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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대가리는 빠져!"
"!"
아한이의 모욕적인 나지막한 외침이 붕어 대가리 아니 희진 이에게 향했다. 희진이의 얼굴이 똥 싶은 표정으로 변한다고 생각이 들 찰나 먼저 나선 건 옆에 있던 미경이었다.
"어디서 행패야! 이 무식한 년아!"
그녀의 외침에 아한이의 눈에서 쏘아대는 레이저의 다음 타깃은 미경이로 낙점되었다. 슬그머니 본 아한이의 얼굴이 왜 인가 오늘 무척이나 창백하다고 느꼈지만 급박하게 전개되는 지금 상황에 그것의 대한 의문은 다음 기회로 넘겨야 했다.
"뭐!? 무식한 년?! 네...네가 지금 내 앞에서 날보고 무식하다고 한 거야?!"
"그래 이 무식한 년아!"
"!"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내가 나서서 얼른 이 상황을 수습해야 된다고 이성이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아까 전 나타난 아한이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엄청난 충격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 하고 있다. 그래 솔직히 나보다 언제나 이성적이면서 침착한 영민 이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하며 네가 이 상황 좀 어떻게 해 봐 란 얼굴을 만들고 녀석을 쳐다본 순간 하마터면 내가 먼저 영민이의 귓방망이를 후려갈길 뻔 했다. 취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상황파악이 안 되는 건 그렇다 치지만 그렇게 헤벌쭉 한 얼굴로 아한 이를 쳐다보는 건 뭐냐 이 멍청한 새끼야 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녀석은 지금 위태 하게 돌아가는 작금의 상황보다 앞의 나타난 아한이의 엄청난 미모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째에에에에에든 아한 이는 미경이의 말이 꽤 충격적으로 받아 졌는지 잠시 멍한 얼굴을 만들더니 내 옆에 하나 남아 있던 의자에 풀썩하고 주저앉았다.
"여기 너희 중 누가 더 똑똑하냐?"
아한이가 손가락으로 희진 이와 미경이를 번갈아 가리키며 물은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긴 왜 앉아?!"
이번엔 희진 이의 외침이다. 그리곤 희진이가 도대체 이게 뭐냐는 듯 추궁하는 눈을 만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로써 내가 더 이상 수수방관 할 수는 없었다.
"저..저기 아한아..우리...저기..일단...헉?!"
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십년동안 죽을 고비를 수차래 넘기고 갖은 개고생을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의 원수를 찾아 헤매다 결국 벼락 치며 소나기가 내리는 밤 외다리 나무에서 만나게 된 불구대천지원수에게나 보낼 듯 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어떻게 말을 이을 수 있을까, 다시 내가 꽁지를 빼자 아한이가 고개를 돌려 말을 이어갔다.
"내가 무식하다며……. 뭐 다른 말도 잘 못 참지만 무식하다는 말은 내가 너희들 같이 머리 나쁜 애들한테 들었다는 게 지금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야."
"뭐? 머리 나쁜 애들?! 지금 누구보고 머리가 나쁘다고 지껄이는 거야!"
미경이가 어이없다는 듯 앙칼지게 외쳤다. 아한이가 그런 그녀의 반응이 재밌다 는 듯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만든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지. 너희 둘 중에 아무나 나보다 머리가 좋다는 사람이 증명되면 내가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라면 꿇고 정중히 사과를 할게. 그 대신 만약 너희 들이 나보다 무식한 게 증명이 되면 무릎까진 꿇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나한테 사과해야 해."
무슨 유치한 초등학생이나 받아줄 것 같은, 장난 같은 제안을 누가 받아 줄까 하는 생각은 들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좋아! 우리 희진이가 얼마나 똑똑한데! 너 같은 건 한 트럭이 와도 겁이 안나!"
그녀들 중 초등학생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미경이는 잠시 희진이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또다시 지 잘난 거 생각 못하는 친구자랑이 시작되었다.
"우리 희진이는 H의대생이야! 그것도 과 탑에다가 장학금도 정부에서 모두 지원 해주는 재원 중에서도 재원이야! 이래도 해 볼 테야?!"
미경이 저것이 오늘 미친 게 틀림없다. 내가 들어도 얼굴 화끈해지며 낯간지러운 남의 애기를 내 자랑 같이 애기하다니, 헌데 더 가관인건 희진이의 반응이다. 희진이는 미경이의 말에 꽤나 만족한 듯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표정이다. 순간 옆구리에서 오는 짜릿한 통증에 고개를 돌려 영민이를 쳐다봤다. 녀석이 고개를 아한 이에게 힐끔 하더니 도대체 이 엄청난 미인이 누구냐? 란 눈과 네까짓 게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여자를 알고 있냐? 란 복합적인 뜻이 섞여 있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하지만 곧 아한이의 말이 이어졌기에 녀석의 갑자기 생기가 돌며 초롱초롱한 눈 빛 따위는 철저하게 개무시 했다.
"그래? 대단하네."
아한이가 맞장구를 쳐주었기 때문일까 아님 그런 그녀의 모습이 순간 저자세를 취한다고 생각 되었을까 미경이의 제정신이 아닌 친구 자랑은 계속 되었다.
"주산 삼단에다, 또 아이큐는 거의 멘사에서 모셔 갈 정도로 높다란 말이야!"
