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작가
스릴러 영화는, 관객들이 등을 의자에 기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긴장시킨다.
그 긴장감은 내러티브에 의해 혹은 캐릭터 자체의 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관객들이 예측한대로 이야기가 풀려간다면
더 이상 스릴러가 아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작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잠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놓지 못하게 만드는
스릴러 장르의 팽팽한 긴장감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유명인의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익명의 작가를
유령작가라고 부른다.
정치인이나 재벌 회장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이름의 유명세 때문에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인물이 책을 펴낼 때,
책을 집필한 시간이 없는 바쁜 일정과
글솜씨의 부족 때문에 전문 작가를 고용하게 된다.
그가 유령작가다.
리처드 해리스 원작의 [유령작가]는
전직 영국 수상인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외딴 섬에 기거하면서 자서전을 집필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아담 랭이 자서전을 집필하는데는 반드시 유령작가가 필요하다.
영화는 아담 랭의 유령작가가 술을 마신 뒤 배를 탔다가
익사체로 발견된 후 새로운 유령작가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로만 폴란스키가 스릴러를 끌고 가는 방식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내러티브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인물의 터질듯한 심리곡선에 더 중요한 비중을 부여한다.
[유령작가]는 도입부에서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거센 회오리바람처럼 어떤 커다란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관객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런던에 있는 출판사에서는 인터뷰를 한 끝에
이미 이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새로운 유령작가(이완 맥그리거)를 선정한다.
유령작가는 책 한 권을 대신 집필하는데 25만불이라는 거액을 제시받는다.
더구나 이미 초고는 전임 유령작가에 의해 쓰여진 상태다.

외부와 단절되지는 않았지만
런던이나 워싱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작은 섬에 기거하고 있는 영국의 전직 수상 아담 랭은
퇴임 후에도 자신을 보필하는 비서 아멜리에(킴 캐트럴)와
대학시절부터 그의 정치적 동지였던 부인 루스(올리비아 윌리암스)
그리고 경호원들과 함께 바쁜 삶을 보낸다.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차이나 타운]에서도
일상적 차우너을 초월하는 복잡한 내러티브 구성의 우월한 장점을
캐릭터의 힘과 결합시켜 효과적으로 살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유령작가]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유령작가는 이미 쓰여진 회고록 초고를 훑어보면서
아담 랭을 다시 인터뷰하며 원고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어느날 그는 전임자의 물건 중에서 몇 장의 사진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근거로 아담 랭의 회고록 중에서
많은 부분들, 특히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 등이
아담 랭 본인의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령작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전영국 수상 아담 랭이
미국 CIA의 요원이었다는 의심을 증폭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도 캐릭터가 갖고 있는 장점을 놓치지 않는다.
유령작가는 관객들의 시선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사건의 실체에 한 발씩 접근한다.
그럴수록 위험은 증대되고 사건은 더 복잡하게 얽혀간다.
초반부에는 전임 유령작가의 죽음이 타살이었다는 의혹을,
그 다음에는 전 영국수상이 CIA의 요원 출신이었다는 의혹을 제시하며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유령작가]는,
후반부에 그 의혹들이 하나로 묶여지면서
거대한 정치 스릴러로서의 힘을 발휘하는데 성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