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종장의 음보는 어떻게 3·5·4·3이 되었나
시조의 음보율은 4·4·4·4/4·4·4·4/3·5·4·3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종장의 3·5·4·3이라는 음보율이다. 종장은 4·4 조라는 전통적 음보율에서 벗어나 있는데, 특히 종장 첫 구의 3·5라는 음보는 완전히 파격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음보율은 어디서 연원한 것일까?
한국 시가의 형식은 전절과 후절로 분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절은 길고 후절은 짧기 때문에 이를 전대절(前大節) 후소절(後小節)이라 통칭한다. 그리고 전대절과 후소절을 나누는 경계에는 ‘아으’와 같은 감탄어가 있는 것이 기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향가와 경기체가뿐만 아니라, 고려속요, 조선조의 악장, 시조, 가사 등에 전부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감탄어는 왜 붙여졌을까?
이러한 한국 시가 형식의 특성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특히 시조의 종장 첫 구의 3·5라는 음보율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짚어 보기로 하자.
그러면 먼저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애타게 그리며 지은 10구체 향가인 제망매가를 보자.
생사로(生死路)는
여기에 있음에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라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 극락)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련다
전대절은 1~8행까지이며 후소절은 9~10행이다. 9행 첫머리에는 ‘아아’라는 감탄사가 와서 노래의 내용을 양분하고 있다.
다음은 악장가사에 실려 있는, 경기체가인 한림별곡을 보자.
원순문(元淳文) 인로시(仁老詩) 공로사륙(公老四六)
이정언(李正言) 진한림陳翰林 쌍운주필(雙韻走筆)
충기대책(冲基對策) 광균경의(光鈞經義) 양경시부(良鏡詩賦)
위 시장(試場)ㅅ 경(景) 긔 엇더ᄒᆞ니잇고
금학사(琴學士)의 옥순문생(玉笋門生) 금학사(琴學士)의 옥순문생(玉笋門生)
위 날조차 몇 분이잇고
1~3 행까지가 전대절이고 4~6 행이 후소절이다. 그 사이에 ‘위’라는 감탄사가 들어가 있다.
다음은 고려속요의 구조를 보자. 악학궤범에 전하는 정과정과 악장가사에 실려 있는 사모곡을 보자.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며 지내노니
산 접동새와 나는 비슷합니다.
(모함들이 사실이) 아니며 거짓인 줄을 아아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실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과 함께하고 싶구나 아아
(내가 죄가 있다고) 우기시던 이가 누구입니까
잘못도 허물도 천만 없습니다.
뭇사람들의 참소하던 말입니다
슬프도다 아아
님이 나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아소 님이여, 다시 들으사 사랑해 주소서 ― 정과정 ―
감탄사 ‘아소’가 있는 구절을 경계로 하여 전대절과 후소절이 나누어진다.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아소 님아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 사모곡 ―
7행의 감탄사 ‘아소’부터 두 행이 후소절이고 그 앞부분이 전대절이다.
다음은 조선시대 악장인 용비어천가를 보자.
해동에 여섯 용(임금)이 나라를 세우시니
하시는 일마다 하늘이 내린 복이며
옛 중국 성인의 업적과 다르지 않다. ― 1장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른다. ― 2장 ―
(중략)
천 년 전에 미리 정하신 한강 북쪽 땅에 인덕(仁德)을 쌓아 개국하시어 점지해 받은 왕조의 운수가 끝이 없으시니,
성자 신손이 대를 이으셔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부지런히 힘쓰셔야, 더 욱 견고하실 것입니다.
임금하 아소서. 낙수에 사냥하러 가 있어 할아버지의 공덕만 믿겠습니까? ― 125장 ―
용비어천가는 125장으로 된 서사시다. 후소절은 마지막 행인 ‘임금하’라는 감탄어가 있는 행부터다. 전절은 길고 후절은 짧다.
다음은 시조를 보자. 길재의 시조와 조식의 작품을 본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세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 ―
이들 시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장, 중장의 전절에 ‘어즈버, 아이야’ 등으로 시작되는 종장의 후소절로 되어 있다. 다음은 가사(歌辭)를 보자. 정극인의 상춘곡을 보기로 하자.
紅塵(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生涯(생애) 엇더고
녯 사 風流(풍류) 미가 미가
天地間(천지간) 男子(남자) 몸이 날만 이 하건마
山林(산림)에 뭇쳐 이셔 至樂(지락)을 것가
數間茅屋(수간모옥)을 碧溪水(벽계수) 앏픠 두고
松竹(송죽) 鬱鬱裏(울울리)예 風月主人(풍월주인) 되여셔라
엊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桃花杏花(도화행화) 夕陽裏(석양리)예 퓌여 잇고
錄樣芳草(녹양방초) 細雨中(세우중)에 프르도다
칼로 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중략)
淸風明月(청풍명월) 外(외)예 엇던 벗이 잇올고
簞瓢陋巷(단표누항)에 흣튼 혜음 아니
아모타 百年行樂(백년행락)이 이만 엇지리
이 가사의 마지막 행 ‘아모타’란 감탄어가 있는 부분이 후소절이다. 그 앞부분 전부가 전대절이다.