그만해라 이 미친년아! 너희들이 오늘 지금 개 쪽을 당하고 싶은 게로 구나!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한이가 누구인가 멘사 중에서도 상위 일 퍼센트만 받을 수 있다는 골드 아이디 소유자다. 소위 아인슈타인과 견줄 수 있는 만큼 뇌의 영역을 넓힌, 물리학과 현대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괴물이다. 우리 같은 평민들이 조금 머리 좋다고 함부로 들이댈 수 있는, 그런 우리 상식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미경이의 말이 길어질수록 아한이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진다. 지금이야 드는 생각인데 어쩌면 저 괴물 같은 여잔 미경이가 이렇게 나올 줄 예견하고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오 아이큐도 꽤나 높나봐? 멘사에서 모셔갈 정도면 말이야."
"그럼! 백사십정도 되잖아 그지?"
"정확히는 백삼십팔이야."
희진이가 거들었다.
"정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구나."
아한이의 말은 사뭇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상당한 치하를 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난 알고 있었다. 미경이가 지 잘난 친구의 자랑을 하면 할수록 아한이의 마음속에서 비웃음 치는 강도가 반비례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너보다 똑똑한 게 증명되었지? 그럼 얼른 당장 사과해!"
당연하게도 아한이는 사과할 마음이 벼룩의 눈곱에 기생하는 이십나노급 기생충의 똥만큼도 없다.
"미안하지만 그런 것으론 네가 나 보다 똑똑하다는 걸 증명할 순 없어."
"뭐야 그럼 뭘 원 하는 거야?"
자신의 위대함을 이렇게 까지나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었는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앞의 겉모습만 잘난 년의 모습에 짜증이 일었는지 희진이 와 미경이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한 번 더 뜻 모를 미소를 그녀들에게 보여준 후 아한이가 입을 다시 열었다.
"아까 전 주산 삼단이라고 했잖아, 그럼 암산도 잘하겠네.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다섯 개의 세 자리의 숫자를 암산으로 더해봐. 할 수 있다면 말이야...뭐 못 한다면 주산 삼단 이라는 말은 믿기 힘들겠는걸.“
그녀들의 황당한 표정도 잠시, 아한이의 격장지계에 넘어간 것일까, 희진이의 결심에 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흥!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좋아!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싶다면!“
이젠 내가 끼어들어 말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아니 솔직한 말로 나도 아한이가 정말 뇌의 영역을 보통 사람보다 열배나 많은 활용을 한다는 것을 말로만 들은 사실이기 때문에 새삼 그녀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일 게다. 어쨌든 희진 이의 당찬 모습, 의욕은 치하하겠으나 마치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고 너무 무모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잘 듣고 정답을 말 해주길 바래."
"흥. 시작이나 하시지!"
희진이의 결의가 담긴 외침을 끝으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이 술자리에서 생각지도 않은 암산 베틀이 시작되었다.
"삼백육십육, 사백칠십이, 오백육십칠, 육백구십구, 칠백팔십삼."
한참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희진 이가 아한이의 말이 얼마 끝나지 않아 답을 내 놓았다.
"답은 이천팔백팔십칠 이야."
"정답."
아한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짐짓 희진이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미경이는 것 보란 듯이 박수까지 쳐댄다.
"정말 이천팔백팔십칠 맞네! 대단하다 희진씨."
언제 핸드폰을 꺼내 계산기 모드로 바꿔 셈을 같이한 영민이의 말이었다. 솔직히 나도 희진이가 그리 쉽게 정답을 내 놓자 내심 앞의 그녀가 색다르게 보인다. 역시 그녀도 입만 산 여자는 아니었나보다.
"너무 쉬웠나? 그럼 다음은 네 자리 숫자야 이번에도 잘 맞춰봐."
아한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경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게 뭐하는 거야?! 이젠 네가 맞춰야 할 차래잖아! 왜 계속 우리 희진 이 보고만 하래?! 자신 없으면 졌다고 사과를 하던가!“
공정성에 맞은 말이다. 희진이가 정답을 말했으니 당연히 다음 차래는 아한이 차래인 것이 맞은 이치다. 아한이 역시 자신의 불합리적인 처사에 조금은 느낀 바가 있는지 계속 웃음을 만들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긴 한숨을 내 쉰다.
“좋아 그럼 즐기는 건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그럼 이제 네가 불러봐.”
“뭐 즐겨?! 흥! 그럼 시작한다!”
왜인지 마른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간다. 여자들의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다. 어찌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 역시 영민이가 지가 마치 심판이라도 되는 냥 핸드폰을 계산기 모드로 놓고는 희진이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사백칠십오, 삼백구십육, 팔백칠십이, 육백사십삼, 오백칠십팔!”
나도 덩달아 암산으로 더해 보았지만 희진이가 너무 빨리 말해 버려 처음 숫자하고 두 번째 숫자만 듣고는 다음 숫자는 놓쳐 버렸다. 역시 난 너무 평범...아니 수학, 그것도 암산은 평균 이하다. 어쨌든 희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한 이의 입에서 나온 엉뚱한 답에 우리 모두는 잠시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답은 육십조구천오백구십팔억칠천팔백삼십칠만이천팔백이야.”
“?!”
아한이의 생뚱맞은 대답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러갔지만 곧이어 미경이의 비웃는 웃음소리가 그 침묵을 깨어 버렸다.
