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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43친우 여러분 오늘은 경북 예천 바람한번 쐬러가요... 오라이..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醴泉東本里三層石塔)으로
보물 제426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탑의 앞에는 한천이 흐르고 있으며, 뒤에는 흑응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 탑과 불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절터였음이 분명하지만
정확한 사찰의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글 사진 홍삿갓>>.2009년 촬영>>...
<<,,유행가에도 나오는 예천 회룡포..휘돌아 나가는게 용같다 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거기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이 이 곳 회룡포.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이 이곳 회룡포마을의 내성천에서 볼 수 있고요
.
굽어보아야 하며. 절이 있는 산이 비룡산인데, 그 산 능선에 1998년
회룡대라는 정자를 건립하였으며 여기서 정면을 보면, 물도리 모양으로
굽어진 내성천이 한눈에 들어오며... 여기서 보면 우선 강으로 둘러싸인
땅의 모양이 항아리 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지요.
나무가 둥근 곡선을 따라 심어져 있고, 논밭이 반듯반듯 정리되어 있답니다요
. 그 중앙에 회룡포마을이 있고 오른편 곳곳에는 숲이 울창하며.
이 비룡산에는 장안사와 원산성 등의 유적지가 있는데 정상 바로
밑의 장안사는 통일신라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고찰이라고 합니다요
. 최근에 중수를 한 관계로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찾는 이가
드물어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는군요.
<<<,초간정사...개울가에 자리잡고 있어 풍류 운치가 끝내줘>>>>>
초간 권문해 선생이 지은 정자, 초간정(草澗亭) *
가는 길에 왼쪽으로 초간정의 입구가 보인다. 수령이 꽤 오래되어
보이는 수림 사이로 거대한 암반 위에 조선시대의 정자 초간정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정자 아래 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지요.
초간정 정면에 서서 정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선인들의 멋스러움과
자연친화적인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으며, ‘누가 여기에 정자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인물이 궁금해진답니다요.
<<<태백산 용문사에 있는 윤장대..>>>>>.
티베트 에 있는 마니차의 짝퉁 윤장대... 여러 불구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것이 바로 윤장대(輪藏臺)일 것 보통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윤장대는 팽이처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불경을 넣어두며...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이고
. 불경은 사실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렵게 느껴지며,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는 사람도 많지요
. 윤장대는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불구로,
중국 양(梁)나라의 선혜대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요.
한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수 있지요...
<<<,회룡포가 한눈에 정자 회룡대..>>>>
<<,태백산 용문사 일주문...>>>>>
용문사는 ....
직지사(直指寺)의 말사.
김룡사 지에 의하면, 870년(경문왕 10)에
두운(杜雲)이 절을 창건하여 용문사라 하였다고 하며 . 두운이 이 산의 동구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서 용이 영접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절을 짓기 시작했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 16냥의 은병(銀甁) 하나를 캐어 그것으로 공사비에 충당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태조는 후삼국을 정벌하던 중에 이 절에 군사를 거느리고
머문 적이 있었는데, 두운의 옛일을 생각하고 뒷날 천하를 평정하면
이곳에 큰 절을 일으키겠다는 맹세를 하였다지요 . 그 뒤 태조는 936년(태조 19) 칙명으로 이 절을 중건하였고,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하도록 하였으며. 그리고 983년(성종 2)에는
청석(靑石)으로 구층탑을 세웠고. 이 후 이 절에는 두운의 법맥이 끊이지 않았는데,
특히 영련(英縺)은 이곳에서 30년 동안 수도하다가 조응(祖膺)에게 법(法)을 전하였다는군요.
옛 주막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 삼강주막 *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답니다요.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2007년도에
1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새로운
주모와 함께 나들이객들을 맞이하게 되었답니다요.
장안사도
직지사(直指寺)의 말사. 전설에 의하면 의상(義湘)의 제자인
운명(雲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예천군지』에서는 고려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답니다요. 그러나 정확한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의 기록만이 전한다지여...
. 1627년(인조 5)덕잠(德潛)이 중창하였고, 1709년(숙종 35)청민(淸敏)이
범종각(梵鐘閣)을 중수하였으며, 1755년(영조 31)법림(法琳)과
지묵(智默) 등이 중수하였고. 1800년(정조 24)효일(孝日)이 중수하였고,
1867년(고종 4)설산(雪山)이 향로전(香爐殿)을 중수하였으며,
1872년설곡(雪谷)이 법당 및 요사채를 중수하였다. 1876년백암(白巖)이
종각을 중수하였고, 1881년백암이 산령각(山靈閣)을 중수
. 그 뒤 응봉(鷹峰)이 1896년에 산령각을 중수하였고 이듬해에는
법당을 중수. 1925년에는 법당의 기와를 갈고 대방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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