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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 1-4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가실 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15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장본인입니다. 지금도 유태인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렇게 위대한 모세도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얼마나 초라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가?”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내가 내 백성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아노라.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얼마나 귀한 사역입니까? 하지만 모세에게는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것 아닙니까?
40년전 이 말씀을 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때는 일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궁중에서 40년을 지내면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애국심에 불타 애굽 사람을 죽일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모세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광야로 쫓겨나 40년간 쓸쓸한 세월을 보냅니다. 나이가 여든이 되었습니다. 은퇴할 시기도 지나지 않았습니까? 인생에 아무런 낙도 없습니다. 무슨 기대도 없고,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습니다. 예전에 가졌던 꿈도, 젊은 날에 용기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런 모세를 이제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늙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모세에게 너무나 엄청난 사역을 맡깁니다.
그때 모세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출 3:11에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사명을 거부합니다. 모세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지금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내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날더러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라니
“내가 누구관대”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명을 받았지만 두려워 머뭇거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사명자가 이런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가?
그 이유는
1)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내 힘으로 하려 한다면 낙심하고 절망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일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 환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40년을 살아왔던 곳입니다. 바로의 엄청난 권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두려워서 도망쳐 온 곳 아닙니까? 그런 곳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환경과 처지가 다 맞아서 주의 일을 하는 것 아닙니다. 환경을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40년전에 부르지 않고 이제 부르신 이유를 아십니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가장 필수조건이 겸손입니다.
40년전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지도자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목사님을 초빙할 때 어떤 분을 구하는지 아십니까? 우선 설교를 잘 하고, 그 다음 행정도 잘하고, 심방도 열심히 하고, 인간 관계도 좋고, 공부도 잘 해서 유학갔다 온 사람이면 더 좋고, 무엇보다 외모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약점이 하나도 없는 100점 짜리 목사님을 구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요즘 교인들보다도 눈이 낮은 분입니까? 왜 하나님이 팔십 노인이 된 모세를 불렀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과연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까?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무리를 치면서 본격적인 겸손의 훈련을 합니다. 40년 광야에서 모세는 낮아질대로 낮아집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2. 우선순위
주님의 일을 하려면 뭔가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까?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망설이게 되고 뒷걸음질치게 됩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삽니까?
3:12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지금 낮은 자존감에 사로잡혀있는 모세를 설득시키는 하나님의 응답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보장은 세상에 없습니다.
한 어린 소년이 집에 있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옮기려고 하는데 여러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그걸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얘야, 넌 너의 모든 힘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네. 아빠” 소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칩니다. 그때 소년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아냐, 그렇지 않아. 넌 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내용이 이해하기 조금 어렵습니까? 모세도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깨 하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다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모세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쉽게 표현하면 “좋습니다. 하나님 내가 간다 하십시다. 그러나 하나님 한 번 생각해보세요. 누가 나를 믿어주겠습니까? 내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 가면 누가 나를 하나님께서 보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이런 뜻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팔십먹은 노인이 혼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달라고 하면 누가 내어주겠습니까? 아니 내어준다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 나서겠습니까?
그러니 모세가 하는 말은 큰거 하나 달라는 말입니다.
“이대로는 누구 하나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어차피 되지도 않을테니, 정말 보내실거면 굉장한 거, 뭔가 엄청난 거 하나 주십시오” 누가 봐도 “야,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구나. 굉장하다. 저 사람이면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다.” 생각할 수 있도록 뭔가를 달라는 요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이 먼저 주시면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3. 모세의 지팡이
그런데 모세의 요구에 대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갖고 있는 것이 뭐냐고 지금 물으시는 겁니다.
말씀드렸지만 모세는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애굽의 궁중에서 40년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세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달랑 지팡이 하나입니다.
“지팡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모세가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걸로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애굽 왕 앞에서 일개 한 노인이 맞선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엄청난 능력을 요구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오히려 내게 있는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지팡이를 들고 가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갖고 있던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칠 때 쓰는 볼품없는 아카시아 나무 막대기입니다. 아무 보잘 것 없는 막대기입니다,
모세가 또다시 핑계를 댑니다. 말을 잘 못한다는 겁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못가겠다고 합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합니다.
