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빛은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 그 은혜의 서정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정관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태초의 빛, 그 창조의 역사는
시공을 초월한 오늘의 빛으로 우리 시대 하늘의 빛으로 영원합니다.
어제와 내일을 잇는 오늘은
하늘의 빛을 항상 오늘로 느낍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役事)는 구속사가 아니라
오늘의 빛으로 가득한 생명의 은혜로 넘치는 하나님의 정관(靜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 의 하나님이라는 언약의 부활신앙, 그 젖줄입니다.
하늘의 빛을 과거지사로 인식하는 사람은
내일의 오늘을 살지 못하는 땅 속에 묻힌 사람입니다.
말씀의 빛, 그 은혜의 서정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하늘의 빛과 같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한 믿음의 주요,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종말론적으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세상의 빛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의 사랑이요,
그 은혜로 빛나는 생명의 빛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는 단계는 초등학문이요,
그 말씀을 묵상하는 단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경지입니다.
성경 묵상의 일주천은 구슬 궤미로 아름다운 영적 미학이요
하늘의 빛으로 생명의 은혜를 느끼는 구원의 서정, 그 믿음의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샘입니다.
말씀 묵상의 일주천으로 태초의 말씀, 그 베레쉬트의 창조 신앙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은혜,
구원의 신앙으로 충만한 생명의 빛으로 영혼에 깃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하루3장, 주일 다섯장 읽어 일년일독하는 것과
매일 말씀 묵상으로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그 일주천하는 구슬궤미로 아름다운 영적 서밋은 비교를 불허합니다.
말씀 묵상의 일주천은 1시간이면 충분하며
말씀의 빛은 시간이 아닌 공간의 은혜로 충만합니다.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에 가득한 생명의 말씀을 시간이 아닌 공간의 빛으로 쬐면
그 하나님의 정관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입체적으로 묵상하면.......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그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로 영원할 것입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보면
성서지대의 말씀을 천혜의 비경으로 영원한 생명의 상그릴라를 느낍니다.
성서지대의 기암절곡, 그 상그릴라는
주상절리의 협곡과 기암단애를 영적 천혜의 비경으로 수 놓았습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생명의 기운 가득한 기암단애의 절곡과 협곡은
그 다리를 잇는 하나님의 정관으로 넘치는 구원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한 생명의 씨앗이 움돋았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넘치는 천혜의 비경은
영적 주상절리의 상그랄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뜻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언약 신학의 맥, 그 구속의 대장정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하나님의 정관, 그 구원의 경륜을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정, 가나안 땅의 입성은
종말론적인 바벨론 유수로 말미암아 영적 서밋의 트래킹 코스, 그 구원의 여정이 되었습니다.
높은 산의 정상에서 바로보는 성서지대의 산맥은
장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수 놓았습니다.
성서지대의 트래킹은 말씀 묵상의 일주천으로 영적 천혜의 비경을 탄성하며
창조의 탄성, 그 메아리를 화답하는 영적 서밋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지대의 트래킹에서 만나는 협곡과 절곡의 험지, 그 천혜의 비경은
더 나은 언약의 중보를 만나는 새롭고 산길의 관문이었습니다.
옛 바벨론과 신 바벨론의 사이클은 아브라함의 여정, 그 믿음의 자취를 따라서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로 얼룩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영원히 성취한 새 언약의 역사(役事)를 이루었습니다.
옛 바벨론과 가나안 땅을 잇는 아브라함의 여정은
초승달의 빛으로 어둠을 빍혔습니다.
야곱의 여정은 가나안 땅에서 밧단아람을 거쳐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국가 이스라엘을 잉태하였습니다.
애굽의 이스라엘은 야곱 인생의 별미요,
요셉의 빛으로 애굽의 문화와 구별된 히브리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히브리 문화, 그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과 함께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헬레니즘은 세상의 법칙이 되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헤브라이즘은 영적 신앙의 법칙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이스라엘은 히브리 산파를 통한 생명의 역사로 풍성하였으며
모세를 통한 국가 이스라엘의 탄생은 광야의 길, 그 풀무의 연단을 받았습니다.
