라, 현재의 어지러운 세상으로 눈을 돌려,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니, 마땅히 용맹 정진의 ‘저돌적인’ 힘으로 인간세에 사랑을 뿌려야 합니다. 안정으로 중심 원칙을 삼아,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두 가지를 서로 결합해야만 어지러운 물살을 제대로 돌릴 수 있지요.”( <유리 동심원> 26페이지) 이렇게 인간세의 모든 사람의 마음이 정화되면 인간세가 바로 극락정토이며, 고된 삶이 아닌 행복이 충만한 삶이 되는 것이다. 스님의 인간불교 사상 실천 앞부분에서는 스님의 초인간적인 안목과 ‘동체대비’의 자비심에서 ‘사람의 마음 정화’의 궁극적 목표 등 그 불교 사상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제 책들을 통해 인간불교에 대한 스님의 실천 방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실천을 강조함에 앞서 항상 스스로 실천의 모범을 보였다. 말로써가 아닌 스님이 강조한 것은 실천이었다. 처음에 기부 모임이나 빈곤 가정 방문 혹은 병자를 방문할 때도 스님은 항상 스스로 모범이 되어 앞장섰다. 이런 일화가 <유리동심원>에 보인다. 한 번은 자제회원이 스님과 함께 독거 노인을 찾았는데, 방안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몇몇 위원들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가서 그 분의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동요없이 그분의 눈물도 닦아주었단다. 위원들은 그제서야 스님의 솔선수범을 통해 자비와 사랑을 배웠다고 한다. 스님은 항상 실천으로 자제위원들에게 느끼게 해줬기에 많은 신도들이 기꺼이 자신의 주머니를 열었고,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자제 사업에 앞장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또 <정사어>에서 “자비심을 형상화하려면,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32페이지)”며 자비만으론 부족하며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야 하는가? 제빈교부(濟貧敎富) ‘자(慈), 비(悲), 희(喜), 사(捨)’ , ‘성(誠), 정(正), 신(信), 실(實)’ “자제의 4대지업은 빈곤한 사람들을 우리가 구제해주는 것 말고도, 부유하지만,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고 원한과 번뇌에 가득찬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들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관문을 넘어> 2권 52페이지) 스님은 ‘자제’의 제빈교부가 바로 보살행이며, 이 보살행을 정성스럽게, 정직하게, 믿음을 가지고 착실하게 수행해간다면(誠正信實), 그 끝은 바로 불격(佛格)의 완성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관문을 넘어> 2권 32페이지). ‘성정신실’은 바로 실천함에 있어 자제인이 가져야 할 자세이다. 방법의 지혜 책을 읽다보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하는 것은 스님의 실천적 지혜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스님은 숙혜(宿慧)가 있다고들 한다. ‘믿음’, ‘용기’, ‘끈기’가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는 지혜의 발현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1. 생각을 열어 인도 스님은 ‘한 사람의 손이 움직일 때 천 명의 손을 움직일 수 있다(一手動時千動)’고 믿었다. 그렇게 많은 회원들을 거느리며 조직을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사람을 믿고, 그들의 생각을 열어주면 된다고 생각한데 있다. <백유경> 시리즈 일권의 <일 초와 한 평생>의 88번째 이야기에 서양 신부와 나눈 대화를 보자. “한 뉴질랜드인 신부님이 정사에 방문하셔서, 오스트리아에서 예전에 읽었던 영어판 <정사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의 선한 마음을 이끌어 내어 좋은 일을 하게 하는 본성에 관한 생각이 인상이 깊었다’고 말씀을 꺼냈고, 스님은 ‘사랑의 마음은 모든 사람이 다 있어, 그 관념을 열어주면 그뿐이지요’이라 대답을 하며 아울러 쩡옌 스님은 ‘세상에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이 아주 많아요.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하며, 성모님이나 관세음보살은 같은 사랑을 지닌 ‘창생을 보둠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종교신앙은 다르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여, 어떤 종교든지 사람이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되면 세상은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다고 스님은 생각한다. 선한 마음을 믿고 그 인도의 방편을 찾아,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발현할 수 있도록 불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또 할 수 있다고 스님은 믿었다. 2. 