애굽에 내려가면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들 앞에서 말로 이길려면 얼마나 말을 잘 해야 합니까? 요즘 주일밤에 심야 토론하는 것보면 말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뭐 그렇게 아는 것도 많은지? 설교도 말을 잘해야 설교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참 재미있는 말이 10절에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라는 말씀입니다. 뭔 말인가 하면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엄청난 사역을 맡기신 후에도 여전히 내 입은 뻣뻣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시키시려면 당연히 말을 잘하게 해 주시던가 해야지 사명을 받은 후에도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교사하라면 “하긴 해야지만 말을 못해서요”하고 머뭇거립니다. 대표기도 하라면 다 못한다고 합니다. 일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습니까? 일하면 달라집니까? 달라지면 일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변화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하늘에서 뇌성과 우박을 내리시고, 불을 내리기도 하십니다.(9:23)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14:16)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그 속에서 물이 나옵니다.(17:6)
모세의 지팡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모세에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니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것을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만약 모세에게 바로와 맞설 만한 군대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냐고 물으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일거에 휘어 잡을 수 있는 언변이 있냐고 물었다면 모세는 절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갖고 있는 거라곤 지팡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한없이 초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들어 하나님의 큰 역사에 사용하십니다.
고전 1:27에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바로 이 진리를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모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처럼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마침내 모세가 순종하여 애굽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양을 칠 때와 다를 바 없는 초라한 모습입니다. 여전히 말을 못하는 입이 뻣뻣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순간부터 대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 부족함, 무능함,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사람도 주시고, 채워 주십니다.
많은 분들이 물질 주시면 물질로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의 물질을 주시면 얼마를 바치겠다는 겁니까? 10억 주시면 그 중에 1억쯤 바쳐야 주님의 일을 한 것입니까?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얼마의 물질이 있어야 합니까? 헌금 궤 앞에 앉아 과부의 두 렙돈을 제일 많은 것을 드렸다고 하시는 주님입니다. 그런 주님 앞에서 얼마의 물질이 더 필요합니까?
내게 있는 것으로 일하면 됩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도 주님을 최고로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있는 것은 놔두고 달라고 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있는 것을 사용하십시오.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기만 하면 됩니다. 던지라 할 때 던지고, 잡으라 할 때 잡고, 가리키라 할 때 가리키면 됩니다. 능력은 하나님이 나타내십니다.
내 손안에 들어있는 기적
출 4: 1-4
< 사명은 능력을 불러냅니다 >
사람은 능력이 있는 것 같아도 그 능력이 한계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쌓은 탑은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반면에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적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구라도 멋지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때까지는 저를 좋아한 사람이 별로 없었고, 여자친구도 없었습니다. 키도 작고, 인상도 별로이고, 성실함도 없고, 앞길에 대한 준비도 없고, 눈치도 없으니까 누가 좋아합니까? 그러나 84년에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신앙이 깊어지고 삶이 변화되니까 그때야 제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도 생겼고, 삶의 뚜렷한 목적도 생겼습니다. 참된 믿음은 참된 변화를 수반합니다.
저는 학생 때 남과 잘 부딪쳤습니다. 논쟁이나 공부도 지기 싫어했지만, 주먹질에서 지는 것은 무엇보다 싫어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옛날 친구들은 제가 목사가 된 것을 상상도 못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평가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길이 열리고, 약점으로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까지는 남 앞에 전혀 서지 못했습니다. 남의 눈만 보면 생각했던 것을 깡그리 잊어먹는 심리적 차단막 때문에 남 앞에 서면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런 약점을 가진 제가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저에게는 암이 나은 것과 같은 기적입니다. 어떻게 말더듬이가 설교자가 됩니까? 바로 하나님과 깊은 만남 때문입니다. 진실한 믿음은 천국 길도 열어주지만 삶에 기적과 변화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믿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84년에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통해 신앙이 깊어지자 당시 목사님이 저를 잘 보셨습니다. 그리고 85년부터 저에게 대학부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를 동시에 시켰습니다. 남 앞에 서는 것을 못하니까 도저히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 앞에서 말을 더듬어 부끄러움도 많이 당했지만 그런 부끄러운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남 앞에 설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주실 때 순종하면 그 사명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고, 점차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명은 능력을 불러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주실 때 순종함으로 그 사명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는 먼저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힘들고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어도 그 사명을 이행하려고 하면 점차 복을 받을만한 재목이 됩니다.
