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김 난 석
설국이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니가타 현 설원(雪原)이 떠오르고
열차라면 낭만을 실어 나르는 태백열차가 떠오른다.
이렇게만 떠오르면 얼마나 좋으랴.
허나, 하얀 눈이 내려 쌓인 천지를 보면
냉랭하기만 하니, 늦게 찾아온 소한 추위 때문일까?
그런데 영화 ‘설국열차’는 으스스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나 ‘살인의 추억’ 이 그러했듯
현실의 아픈 구석을 파헤치고 고발하되
표현양식이 격렬해서다.
'설국'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 초래한 빙하시대를 말하고
열차는 누리는 자와 누리지 못하는 자가
칸칸으로 구분된 삶의 광장인데
무한궤도를 이탈하면 극한으로 떨어진다는 상황 설정이다.
누리는 자는 현실을 고수하려들고
누리지 못하는 자는 누리는 자의 지위를 탈취하려 드는데
종결은 열차를 폭파해 설원에 나뒹굴게 하고 만다.
그중 살아남은 두 사람 중 하나가 요나(17살)다.
폭파된 열차에서 뛰쳐나와 첫눈에 만나는 건
쓸쓸한 설원 위에 신기한 듯 인간을 바라보는
한 마리 흰곰뿐이다.
참 허탈하다.
흰곰이 동토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얼음을 깨고
꼬리를 물속에 집어넣어 봤더란다.
조금 있으려니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겠다,
꼬리를 들어 올리려니 묵직한 느낌이 드는지라
"올커니 큰 게 물렸구나! "
하고, 냅다 꼬리를 들어 올리노라니
꼬리가 잘리고 말아
그래서 곰의 꼬리가 짧아졌다던가?
이건 우화 한 토막일 뿐이다.ㅎ
붉은곰이란 놈은 가을에 먹이를 한참 먹고 살이 쪄야
동면에 들어가게 되는데
몸이 묵직하게 느껴지면 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져 보고
아픔이 느껴지면 지방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더 먹어댄단다.
그러다가 자꾸 떨어져보노라면
배 터져 죽는 놈도 생긴다던데
이렇게 미련을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니 곰이라 할까?
물론 우화일 뿐이다.ㅎ
불가(佛家)의 오래된 격론 중 하나는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란다.
급진적 혁명 말고 점진적 사회개혁은 요원한 것인가~
아하스페르츠는 어느 광야를 헤매며 소리치는 것인가~
산천은 얼어붙고 아무 말이 없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열차를 다시 달리게 해야 한다.
*포스팅은 설국열차가 아닌 평안한 설국의 은유다
2025. 1. 11.
첫댓글
설국열차를 무대로
착잡하고 긴박해진 양분의 사회를 그린
영화에 대한 감상이
긴장되고 불협화음으로 끝없이 내딪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설원으로 느끼는 우리의 순수 감정이
포스팅된 설원의 곰의 모습처럼
어미와 새끼의 평온한 모습으로
공포스럽거나 외로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급진적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서서히 세태의 변화에 적응하는
평화스런 나날이기를 바랍니다.
석촌님께서도 萬事如意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강역엔 차장도 여객전무도 기관사도 없는 열차가 달리고있습니다.
어서 안정된 진용이 갖추어져야 하는데요.
나도 몇 년전 걸국열차를 보았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화였어요.
북극 아기곰 너무 귀여워요.
그거야 저마다 안목이 다른거니까요.
저 사진만큼의 세상 만들기가 그렇게도 힘이드나봅니다.
그저 바라는 것은 사랑과 평화 인데요.
곰의 지능이 높다는데
보이는 모습대로 미련하게 묘사해 우화에 등장시키니
곰이 많이 억울해할 것 같습니다.
주신 말씀 감사히 읽었습니다.
결국 사랑과 평화가 알파요 오메가지요.
저는 돈오점수가 좋은데 성철스님은 돈오돈수라 하셨다네요. ㅎ
석촌님 덕분에 사람의 아들에서 만났던 아하스페르츠를 오랜만에 만나봅니다.
돈점논쟁은 불가에서 오래 된 이야기인데
우리네야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요.
요즘 시국이 설국인 것 같아서
구원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누구에게 호소해볼 것인지...
그런 생각을 덧붙여봤다네요.
설국열차 영화를 보았지만 기억이 잘 안나네요.
기차가 터널로 막 들어가던 장면만 생각이 나는듯 해요.
엄마곰과 아기곰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
석촌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기도 하니까요..
올해도 평안하게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