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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불하는 미국의 ‘중국 지우기’ 비용
[ 시민언론민들레 | 최배근의 통찰 mindle@mindlenews.com ] 2023.03.16 16:33
미 패권주의-일 군국주의 맹종하는 윤석열 정부
'중국 죽이기' 후폭풍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
최배근 건국대 교수
나라가 가난해지고 백성(의 삶)이 고달파지는 현상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대 말기의 공통 현상이다. 시대 말기의 이런 현상은 경제력 집중과 공적 자원의 사유화, 그리고 신분 세습의 공고화 등과 맞물려 있었다. 최근 시중에 흘러다니는, 주요 공직에 진출한 검찰 출신 명단을 보면 돈과 정보와 인사 등을 검찰 출신이 장악하였음이 쉽게 확인된다. 마지막 남은 영역이 국회일 것이다. 용산이 당권의 향배를 좌우할 여당 전당대회에 불법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개입한 이유이다. 인간 백정을 자처하며 미친 칼질을 하는 검찰, 그리고 썩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하이에나 식욕을 보이는 언론의 콜라보가 향하는 지점은 국회 장악과 (국가 권력을 동원해) 장기 집권에 방해되는 정적 제거 및 도전 세력의 무력화일 것이다.
‘배 째라 정권’의 대외 지향점은 미·일 패권주의 하위 파트너
이들은 자신들의 광란극에 분노하는 국민은 안중에 없다. 예를 들어, 공적 자원을 사유화하며 자신들에 쇄도하는 사회적 비난에 대해서는 “뭐 어쩔 건데?”, 이른바 ‘배 째라’ 식이다. 파편화된 국민은 힘이 없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힘이 센 존재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알아서 납작 엎드린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이 그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사법부와 헌법정신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서) 전쟁범죄와 인권 그리고 군국주의 침략의 불법성 등에서 일본 극우 군국주의의 입장을, 그리고 한반도 및 동북아가 전쟁 소용돌이에 던져질 수도 있는 미국 군사 패권주의의 요구를 자발적·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정의와 평화보다는 돈과 힘을 숭상하는 세계관의 결과다. 그런데 힘을 숭상하는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위계적 질서를 낳는다. 대내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대외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군사 패권주의의 하위 파트너가 된 배경이다. 역사는 보여준다. 대외적 위상이 추락할 때마다 서민경제는 생존 위기에 놓였음을.
3월 10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7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한미 해병대원이 함께 탑승한 상륙돌격장갑차와 차륜형장갑차가 상륙작전을 시연하고 있다. 2023.3.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3월이 시작되며 가장 기다렸던 것이 하나 있다. 3월 3일(한국시간)에 발표한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발표한 지난해 민주주의 보고서였다. 윤석열 정권에서 민주주의 후퇴가 어떤 결과로 나올까 궁금했다. 이 연구소의 평가 결과는 민주주의 수준이나 지수를 발표하는 어느 언론사(예: 이코노미스트)나 기관(예: 헤리티지 재단)보다 신뢰도가 높다. 그 이유는 공을 많이 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세계 각국의 4천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업으로 해결한다. 다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측정하여 점수화한다. 179개국을 10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박근혜 정권의 사실상 마지막 해인 2016년 37위로 3그룹 국가에 속했었다. 일본은 34위로 2그룹에 턱걸이하는 국가였다. 한국은 2018년부터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21년까지 1그룹 국가로 진입하였고, 덴마크나 스웨덴, 노르웨이 등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일본은 여전히 2그룹 국가로 우리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은 28위로 11계단이나 추락했다. 그리고 일본에 다시 뒤처졌다.
