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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 전도연....전은하 황정민....김석중 윤제문....재호 류승수....철규 나문희....석중모 정유석....천수 고수희....황유순 김상호....김경배 김부선....김여인
상영관 / 인천 애관극장
너는 나의 운명 / 진창 속에서 건져 올리는 순정
한동안 단순한 웃음을 자아내는 조폭성 코메디물 영화가 극장가를 장악하여 모든 영화마다 웃음이 넘쳐흐르더니 이제는 멜로성의 뜨거운 눈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불치병, 엇갈린 운명의 장난 등 웬만한 멜로성 레퍼토리는 다 나온 상황에서 뻔한 설정이나 전개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박진표 감독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은 통속 멜로에도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배우가 나오고 어떤 감독이 연출하느냐에 따라 관객의 반응은 달라진다는 것을 확신시키면서 새롭게 영화의 저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굳게 믿는 36살의 우직한 농촌 노총각 석중(황정민 역)은 서울에서 내려 온 다방 아가씨 은하(전도연 역)가 스쿠터를 타고 차배달 나가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아침마다 그는 자기가 키우는 젖소의 우유를 짜서 예쁜 병에 담아 장미꽃과 함께 선물하기도 하고, 피곤한 은하를 위해 일부러 티켓을 끊어 그녀를 편안히 쉬게도 한다. "순정도 지나치면 멍청한 거지." 차 배달을 나가지 말라며 애원하는 석중에게 은하는 매몰차게 대꾸한다. 한국의 멜로물, 그중에서도 신파 멜로는 순정에 의한, 순정을 위한, 순정에 관한 장르이다. 은하가 근무하는 티켓다방 이름도 순정다방이다. 1975년 개봉된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당대의 호스티스 멜로물들은 당시 급격한 한국사회의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나 주변부로 계급적 추락을 거듭하는 여성들의 인생유전에서 톡톡히 눈물을 뽑아냈다. 이후 호스티스 멜로 장르 안에서 인생에 대해, 또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감독은 박진표 감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3년에 개봉한 정진우 감독의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는 흑산도 창녀인 은주와 그를 사랑했던 총각 두진의 순애보를 흑산도 올로케이션으로 완성한 작품이었다.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죽어서도 헌신하는 남성상'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여자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하나의 이념처럼 받드는 새로운 멜로의 공식이 등장하는 것이다.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오직 뒤에 남을 아내의 앞날만 걱정하는 남편의 순애보를 그린 <편지 (97년)>나 이후 <약속(98년)>등이 그 예다.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죽음조차도 이 사랑을 변질시킬 수 없다는 불변의 사랑을 주제로 여성 관객들을 울렸다. 1997년 개봉된 <노는 계집-창>도 이 계열의 계보 안에서 임권택 감독만의 독특한 인장을 남겼다. 이들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은 한결같이 <너는 내 운명>의 석중처럼 순박하고 우직하고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는다.그들은 부박한 여자 주인공들에게 고향이 되기도 하고,구세주가 되기도 한다.아니 죽어서까지 헌신하는 남자들이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은 “세상에 안 변하는 게 어딨어? 사랑도 변해”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던 은하가 석중의 손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외치게 되는, 사랑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모습을 억지스럽지 않게 보여준다.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의 행복도 잠시, 은하의 전 남편을 자처하는 천수가 나타나 은하를 돌려달라고 하고, 석중은 자신의 유일한 대화 상대인 젖소를 팔아가면서 은하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석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건소에서는 은하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너는 내 운명>은 70, 80년대의 호스티스 멜로가 은근히 겨냥하고 있었던 ‘벗는다’는 문제, 즉 에로티시즘에 대한 강박감이 없다.그러므로 여주인공의 육체에 더이상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농촌에 불어닥치는 국제결혼 문제나 에이즈와 연관된 인권과 언론의 냉대, 혹은 석중과 석중의 어머니 위에 차갑게 군림하는 형으로 대표되는 가부장 문화 같은 사회적 디테일들을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삶의 조건으로 가감없이 짚어 나간다. 다큐멘터리 PD 출신답게 우리 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들인 박진표 감독의 노력이 전도연과 황정민의 눈물 연기와 잘 버무려져 있다. 박진표 감독은 신파 멜로인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오히려 고정된 카메라로 등장인물들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예를 들면 석중이 은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돈을 건네고, 은하가 석중이 쥐어준 돈을 뿌릴 때, 감독은 나선형의 계단에서 신파적 감정으로 충만한 이 장면을 그냥 지켜본다. 그러나 박진표 감독이 만드는 것은 영화이지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두 시간의 장편을 끌고 가는 측면에서 박진표 감독은 가끔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서 실수를 한다. 