“하하하....너 미쳤니?! 그냥 못 하겠으면 이 정도에서 미안하다고 할 것이지 왠 헛소리야?!”
나 역시 상당히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런 당치도 않은 숫자를 정답이라고 말한 것인가. 역시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 여자를 이해 할 수도 납득 할 수도 없다. 순간 여지 것 아한이가 이야기 해준 모든, 멘사의 골드 아이디하며 뇌의 이십 프로 활용 어쩌고저쩌고 한다는 모든 것들이 그냥 그녀의 지독한 장난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고민이 시작 되려 할 때였다.
“미안하지만 정답은 이천구백육십사 이거든!”
희진이의 진득하게 코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그러게 정답은 이천구백육십사 인..데.”
계산기를 두들겨 본 영민이가 희진이를 거들었다. 내가 아한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아님 그냥 정신이 나갔는지 소리 내어 웃는다. 그로써 우리 모두는 또 다시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하하..재밌어...하하..”
그녀의 실성한 모습에 희진 이가 앙칼지게 외쳤다.
“뭐가 재미있어?! 재미 하나도 없거든! 졌으면 약속대로 정중히 무릎 꿇고 사과해!”
희진 이의 말을 끝으로 한참동안 이어지던 아한이의 웃음소리가 하늘에 걸린 연을 묶고 있던 실타래를 가위로 끊듯 툭 끊어졌다.
“당연히 그 숫자를 더한 답은 네 말대로 이천구백육십사가 맞아, 근데 내가 언제 그걸 더 한다고 했니?”
순간 희진이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얼굴이 흰 쌀밥 안에 들어 있던 돌을 씹어 먹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곧이어 답답하다는 듯 미경이의 외침이 들려 왔다.
“무슨 말이야?! 그럼 더 하지 않았다는 거야?!”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은 듯 긴 한숨을 내쉰 후 이어진 아한이의 말에 우린 모두 입이 찢어져라 벌려야 했다.
“내가 말한 답은 그 다섯 개의 수의 덧셈을 한 게 아니라 곱셈을 했을 때 나오는 답이야.”
“?!”
충격을 넘어 경악이다. 어떻게 사람이 암산만으로 세 자리 숫자를 연속으로 곱하고, 곱하고 또 다시 곱하고 또 한 번 더 곱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눈 깜박 할 순간에 말이다. 믿을 수도 믿겨지지도 않는다. 이런 생각 역시 나 만의 것이 아닌 듯 미경이의 외침이 술집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뻥까지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세 자리 숫자를 한 번 곱한 걸로 모자라 세 번을 더 곱한 다고?! 그것도 암산으로?!"
그나마 우리 중에 가장 침착한건 희진 이었나보다.
"다...다시 한 번 아까 전 정답을 애기 해봐."
"그래 뭐 정말 확인 하고 싶다면...육십조구천오백구십팔억칠천팔백삼십칠만이천팔백 이게 정확히 아까 내가 말했던 답이야."
희진 이가 언제 빽 에서 펜을 꺼냈는지 아한 이가 말한 답을 적고는 또다시 아까 전 본인이 직접 낸 문제의 숫자 다섯 개를 적어 아직까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영민이에게 건네준다.
"영민씨 이거 계산기로 정말 맞나 확인 좀 해 주세요."
"네? 아...네."
종이를 건네주는 아한이의 얼굴에 또다시 진한 미소가 번진다.
"계산기로는 안 될 거야. 계산기로 확인 할 수 있는 숫자의 답이 아홉 자리 이상이면 에러로 나오거든."
"!"
정말 이 괴물 같은 여잔 사람 뒤통수를 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뭐야 그럼 확인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냥 아무 숫자나 씨부린거 아니야?!"
아한이도 이번엔 미경이의 말에 짜증이 일었는지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 여기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딱 두 가지 있지……."
아한 이가 말끝을 흐린다. 우린 모두 시선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첫 번째 한 가지는 너희들이 직접 지금 풀어 보면 되는 것이고."
"?!"
어불성설이다. 열네 자리의 숫자가 나온 답을 우리가 무슨 수로 그것을 감히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내 머리로는 시간이 무한적으로 주어져도 풀다가 머리에 쥐 가나 죽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 중 아한이 빼고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희진이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인 것으로 봐 이것 역시 그녀에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풀 수는 있겠지만 아한이가 암산으로 몇 초만에 계산 해 낸 것을 종이에다 쓰고 계산해야 하는 자체가 아마 자기가 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이겠지.
"그럼 다음 방법은 무엇이죠?"
여자들은 아마도 자존심 때문에 입을 굳게 닫고 있다는 걸 내심 분위기 파악이 빠른 영민이가 눈치 채고 물었다. 아한이가 영민이를 쳐다보며 해맑게 웃어 보인다.
"뭐 대단한건 아니에요. 핸드폰 뭐 스마트폰으로 구글에서 계산기를 검색하면 웹 계산기를 쓸 수 있는데 그 웹 계산기는 열아홉 자리 숫자의 답까지 구할 수 있거든요."
"아...아하 그렇군요."
