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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기금 |
| 566만 파운드 |
노인 40만 명에게 매년 1인당 10파운드씩 지급 | 400만 파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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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9만 명에게 1인당 15파운드씩 지급 | 135만 파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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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5만 파운드 |
잔액(비노인, 장애인) |
| 31만 파운드 |
주: 토마스 페인(남경태 옮김). 2012. <상식>, p.114 참고
토마스 페인은 이러한 시민배당 방식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공화국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시민배당 방식이 실현된다면 토지 재산 제도에 의해 자연적 상속권을 빼앗긴 수많은 계층에게 국가적 정의를 실천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처럼 토마스 페인, 제임스 미드 등 많은 기본소득 사상가의 영향으로 근래 들어 제한된 지역과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세계 도처에서 기본소득제가 실험적으로 실시되고 있거나 논의되고 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영구배당을 실시하고 있고 나미비아의 일부 지역에서도 실시된 바 있다. 브라질을 기본소득법이 통과되었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보류되고 있고, 스위스는 기본소득제 실시를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된 바 있다. 현재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일부지역에서 실험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으며 중국의 충칭(重慶)에서는 토지가치의 고른 분배를 통해 기본소득의 가치를 실현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남시의 청년배당 실험은 정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뒤 이은 서울시의 청년수당 또한 정부와의 갈등이 있어 주춤했지만 신정부 들어와서 확대되고 있다. 이미 국회입법조사처도 관련 보고서를 통해 기본소득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2016.4.8.)한 바 있고 지난 19대 대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에서도 유아수당, 청년수당, 농민수당 도입에 관한 공약을 발표해 향후 기본소득제 도입의 가능성은 높아졌다.
2.2. 한국사회 문제와 기본소득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성공적인 나라로 평가받는다. 많은 개도국이 선망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들의 발전 모델이 되기도 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바쁘게 달려왔다. 그 결과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그 혜택으로 오늘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살게 되었다. 산업화만 이룬 것이 아니라 민주화도 큰 성과를 이룩 이룩했다. 군사독재의 긴 어둠의 터널을 마치고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와 국민의 손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완벽한 직선제를 쟁취했다. 사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픔과 희생이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해 피 흘리는 국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성취가 자랑스럽기만 하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의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모순적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정부가 주도해 대기업을 키워주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그래서 대기업에 온갖 혜택을 주었다. 자원과 사회적 기반이 워낙 빈약한 시기에 일부 대기업을 키운 후 이러한 성과를 사회 저변으로 확대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의 달성 이후에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장기간의 군부독재는 대기업 위주로 부를 더욱 심화시켰다.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농업과 농민의 희생을 가속화시켰다. 그래서 노동자와 농민은 이에 저항하며 독재권력과 독점자본에 맞서 싸웠고 그 지난한 싸움 끝에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성취해냈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투표)라고 한다. 남녀노소, 신분과 직업의 귀천이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1표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다. 미국에서도 흑인(1965년)과 여성(1920년)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자는 1인 1표제는 민주주의 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체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또한 모순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도 학식이 풍부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한 사람과 배움이 없고 의식이 흐릿한 사람이 똑같은 한 표를 갖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정치학은 최고의 사회과학으로 풍부한 지식, 고도의 판단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식견을 갖춰야 하는 학문이듯 정치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학식이 많거나 적거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모두에게 1인 1표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이는 곧 정치의 하향평균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1인 1표제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만인에게 동등하게 1인 1표제를 시행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실리를 추구하지만 정치는 균형을 추구한다. “가난을 걱정하기보다는 불평등을 걱정한다(不患貧,患其不均).”는 공자의 말씀처럼 무릇 정치의 덕목은 백성들의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학식과 식견이 있는 사람은 1표 이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1표 이하의 투표권이 주어져야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체계에서는 모두에게 1표가 주어진다. 이처럼 정치는 고도로 논리적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한 가치체계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상황을 보자. 우리나라는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실현했다.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외, 농업과 농민의 희생, 그리고 부와 권력의 독점에 대한 불만은 민주화의 열망으로 이어졌고 결국 1인 1표제라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하지만 성과는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은 1인 1표제의 선거제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투표를 한다면 그 성과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분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투표는 열심히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부 격차는 심화하고 노동자의 신분은 더욱 불안전해졌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소득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 출산율이 최저이고 비정규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빠른 산업화 시기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1:99 사회를 만들었다.
