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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보문학/ 주간 한국문학신문
 
 
 
카페 게시글
─‥‥세상사는 이야기 휘어진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최윤환 추천 0 조회 39 18.05.30 05:57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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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5.30 08:33

    첫댓글 저는 방학때 잠깐 시골 집에 내려 갔다가
    엄마 일을 돕는 다고 햇볕에서 일을 하다가
    뜨거운 햇살에 일사병이 생겨 죽다 살아 났네요
    나중에 할머니가 절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하셨지요
    허약한 체질인지
    금방 지치고 몸이 안좋았지요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무모 했던 것 같아요

  • 작성자 18.05.30 20:31

    댓글 고맙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새벽부터 일하고, 아침나절에도 일하지요.
    하지만 뜨거운 한낮에는 일 안 합니다. 해가 어설프게 서산으로 기우는 오후 늦게서야 다시 일을 하지요.
    슬기롭게 한낮의 땡볕을 피하지요. 그래도 이른 새벽부터 일을 했기에 작업시간은 무척이 많고 깁니다.

  • 18.05.30 11:56

    제 시 '호미'를 읽고
    시골장터에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의 굽고 휜 손가락에서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신 최선생님의 위 글을 읽고
    제 어머니가 생각나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마를만도 한 눈물이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산골의 가난한 집에서 흙수저로, 그것도 심장질환과 기관지확장증을 달고 태어나
    힘들게 헤쳐온 63년 내 인생,
    지병이 있어서 정규직 직장 한 번 못 갖고 살아온 내 인생,
    구비구비 마디마디가 서럽기도 하지만
    열 명이 넘는 자식 낳았지만 호강 한 번 못하고 자식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다 가신
    내 어머니의 일생이 더 서럽기만 합니다.

  • 18.05.30 12:01

    그래도 막내 아들인 제가 결혼해서 낳은 아들(어머니에겐 손자지요) 1년 정도
    업어주시면서 행복해 하시던 어머니였는데.......
    건강하지도 못한 나를 항상 걱정하시며 아들 딸 사위들이 주신 용돈을
    쓰시지도 않고 손수건에 몇 번이고
    싸서는 우리집에 오시면 내놓던 어머니.
    형님댁에 사시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집에 오셔서 우리 아들 업어주시는 것이
    낙이라시던 어머니는 우리 아들 2살 때, 저 세상 가셨지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못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최 선생님 !

  • 작성자 18.05.30 20:19

    글 정말로 좋네요.
    하도 좋아서 제가 임의로 여기에도 퍼서 올렸습니다.
    그래야만 왜 제가 이런 글을 썼는지를 제3자가 이해하기 쉽도록요.
    임의로 퍼왔기에 죄송합니다. 문제가 되면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 18.05.30 22:33

    @최윤환 지난 토요일 아들을 결혼 시킨 청주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민주(예전 이름은 옥순)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에 내가 누나 등에 업혀서 학교(집에서 학교까지는 4Km)에
    갔다는 이야기인데 저는 기억도 없습니다.
    그만큼 약하게 자랐습니다. 수많은 잔병치레 하면서.
    지금도 약골로 골골대지만
    그래도 이렇게 63년째 살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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