탐하지 않는 보시 ‘불교극난극복자제공덕회‘를 설립하고 나서 기금 마련을 위해 제자 스님들은 하루에 영아용 신발을 하나씩 더 만들었고, 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은 스님이 나누어준 대나무통에 저금을 하루에 50전씩 저금하였다. 그 때 한 신도가 하루에 50전씩 모으지 말고, 한달에 15원을 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시하자, 스님은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3. 냉철하고 단단한 이성 스님은 앞선 대나무통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금을 위해 혹은 사업을 위해 비굴해지거나 그 분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스님이 자제 의원을 짓고자 발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공사 비용으로 인해 비웃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 했을 때, 마침 일본인이 기꺼이 2억 달러를 희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스님은 ‘우리의 땅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그 일본인의 희사를 정중히 사양하고, 순수하게 타이완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병원을 건설했다. 스님의 또 다른 지혜를 소개해 보자. <유리동심원>에 소개된 자제위원 린쯔후이(林智慧)씨의 사례를 보면, “린쯔후이씨는 시댁때문에 마음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 때 스님은 병원 건립때문에 매우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친구가 ‘저는 검사를 해봐도 병이 없다는데, 하루종일 머리가 혼탁하고, 침대에 누우면 일어나질 못합니다. 남편, 시어머니, 동서때문에 전 화가 너무 납니다……’ 라며 마구 불평을 하자, 스님은 그 불평을 다 듣고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방법으로, 쓴 약을 처방하듯 정확하게 그 분에게 충고를 했다. 린쯔후이는 원래 친구에게 병실을 기증하라는 마음으로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스님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강한 어투로 훈계 하니, ‘병실은 물건너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스님의 깊은 지혜임을 린쯔후이는 지금 안다. 그녀는 말한다. ‘스님의 대단하신 것은 바로 그 분은 모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 분이 오늘 사람에게 강한 약을 쓴 것은 그 사람이 깨달을 수 있으면 복이요, 깨달을 수 없다면 인연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지요’라고.” 스님의 단단함과 냉철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잃지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쩡옌 스님. 스님의 역할과 불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려는 스님의 의지를 엿 볼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을 바꾸는 것을 식은 죽 먹듯 하는 필자를 비롯한 지금 이 세상 사람들에게 따끔한 침이 되는 대목이다. 4. 믿음, 끈기 그리고 용기 “믿음과 끈기 그리고 용기의 지혜를 발휘하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은 당신의 정신적 이념은 ‘적자지심’, ‘낙타의 끈기’, ‘사자의 용맹정진의 마음’ (<유리동심원> 46~47페이지)이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인생을 이끌고 가치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끈기와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스님은 얘기하고 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스님의 끈기, 용기와 믿음은 태어나실 때부터 가지고 계셨나요? 아니면 불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지고 계신 건가요?” 그러자 스님은 대답하셨다. 스님은 누구나 이 능력은 있다고 믿었으며, 사람들은 그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들에게 이런 정신을 심어준다면 더 큰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믿음, 용기, 끈기라는 지혜의 발현 결정체는 바로 40여년을 이어온 자제의 4대 지업 사업이 아닐런지. 스님은 이 세 가지 정신이 있다면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초인적인 용기를 내어 그 당시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주민에게 토지 소유권과 건물 사용권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세워, 사랑과 진실함이 있다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끈기를 갖고 일을 추진하였다. 결국 스님의 믿음은 현실화 되었고, 그것은 대륙의 구호 사업에 큰 획을 긋게 되었다. 스님은 이 세 가지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바로 믿음, 끈기, 용기이다. 5. 