< 십자가를 지는 삶의 축복 >
본문의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라는 사명을 주실 때 처음에 그는 그 사명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 강제적으로 그 일을 맡기셨고, 결국 그는 나중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해방자가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사명 주실 때 자신의 처지와 환경과 능력을 생각하지 말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와 그의 자녀들을 인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실 때 아프리카 구레네 지역에 살던 시몬이란 순례자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는 속으로 “저 십자가를 내가 지었으면...”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로마 군병들이 억지로 그를 끌어내 십자가를 같이 지게 하자 그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갔습니다.
갑자기 강제적으로 지게 된 그 십자가가 나중에 그를 얼마나 복되게 만들었습니까? 그때 구레네 시몬이 우연히 십자가를 진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그것도 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려고 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한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다 헤아리고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사명의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상황에서 사명의 십자가가 지워질 때 못 이기는 척 하고 그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처럼 어떤 부담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주어진 부담이라면 그 부담을 져야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또한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줄 때도 못 이기는 척 하고 그 직분을 받으면 하나님의 큰 은혜가 주어집니다.
당시에 구레네 시몬은 갑자기 십자가를 잠시 졌지만 나중에 그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습니까? 그에게 주어진 축복은 베드로나 사도 바울의 축복에 못지않았습니다. 성경의 여러 기록들을 보면 구레네 시몬은 나중에 신실한 신자가 되었고 그의 아들들은 초대교회에 명성을 떨친 교구 감독들이 됩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 말씀을 보면 구레네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을 위해 쓴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이름이 기록될 정도로 알렉산더와 루포는 로마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사였습니다. 또한 로마서 16장 13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그처럼 마가복음과 로마서에 루포의 이름이 기록되고, 루포가 바울로부터 문안 받을 만한 인물이고, 특히 루포의 어머니인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바울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불렀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복된 가정이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은 그 자신과 그의 자녀들에게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 >
이제 사명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십시오. 믿음의 요체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축복도 없고, 십자가를 지면 축복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 축복 받고, 병도 낫고, 부자가 되고,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지만 그 전에 먼저 십자가를 기쁘게 져야 축복도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내 십자가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더 십자가를 질까?”를 항상 생각하며 사십시오.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자기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잘사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 혼자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 자기 분복의 십자가가 있고,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축복의 십자가로 알고 기쁘게 질 때 진짜 축복이 주어집니다.
물론 이 세상에 십자가가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음이 원이로되 육신이 약합니다. 때로는 십자가를 지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그때 못 이기는 척 하고 기쁘게 십자가를 지면 큰 축복이 있지만 “왜 그렇게 부담을 줘!”라고 원망하며 그 사명의 십자가를 피하면 더욱 큰 고난의 십자가가 주어집니다.
반면에 사명의 십자가를 지면 고난의 십자가는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사명의 십자가가 주어질 때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있구나! 이런 영광이 없고 이런 축복이 없구나!”라고 받아들이면 그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가 되고 그 가문은 구레네 시몬의 가문처럼 복된 가문이 될 것입니다.