예를 들면 은하가 석중의 귀에 뽀뽀를 하고 이어 석중이 귀를 만지는 장면은 귀여운 방식으로 매치 컷이 되어 있지만, 은하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석중의 앞을 지나는 신이나 일련의 오토바이 장면에서는 연속 편집의 기본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다. 또한 감정의 충만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백장면이나 속도 감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일단 습관적으로 배우의 행동이나 대사를 따라 커팅을 하는 연출버릇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석중에게 몸을 주던 날, 은하는 침대에서 회한이 잠긴 얼굴로 고즈넉이 누워 있다. 이 장면에서 전도연의 얼굴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감독은 전도연의 클로즈업 이후 다시 황정민의 시점 숏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들어가는 황정민의 동선으로 컷을 짠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의 클로즈업은 전도연이란 배우의 연기력이 출중한 이상, 석중의 시점 숏을 굳이 넣지 않아도 더 길게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서 떠난 은하의 이름을 부르며 파도가 넘실거리는 제방에 서 있는 석중의 뒷모습을 잡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감독은 황정민을 잡은 롱숏과 그의 얼굴 클로즈업을 함께 붙이는데, 사이즈의 매치가 전혀 맞지 않는 편집으로 인해 감정의 선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특히 감독이 열심히 찍은 컷과 그렇지 않은 컷간의 차이가 너무 심해 전반적인 영화의 톤이 많이 튄다는 것이다. 과수원에서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나 잡아봐라를 하는 두 사람과 포도주를 마시면서 목욕하는 알콩달콩한 신혼장면의 경우, 배경은 유독 화사하고 미술과 촬영 모두에서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한 한때를 묘사한 이들 장면은 사실 다른 장면들과 통합적으로 작용하기보다 여타 트렌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상투성을 영화에 부여할 뿐이다. 특히 은하를 가둔 감옥에 꽃잎이 흩날리는 판타지 장면 역시 <오아시스>의 연출을 떠오르게 할 만큼 이 장면만이 따로 논다. 이야기를 요약하고, 좋은 소재와 연기를 삶 속에서 이끌어내는 것 외에 박 감독에게는 자신의 영화가 어떤 형식을 갖출 것인가, 자신이 찍은 이 한 컷이 다음 컷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마도, 사회의 따돌림과 죽음 앞에서도 사랑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자신을 걱정해주던 벗들과 형제자매와 부모가 부당한 이유로 등을 돌릴 수 있는 곳에서조차, 사랑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은하와 석중은 운명과 사회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내린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온몸으로 그 차단막을 돌파한다. 그들의 순정은 가슴 아프지만, 종내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순정이라는, 이제 사어가 되어버린 듯한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감동적으로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사랑의 진정성을 놀라운 이미지의 힘으로 길어올린다는 데 있다. 비루한 현실을 실사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진창 속에서조차도 꿈틀대는 사랑의 강인함을 한 터럭도 유실하지 않은 채 건져낸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변할 수 없다고 답하는 자세는 눈물겹다. 정직하면서도 할말은 다 하고, 그 앞뒤를 솜씨있게 손질까지 해내는 데 믿음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박진표 감독이 HIV 양성인에 대한 닫힌 시각을 열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그러나 반면에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은 ‘‘너는 내 운명’은 실화가 아닌 판타지‘라는 글을 통해 영화가 실제로 언론에 난도질당한 HIV 양성인 K씨의 비극을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고 크게 비판했다. 결국 영화 속에서 부부의 이야기를 단순한 화제거리로 삼은 기자들처럼 영화도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실제 주인공인 K씨는 다시 부활되었다. 실제 그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게다가 사실 왜곡까지 하면서 말이다. 한국 에이즈 재평가를 위한 인권모임은 실제 K씨를 언론의 마녀사냥과 법원의 부당한 판결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지금도 에이즈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인가. 실화에 모티브를 따 와서 50% 가공으로 만들어 낸 영화로 인해 실제 인물들이 받아야 할 상처는 누가 달래줄 수 있단 말인가. 영화를 통해 단 한명이라도 에이즈 사건의 진상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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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곳 저곳에서 짜집기하여 비겁하게 급조해 낸 최고야의 정말 비겁한 레포트.^^
스쿠터타는 아가씨! 사십줄에 다가온 청년은 사랑을 하고 같이살게되고 ..알고보니 에- 이-즈환자.. 시골목장에서 행복을 꿈꾸던 순진한 청년..아아... 대단한 비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