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라는 것
김 난 석
벗 중에서 제일은 글벗이라 했다.
허나 이건 일부층의 이야기일 거다.
글 좀 쓰는 사람들,
그러니까 옛날로 치면 사대부들의 이야기였던 셈이다.
글을 쓰노라면 마음을 여미고 가다듬게 되는데,
그게 제일인 줄 알기도 했다.
육신의 욕망은 발바닥 아래에 두고 말이다.
술벗도 있다.
글벗 못지않다.
이 세상에 술이 없으면 무슨 재미냐고 하지 않던가.
거기에 여자까지 끼면? 금상첨화라 한다.
물론 남성들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말벗도 있는데. 그게 수다다.
쓰다 쓰다 하지만
시집살이보다 더 쓴 게 어디 있느냐고 했는데,
그걸 견뎌내는 건 누구에겐가 속을 다 풀어내는 거라 했다.
그게 바로 수다였다.
중세시대의 서구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한다.
의료시스템이 열악했을 그때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람들은 무얼 궁구 했을까?
하나님이 정신계를 지배하던 때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가 안심입명을 빌기도 했겠지만
문학적으로 보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고전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열 명의 귀족들이 병마가 휩쓸고 있는 도회에서 벗어나
외딴곳으로 숨어든다.
그리곤 무엇을 할까?
결국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솔직한 이야기?
그건 성과 쾌락에 관한 이야기였다.
단테는 <신곡>에서 死後의 구원을 노래했지만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지상에서의 구원을 노래한 셈이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흔히 성(性)에서 시작된다.
좋은 성품으로서의 성,
바람직한 정신과 행동 모럴로서의 성,
바로 이성(理性)의 성이다.
그러나 이에서 더 솔직한 경지로 들어서자면서
성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異性의 성이다.
이와 궤를 달리하지만
누가 얼마나 이뤘느냐는 걸 자랑하는 게 성(成)의 이야기다.
금기시하면서도 쏟아내는 게 돈 자랑,
자식 자랑, 지위 자랑 등이 아니던가..
理性의 성, 異性의 성, 名聲의 성은 육계(肉界)의 이야기지만
이와 달리 영계(靈界)의 성(聖)도 있다.
그걸 살펴본 게 단테의 신곡(神曲) 일 테다.
성, 성, 성, 어느 후배는 나를 보고 “성님, 성님” 그런다.
그건 무슨 뜻으로 그리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집 울타리의 성(城)이나 잘 지키면서 살아갈 뿐이다.
카페 아름다운 5060의 '톡톡 수다방'에서 얼마 전 수다 경연이 있었다.
세 사람이 입상에 들었다.
s 님, k 님, m님.
나는 그중에서도 s 님의 '삥땅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었다.
60년대 직장생활 중에 급여를 누런 봉투에 담아 받았는데,
봉투 안에는 빳빳한 지폐가 들어있었지만
봉투 겉에는 급여 내용이 세세히 쓰여 있었다.
총액 얼마, 근로소득세 얼마, 기타 공제액 얼마...,
이렇게 말이다.
이걸 받아서 살림하는 아내에게 건네주게 되었지만
따로 쓸 용돈은 어찌 마련해야 하나...?
그래서 소위 삥땅이라는 말이 생겼다.
봉투에서 일정액을 꺼낸 뒤에
봉투의 기재내용을 그에 맞게 변조하는 건데,
순진한 아내들이 잘도 속아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괜찮다고 하겠다.
그렇게 삥땅 쳐서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썼다면
누가 무어라 하랴?
그걸 ‘니나노집’에 가서 풀었다니,
이게 말이 되던가?
허나, 나는 그걸 가지고 ‘늴리리야집’에 들르곤 했으니
남의 말을 하면 또 무엇하랴. ㅎㅎ
위 글은 얼마 전 ‘톡톡 수다방’ 에 올렸던 글이다.
재미로 써본 글이니 양해 바란다.
이제 이성(異性)을 생각하는 성은 가깝고도 먼 이야기다.
젊은 시절엔 누구나 그걸 가까이하려 하나
나이 들면 멀리하게 마련이니 그렇게 이야기해 본다.
그러나 가까이하고 멀리하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게 개체의 차별성이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서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일찍 멀리한다고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은 폐경기가 되면
갑자기 멀리하게 된다지 않던가?
