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전쯤, 갑작스럽게 중한 질병(대장암/장폐색증)으로 큰 수술을 받고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후, 정상적인 활동을 해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런 연유로 몇 차례 국내의 유명한 곳들을 찾아 가족여행을 즐겼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지난번 ‘가족모임’때 경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자 각자 매월 얼마씩 저축해서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동안 거르지 않고 ‘가족모임통장’에 비축(備畜)을 해왔는데 벚꽃이 가장 ‘피크’라고 할 수 있는 4월 초,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부담 없이 일본 교토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를 일본으로 선택한 이유는 딸이 20대 시절에 유학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일본어를 능숙하게 함으로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아 결정을 쉽게 할 수가 있었는데 일정에 관한 모든 계획을 딸과 아들에게 맡겼고 우리 내외는 그냥 따라다니면 될 정도로 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나서지 않았나 싶다.
금년이 마침 아내인 이 권사의 칠순을 맞는 해라 기념하는 의미도 있고 가족여행을 해외로 다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라 우리 자녀들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라 여겼던지 기대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떠나는 날 아침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보니 벌써 딸과 아들이 먼저 와 있었고 해외여행에 경험이 많은 자녀들이라 어렵지 않게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여유가 있다 싶어 공항 내 식당을 찾았는데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여행 일정에 관한 담소를 나누는 순간마저도 마냥 행복했다.
과연 세계적 수준이라고 할 만큼 공항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대한민국을 찾는 지구촌 세계인들이 이처럼 발전된 모습을 입국하는 첫 관문(關門)을 통해 생생하게 목도(目睹)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하고 완벽하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출발시간이 되어 탑승구로 옮겨갔는데 이륙 전, 대기 시간이 길었고 우리 가족을 태운 비행기는 약 1시간 40분을 날아서 도착지인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간간이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어 신경이 쓰였으나 여행하는 동안 제발 맑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열차 편을 이용해 ‘오사카’역을 지나 1시간 거리의 숙소가 있는 교토역을 향해 단숨에 달려갔다. 가족 4명이 머무를 수 있는 넓은 방을 예약해서인지 며칠간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없겠다 싶었고 가져온 짐을 풀고 그날은 호텔에서 편하게 쉬는 것으로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저녁은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간단한 것으로 알아보라고 했는데 일본 라면으로 의견이 일치해 호기심이 발생했고 숙소 앞 건너편에 있는 ‘라멘’ 가게를 찾아 메뉴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그때 비로소 딸의 일본어 실력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다.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소통이 잘되고 아들도 쉬운 말은 알아듣고 의사를 전달하는 것 같아 내심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라멘’ 맛은 별로인 것 같았고 다시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의 입맛엔 맞지 않아 솔직히 거부감마저 들었으나 어쩔 수 없이 저녁은 그렇게 해결해야만 했다.
둘째 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택시를 이용해 첫 번째 찾아간 곳이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 ‘淸水寺’란 곳이었는데 외곽 산자락에 규모가 대단할 정도로 지어진 큰 사찰로써 아침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운집해 길목을 가득 메웠고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에 신사(神寺)가 많은 것을 실제로 목격하게 되는데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직도 한 자리 숫자일 만큼 온통 우상의 나라인 것처럼 보였으며 ‘淸水寺’로 올라가는 골목은 아마도 관광특구로 특화된 거리라서인지 우리나라 경주의 ‘경리단길’을 연상할 만큼이나 특징이 있고 이색적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라서 특화된 거리를 조성한 것 같고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듯한 건물과 상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온갖 기념품과 상품들을 진열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전통 의상 ‘기모노’를 차려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여러 상점을 번갈아 드나들며 ‘아이쇼핑’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예쁜 양산 하나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사고 싶은 물건들이 많았으나 절제하고 쉬고 싶은 생각에 가까운 곳에 있는 그럴듯한 찻집을 찾아 들어갔다. 실내보다 야외가 좋을 것 같아서 정원에 마련된 원탁으로 옮겨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한동안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점심은 맛난 것을 먹었으면 싶어 자녀들에게 주변에 맛집을 알아보라 했더니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찾아냈고 ‘장어구이’ 전문 맛집으로 달려가 맛있게 식사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 동경하는 윤동주 시인이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일정에 없는 코스였지만 택시를 불러 ‘도시샤’ 대학교로 급히 옮겨갔는데 마침 대학 축제가 성대히 열리고 있었고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 전체가 온통 젊은 학생들의 축제 열기로 가득했다.
이곳저곳 캠퍼스를 오가며 탐색하다 오래된 건물 앞에 멈추어 섰는데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를 발견하고는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참담(慘澹)한 실상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잠시 숙연한 마음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무척이나 시를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이 취미라 나라를 잃고 이국땅에 와서 울분을 토하면서 굴절(屈折)된 상황을 글로 표현하며 저항하고자 했던 당시 시인이 가졌던 내면의 아픔을 그분의 흔적 앞에 서고 보니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에는 ‘향수’라는 시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시비(詩碑)도 나란히 있었는데 그분도 아마 유학생으로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것으로 추정을 해본다.
