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念)과 해탈
또 이런 사념(思念)을 해야 합니다. ‘온갖 인연[衆法]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주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생겨난 것도 오직 인연이 모였으므로 생겨난 것이요, 소멸하는 것도 오직 인연이 흩어지므로 소멸하는 것이다.
應作是念,但以眾法合成此身,起唯法起,滅唯法滅。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관상(觀想) 수행법을 하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병이 났을 때는 하나의 염(念)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염은 생각[思想]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념(思念)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작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높은 열이 난 경험이 있겠지요? 열이 나서 혼미할 때에는 당신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자신이 병이 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앉아서 생각이 오고가는데, 모두 망상입니다. 염이 아닙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에 ‘나무아미타불’ 이 여섯 글자나 혹은 ‘아미타불’ 네 글자가 다 사라져버렸지만 단지 이 염두만 걸어놓고 있어야 합니다.
염은 상사병(相思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넓은 의미의 상사병입니다. 단지 남녀사이의 상념만은 아닙니다. 주식투자를 하여 돈을 벌고 싶은 심리도 염입니다. 때때로 주식의 가격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생각하고 있을까요, 생각하지 않을까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또 수시로 놓아버리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상사병이요, 바로 염입니다. 당신이 연애하거나 주식을 통해 큰돈을 벌려는 생각을 염불로 전환시켜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염이 성취되면 신체 4대가 분리(分離)할 때에 당신은 신체를 놓아버려서, 고통스럽도록 내버려두지만, 이 염을 틀어쥐고 한 찰나사이에 뚝! 끊어지면서 마치 거북이가 껍질을 벗듯이 하늘위로 날아올라갑니다. 이 염이 굳건하면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일생동안 염불하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이 하나의 염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몸이 고통스럽거나 뇌세포가 타서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나무아미타불 이 몇 자를 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명호를 ‘염할 수 있는 그것’은 이것을 생각하자마자 바로 됩니다. 매 글자마다 꿸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아미타불의 불상을 본 적이 있으니 그 고비에 이르러서는 한 생각 사이가 바로 그 불상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설사 왕생하지 못하고 다시 환생하여 올 때는 틀림없이 외모가 좋고 또 총명하며 절대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의 염은 무지(無知)가 아니요 망상이 아닙니다.
유마거사는 당신더러 이 염을 일으켜 ‘온갖 인연[衆法]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이 몸[衆法合成此身]’을 관하라고 합니다. 이때에 이르러서는 이 몸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겨난 것도 오직 인연이 모였으므로 생겨난 것이요, 소멸하는 것도 오직 인연이 흩어지므로 소멸하는 것이다[起唯法起, 滅唯法滅]’, 생각 생각이 불법 중에 있으면서 모든 생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늘 병이 났으면 내일 좀 좋아지는 것, 이것은 모두 생멸법으로서, 허망하며 공한 것입니다.
또 이 (인연소생)법은 (그 화합하는) 각종의 요소가 서로 알지 못하여, 생겨날 때에는 나가 생겨난다고 말하지 않으며, 소멸할 때는 나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又此法者,各不相知,起時不言我起,滅時不言我滅。
온갖 인연으로 생겨나는 법[一切因緣自生法]은 저마다 서로 모릅니다. 예컨대 우리들이 의학적인 상식에서 알듯이 몸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인데 당신은 정말로 알까요? 당신이 어디에 부딪혀서 한 곳에 상처가 났다면 세균이 들어갑니다. 백혈구는 즉시 그 부분을 포위하는데, 이것은 누가 명령을 내렸을까요? 소방대보다도 동작이 더 빠릅니다. 신체 안은 대단히 바쁜데 당신은 압니까? 온갖 법[諸法]은 저마다 서로 모릅니다. 이것이 그 하나입니다. 당신은 다시 한 번 체험해 보십시오. 제가 지금 이 말을 다 하고 나면 다음 한 마디를 제가 뭐라고 할지, 당신도 모르고 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생각하지만 앞의 한 염두가 어디로 떠났는지 자기는 모두 모릅니다. 뒤 한 염두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무엇을 생각할 지를 자기 스스로 자신이 없는데, 그것은 갑자기 솟아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법은 저마다 서로 모릅니다. 흐르는 물처럼 앞의 한 물결이 일어나면, 그것은 뒤의 한 물결을 모릅니다. 뒤의 한 물결은 일어났어도 앞의 한 물결이 어디로 갔는지를 모릅니다. 저마다 서로 모릅니다. 그러나 온갖 중생은, 특히 부처님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서로 알지 못하는 속에서 한사코 서로 알기를 구하려고 합니다.
