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
머리만 롤러코스터를 탄다. 카페인 탓인지 출근 탓인지, 이른 아침부터 이미 분명하지 않다. 책상 위에 《율리시스》가 있다. 펼쳤다가 덮었다. 이것을 몇 번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마다 멀미가 난다. 조이스는 하루짜리 소설을 썼다. 1904년 6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직장인 레오폴드 블룸의 단 하루. 그런데 그 하루가 수백 페이지다. 마지막 장 페넬로페는 띄어쓰기도 문단도 없이, 꼬일 대로 꼬인 인간의 심상 속을 미로 찾기하듯 헤매다 빠져나온다. 모든 이들이 걸작이라 한다. 이해는 안 된다. 다른 이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그것도 영어로 쓰인 걸 한글로 번역된 걸 받아들이면서, 문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인류보편적 감정 몰입에는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그런데 이상한 건, 나는 나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거다. 나를 이해 못 하는 내가 타인의 의식을 이해 못 한다고 의아해하는 것 자체가, 생각해보면, 꽤 우스운 일이다. 나는 글을 쓸 때 가족 얘기를 피한다. 가족을 파는 것 같아서다. 좋은 이야기꾼은 가족도, 전애인도, 빙그레 웃던 그 쌍놈까지 다 가져다 쓴다는데, 나는 아직 햇빛만 바라보며 그르렁거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이, 어느새 내 얘기를 하고 있다. 율리시스 얘기를 하다 내 얘기가 됐고, 내 얘기인지 멀미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의식의 흐름이라는 건가.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간 기록이라면, 율리시스는 자기 안의 미지를 헤매다 길을 잃은 멀미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은 뭐지. 2026년 4월 24일 금요일. 블룸도 직장인이었다. 오늘은 월급날이다. 출금 메시지가 스마트폰 화면을 채워 나갔다. 잔고는 비어갔고, 퇴근이 기다렸다. (끝) |
첫댓글 ‘나를 이해 못 하는 내가 타인의 의식을 이해 못 한다고 의아해하는 것 자체가 꽤 우스운 일이다’ 이 문장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율리시스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자기 안의 미지를 헤매는 글이라는 점이 참 좋았어요.
작가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후도 힘내세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가 '멀미' 가 생기는 것일까요
평온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멀미약을 사러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