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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는 어떻게 마쳐지게 될 것인가?
모든 인류의 초유의 관심이 쏠리는 질문이다.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AI가 그 대미를 장식할까?
매일 뉴스에서 외쳐되고, 온 몸으로 느껴며 살아가는 이상기온이 이 온 지구를 휩쓸어 온갖 재난과 어려움들로 마무리될까?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패권국가들, 더많은 자원, 더 큰 땅을 얻기 위한 탐욕의 신의 꼭두각시가 처럼 보이는 이들의 불장난, 전쟁, 핵무기등으로 지구의 역사가 마무리될까?
모든 산업과 문명이 연결된 인터넷의 대란으로, 어느날 아침 갑자기 모든 전상망들이 교란을 일으킴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의 소용돌이로 지구가 삼켜질까?
수많은 가능성들, 식량부족, 경제위기, 인간의 도덕적 타락, 전쟁과 기근, 온 세계를 뒤흔드는 펜테믹....
그러나 성경은 그 어떤 것도 아닌 가장 본질적인 것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게 하고 있다. 무엇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고, 각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차대한 주제가 될까?
세상의 모든 역사는 궁극적으로 최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달려있고, 그 하나님은 당신의 놀라운 비밀들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다. 성경은 놀라운 역사의 주제와 흐름을, 그리고 언제나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다.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하게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42] 그가 여러 나라들에 그의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세울 것이나 그의 종말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단 11:41-45)
그 성경은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간단한 이야기로 요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불신지옥 예수천당이란 구호는 오늘날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혼의 울림이 되지 못하고, 듣기 싫은 꽹과리 같은 소리가 되고 말았다. 사랑의 외침이 아니라 종교적 광신처럼 들리는 고함소리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오히려 세상이 아니라 기별을 외치는 교회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바래새인들처럼 성경절을 잘 아는 이들도, 그들처럼 유창하게 폼잡는 이들도, 경건해 보이는 이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외쳐되어도 예수님의 한 마디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도대체 예수님의 권위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바리새인들은 타인을 향하여는 수없이 가르쳤으나 자신을 가르치지는 못하였다.
그것이 종교지도자들의 모순이다. 외침과 삶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삶은 달랐다. 가르치시기 전에 주님은 먼저 그렇게 사셨다.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 1:1-2)
3년반의 외침을 위해 30년을 그렇게 사셨다. 말씀이 삶을 통해 녹아져 나온 것이다.
결국 수많은 주장이나 고백이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진정한 신앙, 진정한 삶의 근본은 열매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겉치장으로 하나님의 눈을 가릴 수 없다.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9-20)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열매가 아니다. 참된 열매는 주님과 연결됨의 결과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다. 열매든 단회적 고백이나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연결과 굴복이 전재되어 우리를 살게하는 수많은 열매들이 맺혀지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런고로, 개인의 운명과 나라의 최종적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이것이다. “누가 그대의 마음의 주인인가?”, “누가 그대를 다스리고 계신가?”,“그대의 시간과 애정, 관심을 송두리채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누구인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선지자들의 외침속에 결국 본질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언약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각 인물들의 외친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1. 아브라함: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라함은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나아간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동행과 전적인 신뢰였습니다.
> (창세기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의미: 여기서 '완전함(타밈)'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향하는 '언약적 신실함'을 뜻합니다.
2. 모세: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모세는 시내산 언약의 중보자로서, 이스라엘이 이방의 우상 숭배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남기를 간절히 외쳤습니다.
> (신명기 6:45, 쉐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의미: 우상은 단순히 조각상이 아니라 마음의 분산입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 한 분(The One)'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언약의 핵심임을 가르쳤습니다.
3. 여호와수아: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정착의 달콤함에 빠져 가나안의 풍요 신(바알, 아세라)을 따르려 할 때, 여호수아는 단호한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 (여호수아 24:1415)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의미: 신앙은 '중간 지대'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는 과거의 우상(애굽의 신)과 현재의 유혹(가나안의 신)을 모두 버리고 오직 여호와께로만 방향을 정하라고 외쳤습니다.
4. 선지자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선지자들의 외침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 간음(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심판의 경고와 함께 언제나 '회귀(Teshuva)'를 선포했습니다.
> (호세아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예레미야 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의미: 선지자들은 종교적인 형식보다 '마음의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인애, 헤세드)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모든 우상의 실체는 자기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사용하고, 도구화하려는 이가 적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탐하고, 자신을 보좌에 앉아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4)
누가 하나님의 참 백성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뜻을 온전히 주님께 굴복시켜 주님이 명하시면 아멘 하면서 따라가는 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녹여 나는 백성, 그들의 가슴에 하나님의 법, 한나님의 품성이 새겨진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입니다. 숫자에 상관이 없습니다. 순종에 상관이 있습니다. 전적인 신뢰에 상관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을 높임에 상관이 있습니다.
결국 선악의 대쟁투의 쟁점은 하나님의 계명이냐, 사람의 전통,가르침이냐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뜻, 계명이 들려질 때 온 인류는 두가지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냐? 인간의 주장, 사상, 전통, 언변, 교리이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을 대적하여 일어서는 것이 바벨탑이요, 바벨론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노아홍수후에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무지개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 인간의 연합과 조직체 “성읍”을 만들고,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려는 인간의 욕망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마지막 시대의 최고의 패권은 계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입니다. 계시록 13장 1절부터 6절까지의 짐승을 분명 다니엘서 7장의 짐승의 복합체입니다.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1-5)
그 짐승은 사자, 곰, 표범, 열뿔짐승의 복합체입니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자기 뜻대로 변경시키고, 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소의 의미를 깨트린 교황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짐승은 미국입니다.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3:11-14)
어린양같이 나타난 땅에서 올라운 짐승, 신대륙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나선 미국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이런 좋은 글귀가 있습니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들을 내게 보내라.
자유롭게 숨 쉬기를 갈망하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리들을,
너의 풍요로운 해안가에서 거절당한 가련한 이들을.
집 없고 폭풍에 시달린 이들을 내게 보내라.
내가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등불을 높이 들리라!"
그러나 그 아름다운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미국이 용처럼 말하며, 세상의 폭군, 깡패가 되어진 모습을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그 미국과 교황권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시키고, 대적할 때
북방왕 교황권을 놀라게 할 동북에서 온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를 번민하게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죽이며 멸망시키고자 할 것이요”(단 11:44)
교황권을 놀라게 할 “동북에서부터 오게 될 소식”(tidings from the east and the north shall alarm him)은 구약과 신약의 배경에서 윤곽이 드러난다. 동쪽은 해돋는 곳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는 곳으로 쓰여지고 있으며(계 7:2, 사 41:25), 북쪽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신 곳, 즉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시 48:2, 사 14:13, 사 41:25). “소문”(所聞)으로 번역된 말은 “소식”, “기별”(tidings)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겔 43:2)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1-2)
계 18:1-4는 계 14:6-12의 세 천사의 기별을 확대한 것으로 세상역사의 최후에 전해질 “영원한 복음”(the everlasting gospel)이다. 이 기별의 내용을 요약해 봅니다.
◦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도래(到來)한 시점에서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초청(계 14:7)
◦ 각시대를 통하여 거짓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도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 바벨론에 대한 엄중한 경고(계 14:8)
◦ 온 세상 사람을 두 무리로 나누게 되는 심판의 척도로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을 받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초청과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될 짐승의 표를 받으므로 사단의 소유가 되지 말라는 경고(계 14:9-11)
이 소식이 온 세상을 진동시키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백성들을 모으게 될 것입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 3:11-12)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