아마도 저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십중팔구 그녀가 아까 전 말 했던 답이 맞을 것이다. 잠시 희진이와 미경 이는 할 말을 잊었는지 침묵으로 일관 했고 난 지은 죄가 있다는 알 수 없는 강박감에 감히 그녀의 눈조차 못 맞추고 있다. 영민이 만이 지금 적막이 흐르는 지금 이 분위기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아한이가 말 한대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한참을 이리저리 스마트폰과 시름 하던 영민이의 단발마가 들려 왔다.
"나...난 읽지도 못하겠다. 육공구오구팔칠팔...삼칠이팔공공....맞지?! 오 마이 갓! 오우 마이 갓! 저..정말 맞잖아?!“
"마....말도안돼, 이..이리 줘봐!"
미경이가 못 믿겠다는 듯 녀석이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을 휙 하고 낚아챈다. 그리곤 희진이가 아까 받아쓴 답과 스마튼 폰을 번갈아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을 한다. 그리곤 조금씩 그녀의 두 눈동자가 불신의 빛으로 물들어 간다. 희진이는 이미 체념 한 듯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있다. 또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한참동안 희진이와 미경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아한이가 지루해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혹시 너희 들이 아직 인정 하지 못한다면 뭐 이런 유치한 암산 말고 다른 아무 것으로 해도 돼. 그래 아님 의대 다닌다고 했으니 이번엔 의학상식으로 해 볼까?"
"……."
희진이는 앞의 그녀가 자기가 상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자각 했는지 투지가 무참히 꺾인 듯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미경이는 아한이의 말이 꽤나 모욕적으로 들려왔는지 테이블 위에 오른 그녀의 두 주먹이 바르르 떨린다. 또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희진이가 긴 한 숨을 내 쉬더니 고개를 들고는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아한이 에게 물었다.
"새우랑은 무슨 사이야?"
그녀의 물음에 아한이의 범죄자를 추궁하는 듯 한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건 새우 네가 네 입으로 대답해."
"!"
제기랄, 이젠 너도 나도 다 새우라 하는 구나, 난 세우라니까! 어쨌든 그건 중요한건 아니었다. 정말 시국이 난국이라더니……. 생각은 길었지만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내....여자 친구야."
"!"
"뭐....뭣?! 너 한새우 그게 정말이야?!"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영민이가 외친 것이다. 순간 바라본 녀석의 얼굴에서 놀람 보다는 분노가 더 느껴진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착각일까. 나의 대답을 끝으로 잠시 흐릿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희진이가 빽을 고쳐 메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랬었군……. 가자 미경아."
희진이의 부름에 미경이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곤 예상대로 그녀들의 저주가 담긴 시선이 나를 향한다.
"흥! 너 한새우! 너 정말 이러는 거 아니야! 너 다시 봤다! 재수 없어 한새우!”
“…….”
미경이의 독설에 아한이가 뭐라고 하려는 걸 내가 테이블 밑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저지했다.
"너희 둘이 잘 먹고 잘 살아라!"
다시금 테이블 밑으로 잡은 아한 이의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냥 제발 부탁이니 아무런 말 그녀들에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다행히 이런 내 맘이 잘 전달되었는지 아한이는 떠나가는 그녀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곧 그 들이 자리를 떠나고....
"넌 안 가냐?"
"응?"
나의 물음에 영민이가 어설픈 미소를 만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야지...음 가야지..미경이 너무 걱정하지마. 내가 알아서 풀어줄게."
"부탁한다."
"그리고...이름도 모르네요."
영민이의 물음에 아한이가 여지 것 그녀들에게 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해맑은 웃음을 만들며 반색한다. 내가 봐도 참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그녀의 미소에 또 녀석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우아한 이라고 해요. 방영민씨죠? 새우에게 애기 많이 들었어요. 좋은 곳에서 만나게 되었으면 좋았을 걸,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어 유감이네요. 다음번엔 꼭 좋은 곳에서 봐요 우리."
역시 아니다 다를까 아한이는 녀석의 풀 네임까지 알고 있다. 물론 내가 한 번도 그 녀 앞에서 영민이의 대해 일언반구 한 적도 없기에 그녀가 말한, 애기 많이 들었어요. 란 것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거짓말을 저리 능청스럽게 하다니 역시 무서운 여자라고 또다시 가슴에 새겨둔다. 어쨌든 아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자 부끄럽게도 지손을 바지에 몇 번 문질러 닦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름도 우아하시군요. 아한씨 오늘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반갑고요. 아한 씨 말대로 조만간에 이 녀석과 다시 좋은 곳에서 뵙죠."
녀석은 말을 끝으로 아한이 에겐 가벼운 목례를 나에게는 뜻 모를 윙크를 하곤 먼저 떠나버린 미경이의 뒤를 쫒아 나갔다. 녀석이 술집 밖으로 나간 걸 확인 한 후 나의 시선이 다시 그녀를 향했다.
"왜 그래?"
"뭐가?"
"왜 영민이 에게는 그렇게 매너 좋게 하고선 그 친구들에겐 그렇게 모질게 대한거야?"
"영민씨는 너와 만나면서 계속 보게 될 사람이잖아."
“…….”
그럼 그녀들은 아니냐! 란 말은 물을 수가 없었다. 그 질문에 답은 내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괜스레 입가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근데 아까 전에 왜 말린 거야?"
"응? 뭐가?"