그러면 전대절 후소절의 구분과 감탄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것은 문학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그 근원은 이들 시가 얹혀 불리던 음악과 관련이 있다. 고시가들은 다 가창을 위한 노랫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시가(詩歌)라고 부른다. 전·후절의 분단은 이러한 창곡의 분단에 따른 창사분단(唱詞分段 한 악곡에 쓰이는 가사의 단락)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전대절 후소절의 구분은 곧 노래를 연주하거나 부를 때 음악적인 악장 또는 마디를 나누는 분절의 기준이 되며, 곡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리듬의 변화를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요인에 의하여 가사도 전대절과 후소절로 나뉘게 된 것이다.
문학적인 시조창이 반주 없이 3장으로 불리는데 비해, 가곡창은 언제나 반주를 동반하며 5장으로 불린다는 차이를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음악과 문학의 시조가 다름을 본다. 이것을 표로 보이면 아래와 같다.
가곡(음악) 시조(문학)
대여음(大餘音 전주곡)
1장 : 동창이 ᄇᆞᆯ갓ᄂᆞ냐 초장
2장 : 노고지리 우지진다
3장 : 쇼칠 아ᄂᆞᆫ 여태 아니 니러ᄂᆞ냐 중장
중여음(中餘音 간주곡)
4장 : 재너머 종장
5장 : ᄉᆞ래 긴 밧츨 언제 갈려 ᄒᆞ나니
시조 종장의 첫 소절 3음절이 가곡의 제4장으로 불리어진다. 왜 시조 종장의 짧은 첫 소절 3음절을 가곡 5장 중 5분의 1에 해당되는 긴 한 장에다 할애했는가. 길이로 보면 시조가 초·중·종 12소절이니 종장 첫 소절은 1/12에 해당된다. 시조에서는 짧은 길이인데도 가곡에서는 긴 한 장을 할애했다. 또한 가곡의 3장과 4장 사이에는 비교적 긴 중여음(간주곡)이 있다. 중여음은 가사 없이 악기의 반주만으로 연주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주만으로 된 중간 부분에서 감탄사 ‘아으’, ‘아소’등이 불리었고 이 감탄사는 전·후절로 분단하는 분계적인 구실을 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래의 전·후절 분단과 감탄사의 개입은 음악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고, 문학 형식면의 특징은 이와 같은 음악상의 요구에 의한 결과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조뿐만 아니라 고전 시가에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중여음에서 불려진 감탄사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가창자)에게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각 절(전대절과 후소절)이나 연(聯)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음악적 이음새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강한 악센트를 주어 음악적 활력을 불어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전대절·후소절 구조는 노래의 형식적인 분절과 내용의 변화를 주어 음악적 악장 구분을 가능하게 했으며, 감탄어의 삽입은 노래의 통일성, 리듬감, 그리고 감정적 고조를 높이는 핵심적인 음악적 장치였다.
그런데 이 중여음에 있던 감탄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조 종장의 첫머리로 내려온 것이다. 고시조의 종장에 ‘어즈버, 아이야, 아마도’ 같은 감탄어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시조도 그 형성 초기에는 1행 4음보로 된 3행의 시로서 종장 1·2 음보의 음보율도 다른 초중장의 음보율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 위의 중여음에 있던 감탄어가 아래(종장 앞)로 내려옴으로써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즉 아래와 같은 구조가 된 것이다.
감탄어(3) 4 4 4 4
5 3
감탄어가 개입되니 5음보가 되는 것이다. 이 5음보를 원래의 4음보로 유지하려니 원래의 첫구 4·4가 하나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4·4는 하나로 굳어져 5자로 되어 결국 종장은 3·5·4·3으로 굳어진 것이다. 4·4가 5가 된 것은 결국 원래의 형태로 보면 4가 있을 자리에 5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래의 둘째 음보 4가 5로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1음절이 늘어났다. 이렇게 되어 결국 종장은 3·5·4·3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종장의 제2 음보가 5음절이 됨으로써 제1 음보는 3음절이 되도록 견인되었다. 즉 제2 음보의 늘어난 율조 5음절은 제1 음보가 3음절일 것을 강요하는 유기적인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이래서 원래 4음절이 있을 자리가 3음절로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가의 특징인 전·후절 분단성은 후대로 오면서 점차 약화되어 후소절의 분립이 명확하지 않게 되고, 전·후절의 중간에 끼어 있던 감탄사도 종장 첫 구로 내려오면서 점차 유의어(有意語)로 변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