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계절마다 ‘한잔’, ‘춘하추동’ 닮은 전통주
[우리 술 답사기] (35) 충북 청주 ‘화양’
‘풍정사계’ 약주·과하주·막걸리·소주 4종
계절 순서대로 이름 붙여…맛 균형 좋아
녹두·밀로 누룩 직접 빚어…향 살아있어
‘춘’ 2017년 한·미 정상회담 만찬주 유명
충북 청주 ‘화양’에는 사계절 이름을 딴 네가지 술이 있다. 왼쪽부터 약주 ‘풍정사계 춘’, 과하주 ‘풍정사계 하’, 막걸리 ‘풍정사계 추’, 소주 ‘풍정사계 동’. 청주=현진 기자
계절을 닮은 술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였다. 최근 이상기후로 그 경계가 모호해진 이때 충북 청주 화양의 <풍정사계> 술은 희미해진 계절감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16년째 술을 빚어온 이한상 대표(66)는 전통 방식으로 고집스럽게 만든 이 술에 각각 춘(春)·하(夏)·추(秋)·동(冬)이란 계절 이름을 붙여 제품의 다양화·고급화를 이뤘다. <풍정사계>의 ‘풍정’은 양조장이 있는 마을 ‘풍정리(楓井里)’에서 따왔다.
“술 가운데 약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어요. 잘 만든 약주에서 좋은 막걸리·소주가 나오는 법이거든요. 처음엔 자가누룩(직접 띄우는 누룩)을 만드는 데 힘을 썼고 그다음엔 술의 신맛을 잡으려고 연구했어요. <풍정사계 춘(15도)>을 완성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리더라고요.”
화양에는 약주인 <풍정사계 춘>과 과하주(過夏酒)인 <풍정사계 하(18도)>, 막걸리 <풍정사계 추(12도)>, 소주인 <풍정사계 동(25·42도)>이 있다. 과하주는 약주에 도수 높은 소주를 섞은 혼양주로 여름을 대표하는 전통주다.
‘풍정사계’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진 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방한 때 만찬 자리에 오른 <풍정사계 춘> 덕분이다. 건배주로 와인 대신 우리 약주가 오른 것이다. 이후 2019년 한국·벨기에 정상회담에서도 <풍정사계 춘>이 만찬주로 선정됐다. 만찬주로 선택됐다는 언론보도 직후 밀려드는 술 주문량을 소화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단다.
이한상 대표가 10년간 연구 끝에 만든 술 ‘풍정사계 춘’을 선보이고 있다.
“어렵게 만든 술이 인정받으니 뿌듯했어요. 만찬용 술 선정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우리 술을 알릴 절호의 기회거든요.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산 오미자 와인 <오미로제 결(12도)>이 만찬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다양한 우리 술이 널리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풍정사계>는 업계에서 균형(밸런스)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정사계 춘>은 연둣빛에 가까운 연한 노란색으로, 단맛·쓴맛·신맛이 어느 하나 치우침 없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최소 100일 이상 숙성해 목 넘김도 부드럽다. 잘 숙성된 누룩냄새와 함께 화이트와인에서 나는 꽃 향이 느껴진다. <풍정사계 추>는 뒤끝이 깨끗한 막걸리다. 단맛만 두드러지지 않고 산미가 있으며 담백하고 깔끔하다. <풍정사계>는 모두 강도 차이는 있지만, 누룩에서 나는 곡물향이 돋보인다.
<풍정사계>의 별명이 ‘누룩술’이라는 데 술의 비밀이 있다. 누룩 사용량이 많은 데다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술에 들어간 누룩은 ‘향온곡’으로 녹두 10%, 밀 90%로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다. 미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술에서도 녹두향을 느낀단다. 이 대표는 누룩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일본 효모제인 입국을 쓴 술을 전통주라고 내놓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주조법상 전통주라고 부르는 술들은 많지만, 누룩을 써야 진짜 전통주라고 할 수 있어요.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이 자신만의 누룩을 만든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아직까지 누룩 연구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관심도 적은 것 같아 아쉬움이 있죠.”
이 대표의 남은 목표는 가업을 잇기로 한 자녀들이 좋은 술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 역시 술 공부를 이어나가며 전통주 보존에 힘쓰고자 한다. 대중성이 있는 소주를 만들겠다는 욕심도 있다.
“요즘 우리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요. 한식의 세계화 확산 과정에서 우리 음식 옆에 곁들여 마실 우리 술이 함께하면 더 좋겠죠. 앞으로도 정직한 마음으로 전통주를 빚겠습니다.”
500㎖ 기준 <풍정사계 춘>은 3만4000원, <풍정사계 하>는 4만원, <풍정사계 추>는 2만원이다. <풍정사계 동>은 375㎖ 42도 기준 4만5000원이다. 생산 물량이 적어 매월 첫째주와 셋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선착순으로 판매한다. 화양 홈페이지에서 미리 알람 신청도 할 수 있다.
출처 농민신문 청주=박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