온갖 것이 모두 인연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생겨날 때에는 나가 생겨난다고 말하지 않으며, 소멸할 때는 나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起時不言我起, 滅時不言我滅].’ 우리의 염두(念頭)같은 것이나 물리세계의 온갖 변화 같은 것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병이 난 것도 이와 같습니다. 당신이 감기가 들면 바로 여러 병들이 저마다 서로 몰라서, 올 때에는 나가 온다고 말하지 않고 갈 때는 나가 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느 때에 감기가 걸릴지 당신은 아예 모릅니다. 당신이 약을 먹어 다 치료하였어도 어느 때에 좋아졌는지도 모릅니다. 감기가 떠나갈 때도 당신에게 작별인사 한 마디를 통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도 그렇고 사회속의 매 구성원마다 저마다 독립적이어서, 일어날 때는 나가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고 소멸할 때는 나가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 도리에서 참구하여 통하면, 당신이 현교를 배우든 아니면 밀교를 모두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저 병이 있는 보살은 법상(法想)도 없애기 위해서 마땅히 이런 사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법상도 전도(顚倒)된 것이다. 전도된 것은 바로 크나큰 병이므로 나는 응당 이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彼有疾菩薩,為滅法想,當作是念,此法想者,亦是顛倒,顛倒者,即是大患,我應離之。
병이 나는 것도 하나의 연(緣)입니다. 무슨 연일까요? 병연(病緣)입니다. 때로는 사람에게는 작은 병이 나서 앓아보는 것도 꽤 좋습니다. 특히 바쁜 사람은 가끔 작은 병이 나고 싶습니다. 많은 일을 미루어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이 병이 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슨 병이냐고 물어보면 정치병(政治病)이라고 합니다. 작은 병을 빙자하여 일단 도피하는 것입니다. 이 도리는 여러분 청년들은 아직은 그 경계에 이르지 못했는데, 병이 난 것을 이용하여 도피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습니다.
온갖 법[諸法]은 화합하는 각종의 요소가 서로 모른다는[各不相知] 원칙은 모두 연기적이요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소멸하는 것임을, 이해하면 당신은 성공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또 법에 사로잡혀버리고 이치[理]에 사로잡혀버립니다. 제가 말한 것처럼 부처님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온통 얼굴에 부처님 상이며 하는 말마다 부처님 말입니다. 어떤 학우는 전화하면서 상대방에게 무슨 물건을 ‘공양’하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곁에서 듣고서 ‘무슨 공양이라고 말하느냐’고 꾸짖습니다. 물건을 누구에게 ‘주겠다’ 라고 하면 될 것인데 한사코 공양이라는 말을 씁니다. 왜 하는 말마다 부처님 말일까요? 부처님을 오래 배우고 난 뒤에는 말하게 되면 또 다른 술어들을 씁니다. 이게 바로 부처님을 배워도 통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승보살은 배워 통해서 입에는 이러한 술어가 없습니다. 무슨 ‘반야’ ‘공양’ ‘보시’ ‘인연’ 이런 것들은 모두 술어인데, 당신은 알지 못하는 사람한테 이런 것을 쓰지 말고 보통말로 해야 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저에게 말합니다. ‘여기 와서 당신하고 환담을 하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저 학생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제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비정상입니다. 하는 말마다 부처님 말이요 온 몸이 부처님 끼입니다. 장엄한 모습을 하나 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많이 싫습니다! 그러므로 사회는 우리 이런 무리의 사람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봅니다.’
불법을 배우면 법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어떤 직업을 오래 하다보면 직업병이 있습니다. 저처럼 선생 노릇을 오래 하다보면 걸핏하면 사람을 꾸짖습니다. 남을 보면 모두 옳지 않습니다. 저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과 따라 잘 어울립니다. 전에 한 번은 남이 꼭 저를 식사에 초대하겠다며 교육부의 차장도 함께 모시겠다고 청했습니다. 식사를 다 하고 난 다음 이 분 차장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당신은 자리가 다 끝날 때까지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요리를 조금도 드시지 않았으며 한 마디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남이 저에게 술을 따라주면 저도 잔을 들어 시늉을 합니다. 요리마다 조금씩 맛보고 곧 놓아버립니다. 남이 뭐라고 얘기하면 저는 말합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예, 예, 감사합니다.’ 저는 절대 여러분들처럼 점잔을 빼어 혐오감을 자아내는 표정을 지어 직업병을 범하지 않습니다. 남은 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추켜세우지만, 저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학문이 훌륭하다고 말하면 저는 강호(江湖)를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하며, 제가 선(禪)을 이해한다고 말하면 ‘저는 그저 게걸스런[참饞: 게걸스럽다. 좋은 음식만 먹으려 하다. 탐내다 부러워하다는 뜻인데 중국어 발음은 선禪자와 같은 chan 이므로 유머적으로 말씀하신 것임/역주]것만 압니다. 자, 자, 자, 어서들 드십시오, 어서들 드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부처님을 배우면 해탈을 배우는 것입니다. 도를 배우는 것은 소요(逍遙)를 배우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처님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해탈하지도 소요하지도 못합니다. 유마거사는 우리에게 해탈하고 소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법에 사로잡힐까봐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이런 법상도 전도(顚倒)된 것이다. 전도된 것은 바로 크나큰 병이므로 나는 응당 이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此法想者, 亦是顚倒, 顚倒者, 即是大患, 我應離之].’ 여러분이 부처님을 배우고서는 하는 말마다 부처님 말이요 온통 얼굴이 부처님 끼라면, 그것은 바로 중생전도(衆生顚倒)입니다. 본래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또 이렇게 많은 것들을 페인트칠한 겁니다. 인생은 이미 많은 밧줄들로 묶여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밧줄들에서 해탈하고 싶어 하면서도 또 해탈 밧줄 가게에 가서 밧줄들을 삽니다. 반야나 진여 등으로 다시 자기 몸을 묶습니다. 그러므로 법상(法想)도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법상도 전도(顚倒)입니다. 한 생각 전도는 크나큰 병통입니다. 역시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