믿는 목적이 오직 소원성취하고, 돈 많이 벌고, 천당 가는 것만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고, 자기의 사명을 생각하며 헌신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복음 전파와 선교를 위해 기쁘게 헌신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믿음을 주시고, 교회를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항상 생각나게 하소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참된 기도는 내 필요를 하나님이 모르실까봐 하나님께 알려드림으로 응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응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Cross)를 질 때 면류관(Crown)도 주어집니다. 또한 십자가를 기쁘게 질 때 자녀와 손자들도 축복 받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큰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 순종하는 삶의 축복 >
물론 사람들은 대개 큰 사명을 가지고 큰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는 큰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모세가 그랬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그는 계속 이유를 대며 자신은 그 일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제가 누구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냅니까?” 그 말을 할 때 그는 40년 전의 실패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때는 애굽 왕자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족을 구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처절하게 실패했었습니다. 그 뒤로 40년이 지나서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지냈던 자신이 어떻게 지금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래도 모세는 또 핑계를 댑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처럼 모세가 계속 자신 없는 말을 하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지팡이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지팡이가 있는 것을 아시면서 그 질문을 하셨습니까? 그 질문에는 복선이 깔려 있습니다. 즉 그 지팡이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마른 지팡이 같은 존재도 하나님이 쓰시면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가 가진 지팡이 정도는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사명을 따라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면 큰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능력보다 우리의 순종하는 믿음을 더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가끔 우리에게 부담 되는 어려운 일을 맡기십니까? 순종하는 믿음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순종하면 믿음도 커지고 축복의 지경도 넓혀집니다.
그처럼 모세가 지팡이가 있다고 하자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지팡이가 곧 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하나님이 이상한 명령을 내립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뱀을 잡을 때는 턱 밑을 잡아야지 꼬리를 잡으면 공격을 받습니다. 그래도 그 명령대로 순종하고 꼬리를 잡자 그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내 이성에 맞지 않는 명령을 들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나가면 저주가 축복으로 변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결국 나중에 모세는 강력한 리더가 됩니다. 그런 리더십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하지 못할 일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시면서 점차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고, 마침내 큰 인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거절과 실패와 자기의 부적격성을 생각하지 말고 십자가의 사명이 주어질 때 기쁘게 그 사명을 축복의 통로로 알고 받으십시오. 그러면 진정으로 복된 일이 생겨날 것입니다.
< 비전성취의 기적을 꿈꾸십시오 >
저는 한국에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을 일으키려는 개척자의 비전을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많았지만 그런 고난이 있었기에 현재 조금씩 열매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입니다. 이제 2012년 기독교 선교연맹 한인 총회를 잘 개최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 전권 파일을 완성하고 영어로 번역해서 천년 영향력의 비전을 이루고, 온라인 새벽기도를 통해서 기도 후원자를 얻고, 네트영어를 통해서 국제적 일꾼을 길러내야 합니다. 또한 토저(Tozer) 신학교를 세워서 영적인 일꾼도 많이 배출하고 교회도 많이 세워야 합니다.
물론 현재 가진 것은 적습니다. 그래도 모세의 지팡이보다는 가진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을 따라 하나님이 지게 하신 사명의 십자가를 잘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사와 집사 직분은 세상의 어떤 직분보다 소중한 직분입니다. 그 직분을 중시하고 사명을 따라 나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가장 복된 길로 우리를 이끄시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제 비전이 기적적으로 이뤄지는 날을 꿈꾸십시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기적의 원천이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오병이어밖에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그것으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마 14:17-18). 중요한 것은 현재 내게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가 이미 가지고 있는 낡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습니다(요 21:6). 그때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큰 고기가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그 153마리 고기 기적은 경제적인 기적을 암시합니다. 그처럼 베드로가 가진 낡은 그물에는 이미 경제적인 축복도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물질적인 축복을 가져다줄 무엇인가가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주님 옆에는 항아리 6개가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그래서 종들이 항아리 끝까지 물을 채우자 예수님은 이미 그 집에 있던 항아리와 물을 사용해서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기적을 주심으로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기적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진 것에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기적적인 축복을 원하면 내가 지금 가진 것을 기도하며 살펴보십시오. 축복의 원천이 이미 우리 안에 있고, 우리 가정 안에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런 기적을 이룰 재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현재의 모습만 보고 미리 판단하지 마십시오. 계속 기도하며 꿈과 비전을 심어주십시오.