아한이의 물음에 고개가 갸우뚱 거린 것도 잠시 이어진 그녀의 말에 입가에 만들어진 쓴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아까 그 미경이란 애가 나갈 때 내 손을 잡아 막았잖아."
한숨을 내 쉰 후 별거 아니란 듯 손을 공중에다 대고 휘휘 저었다.
"뭐 네 얼굴 보니까 못 받은 사과 받으려고 한 것 같았거든."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물론이지! 나한테 무식하다고……."
그녀의 말을 잘랐다.
"바보야. 아직도 모르겠니? 미경이가 너보고 무식하다고 했던 말은 네가 지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소리로 한 게 아니야. 무슨 말이냐면 네가 똑똑하지 않다는 뜻으로 한 소리가 저어어얼대 아니라 네가 사람들이 무릇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지 않아서 무식하다는 소리로 대신 한 것뿐이야."
"……."
"아한아, 네가 정말 얼마나 똑똑하고 해박한 지식이 있는지 난 감히 널 평가 할 수도 없어. 아마 무엇을 생각 하더라도 그 이상이겠지...너란 아이는 처음 볼 때부터 언제나 내 상상을 뛰어 넘었으니까...근데 그런 게 있어……. 아무리 사람이 가진 지식이 넘치고 넘쳐 난다 해도 그 것을 쓸 지혜가 없다면 그 지식은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 밖에는 될 수 없을 것 같아."
"!"
마음에 두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은 죄가 있기에 어떻게든 가능한 좋은 식으로 충고 하려고 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그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괜스레 또 내 자신이 작아지는 듯 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엔 무언가 조금은 다르다. 한 참을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던 그녀가 의외로 해맑게 웃는다.
"새우야...이제...이제 정말 너 같다."
언젠가 그녀를 처음 안았을 때 느꼈던 그 그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그녀가 내 품 안에서 말 해주었던 [너무 보고 싶었어] 란 말과 비슷한 느낌이 묻어난다. 데자뷰 인가? 문득 어디선가 언젠가 이런 비슷한 분위기 속에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뭐 어쨌든 다행이다. 내가 무심코 내 하게 된 충고에 속 좁은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주니 말이다.
"답답하다. 우리 나가자!"
아한이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 문득 무언가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었던 것이 머릿속에 번쩍였다.
"여...영민 이 이 자식?!"
어느새 울상이 되어버린 내 얼굴에 아한이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그게 아니라....영민이 이자식이 오늘 계산 한다고 했었는데...그냥 가버렸어."
나의 울먹이는 표정이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핸드백 안에서 골드 빛이 감도는 카드 하나를 꺼내었다.
"내가 계산할게."
이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니다. 남자의 체면이 있지, 헌데 내 지갑에는 몇 십 불 정도의 현금밖엔 없다. 물론 몇 개의 크레디트 카드가 있긴 하지만 지불 한도액이 넘은 게 저번 주 이었다. 테이블을 슬쩍 보아도 뒹구는 소주병들 하고 우리가 처먹은 안주들 대충 셈을 해보니 적어도 팁은 제처 두고서라도 백오십 불 정도는 우습지 않게 나올 거다. 괜스레 저번 주에 큰맘 먹고 지른 노트북이 왠수처럼 느껴진다.
"됐어! 네가 왜 이걸 계산해?!"
한 순간에 뿌리친 후 그나마 내가 가진 크레디트 카드 중 밸런스가 제일 적은 것으로 짐작되는 것을 꺼내어 점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발 부탁이니 어떻게든 이번만 넘어가 달라고 믿지도 않은 신에게 미친 듯이 빌었다. 역시 신은 없었다.
"저기 손님 죄송한데 카드가 디클라인 됐는데요. 아마도 한도액이 초과……."
"!?"
점원의 말이 체 끝나기 전 아한이가 다시 아까 전 그 골드 빛이 감도는 카드를 꺼내어 점원 앞으로 내민다.
"이걸로 해 주세요."
"넵.....근데 저기 이건……. 크레딧 카드인가요?"
점원이 카드를 앞뒤로 훑어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건네준 크레디트 카드라고 한 것에서는 그 크레디트 카드의 종류를 구별하는 비자나 마스터 혹은 아멕스 같은 로고가 붙어있을 자리에 기이학적으로 그려진 도형이 독수리 그림과 함께 인쇄되어 있었고 상단 좌측에는 그녀의 것으로 짐작되는 조그마한 사진이 있었다. 크기만 같을 뿐 절대로 크레디트 카드처럼 보이지 않는다.
"네. 새로 나온 스마트카드에요, 데빗 이나 크레딧 아무것으로나 결제 하시면 될 거에요."
그녀의 시원스런 대답에도 도통 무엇이 못 믿겨졌는지 뒷머리를 긁으며 카운터로 돌아가는 점원이다.
"혹시 그게 정부에서 발급하는 골드 아이디라는 거야?"
"응. 맞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나다. 나의 호기심어린 질문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근데 저게 크레딧 카드도 돼?"
"응."
짧게 대답한다. 아마도 말하기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 가 보다.
"참나. 그럼 그냥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거야?"
"그래도 돼."
"그래도 그렇지, 그럼 한도액은?"
아한이가 귀찮다는 듯 그녀의 고운 두 눈을 찡그린다.
"뭐. 골드 아이디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것은 한도액이 없어."
"!?"
