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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시편 1편에서 시편기자는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 19편에서도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롭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베냐민 지파 출신이고 그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교육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는 특심한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겼을 뿐 아니라 율법에 비추어보더라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스스로 자랑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약의 증거와는 정반대로 로마서 8장에서 율법을 가리켜 말하기를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나 구약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일진대 무엇이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증거를 하게 하였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하시고 이 세상을 꾸려나가시는 구약과 신약에서의 경륜의 차이 때문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중보자를 통해서 구약과 신약에서의 경륜을 집행하셨는데 구약백성인 이스라엘의 중보자인 모세와 신약교회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의 차이로 인하여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각각 다르게 집행하신 경륜의 차이로 인하여 이러한 상반되는 증거가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2절에 구약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은 그들의 중보자인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속하여 여호와의 백성으로 구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살았던 구약시대는 죄가 세상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시대이었습니다. 죄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죄 아래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자신의 궁궐(성전)을 짓게 하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사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실 때에는 휘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셨습니다. 이는 마치 부부싸움을 한 부부가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기가 불편하여 한 집에 살지만 각방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하나님이 임재 해 계셨던 성소의 구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의 시은좌에 하나님의 보좌를 펼치시고 좌정하시되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이스라엘을 대면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통하여 제물의 피를 뿌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였고 뿌려진 짐승의 피에 의지하여 그들이 나아갈 수 있었던 위치는 휘장 밖이었습니다. 아무리 물로 씻고 짐승의 피를 뿌릴지라도 이스라엘이 머무른 곳은 휘장 밖이었습니다.
그들은 휘장 안에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아담으로 인하여 들어온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백성들이 아무리 모세율법을 순도 100%로 지킨다 할지라도 심지어 율법의 정신까지 지킨다 할지라도 죄 아래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육체의 예법인 율법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제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제거할 수가 없어서 그들은 여전히 휘장 밖에만 머물 수 있을 뿐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민족의 머리이며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휘장 밖에 두셨다면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이방 나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의 죄는 하나님과 온 세상 사이에 간격이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이러한 죄악 된 휘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에 가리워졌던 휘장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사라졌으며 그의 속죄로 온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51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가리워졌던 죄의 장애물이 제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백성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대면합니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5절에 유대인인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집행하셨던 이러한 두 경륜을 친히 경험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는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특심한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었습니다.
빌립보서 3:5~6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성전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땅에서 함께 사는 구원을 누리는 백성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언약의 법인 율법이 약속하고 있는 복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7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그는 율법을 따라 점과 흠이 없이 하나님을 섬겨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한 집에서 살았고(빌립보서 3:6절) 하나님께서 율법에 약속한 복들을 사도 바울에게 주셔서 누렸으며(빌립보서 3:7절) 그렇게 그는 율법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렇게 율법에 부착하여 살고 있던 사도 바울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이단들에 대한 소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소문이었습니다.
그가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고 유명한 가말리엘의 율법의 가르침에 의거하면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났다는 주 예수님과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은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접한 점쟁이처럼 거룩한 가나안땅에서 죽여서 없애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지인 가나안땅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잡아가두기 위하여 제사장들이 발부한 체포 영장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출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던 그가 해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에게 비추인 영광의 빛을 통해 주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에는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을 뿐 아니라 히브리사람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으로서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의 거룩함을 닮고자 하여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았던 경건한 바리새파에 속한 참으로 경건한 구약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양심으로 과거의 자신을 생각해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자신은 율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율법의 의로도 흠이 없었던 자신이었습니다.
