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미찌개의 맛
목필균
'누르미찌개 준비는 내가 할테니, 넌 밥만 해.'
매주 목요일이면 만나는 혜화동 친구들 단체 카톡방에 올려진 현숙이 제안에 "누르미찌개'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현숙이는 친구들을 위해 손수 만든 만두로 입맛을 돋아 주기도 한다,
내 집으로 모이는 친구들에게 드문드문 나는 수제비를 해서 먹기도한다.
사 먹는 음식하고는 다른 정을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이렇게 친구들과 밥을 같이 해 먹는 즐거움이 내게 올 줄이야.
3년 전 40여 년 공직생활을 끝내고, 나는 혜화동 찻집 주인에게 청하여 낮 시간을 친구들과 찻집 공간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대학로 뒷골목 작은 찻집이라 그런지, 저녁 6시가 되어야 문을연다. 비어있는 낮시간을 대학 친구들과 틈만 나면 모여드는 아지트였다.
처음에는 모이는 친구들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혜화동에서 열리는 동방문화 인문학 강의를 3년 동안 함께 들으면서, 매주 목요일 모이는 친구들이 고정되었다.
가난했던 대학시절에서 초등교사로 한 길을 걸어왔던 다섯 친구들은 개성도 각자 강한 편이지만, 비슷한 가정형편,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검소한 생활습관을 공통점으로 잘 어울렸고, 정으로 뭉친 절친이 되어 갔다.
그러다가 작년 8월 나는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공부를 도중하차하고, 자식들이 있는 안양 재활병원에 두 달이나 입원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혜화동에서 공부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안양 병원까지 들렸다가 가는 일을 5주째 계속 하며 힘을 주었다.
난 미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눈물 나게 고마운 친구들은 퇴원을 하고서도, 당분간 외래치료를 받아야 하는 나를 위해, 안양 범계역 근처에 마련한 임시 거처까지 찾아왔다.
따뜻한 봄이 되어 내가 활기를 되찾으면 다시 혜화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갑자기찾아온 뇌경색 마비 증세로 가족들과 친구들을 놀라게 했지만.. 다행스럽게 지금은 불편한 곳이 없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집중 관리를 하고 있다.
사정이 있는 친구나, 해외여행 중인 친구들이 빠질 때도 있지만, 안성에서, 수유리에서, 수서에서, 용산에서 모여드는 친구들이 있어서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열 네평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안양천 산책도 하면, 하루가 정말 행복하다.
어제 '누르미찌개'의 정체를 알았다.
'누르미'는 '부침개'의 사투리였다.
묵은김치를 헹구어 썰은 것을 넣고, 끓이다가 양념고추장으로 간을 맞추어 끓이고, 몇 가지 부침개를 넣어서 다시 끓인 찌개였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께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남은 부침개를 활용해서 먹던 것인데, 겨울에는 더욱 맛있다는 것이다.
현숙이가 끓인 누르미찌개가 구수한 고향의 맛 그대로였다.
갓지은 밥과 누르미찌개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니 넘치는 행복감이 들었다.
고마운 친구들~~~ 그래서 힘이 난다.
첫댓글 목시인님의 갑작스런 발병으로 인해 더욱 굳어진 다섯 친구들의 우정에 큰 감명을 받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의리를 외쳐대는 남자들 이지만 이렇게 정이 넘치게 일주일 중 한날을 함께 즐길수 있는 여유는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죠.
네명 친구의 격려와 응원을 발판삼아 재발방지 관리 잘하시고 혜화동 아지트로의 복귀가 이루어질 봄이 오길 네 친구들에 빌붙어 기다려 보렵니다..
그리고 어머니 손맛 누르미찌게가 갑자기 땡기는 오늘 오후엔 식은 빈대떡 사다놓고 누르미찌게 끓여달라 마눌님께 부탁해 봐야겠어요..ㅎㅎ
예전에 모시던 상사 한분이
모친께서 명절 지나면 누르미찌개처럼
모든 걸 함께 넣어 끓여 주시던
어머님 음식 생각이 난다고 가끔 이야기 하시더군요
저도 가끔 그렇게 직접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누르미란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