민주주의 지수 폭락과 GDP, GNI 후퇴의 일치성
그리고 3월 7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소득의 대외적 구매력을 나타내는 달러 기준 지난해 국민소득을 발표하였다. 우연의 일치인가? 지난해 국가 경제규모를 나타내는 GDP는 1조 6643억 달러로 2021년의 1조 8102억 달러는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의 1조7252억 달러보다 후퇴한 규모였다. 1인당 국민소득도 2018년 이전으로 후퇴하였다. 예를 들어, 한국인만을 기준으로 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21년의 3만 5373달러에서 지난해 3만 2661달러로 2712달러(7.7%)나 감소하였다. 이는 2018년의 3만 3564달러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온 힘 다해 방어해주는 언론들은 환율 타령을 한다. 즉 강달러로 인해 불가피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을 20년 만에 추월했다는 대만의 달러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와 달리 0.8%만 하락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한국과 대만의 역전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의 거시경제 지표의 악화는 수출 악화에서 시작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 경제를 미국 안보의 하위개념으로 편입시킨 한·미 정상회담으로 문을 열었다. 바로 뒤를 이은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해 반러시아와 탈중국을 공식화하였다. 자신의 우방을 활용하여 미·중 패권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로 한, 이른바 바이든의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은 다름 아닌 중국을 고립화시키고 (중국 보복을 대비하여) 자립적 공급망을 미국에 구축하는 것이다.
반러시아와 탈중국의 결과가 수출과 무역수지 참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중국 수출액은 1198.4억 달러였는데 이는 1년 전(21년 5월~22년 2월) 대중국 수출액 1395.2억 달러의 14.1%인 197억 달러가 감소한 규모였다. 같은 기간 대중국 무역수지는 194.9억 달러 흑자에서 103.5억 달러 적자로 대중국 무역수지에서 1년 전보다 약 300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러시아와의 교역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년간 한국의 러시아 수출은 23%나 감소했는데, 이는 237%가 증가한 인도, 49%가 증가한 이탈리아, 34%가 증가한 브라질, 11%와 2% 증가한 프랑스나 스페인과는 대조적 모습이고, 심지어 –0.2%의 대만, -11%의 일본, 그리고 적대국이 된 폴란드의 –18%보다 큰 감소였다.
산업별로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960.7억 달러로 1년 전 1132.4억 달러의 15.2%인 172억 달러가 감소하였다. 현재 한국 수출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는 물론이고 미래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는 전기차 배터리나 바이오 등 모두 미국 내 생산을 강요당하고 있다. 생산 능력이나 비용 경쟁력 등에서 미국 기업이 할 수 없는 부분에서 한국 기업을 미국으로 사실상 이전시켜 해결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 한국 반도체 생산시설은 사실상 폐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 마치 한국 수출도 살아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자신의 부담을 우방에게 떠넘기는 미 패권주의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최종 목표는 패권 유지이고, 그 연장선에서 중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과거와 달리 달러 동원 역량이 많이 고갈된 상태이다. 미국 의회가 허용해준 연방정부 부채 한도는 97년부터 10년간 3.8조 달러를 증액했으나 2007년 이후 10년간은 앞의 10년의 약 3배 수준인 10.7조 달러를 증액했고, 2017년 이후 5년 만에 앞의 10년간 증액 규모를 넘는 10.9조 달러를 증액했다. 연방정부 부채는 22년 9월 말 기준 약 31조 달러, GDP 대비 124%에 달하고 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63%, 그리고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107%였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만 8.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본다. 일부에서는 의회예산국이 (인플레 유발 없이 잠재 성장을 가능케 하는) 이른바 중립 금리를 낮게 가정하고 있기에 전망치를 초과할 것으로 본다. (미국 국민에 부담 주는)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놓고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것이 ‘프렌드 쇼어링 전략’이다. 미국의 산업생산 능력 강화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우방에게 부담을 전가하자는 것이다.
패권 유지가 목표함수인 미국의 엘리트들은 중국 부상을 차단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견 일치를 보는 첫 번째 지점이 전술했듯이 러시아와 다른 중국의 산업생산 역량이 더 이상 향상되지 못하도록, 중국을 악마화시켜 철저히 고립시키겠다는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초조감에 사로잡힌 미국 엘리트들의 ‘중국 없는 세상’ 만들기 전략은 경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는 최근 발표한 무역 관련 공약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을 완전히 제거하여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최혜국(MFN) 지위를 철회하고, 집권 후 4년간 전자제품과 철강과 의약품 등 필수품 수입을 중단하고,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금지하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연방정부와의 거래 금지를 천명했다.
