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 정호승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다고
이제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졌으리라
뒤돌아보았으나
내 뒷모습은 이미 벽이 되어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높은 시멘트 담벼락
금이 가고 구멍이 나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제주 푸른 바닷가 돌담이나
예천 금당실마을 고샅길 돌담은 되지 못하고
개나 사람이나 오줌을 누고 가는
으슥한 골목길
담쟁이조차 자라다 죽은 낙서투성이 담벼락
폭우에 와르르 무너진다
순간 누군가
담벼락에 그려놓은 작은 새 한 마리
포르르 날개를 펼치고
골목 끝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내 뒷모습에 가끔 새가 날아왔다고
맑은 새똥을 누고 갈 때가 있었다고
내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었다고
-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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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 시인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슬픔이 택배로 왔다』 등 14권.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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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뒷모습을 가진 사람일까요. 내가 머리카락을 자를 때 농담처럼 이렇게 말을 하곤 합니다.
‘뒷모습은 내 눈에 안 보이니까, 적당히 잘라 주셔도 됩니다’라고요.
내가 입은 옷의 앞쪽에 무엇인가 묻으면 꼼꼼히 털어내곤 하지만, 뒤쪽에 무엇인가 묻으면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 묻었는지 몰라서 털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뒤쪽은 내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보인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입니다.
사실 저는, 뒤쪽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제 활동을 보시면,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만큼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중요한 것은 잘 챙기지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은 것들은
잘 챙기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블로그를 제가 잘 챙기는 까닭은, 저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블로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제 가족과 관련된 것들이죠. 물론 직장생활도 그러하고요. 2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각은 손에 꼽습니다.
특히 게으른 사람에게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아름답게 꾸미지는 못하더라도 깨끗하게 잘 정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썩거나 상하지 않고, 곰팡이 피지 않게 정리하는 것이죠.
게으름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게으른 제가 보기에도,
‘어떻게 이렇게 살지?’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 본 유튜브에는 정기적으로 청소업자를 불러서 집을 청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작은 집에 쓰레기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더군요.
보통 이런 경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수집에 대한 강박과 같은 병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경우 얘기를 들어보면 강박이 아니라 ‘귀찮아서’였답니다.
강박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불러서 집을 청소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귀찮음이 발생하는 속사정을 파헤쳐 보면, ‘우울증’ 같은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는 합니다.
저 정도만 해도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이를테면 부지런한 게으름뱅이죠.
부지런함과 게으름뱅이가 상반된 의미라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인지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말도 있잖아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줄여서 ‘따-아-아’라고 부릅니다.
‘따-아-아’가 게으름뱅이의 대표적인 음료가 아닐까요.
저는 게으름보다 그 반대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을 소진시켜가면서 너무 열심히 일하는 일병.
이런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떠할까요.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저는 게으름뱅이보다 이 사람들의 뒷모습이 더욱 초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마음의 총량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까요.
일에만 모든 것을 소진하다 보면, 삶은, 뒷모습은 완전히 망가져 있기 마련입니다.
일 중독자에게 가장 큰 처방전은 ‘게으름’일 것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처방전이 게으름일 것입니다.
사실 게으름을 잘 피우기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평소에 잘 놀아본 사람만이 놀 기회가 생겼을 때 잘 놀 수 있는 것처럼, 평소에 게으름을 잘 피워본 사람만이,
게으름을 잘 피울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적당히 게으름 피우고 사는 것,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