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숙 대표의 지인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님)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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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before You(미 비포 유)의 상영을 해외 장애인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 영화는 로맨스가 아니며, 장애가 힘들다는 인식을 준다는 것이고 장애인은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관점이 다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윌은 잘 나가던 CEO이며 잘생긴 외모와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인기도 많았지만 한순간에 오토바이에 치여 경추 손상에 의한 척수 장애인이 된다.
영화는 윌이 사고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고 존엄사을 인정하는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하고 이 사실을 안 윌의 어머니가 윌의 마음을 돌려 보려 밝고 유쾌한 성격의 루이자를 간병인 겸 활동보조인으로 고용하면서 시작된다.
이 영화는 장애인의 존엄사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장애의 수용에 대한 영화이다. 물론 존엄사 논란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장애인의 선택권과 결정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장애인도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존엄하게 살 권리와 동시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 장애인의 존엄하게 살 권리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윌의 선택이, 사회와 제도에 위한 존엄사가 아니라 장애 수용을 하지 못한 데서 온 자신의 결정이라면 그 선택과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는 윌의 모습에서 장애가 참 힘들고 괴로운 것이구나 라는 인식을 비장애인과 사회에 심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장애는 고통을 동반하고 배제와 소외와 억압과 차별을 가져 온다. 힘든게 당연하다.
다만, 성을 소유할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장애인인 윌이 그토록 힘들다면, 자본과 외모가 무엇보다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고 잘생기지도 않은 장애인들의 삶은 몇 배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오히려 이 영화의 문제는 장애를 너무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을 주시해야 한다!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아내는 계속 울었다. 왜 울었냐고 물으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울었다고 한다.
난 여주인공의 유쾌한 연기에 내내 즐겁게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에 우울해졌다. 난 죽은 후에도 아내에게 freedom(자유)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이상은 스포이므로 직접 영화에서 확인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