‘중국 없는 세상’ 만들기와 코리아 리스크
실현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의 ‘중국 없는 세계’ 만들기 전략에 (지금까지 그랬듯이) 윤석열 정부는 앞장설 것이다. 이는 한국 수출의 1/4, 홍콩을 포함하면 30%가 넘었던 중국 수출 감소의 후폭풍이 진행형임을 의미한다. 미국 엘리트들이 의견 일치를 보이는 두 번째 지점이 우방을 활용해 중국 국가 역량을 약화 혹은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G7의 D11 개편 등 가치 동맹으로 미국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 그동안 워싱턴에서 공유된 배경이다. 구체적으로 나토를 활용하고 우크라이나를 제물로 삼아 러시아 국가 역량을 고갈시키고 있듯이, 쿼드를 활용하고 한국과 대만 등을 제물로 삼아 중국 역량을 고갈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이번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윤석열 해법이 한일 간 유대를 강화하고 미국의 목표 달성,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을 진전시킬 것이라며 환영한 배경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한일 유대 강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25차례나 한·미·일 3자 고위급 회담을 진행해 왔다며 미국이 깊숙이 개입했음을 실토했다.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동맹이 전쟁범죄와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취급하는 지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중국 죽이기’가 현실과 명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 후폭풍에서 우리의 피해가 가장 우려된다는 점이다. 세계에는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나라가 더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세안은 미국의 중국 봉쇄에 참여를 거부한다. 문제는 미국의 ‘중국 없는 세상’ 만들기가 실패한 후 중국 지우기에 참여한 한국이 떠안을 비용이다. ‘대등 조치’를 중요시하는 중국의 ‘한국 지우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패권 유지는 중국이 하지 못하는 미래 산업생태계의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중국이 하지 못하는 것을 미국이 하지 못하면서 중국을 파괴하려면 군사적 선택밖에 없다. 미국의 중국 없는 세상 만들기가 최종적으로 한국과 대만 등을 제물로 삼는 동북아 전쟁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물론, 미국이 파놓은 함정에 중국이 쉽사리 빠져들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미국은 중국을 집요하게 자극할 것이고,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한국에 돌아올 것이다.
윤 정부 보란듯이…시진핑 3기 태도 싹~ 달라졌다
[ 시민언론민들레 |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 2023.03.16 14:04
한국 관련 현안 있을 때마다 견제, 때로는 배제
북핵과 한반도 전쟁위기 책임 한미 양국 지목
"북한 비핵화 화답 거부, 대북 압박 강화가 주 원인"
쿼드 참여, 한·미·일 군사협력 가속화 윤 정부 비판
시진핑 주석 전인대 폐막 연설 2023. 03.13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프놈펜 한‧중 정상회담 때만 해도,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반중국 행보에 불만은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자고 설득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시진핑 국가주석의 3번째 연임 성공과 3기 정부 출범을 전후로 해서 자세가 싹 바뀐 모습이다. 오래전에 마음이 떠난 듯한 윤 정부를 두고 애써 설득하기보단 사안이 있을 때마다 보란 듯이 견제하거나 비판한다. 때론 아예 배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속내를 엿볼만한 상징적 행사가 있었다. 지난 7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친강 신임 중국 외교부장의 첫 내외신 기자회견이다. 중국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은 해마다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한 번 열리는 탓에, 그해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북,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한일정상회담 겨냥 관측.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외교부장 회견서 '단골 메뉴 한반도' 배제
이날 회견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남북한 등 한반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친 부장의 모두 발언에도 없었고 한국 특파원들에게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반면 그는 미국과 일본, 러시아, 파키스탄 기자의 질문을 받고 시진핑 3기 정권의 외교 기조를 설명했다. 예년에는 북핵이나 한중 관계 관련 질문이 단골 메뉴였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202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왕이 전 외교부장의 오후 일정 탓에 회견이 앞당겨 끝난 사정이 있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때 외에 최근 몇 년간 외교부장 회견에서 한반도 이슈가 빠진 적은 없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9년 2월에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이어 두 번째로 연합뉴스 특파원을 지목했을 만큼 한국에 신경을 썼다. 작년에도 왕이는 한중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한중 양국은 경쟁자가 아니라 잠재력이 거대한 협력 파트너"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였다.
