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에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잘못된 일도 숱하게 많은 법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원래 성숙한 개체가 아니고 완벽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과오를 저지르고 해결하고 풀어가면서 인생을 살다가 떠나는 족속이기도 합니다. 세상사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잘못된 점을 고치고 더 낳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덕목중의 덕목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신 또는 주변인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해야만 발전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행동하면서 학습효과에 의해 움직일 뿐이지 반성한다거나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위해 다짐을 하는 행위는 행하지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어버이날을 맞은 참사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참사 후 두번째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유가족들은 정말 힘들게 특별법이 통과한 만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져서 아이들의 억울함이 풀어지기를 기원한다면서 끝까지 힘쓸 것을 다짐했습니다.
진상규명. 참으로 많이도 들어왔던 단어입니다. 아마 뉴스에 등장하는 단어가운데 가장 빈도수가 많은 것이 아마도 진상규명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만큼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대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이어서 그런 참극이 벌어졌는가를 규명하지 않으면 무슨 사과가 진성성이 있으며 무슨 뉘우침이 진실되겠습니까. 원인이 무엇인지 진상이 어떤 것인지도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채 무슨 사과며 무슨 뉘우침이 존재할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제가 태어나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 사고 가운데 참사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 가운데 제대로 진상규명이 이뤄진 것은 아마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건 사고가 벌어졌을 때는 온나라가 흔들흔들하게 요란스럽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유야무야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아주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졌습니까. 왜 그런 참극이 발생했는지 규명됐습니까. 발포자들은 사죄도 반성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과 1987년 7월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의 진상은 어떻습니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또 어떠하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는 도대체 어떤 진상규명 과정을 거쳤습니까.
무언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전국민을 슬픔에 빠뜨렸던 대 참사는 그냥 그렇게 대충 뭉개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당연히 존재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무엇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모르지만 그 당연한 것을 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처리해 버리는 작태가 한국 현대사에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채상병 사망 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2023년 7월 19일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 아닙니까. 이 사건에 대해 해병대는 수중 수색이 어렵다는 현장 지휘관들의 다급한 경고에도 그냥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린 책임자를 알아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체 수사를 1주일만에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상부의 수사 외압논란과 사건 규명을 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야당들이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대통령은 거부권행사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왜 젊은 해병대원이 숨져야만 했는지, 다급한 현장에서 현장 지휘관들의 지시가 그렇게 묵살되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수사의 주체가 왜 바뀌게 된 것인지, 그런 과정에서 누구의 외압이 있었는지가 풀어야 할 진상규명의 핵심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이만큼 쉬운 수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해당인사들은 이래저래 외국 대사로 나가고 총선에 출마하는 아주 요상한 일이 한국에서 발생합니다. 그 쉬운 수사에 기본만 아는 수사관이 며칠동안이면 모두 풀어낼 그 단순한 일을 온나라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만드는 현실이 바로 한국의 현주소입니다. 채상병 사망사건이 중차대한 것은 북한과 대치상태에 있으며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군대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가지는 의미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은 더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한국은 예전부터 진상규명에 아주 취약한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때 원나라에 부역했던 친원파들의 죄값을 묻는데 무관심했습니다. 그리고 친일파들에 대한 단죄에도 역시 실패했습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만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를 동원해 좌절시킨 것도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전쟁때 자신은 부산으로 도망가면서 서울시민들에게 서울사수를 부르짖었던 대통령이나 한강인도교를 폭파시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지금도 제 2차대전때 독일에게 부역했거나 조국을 배반한 인물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진행중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지 79년이 되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전세계속으로 숨어들어간 당시 조국을 배반한 부역자들에 대한 집요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서입니다. 과연 그때 어떤 상황이, 무슨 일들이 독일군의 부역자로 행동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을 지금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나 독일이 할 일이 없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 안되겠다는 국민적 합의 때문입니다. 후세 사람들을 향한 선조로서 부끄럽지만 다시는 그런 창피한 짓이 재발되지 않도록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참사의 원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묵직하게 그 언젠가 세상밖으로 나가 진실이 드러날때까지 웅크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참사의 원인은 진상규명이 이뤄지는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흐지부지 그리고 적당한 수사라는 형식적 행위뒤에 숨어 세월이 흐르기를 바라는 세력들을 비웃고 있을 것입니다. 진상규명이란 단어가 제대로 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나라가 제대로 발전을 이루고 성장하는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일당 독재국가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진상규명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표현은 이제 진부한 것으로 받아드려지고 있습니다. 너무도 절실한 표현인데 말입니다.
2024년 5월 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