< 내 손 안에 들어있는 기적 >
사람들이 왜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까? 이미 있는 것을 놔두고 하늘로부터 기적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기적이 직접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만나도 하늘로부터 직접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그 구절은 이슬이 만나의 기적에 사용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기적은 하늘로부터 직접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땅에 있었던 이슬 밑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 기적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주변의 이슬 밑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이미 주어진 기적을 취할 수 있습니다. 대개 기적은 새로운 것이 창조됨으로 주어지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이 증식됨으로 주어집니다.
기적의 원천은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있고, 내 가정과 주변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내 믿음과 융합될 때 진짜 기적은 일어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아지면 그런 기적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미 우리 손에 주신 지팡이, 오병이어, 낡은 그물, 그리고 항아리와 같은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명을 위해 드리십시오. 그러면 지금도 얼마든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 말씀을 보면 한 과부 여인이 나옵니다. 그때 그녀는 남편이 죽은 상태에서 아들들이 노예로 팔려갈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 상황을 엘리사에게 말하자 엘리사가 물었습니다.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때 그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계집종의 집에는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과부처럼 대답합니다. “그 시시한 것 말고는 제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아무 것도 없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사실 한 병 기름과 같은 시시한 것이 바로 기적의 시작점입니다. 그 시시한 것 안에 엄청난 기적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적의 재료로 삼으실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때 기름 한 병 있다는 말을 듣고 엘리사는 과부에게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되 많이 빌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축복의 기름은 그녀가 빌리는 그릇 숫자만큼 그 양이 제한될 것입니다. 결국 자신만이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양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입을 넓게 여십시오. 입을 적게 열면 그 입 이상으로 하나님이 채워주실 수 없습니다. 결국 과부가 빌려온 모든 그릇에 기름이 넘치도록 주어졌고, 과부는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 가지 기적적인 축복을 통해 풍성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우리 가정 안에 주셨고, 우리 손 안에 주셨습니다. 누구나 예수 믿고 인물 될 수 있고, 기적적인 수직상승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축복의 재료가 이미 여러분들의 가정과 주변 어딘가에 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성도에게는 ‘기도’라는 기적의 원천이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경제적인 위기를 많이 겪었습니다. 겉으로는 편안한 모습을 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분당에 처음 올 때 33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며칠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의 33만원은 과부가 가진 기름 한 병과 같았습니다. 그때 제가 최후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최후의 수단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사소한 것 같지만 사실상 엄청난 기적의 원천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지팡이, 항아리, 오병이어, 낡은 그물과 같은 것들을 찾아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주님께 드려보십시오. 그러면 기적적인 역사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면 여러분들의 자녀가 최고의 축복의 재료가 될 날도 올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기적적인 역사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예수 믿고 인물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임 받고 기쁨과 보람이 넘치는 삶을 사십시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 1-4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인가 우리에게도 나타나셔서 물으실 것입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이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없는 삶의 결말이 무엇이었느냐? 하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모세야 나 없이 살아온 네 인생의 결과가 무엇이냐?’
하나님은 이 질문을 통해서 모세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시절
즉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만 살았던 인생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한때에 모세는 궁중의 왕자였습니다. 잘나가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광야로 도망치게 되면서 마음에 수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아 내 인생이 이게 아닌데,
지금의 이 모습은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닌데…….
어서 속히 일어서야지, 일어서야지.’
하면서 일어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부림쳤지만 모세는 일어 설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일어나 지지를 않았습니다.
기적의 하나님
새가 그물에 걸림같이 내 삶속에 덫이 임했네
몸부림쳤지만 허우적거렸지만 나는 약한 자였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라
나의 좋으신 주님 태양을 멈추며 혈루증을 고쳤던 주님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는 나를 고쳐주셨네
아무 예고도 없이 내 삶속에 슬픔이 임했네
원인을 찾으며 애써봤지만 나는 무력한 자였네
내 영혼아 네가 어찌 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라
나의 좋으신 주님 죽은자를 살리며 모든병을 고쳤던 주님
기적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그는 나를 고쳐주셨네
삼손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에 그 힘을 다 잃어버리고 몸부림치던 것처럼...
