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칸
문정희
어떤 나뭇잎은 기억처럼 굴러다니다가
내가 길을 걸어갈 때
뜻밖에 부는 바람으로 내 옷깃을 쳐든다
암각화를 보기 위해 무르만스크행 기차를 탄
북구 여자의 6번 칸*에서
보드카에 취해 자꾸 말 걸어오는 사내를 본다
이윽고 핀란드 말로 사랑해!가 뭐냐고 그가 물었을 때
여자는 대답한다
하이스타 비투(haista vittu)! 엿 먹어!
내가 탄 배는 그때 난민 보트였던 것 같다
항구에 닿아도 기실 아는 이 없었다
바다에는 고래, 불쑥 두려움처럼 솟아나는
젊고 위험한 미시시피 시인들의 배에서
나는 자욱한 우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 시인이 내민 북구 시인의 시집
암각화처럼 어렵고 낯선 그 첫 문장을
18년이 지난 오늘에야 해독해 본다
혹시 엿 먹어!?는 아니겠지
고대 암각화 속에서 뭉클 솟아오른
고래의 시
미나 라카스탄 시누아(Mina rakastan sinua)!
나는 당신을 사랑해!
푸우! 아직 푸른 잉크고래가 천년 늦게 당도했다
* 6번 칸 : 핀란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 영화. 칸느(2021) 그랑프리.
문정희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 등 1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