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영감을 주는 여인. 이른바 ‘뮤즈’라 불리는 그들은 수많은 음악과 회화와 문학 작품의 원천이었다. 록 뮤직도 마찬가지다. 로커들에게 로맨스의 대상인 그녀들은 명곡을 탄생시키는 창조력의 원천이며, 아마도 패티 보이드는 뮤즈의 레전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태어난 노래들로 앨범 한 장을 꾸밀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여기엔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 스토리가 숨어 있다.
1960년대 전세계적인 모델 중 한 명이었던 패티 보이드는 영국에서 가장 멋있고 스타일리시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첫 연인은 사진작가인 에릭 스웨인. 이때 다가온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전설의 밴드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었다. 일단 보이드는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 그리곤 스웨인과의 관계를 끝내고 조지 해리슨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당시 영국에서 가장 ‘핫’했던 남녀의 만남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팬들의 지나친 관심에서 멀어지기 위해 1964년 7월에 잉글랜드 남동부 전원 지역에 아늑한 집을 한 채 구입했고 1965년 크리스마스에 약혼식을 올렸으며 1966년 1월 21일에 결혼했다. 패션 아이콘과의 결혼은 더벅머리 총각이었던 조지 해리슨을 세련된 남자로 만들었고, 보이드와 해리슨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셀러브리티 커플이 되었다.
두 사람의 삶은 1966년 말 인도 여행을 통해 크게 바뀐다. 전통 음악가 라비 상커의 초청이었는데, 그들은 6주 동안 인도에 머물며 동양 문화에 심취했고, 해리슨은 시타르를 보이드는 현악기인 딜루바를 배웠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영향력은 계속되어 두 사람은 요가와 채식을 생활화했고,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면서 초월 명상을 접했으며, 비틀스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전파했다.
비틀스와 점점 밀접한 관계가 되면서, 패티 보이드는 수많은 노래에 아이디어와 영감을 제공했다. 시타르 같은 인도 악기가 사용되었고, 조지 해리슨이 쓴 가사들은 보이드에 대한 러브 송이었다. ‘I Need You’(1965) ‘If I Needed Someone’(1965) ‘Love You To’(1966) ‘Something’(1969) ‘For You Blue’(1970) 같은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벌어진다. 조지 해리슨이 인도 사상에 너무 심취해 아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데 해리슨이 입양을 반대해서 그렇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었고, 1973년 패티 보이드는 밴드 ‘페이시스’의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와 스캔들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조지 해리슨의 반복된 외도에 참지 못했던 것. 결정타는 모린 스타키 티그렛과의 관계였는데, 그녀는 비틀스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의 아내였다. 팀 동료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는 해리슨의 막장 스타일 여성 편력은 보이드를 고통스럽게 했고, 결국 1974년에 별거를 시작한 그들은 1977년에 이혼한다.
여기서 끝났다면 패티 보이드를 두고 ‘최고의 뮤즈’ 운운하는 것이 조금은 쑥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또 한 명의 위대한 뮤지션을 만난다. 바로 에릭 클랩튼. 우리에겐 아들의 비극적 죽음을 겪은 후에 만든 ‘Tears in Heaven’(1992)으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다. 그가 만든 또 하나의 명곡을 꼽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연인에게 프러포즈 송으로 불렀던 ‘Wonderful Tonight’(1977). 이 영화는 클랩튼이 보이드에게 바쳤던 노래이기도 하다.
에릭 클랩튼은 그녀를 만나기 전에 조지 해리슨을 만났고, 두 사람은 기타리스트로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정을 쌓았으며 절친이 된다. 이때 클랩튼은 친구의 아내인 패티 보이드에게 급격히 빠져들었고, 자신의 짝사랑을 달래기 위해 패티와 닮은 그녀의 여동생 폴라 보이드와 사귀기도 한다. 하지만 패티에 대한 사랑은 오히려 더 뜨거워졌고, 1970년에 나온 클랩튼의 명곡 ‘Layla’는 그 감출 수 없는 감정의 표현이었다. 이 노래는 페르시아의 작가 니자미 간자비의 작품인 ‘레일라와 마즈눈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이 작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광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결국 클랩튼은 1960년대 말 패티 보이드에게 프러포즈를 하지만, 당시 해리슨의 아내였던 보이드는 단번에 거절한다. 이후 클랩튼은 그 좌절감으로 헤로인에 빠져 3년 동안 폐인으로 지낸다.
긴 치료 끝에 회복된 1974년, 에릭 클랩튼은 다시 보이드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당시 해리슨과 별거 중이건 그녀는 결국 클랩튼의 사랑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1979년에 결혼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클랩튼은 알코올중독에 빠져 폭력을 휘둘렀고, 보이드도 점점 술을 가까이 했다. 결국 그들은 1987년에 별거에 들어가 1989년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결별의 결정적 이유는 클랩튼의 숱한 외도. 특히 이탈리아 모델인 로리 델 산토와의 관계는 보이드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는데, 두 사람 사이엔 아이가 있었던 것.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다섯 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Tears in Heaven’이 나오는 슬픈 배경이 된다.
더 놀라웠던 건 로리 델 산토는 조지 해리슨과도 잠깐 동안 사귀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에릭 클랩튼은, 그토록 헌신적인 구애를 통해 얻은 보이드에게 왜 충성하지 못하고 결혼 생활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 걸까? 이에 보이드는 이렇게 분석한다. 클랩튼은 자신을 사랑했다기보다는, 친구이자 경쟁자인 조지 해리슨의 여자를 빼앗고 싶었을 뿐이라고. 흥미로운 건,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와 에릭 클랩튼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 보이드는 자신이 찍은 해리슨과 클랩튼의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클랩튼과 헤어진 뒤 보이드는 부동산 업자인 로드 웨스턴과 긴 로맨스를 즐긴 후 2015년에 71세의 나이에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패티 보이드와 조지 해리슨
Something - George Harrison
패티 보이드와 에릭 클랩튼
Wonderful Tonight- Eric Clap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