정색하고 한국을 배제한 사례도 있다. 중국이 자국민 국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 명단을 발표하면서 유독 한국을 빼놓은 것이다. 중국 문화관광부는 지난달 6일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20개국의 여행사는 중국민을 상대로 단체 여행상품을 판매하도록 허가했다. 지난 10일에 프랑스와 브라질, 짐바브웨 등 40개국을 추가했으나 지리적으로 이웃인 한국은 또 제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2.11.13 연합뉴스
'친미·친일·반중' 윤석열 행보에 불만 표출
작년 5월 윤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싸늘해지는 한‧중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경제와 군사 등 전방위로 중국 포위망 구축에 주력하는 미국과 일본의 '품'에 안겨 행동대원 역할을 자임하는 듯한 윤 정부의 행보에 대한 불만이 저변에 흐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출범 직후 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서울, 2022년 5월 21일)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마드리드, 6월 29일)를 계기로 '탈(脫) 중국'과 함께 중국 포위망 구축을 위한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을 선언함으로써 '반(反) 중국'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역대 정부는 한미동맹과 균형 외교를 기본 축으로 삼고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윤 정부는 '가치 외교'를 내걸고 완전히 벗어 던진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끼리 힘을 합쳐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겠다고 하지만, 방점은 '중국 죽이기' 가담에 찍혀 있다.
윤 정부의 친미‧친일‧반중 노선은 작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연대'로 나타났고, 12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더욱 구체화 됐다.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용인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강제동원(징용) 피해배상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준 '제3자 변제안' 강행을 통해 더욱 뚜렷한 모양을 갖추게 됐다. 이로써 중국 포위망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할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한 발걸음은 더 빨라지게 됐다.
로 칸나 하원의원(민주당·캘리포니아)이 이끄는 미국 의회 대표단이 21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총통(가운데)을 예방하고 있다. 19일 닷새 일정으로 대만을 찾은 대표단은 방문기간에 양국의 안보와 경제무역 파트너 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대만 외교부는 전했다. 2023. 2. .21 연합뉴스
윤 정부, 불필요한 대만 문제 개입…중국 자극
문제는 윤 정부가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왔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달 22일 보도된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방송 인터뷰다. 여기서 박 장관은 한국의 안보상 도전은 한반도를 넘어 남쪽으로 1000마일(약 1600㎞) 떨어진 대만 해협까지 걸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극히 중요하며'(essential)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고 역설했다. 대만이 위협받으면 한반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아가 한국군의 직접 개입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작년 12월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거의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점에서 무심코 또는 실수로 던진 말로 보기는 어렵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무력 사용 불사를 경고할 만큼 '영토 주권'에 관련된 타협 불가한 사안으로 여긴다. 중국 당국의 공식 비판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부용치훼'(不容置喙)라는 비외교적 표현을 써가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다른 사람의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거칠게 반발했다.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다. 우리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훈수'를 뒀다가 괜한 핀잔만 들을 셈이다.
미국 전략자산 B-1B 전략폭격기가 참가한 가운데 서해 상공에서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진행하는 모습. 2023. 2. 1 연합뉴스
미국 전략자산 서해 전개 '일상화'…중국 압박 강화
또한 한미 양국은 잇단 연합훈련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이 1차적 명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도 압박하는 '일석이조'(돌 하나로 새 두 마리)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 전략자산의 '서해 전개'다.