이처럼 1인 1표제가 민주주의 체계 하에서 균형사회를 이루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의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이다.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정치체계에서 보통의 서민이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재력과 ‘능력’있는 사람들이 민의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그들 자신 또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득권의 역사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와 권력을 누려온 세력들은 해방 이후에도 변함없이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주류로 성장했다. 비단,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언론, 문화 등 한국의 거의 모든 영역을 주도하게 되었다. 따라서 투표를 잘하더라도 이러한 고착화된 구조를 깨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그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일찍이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빈곤층이 늘어나는 것은 성장의 과실이 토지를 중심으로 한 기초 생산요소를 장악한 집단에 고착화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설파했다. 우리나라 30대 대기업에 속하는 269개사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약 833조 원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최근 IMF에서도 발표한 것처럼 더 이상 경제발전의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산업화 시기 민주주의의 1인 1표제는 정치를 통해 부가 골고루 분배되길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었지만 후기 고도산업화 시기, 즉 성장이 멈추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의 1인 1표제는 누구에게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기본소득제가 답일 것이다. 우리는 형식적 정치 민주화는 이룩했지만 진정한 경제 민주화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모순이 아닌 상생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빠른 산업화로 인한 불평등과 양극화가 지금처럼 심각한 상태에서 아직도 성장 담론에 벗어나지 못하고 사업 위주의 정책을 편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에서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데 현금이 필요하다면 현금(또는 현금과 유사한 것)을 지급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압축 성장으로 인해 희생을 당해온 농민이어야 한다.
2.3. 농업·농촌의 문제와 농민기본소득의 필요성
2.3.1.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와 농가소득 감소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정부와 대기업 주도로 이뤄졌다. 그리고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은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반강제적으로 개방의 길로 내몰렸다. 1990년대 초 UR 협상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EU, 호주, 캐나다 등등 거의 모든 농업대국과 FTA를 체결했다. 이처럼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계속되는 FTA 체결은 우리 농업을 파국으로 몰았다. 그나마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여겨졌던 쌀값마저 20년 전 가격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다소 회복되긴 했지만 농가소득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낮은 상태이다.
농산물 자유무역의 확대로 인해 농가소득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도시근로자에 비한 농업인의 소득 수준을 보면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1993년 말 UR 협상 타결시기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5%였으나 2012년에는 57.5%까지 하락했다. 2014년에는 61.5%, 2015년에는 64.4%로 다소 회복하기 했지만 2016년 쌀값 폭락 등의 원인으로 다시 63.5%로 하락했다.
문제는 현재 농촌에 뚜렷한 소득원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도농소득 격차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 <그림 3>와 같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가소득 전망에 따르면, 도시근로자가구 소득은 2017년 이후 연평균 3.1% 증가해 2027년에는 7,886만 원 수준인 반면, 농가소득은 2017년 이후 연평균 2.1% 증가해 도농 간 소득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27년 도시근로자가구 대비 농가 소득은 44,906천 원인 56.9%로 전망됐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평균 0.5%씩 감소하게 된다.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2018)
도농 간 소득격차의 확대로 농가 경영구조도 악화되고 있다. 다음 <그림 4, 5>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업소득 감소로 인해 전업농의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고 1종, 2종 겸업농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또한 농가 소득 가운데 농업의존도와 농업소득률도 갈수록 낮아져 농업 활동을 통한 소득 증대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농촌의 소득 감소는 자연스럽게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그동안 농산물에 대한 시장개방 확대로 농촌인구는 1980년 1,083만 명에서 1996년에는 469만 명으로 절반으로 감소했고 이후 2017년(추정)에는 245만 명으로 다시 절반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27년에는 2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가인구는 감소한 반면 고령인구의 비중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7년(추정) 농촌인구의 고령화율은 41.2%로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상태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7년 농가인구의 고령화율은 49.6%로 약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농촌사회 전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기에서 농정의 획기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표 2> 농가호수, 농가인구, 농림업취업자 동향 및 전망
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2018.
