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78]<슬픈 제주>를 함께 노래합시다!
지난 주 <제주 4․3평화공원>을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1만4천여명을 모신 위패봉안실에서 참배를 하고, 평화기념관의 전시실도 둘러보았습니다. 평화재단에서 만든 <한눈에 보는 4.3> 핸드북을 1주일이 지나서야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놀랐습니다. 새삼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호들갑이 아닙니다. 1980년초 숨어서 읽은 황석영의 『시대의 죽음을 넘어 어둠을 넘어』라는 복사본 책을 통해 광주항쟁의 실체와 진실을 처음 알았을 때처럼 전율戰慄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의 현대사는 이렇듯 피로 물들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르게 만드는 것일까요?
물론 <제주 4.3>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십수 년전에 읽었으며,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의 줄거리도 대충 알고 있었고, 지난해 읽었던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통해 인지認知한 우리 현대사의 한국전쟁 다음 가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지요. 7년 7개월(1947-1954)에 걸친, 제주도민의 탄압에 대항한 엄청난 항쟁, 섬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인구(2만5천만-3만명 추정)가 초토화작전에 이름없이 숨졌다지요. 제주항쟁과 여순민중항쟁이 어떤 맥락의 사건인지, 도올의 말씀처럼 몰라도 “우린 너무 몰랐던” 사건이었지요. 시발은 이랬다지요.
1947년 3월 1일 도민 3만여명이 참가한 3.1절 기념대회에서 경찰 발포로 6명이 사망한 여파로 3.10일 총파업에 돌입했답니다. 166개 기관에서 4만여명이 참여했는데, 파업주모자 검거명령이 내리면서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었답니다. 1948년 남한 단독선거에 돌입했으나 제주에서만 재선거까지 실패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사건이 확대됩니다.
그 와중에 희생된 양민들은 그야말로 개죽음이었지요. 그이후 그들의 죽음은 말 그대로 “쉬쉬쉬”가 되었습니다.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 몇 십년 동안 역사에 묻혔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제주도의회에서 처음으로 4.3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94년부터 유족회 주최로 합동위령제가 봉행되었답니다. 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 역사의 무대에 나오게 됩니다. 2000년 1월 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고,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지요. 그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50년 동안 고통의 굴레에서 살아온 제주도민과 4.3유족들에게 국가권력의 잘못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공식사과했습니다. 2005년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고, 2014년 희생자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답니다.
사건의 배경에는 서북청년단을 위시한 대한민국 경찰과 막강한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하여 일말一抹이 아닌 전체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광주항쟁 때에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미국의 찰스 랭글 전 연방하원의원(23차례 46년간 재임)이 2019년 유엔본부에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제주4.3같은 과거사문제도 진솔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지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의 전시실은 차마 눈 뜨고 못볼 정도로 ‘참상 그 자체’였습니다. 국가폭력은 한국전쟁을 뺨치게 하더군요. 지난해 읽은 도올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에 <슬픈 제주>라는 글이 실렸는데, 제주KBS에서 “제주4.3을 말하다”라는 강연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합니다. 4.3사건을 알든 알지 못하든 “이것만큼은 꼭 한번 들어보고 읽어보시라”는 의미로 자판을 두드립니다. 유튜브에서 ‘김용옥 슬픈 제주’를 찍으니 육성이 녹음돼 있더군요.
<나는 슬픕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슬픕니다. 여러분도 슬픕니다. 무언가 속시원히 다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우리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가슴을 짓누릅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지금 여기 누군가 일어서서 제주는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외칩니다. 그대는 위선자! 그대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말쟁이, 연기緣起의 굴레를 망각한 허구!
제주는 슬픕니다. 진실도 화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둘러대는 말일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슬픔 뿐입니다.
슬픔에는 이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념적 상상이나 폄하나 언어의 꾸밈이나 위로도 모두 제주를 자기 구미대로 말아먹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그냥 슬픕니다. 영원히 슬픕니다.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은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아라야식의 굴레 속에라도 끝없이 자기생명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제주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슬픈 제주를 슬프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슬픔에 동참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슬픔을 슬프게 느낄 때만이 그 슬픔은 정의로운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슬픈 제주는 알고보면 우리 민족 전체의 모습입니다. 슬픈 제주는 외딴 섬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대륙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조선민족의 외세에 대한 항거, 관념적 폭력에 대한 저항, 분열획책에 대한 주체적 항변, 정치적․사회적 압제에 분연히 일어서는 민중의 항쟁, 이 모든 것이 제주라는 고립된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구현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순간, 남북이 분열되고, 미국-러시아, 미국-중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의 야욕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 순간, 제주의 슬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슬픈 아일랜드에서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세계문학의 거성들이 쏟아졌듯이, 나는 앞으로 슬픈 제주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모든 생의 약동을 하나로 통합하여 분출하는 세계문명의 거대한 축이 탄생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주의 사람들이여! 우리 같이 슬픔을 말합시다! 슬픔을 노래합시다! 우리의 슬픔을 조작하는 모든 관념으로부터 해탈합시다!
나는 말합니다. 종교도, 정치도, 국가도, 어떠한 위대한 형이상학도 한라산 기슭 해안가 현무암에 덮인 이끼 한 오라기일지라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당오백 제주도 해녀의 건강한 생명력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한 편의 문학작품같지만, 온통 ‘슬프다’는 말밖에 없지요. 제주가 얼마나 슬펐으면 ‘우주보宇宙寶’라고 호언하는 동양철학자가 이렇게 글을 썼을까요? 워낙 감동을 잘하지만, 맹세코 이제껏 읽은 그 어떤 제주와 관련한 글중에 이만한 절창絶唱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의 수식어는 딱 '슬프다'는 형용사 하나면 족합니다. 그의 말울 흉내내 봅니다. "나는 슬픕니다. 여러분도 슬플 것입니다. 왜냐면 제주는 본래부터 슬픔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언제부터 한국현대사에 이렇게까지 ‘정통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같이 빠져들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한숨을 짓게 됩니다. 그리곤 마침내 ‘희망’을 발견하여 안도하게 됩니다. 그는 “앞으로 슬픈 제주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모든 생의 약동을 하나로 통합하여 분출하는 세계문명의 거대한 축이 탄생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슬픈 제주에서 세계문명의 거대한 축이 탄생될 거라고 합니다. 그의 혜안과 지식에 무한히 감복하고 감동합니다. 무불통지無不通知, 천의무봉天衣無縫, 좌충우돌, '천방지축', 테두리가 없는,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제주4.3에 대해 알고 더 깊이 알고 싶으신 분은 『우린 너무 몰랐다』는 책을 펴들지 않겠습니까? 숙연해집니다. 무엇이 역사歷史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장담합니다.
첫댓글 내 이름은 '강거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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