개개의 능력 발현을 인도 스님은 사람 나름대로 결점이 있으면 있는 나름대로 그의 할 몫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능력에 맞게 적절한 자리에 배치를 하면, 그의 능력을 발휘해 인간세를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스님이 묵묵히 제자를 관찰하고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하는 예를 한 번 살펴보자. <유리동심원>(페이지68~73)에 소개된 찡양(靜暘) 보살과 스님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타이페이 위원인 찡양은 자제 일에 몸 담은 지 27년이 되었으며,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자아의 벽을 뛰어 넘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8년 처음으로 쩡옌 스님을 친견했을 때 스님은 “이 육신을 다해 보답하세요(盡此一報身)” 였다. 당시 그녀는 불교를 배우지 못해 왜 ‘이 육신을 다해 보답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1979년부터 스님을 따라 빈곤 가정을 방문하며 많은 가여운 사람들을 접했던 그녀는 어느 순간 그의 몸을 다해 그들의 절박함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항상 회원들과 정사에 들러 하루를 더 묵어 가곤했다. 그녀는 스님들에게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정사에서 그냥 머물고 가곤 했었는데, 스님도 그녀에게 다른 일을 시키지 않고 그냥 편히 있다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1984년, 쩡옌 스님은 음력설이 막 지나서, 음력 3월 24일에 첫삽을 뜨기로 정해진 자제의원(자제공덕회에서 세운 첫 번째 병원)의 착공식에 참가할 자제회원의 차표를 처리해 달라고 스님이 요청했다. 그녀는 그 힘들었던 차표 구입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 때 한번 고생한 후에, 저는 놀랍게도 무엇이 ‘삼귀의’인가를 알게 되었어요. ‘부처님께 귀의한 후부터 마땅히 중생을 위해 큰 도를 몸으로 깨우쳐 무상심(無常心)을 발해야 하는데. 단지 차표 구입이 벌써 나를 이렇게 고생시켰는데, 대중을 이끌려면 얼마나 많은 지혜가 있어야 할까. 스님은 제자에 대해, 그의 심성을 묵묵히 관찰하시다가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일을 통해 그들을 깨닫게 하여 자연스레 불사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렇게 온 몸의 기가 통한 찡양은 그 후 자제의원 기부자의 발원 인연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였고, 1987년, 쩡옌 스님은 그녀에게 대애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라 했다. 그녀는 그 일을 하며 비로소 스님의 깊은 불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 찡양은 말했다. “스님은 지금 제가 주신 숙제는 바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예요. 저는 자제에서 오래 있었지만, 나중에 들어온 위원들이 입을 열만 저는 바로 어디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엄마처럼 잔소리했지요. 스님은 제게 이런 급한 성격을 다스려 다른 사람도 얘기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 남을 칭찬하여 다른 사람도 한 방법임을 알게 해주시려 한 겁니다.” 쩡옌 스님은 찡양에게 한 길을 걷게 해줬고, 모든 단계들이 오르막길 또 오르막길 이었다. 그것은 심성을 계속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나의 성장은 태어날 때 갖고 온 것이 아니라, 스님이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개발해 주신 거예요. 한 위원의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바로 복전을 개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원이 발걸음을 떼어 사회의 좋은 생각들을 그 안에 불어넣는 것이지요. 찡양은 수천 수만의 제자 중의 한 예입니다. 다른 자제인에게도 증명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찡양 보살과 같은 상황은 모든 자제위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찡양 위원의 내적 고통을 말없이 받아들이다가 그녀가 안정을 찾아 남을 도울 수 있는 심정이 되었을 때, 스님은 그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 결국 그녀는 자신도 몰랐던 아니면 자신도 잊고 있었던 능력을 끌어내며 알찬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은 없었지만, 신도의 본성과 능력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게다가 적절한 곳에 그 능력을 발휘할 수있도록 안배하는 지혜를 느낀다. 이러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을 모두 직관하는 그런 지혜를 쩡옌 스님은 갖고 있어, 모든 위원들은 스님을 따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6. 투명 경영과 경험 이 밖에 스님이 조직을 키워 현재 자제위원 2만여 명, 자성대 1만5천명, 회원 400만명의 40년의 역사를 지닌 거대한 조직의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오늘날 경영자들이 자주 쓰는 말인 ‘관리의 투명함’에 있다. 