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지붕의 잡상(雜像)
잡상(雜像)의 설치 시기는 중국의 송(宋)대에 나타난 잡상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임진왜란(1592년) 이후에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전(宮殿)․누문(樓門)․신전(神殿) 등 전통적인 지붕의 네 귀 위에 장식하는 사람과 짐승 모양의 기와로 추녀마루 끝에 한 줄로 장식한다.
옛 중국에서는 궁궐지붕 위에 사람이 올라가 지켰는데 세월이 흘러 잡상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잡상은 건물을 수호하는 상징과 장식 등을 겸하고 있는데, 신선(神仙)․법승(法僧)․기인(奇人)․괴수(怪獸) 등의 상을 형상화하여 안쪽에 용머리를 두고 3․5․7 등의 홀수로 설치한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 : 호는 어우당(於于堂)의 《어우야담(於于野談)》과 《상와도(像瓦圖)》에 의하면, 내림마루나 귀마루의 끝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① 대당사부(大唐師傅) ② 손행자(孫行者) ③ 저팔계(猪八戒) ④ 사화상(沙和尙) ⑤ 이귀박(二鬼朴) ⑥ 이구룡(二口龍) ⑦ 마화상(麻和尙) ⑧ 천산갑(穿山甲) ⑨ 삼살보살(三煞菩薩) ⑩ 나토두(羅土頭) 순으로 상을 배치한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서유기》의 등장인물 또는 중국 토신(土神)의 이름이다.
이들은 모두 살(煞)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잡상으로 지붕 위에 놓이게 된 까닭은 전문(殿門) 수호와 불법홍보(佛法弘報)를 위함이었다. 그리고 용마루 양끝에는 치미라는 짐승이 앉아있다. 치라는 것은 바다에서 사는 짐승이며 화마(火魔)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 조선시대 목조건물의 가장 무서운 적은 "화재"였다. 그래서 화재가 나면 화마의 농간이라 믿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 가장 앞쪽의 말을 탄 도인상(道人像)을 선인상(仙人像)이라 하고 뒤에 오는 상들은 주수(走獸)라 하는데, 10주수 상으로는 ① 용(龍) ② 봉(鳳) ③ 사자(獅子) ④ 기린(麒麟) ⑤ 천마(天馬) ⑥ 해마(海馬) ⑦ 물고기[魚(어)] ⑧ 해태(해치) ⑨ 후[吼] ⑩ 원숭이 등이 있다.
그 숫자도 건물의 규모에 따라 다른데, 경복궁내 경회루(慶會樓)는 11개, 숭례문(崇禮門)은 9개, 돈화문(敦化門)은 7개, 창경궁 홍화문(弘化門)은 5개 등이다.
여기에는 모두 손오공상이 앞에 있고 그 뒤로 사자․해치․봉 등이 있어 《서유기》의 내용만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이들은 모두 궁전이나 누문의 지붕에서만 보일 뿐 사찰 지붕에서는 그 예를 볼 수 없다.
※ 경복궁(景福宮)의 잡상
경복궁 경회루지붕에는 궁궐 내 건물 중에서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이 설치되어 있다.
10번째 까지는 이름이 있지만 11번째 잡상에는 이름이 없어 그냥 “아무거나”이다. 대당사부(大唐師父)-대당사부는 잡상의 맨 앞자리에 놓인다. 대당사부는 당(唐)나라 때 현장(玄獎)이라는 승(僧)으로 법명이 삼장법사(三獎法師)이다. 대당사부는 실제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삿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손행자(孫行者)-손오공(孫悟空)이라고도 한다.
돌 원숭이인데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삼장법사를 호위하며 길동무가 되었다. 서유기라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는 조화(造化)의 영물이었다. 손행자는 원숭이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삿갓을 쓰고 앞발을 버티고 앉아 있다.
- 저팔계(猪八戒)
손오공과 같이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에 갔던 멧돼지이다. 저(猪)는 돼지이고 팔계(八戒)는 부처님이 가장 싫어하는 여덟 가지의 음식물을 뜻하기도 한다. 얼굴의 모양은 돼지의 형상이며 삿갓은 쓰지 않았다.
- 사화상(獅畵像)
사화상(獅畵像)은 사화상(沙畵像)이라고도 한다. "獅"자는 사자이고 "沙"자는 서유기에서 나오는 사오정(沙悟淨)의 '沙'(사)자로 풀이하면 사오정 역시 손오공과 같이 삼장법사를 호위했던 괴물로, 원래는 옥황상제를 모시고 궁전에서 수렴지기를 했다는 짐승이라고 한다. 얼굴 모습은 사자 상을 하고 있으며 삿갓은 쓰지 않았다. 크기와 앉은 자세는 저팔계와 비슷하다.
- 이귀박(二鬼朴)
우리나라의 용어에는 보이지 않은 단어로 불교의 용어를 빌려 풀이하면 '二鬼'는 '二求'의 다른 음(音)으로 보아, 二求는 중생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욕구인데 낙(樂)을 얻으려는 득구(得求)와 낙을 즐기려는 명구(命求)이다. 허리의 앞과 뒤에 뿔이 난 짐승의 형상이다.
- 이구룡(二口龍)
입이 둘이어서 이구룡 이라 하며 머리에는 두 개의 귀가 나있고 입은 두 개로 보인다.
- 마화상(馬畵像)
마화상은 말의 형상을 말하고 있다.
- 삼살보살(三殺菩薩)
살(殺)은 살(煞)과 같은 의미이며 삼살(三煞)이란 세살(歲煞) 겁살(劫煞) 재살(災煞)등으로 살이 끼어서 불길한 방위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보살은 불교에서 위로는 부처님을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에 버금가는 성인(聖人)이다. 이 두 가지의 뜻으로 해석하면 삼살보살이란 모든 재앙을 막아주는 잡상이라고 생각된다.
잡상에서는 대당사부와 같이 인물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위에 팔꿈치를 받치고 허리를 꾸부려 앉은 모습이다.
- 천산갑(穿山甲)
인도 중국 등지에 분포된 포유동물의 일종이다. 머리 뒤통수에 뿔이 돋혀 있고 등이 다른 잡상보다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 나토두(羅土頭)
나토두는 "나티" 의 다른 표기로 짐승같이 생긴 귀신으로 작은 용(龍)의 얼굴형상 또는 검붉은 곰의 형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