이에 비해 남성은 어떤가?
수저 들 힘만 있으면 이성을 밝힌다고도 하지 않던가?
남성은 여성에 비해 사뭇 다른 실정임이 짐작된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보면
남성은 공격적이요 여성은 수비적이라 한다.
남성은 사냥을 해 와야 하고 여성은 그걸 지켜야 하니
디엔에이가 그렇게 형성되었을 거다.
해가 져도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성,
그에 비해 여성은 어둑어둑해지면 성문을 닫는다.
이게 성의 차별성이요,
비극은 여기에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인간이 그렇게 진화해 왔지만
남녀가 조화를 이뤄 잘 살아가야 한다.
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요,
인간사 관심의 대상이 많고도 많지 않던가~
그런데 성(性)은 또 마음에만 머무르는 성이 있고
행동에까지 이르는 성이 있다.
그 양자의 불일치에 비극이 있을 텐데
그게 원죄의식이기도 하다.
한없는 욕구... 그러나 그게 허여되지 않는 한계~
어느 회원이 문학에서의 성(性)을 이야기했는데
그것도 마음에만 머무르는 성이 아닐까...?
그걸 함부로 흉내내려 하는 건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만~
좋은 글을 읽고
짧은 소견임을 덧붙인다.
첫댓글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오랫동안 건강하십시오 좋은 글을 읽고 내 짧은 소견으로 댓글을 달리기에 조심스럽습니다마는
엣 시의 한 소절 중에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해서 좋아 라는 말이 있지요.. 어느 것이 귀하고 소중한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선택.
에 자유로움이 있을 듯 합니다.
또다시 가을이 오기 전에 석촌호수의 풍경을 그려 봅니다. 건강하십시오.
맞아요.
삶은 선택의 연속이지요.
자기나름 선택하고
그에 보상과 책임도 지는 양면성의 선택.
석촌호가 생각나면 들리시길~
'밀어주까? 아가야.'
'아냐요 할배, 저 혼자 넘을 꺼야요.'
사진 보는 마음이 낑낑 힘이 듭니다. ㅎ
성은 다루기 힘든 주제이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삶에 있어 비중이 큰 영역인 것 같습니다.
잘 표현된 성은 아름답고 사실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삽니다.
넘어가면 절망입니다.
때론 그리워하기만 해야지요.
그런데 그게 그리 쉽던가요~~~?
性은
본바탕이기도 하구요, 일반적으로
암컷과 수컷의 구별과 육체적 특징을 말하기도 하지만,
남녀의 육체적 관계로써
그에 관한 일을 표현하는 인간의 은밀한 언어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인간의 삼대 욕구의 하나로 자손을 이어갑니다.
그것이 넘쳐흐르면 패가망신하는 일이 생겨나고,
그것이 부족하면, 인간의 삶이 윤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학에서 곱게 다루면, 아름다운 성이 되지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그 은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밉지 않는 수다쟁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활에 웃음을 주는...
성, 사실 저도 그 개념 정의하기가 어려워요.
그저 저의 주관적 생각일 뿐이지요.
제목을 보고
남한산성 수원화성 프라하성 ? 했습니다..
보카치오 의 성 - 지상에서의 구원 - 정확 명료한 축약의 말씀 같습니다.
옛날에는 섹시하다는 말은 칭찬이기 보다는
분위기가 정숙하지 못하다는 말로 여기기도 했는데
요즘 MZ들은 만능 매력이라는 개념이 된 듯
똑똑한 사람을 뇌가 섹시한 사람으로 뇌섹남 뇌섹녀로 부르기도 하더군요.
성에 관련된 표현을 대하는 정서가 많이 변한 것 같았습니다.
본문에 언급하신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가 있다면
우리 5060에는 석촌님이 계십니다. ^^
남한산성 등등... 성을 그렇게도 생각했다니 재미있네요.ㅎ
그런데 저는 명색이 시인이지만
인구에 회자되는 베르길리우스와는 사뭇 다르지요.
그래도 저의 집안에서는 베르길리우스라 불려도 괜찮겠고요.ㅎ
모든 예술 장르의 테마는 대부분 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점도 있겠네요.
데카르트가 데카메론을 썼나?
야동 보듯 데카메론을 보던 때가 생각납니다. '체털레이 부인의 사랑'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