그녀의 어이없는 말에 다시 입이 쩍 벌어진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어떻게 한도액이 없을 수 있어? 뭘 믿고 정부에서 이런 말도 안 돼는 카드를 준다는 거야?"
그녀의 얼굴이 이번엔 확 구겨졌다.
"쉿 조용히 애기해! 이런 건 아무데서나 함부로 애기 할 수 있는 애기가 아니야!"
그녀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네가 생각 할 때 내가 미래를 예지하는 것을 돈이란 값어치로 환산 한다면 얼마일 것 같아? 천불? 만 불? 아님 백만 불? 그것도 아니면 수십억 불?"
그녀의 질문에 말문이 콱 막혀 버렸다. 평범한 내 사고로는 도무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세상에서 나처럼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어. 박사님이 그렇게 말했으니 아마도 틀린 말은 아닐 거야. 어쨌든 그 중에서도 나처럼 특정 사물이나 인물에게 내 의지대로 즉 마음먹은 대로 예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어, 나 이외의 미래를 보는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미래가 랜덤하게 보여 지는 것이지 본인이 원 한다고 해서 아무 사물이나 인물이나 원하는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하더라고……."
아한이의 말이 잠시 다가온 점원에 의해 중단 되었다.
"결제 되었습니다. 여기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아한 이가 싱긋 웃으며 싸인을 하자 점원이 아까 전 골드카드를 보고 겸연 적 했던 것이 무안했는지 어색한 웃음을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점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가자 아한이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난 정부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꽤나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탑 클라스파이드야 즉 기밀 중에서도 최고 기밀 안에 드는 리스트란 말이야."
"그럼 네가 정부를 위해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많이 망설인다.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애기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건지 아님 이런 장소에서 꺼낸 다는 게 쉽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다.
"멀게는 맨하탄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의 의해 무너져 내리는 걸 예지했었고 최근에는 요즘 세계 화제 거리의 중심에 있는 이집트의 정권 교체를 몇 달 전에 예지했었어."
또다시 입이 쩍 벌어졌다. 생각 할 필요도 없다는 듯 나의 다음 질문이 쏟아졌다.
"이집트 사건은 그렇다 치더라도 구일일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은? 미리 알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잖아?! 그 사건으로 몇 천 명의 소중한 목숨이 날아갔는데!"
아한이가 또 다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내가 저번에도 애기 했다시피 내가 비쥬얼라이즈 해서 보게 되는 미래는 백 프로 미래에 일어날 영상이야. 알고 있다고 해서 미래를 절대로 바꿀 수 는 없어. 내가 보게 되는 미래는 내가 지금 미래를 보는 것을 포함한 미래이기 때문이야."
알쏭달쏭 이해가 가는 듯,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
"그럼 미래를 보는 것은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단 말이야?!"
"글세……. 그렇게 간단하게 애기 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닌 것 같아. 첫째는 우선 아까 전 말 했듯이 당장에 내가 예지한 미래는 바꿀 수 없다 해도 그 미래의 미래는 우호적이게 바뀔 수 있지 내가 미리 사건을 예지함으로써 그 미래의 미래에 대한 설계 그리고 대비까지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건가?"
"그리고 둘째로는 쉽게 애기해 난해한 스릴러 영화를 본다고 치자. 그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을 때 영화가 시작할 무렵 누가 범인이라고 미리 알려 준다면 그 영화의 난해한 전개가 이어질 때에도 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잖아."
"그럼 재미없잖아!"
아한이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만들어졌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잖아."
"……."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래봬도 이 나라에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커다란 도움을 간접적으로 주기 때문에 이 까짓 언리미트 카드쯤 나에게 줘도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어느 정도 서슴없이 가까워 졌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새 또다시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은 곳으로 멀리 달아난 느낌이다.
"그..그럼 그거 갚아야 해? 뭐 다른 크레딧 카드처럼."
"이유 없는 사치가 아닌 이상 안 갚아도 돼……. 하지만 아무리 내가 큰 도움을 나라에 준다고 해도 그냥 내키는 대로 쓸 순 없어, 어쨌든 이것도 엄연히 국비를 쓰는 것인데 그것도 그렇지만 쓰기가 꺼려지는 건...그냥 위에서 감시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원래는 특별한 일 아닌 이상 잘 안 써."
그녀의 말에 의아해진다.
"그럼 오늘 왜 쓴 거야?!"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한 숨을 내쉰다.
"너 때문에 급하게 나오느라고 지갑도 못 챙겨 와서 그런다. 왜?! 그럼 너 오늘 여기서 설거지하고 갈래?!"
"알았어. 근데 왜 급하게 왔는....끼얏호!"
나의 말은 정강이에서 오는 엄청난 고통에 이어 질 수 없었다. 아한이가 테이블 밑으로 내 정강이를 뾰족한 그녀의 구두 끝으로 인정사정없이 찬 것이다.
"왜와?! 이게 정말 뒤질려고?! 네가 바람피우려고 하니까 잡으러 왔지 이 새우 새끼야!"