신명기 6:25절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옛 시대에 모세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셨던 율법과 제도를 따라 살았던 예전의 사울이었던 자신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신의 조상과 자신에게 주셨던 율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율법은 죄 아래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져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었던 통치의 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순도 100%로 율법의 정신까지 순종한다 할지라도 율법으로는 휘장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없는 법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휘장 밖에 까지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가 지배하고 있는 옛 경륜 아래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성전에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는 한시적인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을 깨닫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휘장 밖에까지만 나아갈 수 있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전히 죄 아래에 거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에 살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함께할 수 있게 하는 법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율법을 100%다 준수한다 할지라도 모세율법과 제도로는 휘장을 제거할 수가 없어서 이스라엘이 이른 곳은 휘장 밖이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어진 종의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가리켜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율법과 제도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참 생명과 온전한 빛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모세율법 즉 구약성경(창세기-말라기)을 어린아이의 법이며 어리석은 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선한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의 시대에 주어진 말씀이었기 때문에 율법은 죄의 흑암 아래에 살고 있는 온 세상에 당시를 비추인 유일한 빛이었고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나라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에게 나아와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길 외에 다른 길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들은 여호와의 율법은 영혼을 소성케 하며 명철의 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율법을 그들에게 주심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구약 당시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세상에 증거 하는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하여 신약교회에게 주신 하늘의 빛에 비추어볼 때는 율법을 통하여 비추인 구약에서의 빛은 어둠이었고 종의 윤리를 나타내는 어리석음의 빛이었으며 어린아이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구약성경이 신약교회의 자산으로 주어졌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아직 아담의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시대,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이에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계시던 시대에 (이방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음.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세상민족의 장자이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인 율법은 죄가 지배하는 어둠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을 소성케 하며 지혜롭게 하는 당시 세상에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참으로 복 있는 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계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세율법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인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휘장으로 가리시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머리이며 대표인 제사장이 일곱 촛대에서 비추는 빛 아래에서 하나님을 수종하듯이 이스라엘에게 비추는 희미한 일곱 등대 빛과 같은 계시이었고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모세율법과 비교할 수 없는 참 빛이 주어졌습니다. 이 빛은 성전의 등대에서 비추는 빛 정도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하신 아들이 직접 자신이 아는 아버지를 증거 하는 빛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얼굴을 통하여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참 생명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신 빛을 통하여 구약성경을(모세율법과 선지자들의 글)바라보면 구약에서 비추인 빛은 어두움이며 어리석은 빛일 뿐 아니라 초등학문과 같고 세상의 가르침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성경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빚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육체만을 상관하는 육체의 예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3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히브리서 9:10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이처럼 율법은 휘장 밖에(죄 아래에) 위치하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본질상 세상학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율법(구약성경)을 순도100% 효과 있게 순종한다 할지라도 가령 율법의 정신까지 온전히 지켜 행한다 할지라도(율법은 육체의 예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신적인 면까지 요구하시지 않지만) 율법을 지킨 자들이 이르는 곳은 하나님 품안이 아니라 여전히 휘장 밖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시대의 사람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두 하나님의 휘장 밖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이나 50보 100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 아래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계명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제사장을 통하여 이른 자리는 휘장 밖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보면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믿는 자들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대전제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가 구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지켜 행해야하는 말씀이라고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화답합니다. 왜 그러는 것입니까? 그것은 옛 경륜에서 집행되었던 하나님의 모든 경륜들도 신약시대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집행하신 경륜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시대에서 행하셨던 하나님의 경륜의 차이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평면에 펼쳐 놓고서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동일하다면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던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증거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닙니까? 사도 바울도 그렇게 생명을 걸고 복음을 개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구약성경(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설교하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육체의 예법인 율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육체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의 예법인 율법을 설교하고 가르침으로 인하여 교회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욕심을 좇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목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성도들은 더 많은 것들로 치부하고자 합니다. 목회자들은 대형교회를 사모하고 교회를 자녀들에게 세습시키고자 하며 세상에서는 머리가 되고 문벌 좋은 가문을 일구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교회에서는 십일조와 재정문제 그리고 이성문제 등으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세교회(유대교회)로 변질시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발 사도 바울의 경고에 귀 기울이십시오.
주 예수님을 믿어서 자유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가 어찌하여 스스로 종의 올무를 매고자 하는 것입니까? 주 예수님을 믿어서 아들의 얼굴에서 비추인 참 빛에 거하는 자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사환(종)이었던 모세의 얼굴에서 비추인 빛에 거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가 어찌하여 휘장 밖까지만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휘장으로 자신을 숨기시고 말씀하셨던 그 종의 도리를 따라 자신을 옭아매려고 하는 것입니까?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대 장군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청종해야 하는 자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모세가 우리의 머리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입니까? 우리가 모세의 말(구약성경)에 순종하여 모세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 예수님께 속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이제는 제발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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