시내산에 울려퍼진 언약의 말씀은
태초의 말씀, 그 메아리를 이은 언약의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의 젖줄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이스라엘과 광야의 이스라엘, 그리고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은
애굽의 히브리 산파와 홍해와 광야의 길을 경험한 여호수아의 다리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전쟁의 완전한 전사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통치와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분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실로의 성소가 파괴되기까지
아브라함 언약의 감사와 모세의 율법을 잃어버리고 겨우 언약궤만이
출애굽의 증거와 그 신앙으로 전가의 보도가 되었습니다.
성서지대의 트래킹, 그 생명의 길은 가나안의 토착 문화의 뿌리 깊은 어둠에 묻혀 여명의 길은
실로 성막의 바알 제의식으로 생명의 은혜를 밝히는 지성소의 불은 완전히 꺼졌습니다.
실로의 성소가 파괴되고 언약궤를 빼앗긴 그 폐허를 딛고 선 사무엘 선지자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미스바 부흥 운동을 일으켜 새로운 이스라엘, 그 서광의 빛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애굽의 이스라엘, 그 히브리 산파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무엘의 출생으로 이스라엘을 갱신하는 위대한 어머니의 품이 되었습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 그 암흑의 폐허 위에 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빛으로 이스라엘에 깃들게 하였고 다윗 왕국의 산파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사사시대의 시작과 사무엘 시대의 시작은 극한 대조를 보이면서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은 가장 정결하고 거룩한 새 시대의 여명이 되었습니다.
사사시대는 최악의 가암단애,
그 주상절리의 협곡을 남겼습니다.
☞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삿2:8-15)
사무엘 시대는 혼돈과 공허의 이스라엘 역사에
창조의 빛, 그 여명이 동트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삼상7:3-4)
사무엘 시대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는 지도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빛을 비추며 생명의 구원을 얻게하는 은혜로 풍성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 부흥 운동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으며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말씀으로 다스렸고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 암흑기를 종식 시키고
다윗 왕국을 여는 여명의 다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메시야 나라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파란만장한 삶은
하나님의 뜻, 그 거룩한 말씀을 이루는 시온의 기초석을 놓았습니다.
시온성의 예루살렘은 시은소가 되어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였으며 모세 언약의 꽃을 피웠으며 메시야 언약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시편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생명의 말씀으로 가득하고 충만합니다.
다윗은 구약 성경의 에베레스트요,
다윗은 그 왕권을 찬탈 당하고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도망하였던 감람산길은
메시야의 감람산, 눈물과 땀이 핏방울로 떨어지는 그 예수님의 갯세마네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메시야의 주권을 잃은 십자가, 그 고난의 길은
왕권을 잃어버리고 맨발로 울며 도망하였던 다윗의 길에 투영되었습니다.
참으로 다윗 왕국은 메시야 나라의 예표가 되었으며
구약의 모든 산은 다윗의 산맥, 그 젖줄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위는 남북으로 분단된 이스라엘의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되었고
무너진 다윗의 장막 그 폐허 위에 선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스가랴 선지자의 신탁으로 메시야의 묵시가 되었습니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은 70년 바벨론 유수라는 가나안 땅의 안식이 되었으며
남은 자의 구원은 종말론적인 신학이 되었습니다.
포로귀환의 용장이 된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였으며 에스라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국을 일으키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깃든 다윗 왕국은 메시야의 몫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빛으로'
종말론적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태초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종말론적인 구원을 이루는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레쉬트의 창조는
마라나타의 구원을 이루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 되었습니다.
말씀묵상의 힘은 성서의 기암단애와 협곡의 그 천혜의 비경을 말씀으로 탄성하는 성서의 트래킹,
그 일추천으로 하나님의 얼굴 빛 앞에서 시온의 대로를 걷는
생명의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으로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