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아내라서 미안하다는 내 반쪽
2024.02.09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아내가 묻습니다.
그녀 : 여보, 손익분기점이 뭐야?
나 : 응?!
그녀 : 오늘 다른 대표님이 손익분기점 뭐라 했는데 뭔지 몰라서 말 안 했어 그냥.
나 : …(너는 직원을 여럿 둔 사업자대표자나.)
어느 날 후식을 먹다가 아내와 대화 도중.
그녀 : 여보, 오늘 제일은행 문자 왔는데 이율변경? 이게 뭐야?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나 :
그… 이자율이라고…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하잖아? 그 이자금액을 책정하는 기준이라
보면 돼.
그녀 : 그럼 첫 30일 0.01%는 뭐고, 이후 3%는 뭐야? 막 이렇게 바뀌는 게 맞는 거야?
나 : 음.. 이건 파킹통장이라 초반에 이율변경이 잦아.
그녀 : 파킹통장은 뭐야?
나 : 아 잠깐만, 나 화장실.(후다닥)
저의 아내는 백치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금융과 경제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저
본인이 할 일이라고 주어지면 열심히 하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귀욤 뽀짝인 내
아내.
결혼 후 큰 충격에 휩싸인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사정이 있어 수요일 같이 휴가를 내고 오
전에 볼일을 본 후 집에 돌아왔습니다. 인터넷 쇼핑을 한다며 휴대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저
에게 몇 개를 보여줍니다. 서로 이야기하며 하나를 골랐습니다.
약 10분쯤 뒤. 아내가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습니다. 갑자기 옷을 입는 아내에게 물었습니
다.
나 : 왜? 어디가? 오전에 다 일 보고 왔잖아.
그녀 : 아, 아까 주문한 거 무통장입금 하려고.
나 : 응? 아까 결재까지 한 거 아니야?
그녀 : 했지. 무통장입금으로 했는데?
나 : 아니, 바로 결재하기도 있던데 왜 무통장입금을…
그녀 : 나 실수한 건가? 나 항상 이렇게 해왔는데…
그렇습니다. 바로 결재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무통장입금을 하러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계좌를 등록하면 바로 결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
하고 말이죠. 이 귀찮은 짓거리를 37년을 해왔던 것이었죠.
알려주었습니다. 계좌등록을 하는 방법과 결재할 때 어떻게 해야 무통장입금을 하지 않고
결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는 며칠 뒤.
아내는 친구들 몇 명과 생일계를 합니다. 서로의 생일이 되면 5만 원씩 보내주는 소소한 계
모임이었죠.
5명이 하던 그 작은 계모임은 생일이 되면 20만 원이 입금되는 마법의 날이었습니다. 아내
는 생일날이 되면 저와 먹는 외식보다 그 돈을 더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ㅋㅋ)
저녁 8시 외식을 마치고 돌아와 거실에 앉아 후식을 먹던 우리.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대뜸 어딘가로 전화를 겁니다. 개의치 않았어요. 대화가 잠시 중단된 거실은 조용했고, 휴
대폰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객님 계좌의 현재 잔액은.. xxxx원입니다.
그렇습니다. 계좌잔액을 전화로 확인하던 것이었습니다. 은행 대표번호로 전화를 해서 잔
액을 확인하던 아내.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기를 뺏어 들고 설치어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은행어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 이것이 37살 여성의 휴대폰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간략한 그녀의 휴대폰. 은행어플을 깔
아줍니다. 너무나 신기해하던 아내의 눈빛. 신세계라며 저에게 가끔 천 원씩 보내던 그녀.
내친김에 인터넷뱅킹도 알려줍니다. 공인인증서가 무엇인지부터 발급받는 방법까지. 노트
에 써서 줍니다. 가서 신청하라고. 혼자 못 가겠답니다. 결국 다음날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
어 같이 가서 신청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폰어플로의 뱅킹에 눈을 떠버린 그녀는 인터
넷뱅킹은 잘 사용하지 않더군요.
대화를 하다 본인이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끊임없이 물어보는 아내. 하루는 그럽니다.
– 미안해. 내가 너무 무식해서. 다른 집 아내들은 이러지 않을 텐데. 그치?
전혀. 아닌데? 난 이런 네가 너무나 좋은데? 하나도 무식하지 않은데? 모를 수도 있는 거
지.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이제 알았으니 된 거잖아. 개념치 말아.라고 말하니 그런 어려운
단어 쓰지 말라는 아내.
난 네가 최고다. 스스로 무식해서 미안하다 말하는 너의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답
다. 내 삶에 널 만난 건 인생최대의 로또이자 행운이다. 고맙다. 이렇게 모나고 성질머리 더
러웠던 나를 품어주어서.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합니다. 앞으로 평생 의리 지킬게.
이 글을 아내가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평소의 제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글이라서 깔깔대
며 배꼽빠져라 웃을게 분명하거든요.(ㅋ)
by. 우너빈 https://brunch.co.kr/@woonubin/54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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