모세도 슬픔과 괴로움에 젖어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몸부림치면 칠수록 오히려 상처만 깊어만 갔습니다.
이제 모세는 비로서 자신의 이러한 사람의 결과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양을 치는 처량한 목자의 신분이 되어서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세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모두 이 광야에 묻어야만 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모세는 이제 하나님의 이 물음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자기인생과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인생과 우리가족의 운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가지고 있다 할지라고
하나님이 없는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사상누각입니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비바람이 불어오면 한순간에 다 무너지고 맙니다.
2) 네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이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고...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을 스스로 자처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이 싸울 때에...항상 이스라엘 편에 서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세는 그만... 애굽 사람을 때려죽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동족들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때에 동족끼리 싸우지 말라고 모세가 말리고 있는데
그런 모세를 향하여 “누가 너를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라고 따졌습니다.
이 한마디는 모세의 꿈을 산산히 깨뜨려 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모세는 생각하기를
나는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킬 사람이라 여겼는데, 그것이 아니었구나
하고는....자신의 생각을 접게 됩니다.
결국 그는 광야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사명과 꿈도 다 접은 채... 한낮 광야의 초라한 목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모세야!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너를 보내겠다” 하십니다.
전 같으면 모세는 즉각 대답하기를
“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즉시 해결 하겠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을 것인데...
이제는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 말고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요” 하고 사양을 합니다.
비로서 모세는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은 겸손하게 하지만 사실‘나는 대단한 존재야’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물질적으로 여유 있고, 지식도 있고, 권세와 명예도 있으니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자신은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은 들어서 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노력하고 애쓰고,
무엇을 집어 봐도,
무엇을 획득 해봐도,
무엇을 소유 해봐도
결론은 허무한 것이구나.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도 같은데
양파껍질 벗기듯이 벗기고 벗기면 끝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구나.
아! 인생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구나.’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무능한존재라고 자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철저히 깨닫는 다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들어서 크게 쓰실 입니다.
3)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지난날에 모세는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지난날의 실패를 교훈삼아 새롭게 아름답게 펼쳐질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과거보다 중요한 것이 미래입니다. 미래가 더욱 중요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는 뱀으로 변한 지팡이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뒤로 물러서서 피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 민족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표독한 뱀과 같은 엄청난 애굽의 군사들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광야로 도망치듯이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고 부르시듯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시고 부르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뱀은 머리를 잡아야지 꼬리를 잡으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불호령을 치시며 시키시니까... 얼떨결에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꼬리를 잡자마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뱀은 다시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상식 밖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에 그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오는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17).”
모세가 피해서 도망간 뱀,
그것도 뱀의 머리가 아닌 꼬리를 잡았는데...
그때 다시 지팡이가 되어 그의 손아귀에 돌아온 것을 보고는...
이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모세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열매 맺는 인생이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승리하는 인생이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길이... 성공하는 길이구나....라고 말입니다.
이제 모세는 그의 실패와 깨어진 꿈의 상징이었던
찌그러지고 굽어진 지팡이가 하나님 앞에 높이 들려지져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철저히 하나님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이 질문은
“모세야 이제 네가 가진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네가 나를 믿고 의지하면 마른막대기 같은 너도 큰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일을 저도 할 것이요 내가 한 일보다 더 큰일을 저가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이후에 펼친 10가지 능력들은 모세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 능력이 나타나게 됨을 보여주신것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크게 3등분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이미 모세로 40년 동안 왕궁에서 리더 훈련을 받게 하시고,
2) 40년 동안 광야에서 광야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게 하신 다음,
3) 마지막 인생 40면
즉 마지막 남은 인생의 3/1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사용하시기를 작정하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인생의 3/1은... 철없이 태어나 세상을 배우느라 세월을 보냅니다.
두 번째 인생의 3/1은 광야에서 헤맵니다. 그과정에서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세 번째 마지막 인생의 3/1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이 마지막 인생이 우리에게는 가장 값지고 귀한 시간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시기에 있습니까?
나이를 초월하여 마지막 시기를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철저히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모세처럼 크고 귀하여 능력 있는 종으로 쓰여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