그곳을 나와 길을 건너니 곧바로 도쿄 공원이 펼쳐지고 있었고 대도시 한가운데 잘 가꾸어진 대형 공원을 보면서 새삼 놀랐고 이제껏 그렇게 큰 공원은 처음 본 듯싶다. 규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광활(廣闊)한 도쿄 공원을 온 가족이 한가롭게 거닐며 충분히 산책을 즐긴 후에 그곳을 나와 택시로 벚꽃 명소로 유명하다는 기온 거리를 서둘러 찾아갔다.
주변에 상가들이 많았는데 양쪽 도로 사이로 얕은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은 개천이 벚꽃과 어우러져서 마치 ‘벚꽃축제’의 현장 같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앞다투어 사진에 담으려는 모습들과 활짝 핀 벚꽃을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한참 길을 걷다 보니 대형 건물들이 운집(雲集)해 있는 쇼핑타운이 나타났는데 다리도 아프고 쉬기도 할 겸, 분위기 있는 휴게실을 찾아 들어갔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도심 한가운데서 휴식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온 가족이 함께하는 얼마만의 여유인가 싶었고 그 시간이 행복하고 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하는 더없는 기회가 되기에 충분했다. 교토 시내 중심가라서 그런지 모든 게 고급스럽고 화려할 뿐 아니라 세계인이 찾는 ‘니시키’ 시장을 관람하면서 느낀 것은 구획정리가 완벽해 첨단시설과 끝도 없이 널려있는 격조 있는 상점과 상품들이 서로 조화를 이룬 광경들을 보면서 선진국의 면모를 한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불편했던 점이 있었다면 일본은 초밥을 파는 곳을 빼고는 음식점들 대부분이 저녁 식사 시간이 8시 3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줄을 서야 했는데 우리나라 생각만 하고 그날따라 8시쯤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시장 골목을 찾아 헤매다 마지막 손님으로 겨우 배고픔을 어렵사리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면서 교통수단은 주로 택시를 이용했고 ‘시조 오미야’역에서 ‘란덴’ 열차(경전철)를 타고 ‘아라시야마’를 갔던 것이 색다른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그곳도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길을 걷기가 불편할 만큼 관광을 온 외국인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산자락을 마주하고 시원한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가츠라’강을 연결한 긴 다리 ‘도게츠’교(橋)위에도 오가는 인파들로 가득 넘쳐났다.
‘가츠라’강 주변 전체에 드넓은 공간이 많아 쉴만한 휴식처로 예쁘게 단장해 놓았는데 오며 가며 간식을 즐길 수 있는 먹거리도 많았고 잘 가꾸어 놓은 벚꽃 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마치 벚꽃 마을처럼 여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계절, 새봄이 온통 그곳에 다 모여있는 듯 잠시 황홀경을 헤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곳도 특화된 지역이라 사방에 볼거리가 많았고 발 길이 닫는 곳마다 세계 각처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속에 토로코 관광열차가 운행한다고 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높이 치솟은 푸른 대나무 숲길로 접어들었고 작은 산 전체가 거대한 대나무 숲으로 조성되어 있어 놀랐으며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푸르름이 넘쳐나는 대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재미도 괜찮았고 한적한 숲속에 열차역이 있다는 것도 생경(生硬)했으며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 ‘아라시야마’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행이 주는 묘미를 한껏 만끽할 수가 있어 행복했다.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관광열차에 탑승한 후, 통유리를 통해 차창으로 비치는 좌우 주위 절경을 한 눈으로 관람하게 되었는데 만개한 벚꽃과 산과 강물이 어우러져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비경(秘境)을 관람하면서 다들 환호성을 질렀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꺼내서 영상에 담느라 모두가 정신들이 없었다.
종착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인데 채 30분이 안 된다는 것이 강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교토 관광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가장 환상적인 코스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그날 저녁은 ‘교토타워’ 내에 있는 ‘회전초밥’ 맛집을 찾아가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3박4일 여정(旅程)의 회포를 풀었는데 회전식이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고 우리 가족 4명이 접시가 쌓일 정도로 실컷 먹은 것 같은데 비용은 생각했던 보다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의외로 저렴한 편이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많이 걸어서인지 걸음측정기(만보기) 수치가 2만 7천 보쯤, 되는 것 같았고 딸과 아들이 곁에서 완벽한 가이드를 해주어 전혀 불편함이 없었기에 여행의 전 과정 모두를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영양제 주사를 맞아서인지 일정을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었고 꿈같은 날들이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버렸는데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잠깐 머무는 것은 좋으나 그 어디에도 내 집처럼 편한 곳은 없다는 것이 여행을 마치면서 느끼는 솔직한 결론이 아닐까? 더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짐을 정리한 후 귀국길에 올랐는데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사에 오래도록 잊지못할 의미있는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지 않겠나 싶다.
지난 3월을 일 없이 보냈다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을 터인데 다행히 실적이 괜찮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고 지나고 보니 이 모두가 주님의 지극하신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모든 형편을 허락해 주시고 가족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올려 드림이 마땅하다 하겠다.
2024년 4월 어느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