과연 이것은 가능한 것인가? 스님의 약력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스님은 출가 초기부터 계속하여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는 신조를 지켜오고 있다. 스님은 ‘모든 이런 조직의 강대함은 부처님에게서 비롯됐다. 그리고 단지 나는 그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스님의 지혜는 또한 경험에서 나온다. 구호도 의료 사업도 그 사업을 완수한 후에 스님은 그 사업의 유지와 관리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강구한다. 이렇게 스님이 경험을 중시했던 계기는 바로 <유리동심원(38~39페이지)>에 소개된 루딴꾸이(盧丹貴)씨의 왕생때문이었다. 이 루씨는 자제공덕회에서 처음으로 녹내장을 수술해준 분이다. 자제는 그녀에게 이 녹내장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의 불화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스님은 이 사실을 보며 그저 ‘안타깝다’라며 도와주는 것에 그쳐, 바로 도움을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닌 사후 지속적인 관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자제공덕회는 의료나 자선의 도움을 주고 나서 반드시 3개월 동안 관찰과 방문을 실행하여 그 수혜자들의 생활안정에 노력하고 있다. 스님의 경험을 지혜로써 승화시키는 관리의 철저함과 작은 일에서 큰 것을 보며 그것을 적시에 개선하고 정립해갈 수 있는 지휘력을 본다. 이로써 스님의 인간불교 사상 실천에 대해 몇 가지 방편을 소개해 보았다. 많은 방편의 지혜를 담지 못한 필자의 필력에 한계를 느끼며, 나름대로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스님의 기본적인 실천 사상은 ‘자비희사’와 ‘성정신실’에 있으며, 이들은 스님의 높은 지혜와 방법으로 인간세에 구현되고 있다. 스님은 일단 개인의 ‘생각을 열어 인도하여’, ‘탐하지 않는 보시’의 기쁨을 알려주고, 개개인에 필요한 약을 처방하며, ‘믿음, 끈기, 용기’의 지혜를 가지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가며, 개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또한 자제 사업에도 투명 경영을 원칙으로 삼아,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않는다는 철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시행 착오도 경험으로 삼아 더욱 완벽한 인간 불교를 실천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위에서 간략하지만 쩡옌 스님의 법어집과, 판슈앤 작가의 스님과 자제 사업에 대해 기록한 <유리동심원>을 중심으로 스님의 기본적 사상과 또 그 사상의 구현을 위한 실천의 방편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고 이끌어 가고자 하는 스님의 ‘인간불교’의 큰 서원을 표현하고자 했고, 스님의 인간세와 인류에서 벌어지는 재해와 고난에 대한 정확하면서도 냉철한 사고와 판단력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 끈기와 용기를 소개하고자 했다. 또한 그런 재해와 고난의 중생들에게 힘이 되는 스님의 깊은 사랑이 충만한 자비를 전달하고자 했다. 세간에 출판되었던 수행자들의 법어집이나 묵상록과 비교해보면 스님의 언어는 간이 없는 담백한 산나물 무침같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관념적으로 우리를 일깨우는 책들도 그 가치가 높긴 하지만, 그저 관념적 깨달음에 그쳐버린다면 그 가치는 책을 덮으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스님의 책들은 그렇지 않다. 큰 사랑에 사심이 없고, 소박하면서도 대중과 가까운 인간불교의, 생활불교의 실천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쩡옌 스님의 법어집과 관련 출판물은 부담없이 대중에게 다가가 자비심의 발현을 바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며, 일반인들도 불심을 발현하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스님의 사상을 따르고자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접하니 불끈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 하면 되는 거야.’ 지난 번 자제공덕회 타이페이 지부를 찾았다 부처님께 절을 하고 싶어 물었더니 자제공덕회의 인문 지업의 일환인 영자 잡지 편집장이 이런 말을 했다. “부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당신의 마음 속에도 저의 마음 속에도 있습니다. 꼭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는 것만이 보살행이 아니예요. 