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외우는 '국민교육헌장'
그리고 '훈민정음'... ^^
이때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식
'세발 자동차' 보니...
'코로나'도 생각나네...
생활지도부? 선도부?
그때 들은 얘긴데.. 여학생 선도부들이 더 악락했다고.... ㅎㅎ
' 찹쌀~떡! ' '망개~떡!'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
(한달전인가? 어릴때 낚씨를 했던 '해운대' 위의'청사포'에 가니...
교복 입고 이걸 파는 사람 있더군...
'똥바가지'... 군인 철모로 만든것 이었지...
참으로 용도도 다양하고 튼튼한 것이었지...
내 어릴때 어디선가? 밭에서 '똥 거름' 부어 주는것을 본것 같은데...ㅎㅎ
허기사 내 어릴때... "똥~퍼~~!" 하면서 다닌 사람 있었는것 같은데...
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똥'을 팔았었던 같은데..?
그러고보니 어느날인가 집 지붕 수리때 '일본도(日本刀)'가 나왔었는데...
글씨~ 그걸 우리 엄니.. 대장간에 가서 부엌칼을 만들어 버리셨는게 기억이 나네... ^^
참, 그리고 품바타령을 들으니...
깡통을 들고 밥 얻으러 오는 '거지'께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따뜻한 쌀밥을 퍼 주시던 울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
(우리는 '거지'라 하지 않고 '껄뱅이'라고 했던게 생각이 나네...
철은 없었지만 그래도 놀리지는 않았었지....) -,.-
'비닐'우산' 파는애들...
지금 생각하면 우울한 시대였지만 얘들 정말 대단한 애들...
강넹이 튀기는것이지요?
동래 장날이면 꼭 등장했었던 기억이...
구슬치기는 구슬치기인데...어떻게 했더라? 삼삼...
정말~ 요건 어린 사내 애들 개개인에게는 거의 보물 수준이었지...
어릴땐 요걸 '차랑'이라고 했지? '차랑' 뜻은 지금도 모르지만...
요건 지금 생각하면 '볼 베아링'이었는데...
요것? 하나만 있으면... 지금말로 완전 '짱~!"이었지...
이것하나 있으면 정말 '무적천하'였지...
헌데, 문제는 '다마치기(구슬치기)'에 안끼워 주었던 기억이...ㅎㅎ
왜냐구여? '사기'로 만든 구슬과는 게임이 안되니까...
헌데, 계집애들 한테는 뭐니 뭐니해도...
그림으로 봐서는 이 모습 이건 그자체가 완전 예술이여 ~ ! ^^
이 정도면 완전 고수?
고무줄놀이는 여학생들이 많이 했는데 온전한 고무줄은 거의 없었을걸?
고무줄 놀이가 시작하기만 하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모르는 남학생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연필깎이 칼로 고무줄을 싹둑 자르고는 도망가버리기 때문이지...
고무줄 놀이때면 남학생들이 구박과 욕을 얻어먹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재미로 고무줄을 끊고, 여학생들은 그런 남학생들을 원망하면서도
잡으러 다니고... 못 잡을 줄 뻔히~! 알면서... ㅋㅋㅋ
한편으로는 인기있는 여학생들이 그런 장난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
아마 이글 읽는 누군가는 가해(?)를 했을 사람있고 당한 그때 여학생도 있을꺼구먼...
가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여학생은 인기가 없었겠져?
못나서? ㅋㅋㅋ 이제 자수하셔도... ㅎㅎㅎ
헌데, 그것을 즐기는 와중에 마냥~ 좋다는 감성은 있었을 수 있었으니... ㅋㅋㅋ
고무줄놀이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래이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등의 동요도 많았지만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의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등의 노래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들은 기억은
"무찌러자 오.랑.캐. 머찌마니나 (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
대~한너머 가.는.대. 저~기로구~나~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 )
나~가자 나.아.가. 성~길래길로 (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
나~가자 나아가 성.길.래.길.로~ (나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
정말 햇 맑은 모습이 너무 예뻐~!
'김일(金一)' 선수의 레슬링이 있는 날이면...
'여로'연속극과 같이 길에 사람이 안다닐 정도...
'김일 해딩'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유행어?
'바리깡...' 남학생들... 많이도... ^^ '고속도로'라하여...