* * *
시포트는 맨하탄 다운타운 배터리 파크 옆에 위치해있다. 뉴욕에 온다면 꼭 한번쯤 들려 봐야 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다. 아주 오랜 시간 전에는 맨하탄의 분주한 항구이었으나 이젠 항구로써의 역할은 다하고 재개발 되어 관광지로 탈바꿈 된 것 또한 오랜 시간 전 이다. 구름이 많이 끼지 않은 날에는 저 멀리 뉴욕의 상징인 자유 여신상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뉴욕의 젓줄이라고 불리는 푸른 허드슨 강을 끼고 시포트에서 바라보는 맨하탄의 밤 야경은 뉴욕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는 더 없는 눈의 즐거움이 될 것이고 연인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
강둑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쳐다보는, 검푸른 허드슨 강을 유유히 오색 빛을 발하며 나아가는 유람선의 한 폭의 그림 같은 야경은 십년 가까이 지겹도록 보아 왔던 나에게 있어 별다른 감흥을 더 이상 주지 못해서 인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내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눈부신 미모가 앞의 황홀한 그림보다 더욱 빛나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렇게 계속 쳐다봐?"
말없는 나의 시선이 부담 이였나 보다. 그녀가 옷깃을 고치며 벤치에 몸을 깊숙이 넣었다.
"너 근데 오늘 안색이 안 좋다."
아까 전 술집에서 처음 그녀를 봤을 때도 느낀 것 이지만 오늘 그녀는 며칠 전 볼 때보다 유난히 얼굴이 창백하다. 이런 나의 질문에 그녀가 입술을 삐죽 하더니 눈을 흘겨 뜨고 쳐다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엥? 나 때문이라고? 내가 뭘 어쨌는데?"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갸우뚱 거린다.
"됐어."
말하기 싫다는 표정, 그럼으로써 나의 호기심은 증폭 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런데? 왜 나 때문이라고 하는 거야?"
혹여나 그녀 역시 지난 연락 안 된 오일 동안 나 못지않게 힘들었었나 하는 야무진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별거 아니야, 너 찾으려고 너무 무리한 거뿐이야."
"무리? 그럼 혹시 오늘 내가 있는 술집을 찾으려고 뭐 예지 능력 그런 걸 쓴 거야?"
그녀가 시선을 돌려 앞의 강가를 쳐다본다. 그리곤 고개를 긍정의 뜻으로 살며시 끄덕인다.
"그럼 그 예지 할 때 그렇게 얼굴이 창백해 질 정도로 힘이 많이 드는 거야?"
곧이어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만들어진다.
"우리끼리 애기 할 땐 전문 용어로 비주얼라이즈 한다고 해. 어쨌든 비쥬얼라이즈 할 때는 뇌의 활동이 평소의 몇 십 배 까지 높아져, 그 만큼 뇌가 필요로 하는 산소량도 반비례로 많아지고 즉 한번 미래를 비주얼라이즈 할 때마다 대략 천 미터 정도를 전력질주 해야 하는 에너지가 필요로 해.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엔 절대 예지능력을 쓰지 않아 하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의뢰가 들어오거나 꼭 써야 한다는 상황이 올 때 내가 비쥬얼라이즈 할 수 있는 한계는 고작해야 하루에 한번 내지 두 번 뿐이야. 그 이상이면 체력도 체력이지만 뇌가 혹사당해서 나에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안 좋아……."
말을 흐리던 그녀가 시선을 돌려 나를 흘겨 뜬 눈으로 쳐다본다.
"그런 비쥬얼라이즈를 오늘 너 때문에 세 번이나 했어. 박사님이 알면 경을 칠 노릇이야."
"!"
몰랐었다. 난 정말 그녀가 미래를 볼 수 있다기에 그냥 심심하면 미래 함볼까 이러고 그냥 보는 줄 알았었다. 그녀의 말대로 한번 비주얼 뭐시깽이 할 때마다 천 미터를 전력질주 할 정도로 힘든 일이란 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럼 오늘 세 번 했다니까 삼천 미터 즉 삼 킬로미터를 전력 질주 한 것이다. 안쓰러워진다, 아니 미안하다 그래 근데 정말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왜인지 나 찾으려고 그렇게 까지 했다는 그녀의 말이...그런 그녀의 말이 오일동안 느껴왔던 그녀의 대한 배신감을 말끔히 해소 시켜 주는 기분이다.
"바보같이! 그냥 전화 하지 그랬어? 그냥 힘들게 비쥬얼라이즈 하지 말고 나 어디냐고 그냥 물어 봤으면 되었잖아."
나의 질문에 그녀가 한 숨을 내쉬더니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가 아까 전 나타나지 말고 전화 했으면 넌 솔직히 말했을까?"
"!"
제기랄 괜한 것을 물어 내가 내 무덤을 팠다. 그녀의 말대로 난 분명히 희진이 와 함께 라고 죽어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한이가 미래를 볼 수 있는 여자란 걸 누누이 알면서도 지금 또 까먹었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아한이는 그녀가 직접 나타남으로서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 아닌 배려를 한 것이고 그녀의 입장에서는 짐작하건데 내가 거짓말 하는 것이 두 번씩이나 비주얼라이즈를 해야 하는 수고보다 더 싫은 것이었겠지. 얼굴이 화끈 거리는 민망함에 화제를 급히 돌린다.
"그……. 그랬구나...그런데 아까 술집에서도 그랬지만 그 박사님이란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그것 까진 네가 몰라도 돼."