보살님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쩡옌 스님의 가르침을 자제위원들은 이렇듯 생활속으로 녹아들게 하여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의 가르침은 이렇듯 재가수행자들에게 좋은 마음으로 본시의 능력과 지혜를 개발시켜 새로운 ‘생활속의 불교’, ‘불교 안에서의 삶’의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스님의 간결한 언어, 일화, 신도와의 문답 속에서 우리는 스님의 일상을 느낄 수 있고, 스님의 생각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실천이란 과제를 자연스레 생각하고 되고, 인간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행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정사어>는 담백한 언어로 짤막하게 나열되어 있고 <백유경> 시리즈는 그리 길지는 않은 이야기로 얼핏보면 다들 말할 수 있는 얘기, 또 다들 듣던 얘기들로 구성돼있다. 그래서인지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찬찬히 읽어보면 정말 생활에서 기쁨을 찾고, 생활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많은 주옥같은 말들이 그 안에 숨어 있다. <유리동심원>은 외부 작가의 눈으로 스님과 자제공덕회의 4대 지업을 써내려간 책으로, 스님이 오늘날까지 자제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오면서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인간불교 사상의 실천을 보여준다. 쩡옌 스님의 ‘인간불교’에 대한 제창과 그 실천은 실로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비록 스님이 가고 나면 조직의 운영을 어떻게 지속해 나가야 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이지만, 스님의 철저한 사고력과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자비로운 영혼을 받아들여 노력 실천한다면, 지금처럼 모든 자제인은 지혜롭게, 사랑으로 서로 돕고, 고난의 소리를 들으면 바로 고난을 해결해주며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 능력을 십분발휘하여 자제가 가는 곳은 모두 집집마다 편안함과 곳곳마다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서도 스님에 대한 소개는 여전히 미흡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저 이곳에서 소개한 몇 귀절들을 통해 독자들이 스님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고, 일상에서 숨쉬는 불교의 참뜻을 재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실천불교, 불교의 생활화, 불교를 몸으로 일원화하는 삶의 추구, 그러면서 내생을 위한 불교가 아닌 현세를 좀더 이익되고 풍부하게 해 고통받는 중생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쩡옌 스님의 소박한 바람은 아닌지. 쩡옌 스님이 발원했다는 중생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비를 느낄 수 있으며, 우주를 마음에 품고 높은 뜻을 품으며 법문은 쩡옌 스님의 선함과 강건한 영혼에서 나온 보천삼무(普天三無)를 소개하며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이상미 |
첫댓글 대만에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칭송받고 계신다 하며, 국내 유명 스님 동영상 보다가 3조인가 모았다 하기에 찾아보니, 가피력이 대단하십니다. ()()()
동영상 하나 => https://www.youtube.com/watch?v=ZRENQB9FdUA
@道道(寶 華) 키주삼이 뭔가요? @@
@道道(寶 華) 다음 테그가 바뀌었는지, html 그대로 갖다 붙이면 댓글에서 바로 동영상 볼 수 있었는데, 뭐가 잘 못 되었는지 안되는군요..... 어째꺼나 저째꺼나 성불하세요 ()()() ^^
내가 대만에서 수행하며 살아보았지만 한국스님과 대만스님들의 생각이 너무 차이가 나고 한국 불교도와 대만불교도의 행위가 너무 차이가 난다.
우선 대만스님들은 출가하는데 나이규제가 없다. 출가하는 스님들의 사고 방식은 사회생활하면 지은 업장을 참회하며 소멸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서 출가하면 지계를 지키는 편이고. 보시공덕을 즐겨해서 나누어 줌에 인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폭들의 공경대상이 스님이고 나중에 스님이 되는것을 소망한다.
현한국스님들은 먹고살기 위해 출가하고 존경받고싶어 출가한다 그래서 받아먹고 베플기는 인색하여 파벌을짓고 거짓 선지식 흉내내며 티브이에 돈주고 얼굴 비추면 신도들이 몰려들고
그리고 계도 안받고 머리깍고 스님흉내내고
대만 불자들은 스님들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베플기 좋아하고 보시공덕 지계공덕 육바라밀을 행하길 즐겨하며 보살행을 즐겨한다
한국신도는 좀 배우면 내가 어느스님한테 배웠니 떠들고 아느척하고 절에 오래다니면 집착심만 늘어나서 절도깨비짓만 일삼고 책이나 인터넷에서 좀배우면 자신들이 마치 큰 깨달음이나 얻은듯 온갖법을 다 애기하고 막상 경계에 부딪히면 불교도 다 필요없다고 부정하고 남탓하고 가장기본적인 보살의 덕목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금강경 법화경 운운하며 앵무새 흉내내고 철새처럼 떠돌며 불교를 비방하고 삼보를 비방하면서 자신의 수행은 제일이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다
다는 아니기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종교 역시 물질만능주의에 병든 곳이 많은 듯도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다는 그렇지 않지만 순수한 종교인들도 자신도 모르게 변질 될까봐 안타깝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