한미는 올해 들어 2월 1일, 3일, 19일과 3월 6일 네 차례 연합 공중훈련을 벌였다. 미국에선 이른바 '죽음의 백조'인 B-1B와 현존 최강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 F-35B, 그리고 핵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폭격기 B-52H 등이 참가했다. 그런데 훈련 장소를 바꿨다. 그동안 동해 상공에서 해왔으나, 올해 연합 공중훈련 4번 모두 서해 상공에서 진행했고 훈련 사실도 바로 공개했다. 중국을 의식하던 자세에서 되레 중국을 자극하고 압박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미는 또한 '실제 전쟁상황'을 상정한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라는 역대급 연합연습을 진행 중이다. 16일로 나흘째다. 북한 지도부 제거와 북한 점령 시나리오도 포함된 20여 개 연합야외기동훈련(FTX)이 실시되고, 이달 말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더불어 한‧미‧일 3국의 미사일 경보훈련도 예정돼 있다.
북한도 연일 전략순항미사일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을 발사하며 "공세적으로 활용할 중대한 실천적 조치"(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를 경고하고 나서 한반도는 언제 무력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도쿄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된 16일에도 장거리탄도미사일을 쐈다.
육군3공병여단과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예하 공병대대가 6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일대 훈련장에서 실시중인 FS/TIGER 연합도하훈련에서 연합장비 및 차량이 연합부교를 이용해 강을 건너고 있다. [육군 제공] 연합뉴스
중국, 북핵·한반도 전쟁위기 책임 한·미에 돌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의 14일 정례 브리핑에서였다. 한미 연합연습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고 특히 한반도 정세의 악화 책임을 한국과 미국에 돌리고 북한을 감쌌다. 왕 대변인은 "한반도 정세가 오늘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얽힌 문제는 명확하다"라며 "관련국이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한 데 대한 화답을 거부하고 오히려 대북 압박과 위협을 강화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련 당사자들은 모두 자제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해야 하며, 그 반대의 일을 해선 안 된다"라고 촉구했다.
한반도 상황을 줄곧 관망하면서 필요할 경우 양비론을 펴던 종전의 태도와는 달라졌다. 또한 외교부 대변인의 입장 발표 날짜도 눈에 띈다. 연합연습 돌입 바로 다음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정부 입장이 정리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과 국가, 군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출범한 시진핑 주석의 3기 정권이 향후 윤 정부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엿볼 단서를 제공한다. 윤 정부의 행보에 할 말이 있어도 삭이던 방식에서 할 말도 하고 필요할 경우 상응하는 행동도 취하는 방식으로 바뀔 공산이 커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중국, 윤 정부 백기투항 '조롱'…한미일 동맹 '비판'
중국은 최근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의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왔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하는 외교부 대변인은 물론 관영매체와 관변 학자를 총동원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한 '3국 연대'가 한국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 주도의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 실무그룹에 대한 윤 정부의 참여 방침을 경고하고 나섰다.
마오닝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쿼드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으로 지칭한 뒤 "우리는 관련 국가가 대립을 조장하지 말기를 희망한다"라고 했고, 9일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윤 정부가 미국 열차에 자신을 더 단단히 묶음으로써 정치적 독립성을 잃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의 한반도 전문가 뤼차오도 한·미·일 3자 군사동맹의 길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매우 위험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조롱성 비판'도 있었다. 글로벌타임스는 8일 "친미파로 평가받는 윤석열 정부가 취임 이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 때문"이라며 "이는 한국 국민을 실망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익을 해치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신경보도 "한국이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제시한 뒤 한·일은 군사 분야 협력 강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이는 물론 미국이 원하는 바로, 반드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가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또한 지난 2일 글로벌타임스는 3‧1절을 "한국민의 용감하고 불굴의 저항정신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언급한 다음 "그날에 일본을 향해 그렇게 아첨하는 말을 한 한국 대통령은 흔치 않다"라고 조롱했다. 신문은 "분석가들에 따르면 그 연설은 외교정책에서 윤 정부가 최면에 빠져 몽유병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