머리좀 긴학생 대상으로 머리 중간에 많이도 밀렸지... ㅎㅎ
'학교 및 시장통에서 파는 병아리'
지금의 애완견 등에 해당되겠지만...
지금도 그러하지만 너무 예뻤던 병아리...
어쩌다 죽어버리면 묻어주었고 십자가도 꼽아주고 슬퍼했었지...*^^*
'술레잡기'?
참으로 순수한... 어떻게보면 거의'바보' 수준의 놀이라 하면
우리 고전의 놀이를 폄하하는 것이겠지만...
얼마나 순수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민족성을 가진
우리들 스스로를 추겨 세울수 있는 놀이중 하나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주산대회? 이때 "누구누구는 주산 몇급 몇단" 했었지..?
허기사 요즘 애들은 늙은(?) 나 보다 암셈을 못하는것 같으니....쯧쯧쯔 ...
이때는 공부를 못해서 '여상'에 간것이 아니고 집안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탓에
여상에 갔었지... 그때사 정말 애들을 많이도 낳아서...
많은 애들 카우기에는 너무 쪼들리기에 시집을 빨리 보내려했었지...
그래서 지금의 내 또래의 부모는 지금에서는 정말 애국자이시지....
'컨닝' 방지의 일환이었지.... ㅎㅎ
'말타기'라 했는것 같은데?
부산 동래가 고향 이라서 인지 지금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시까시까 맘보..???? "라고 하면서 맨 앞놈과 '가위바위보'로 승부(교체)를 짓는데...
일부러 '가위바위보'를 천천히 하면서 시간을 끌었었지.... ㅎㅎ
멀리서 뛰어 타고 아랫놈에게 엉덩이로 굴리던게 생각나네...
(허기사 내가 어릴땐, 동래가 군청이 있는 고읍이자 대도(大都)?)라서인지?
서면이나 남포동을 간다면 "어디가노?" "부산간다" 고 했었지?
그래서 지금의 '교육대학', '한양아파트' 못가서 다리를 '부산다리'라 했지?
실제 이름은 지금도 모르지만...
썰매.... (그때는 멋도 모르고 '스케이토'라고 핸것 같음^^)
지금의 '동래 메가마트'앞 그리고 '동래 아파트' 등의 아파트 자리엔
거의 '미나리', '연밭'이었고 변전소도 있었고...
썰매도 많이 탔지... 그놈의 굵은 철사 구하기가 어려웠던지...
그도 그러하지만 바닥에 '기역字('ㄱ') 형의 철 부착 썰매를 갖고 있는애를 보면
정말 정말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그건 완전히 '티코' 와 '벤츠'에 비교 할 수 있겠지? ㅎㅎㅎ
그러다 논밭 주인인가 누군가 잡으러 오면 도망갔었고 그러다 쳐박히기도하고
그 추운 겨울에 집에 가면 맞아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옷벗고 불피워서...옷 말리던 기억이 나네...ㅎㅎ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얼음이 내려 않는것을 '나이롱 얼음판'이라했었지...
그위에 썰매를 타고 간다는건 정말 스릴 만점이었지... ^^
남자아이 여자아이 구분없이 했던 '십자치기'라했던가?
줄넘기였지...즐거워하는 애 모습을 보니 정말 햇맑은 미소가 너무 예쁘다.^^
(옛날)엄마들이 가장 아끼며 사고싶어하고...
별차이도 없는데 예쁜것 고르시던 모습들...
아마 내 어릴때 내 누나뻘 되는 누나의 시집가기전 혼수 장만으로
부모님들이 소위 '계'를 모아
딸의 시집 혼수(?)를 준비하곤 했었던것 같은데...
기억이 삼삼...
헌데, 혼수 준비로 소위 '브라더미싱','다이얼미싱'를 준비 한다면?
제법 부잣집이었지...
물론, 흑색전화니 백색 전화니 하는것도 있었구...^^
참, 웃을일이 아닌데...
첫댓글 저도 국민교육헌장 조금 외고 있답니다..
골목에서 고무줄 넘기도 많이했구요.. 담에 다시 올게요~~~ㅎㅎ
어디서 오래전 귀한 요런 사진들을 구하셨나요? 어릴적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
재미있네요~
학교앞 사진은 1968년도 나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