그녀의 대답에 내가 살짝 삐친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까. 그녀가 자포자기 한듯 짧은 한 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냥 박사님이야……. 정부에서 보내준 내 주치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렇게 까지 애기하는데 더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아니 화제를 돌린 것으로도 만족 이상이다. 괜스레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이 내 쉬어진다.
"……."
눈앞에 있던 유람선이, 저 멀리 손톱만큼의 크기로 보일만큼 나아 갈 때까지의 침묵이 지나간 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왜 그동안 연락 안했어?"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물어 본 것이 무안 할 정도로 그녀의 대답이 너무 빠르다.
"그럼 왜 못 했어?"
무엇이 그리 답답한지 아한 이가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사정이 있었어……."
"전화 한 통화 하지도 못 할 정도의 급한 사정이었어?"
그녀가 입가에 뜻 모를 미소를 만들었다.
"기다렸니?"
그녀의 물음에 마음이 뜨끔했다. 하지만 왜인지 겉으로 내색하긴 싫었다.
"치! 내가 왜? 하나도 안 기다렸거든!"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연기다. 이건 대 놓고 기다렸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강한 긍정을 표시한 것 같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그럼 됐네."
아한이의 차가운 말을 끝으로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괜스레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닫힌 입술이 천근인 냥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기운을 내어 입술을 열어본다.
"그래...좋아..사실은...기....기다...렸어...솔직히 아주...많이."
"……."
의외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냥 어찌 보면 냉담해져 보이기까지 하다. 무슨 커다란 반응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무반응은 도대체 뭐냔 말이다!
[개쪽이다! 아 이런 개나리 된장! 뭐야 이건 내가 왜 말을 한 거지? 그냥 하지 말걸 내가 왜 했지? 으아아아아악! 세우야! 세우야! 넌 무슨 짓을 한거니이이이이잇!]
물밀듯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그냥 눈앞에 보이는 강물로 뛰어 들어 죽어 버릴까 란 진지한 고민을 얼마나 하고 있었을까.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봤자, 고작 오일……."
“?!”
정신이 번쩍 드는 소리, 내가 혹여 잘 못 들은 게 아닌 가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이미 인두로 지진 듯 새겨진 그녀의 말,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참을 수 없었다. 고작 한다는 소리가 오일 이라니, 내가 그녀 때문에 그 시간동안 얼마나 끔직한 경험을 했어야 했는데, 아한이의 말에 뭐라 반박하려는 순간 그녀의 이어진 말에 난 심장이 멎는 아찔한 경험을 해야 했다.
"난 몇 년을 기다려 왔는데……."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건 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이 여자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언제부터 알고 있는 것 일까. 그녀에게 물어 보려다 그만 두었다. 뭐랄까 아름답게 쌓아올린 모래성은 보기만 좋은 것이다. 어떻게 쌓아 올린 건지 궁금해서 그 것을 건드려 본다면 그 모래성은 금세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왜인지 지금 그녀가 모래성 같다. 건드린다면 쉽게 허물어져 다시금 볼 수 없게 되어 버릴 모래성 말이다.
"다음부터 그러지마……."
"응? 무..뭘?"
“몰라서 물어?”
“아..아니 알...알았어.”
"됐어..그럼, 이제 많이 풀렸어."
부끄럽다. 아니 부끄러움을 초월해 수치심까지 느껴진다. 언제부터 그런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이제 만난 지 두 번째, 그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죽도록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 나의 희로애락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만 가자."
그녀의 말에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던 고개가 자동으로 들려졌다.
"여기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나의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말 때문이었을까, 핸드백을 고쳐 맨 그녀가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벤치에 앉고는 입가에 화사한 미소를 만든다.
"원래 오늘도 나오면 안 되는 거였어. 지금 안 봐도 랩(lab)이 난리가 났을 거야. 사실 오늘 아침 우연히 너의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 무심코 네가 오늘 무엇을 할까 하고 비쥬얼라이즈 까지 하게 되었어……. 그래서 우연찮게 네가 어느 여자들과 함께 있는 걸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충동적으로 몰래 나온 거야."
"그..그랬어? 근데 랩이라니?! 왜 네가 랩에 있어?"
"뭐 매 달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한 달에 며칠정도 랩에서 지내. 그곳에서 대부분 의뢰 들어온 사건의 비쥬얼라이즈도 하고 또……."
망설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좀 많이 특이하잖아. 그래서 나의 대한 검사...라고 그럼 좀 그런가? 어쨌든 내 몸 상태를 주기적으로 첵크 받아……. 원래 이런 거 다 말하면 안 되는 데……. 그러니 새우 너도 이건 너만 알고 있어. 절대로 이런 애기 다른 누구에게도 하면 안 돼……. 부탁할게."
딱 부러지는 말투, 더 없이 진지하다.
"알았어...근데 왜 나한테는 다 애기하는 거야? 그렇게 비밀이라면 나한테 까지 굳이 애기 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가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해맑게 웃는다.
"내 남자친구에게 오일 동안 연락이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거야. 나 역시 너에게 이상한 오해를 받기는 정말 싫으니까....그 곳에서 지낼 때는 개인 휴대폰을 소지 할 수 없거든...그래서 사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못했어...미안해...용서해 줄 꺼지?“
절대 안된다는 부정의 뜻으로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서린다. 무슨 용기가 나서였는지, 나도 내 자신이 이런 말을 대 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바보야...난 네가 오늘 나타난 순간 널 용서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