필자가 지난 2016년 5월 대산농촌재단을 통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업·농촌 연수에서 배운 사실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두 번의 세계대전, 폐허 속에서도 독일은 10년 만에 경제를 복구하고 어느 정도 재정적 여유가 생기자 곧바로 농업과 농촌 복구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1954년 정부와 의회는 농업에 대한 4가지 기본목표(일명 ‘그린플랜’)를 세워 국가의 가장 기본토대인 농업과 농촌을 재건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이러한 기본 철학과 가치관이 지금도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4가지 기본 목표는 지금 읽어보아도 어느 한 자 빠트릴 것 없이 논리정연하고 명쾌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농업·농촌을 어떻게 살리고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목표는 부족했다. 농업을 그저 산업화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더니 개방농정 이후에는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강조해 우리의 농업·농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농민의 삶을 보호하고 농민의 의무에 기꺼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독일 등 유럽선진국의 농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2.3.2. 농업직불금 규모의 부족과 형평성 문제
농산물 개방정책 이후 우리 정부에서도 농업구조개선 사업, 농촌개발사업, 그리고 농업직불제 사업 등을 통해 농가 소득 증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가운데 농업직불제 정책은 WTO 규정에 따라 피해를 보는 농민들의 소득보전을 위해 허용됐다. 1997년 경영이양 직접지불제, 1999년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 2005년 쌀소득 등 보전 직접지불제, 2015년 밭농업직불제 등 현재까지 10개의 다양한 직접지불제가 실행되고 있다.
목적 | 직불제명 | 도입시기 | 재원 |
공익형 | 쌀 소득등보전 직접지불제 (고정직접지불금) | 2005년 |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 (농특세전입금 계정) |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 (친환경농업) | 1999년 |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 | |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 (친환경안전축산) | 2009년 |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 (농특세 사업계정) | |
조건불리지역 직접지불제 | 2004년 |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 | |
경관보전 직접지불제 | 2005년 |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 | |
소득 안정형 | 쌀소득등보전 직접지불제 (변동직접지불금) | 2005년 | 쌀소득보전변동직접지불기금 |
FTA피해보전 직접지불제 | 2004년 | 자유무역협정이행 기금 | |
밭농업 직접지불제 | 2012년 | - | |
구조개선촉진형 | 경영이양 직접지불제 | 1997년 |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 |
FTA폐업지원제 (수산 포함) | 2004년 | 자유무역협정 이행 기금 |
* 자료: 농림축산식품부 시행지침 정리.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직접지불제에도 불구하고 농가소득 가운데 직접지불제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농가 평균 경작면적이 약 1.5ha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업직불금 지급체계에서 2가지 이상 중복 수혜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 결과 2013년 기준 농가소득 및 농업소득 대비 직접지불금 비중은 각각 2.7%, 9.2%로 불과했다. EU의 경우에는 대략 30%, 70% 이상인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직접지불금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부의 농림수산식품 예산 가운데 농업직불금 예산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참여정부 시기인 2007년 농림수산식품 예산 가운데 농업직불금 예산 비중은 20.7%까지 증가했지만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계속 감소해 2013년에는 7.8%까지 하락했다. 다행히 2014년부터 다소 회복하긴 했지만 2016년의 경우에는 쌀값의 폭락으로 변동직불금이 증가하면서 14.7%, 2017년는 19.7%까지 상승했다. 이는 농업직불금이 증가했다기보다는 그동안 불용 처리됐던 변동직불금이 쌀값 하락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표 4> 농림수산식품 분야 및 농업직불금 예산(단위: 억 원)
구분 | 2003 | 2007 | 2010 | 2013 | 2016 | 2017 |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A) | 65,572 | 87,335 | 103,202 | 135,268 | 143,681 | 144,887 |
농업직불금 예산(B) | 5,131 | 18,106 | 14,944 | 10,511 | 21,124 | 28,543 |
B/A(%) | 7.8% | 20.7% | 14.5% | 7.8% | 14.7% | 19.7% |
농업직불금의 비중이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직불금 수령이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 농림어업총조사 기준 상위 11.4% 쌀농가가 전국 논 면적의 58.2%를 경작한다. 즉 전체 쌀 직불금의 절반이 상위 10%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농업직불금이 면적 단위로 지급되다 보니 영세 소농에게는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6년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농업직불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150만 명 직불금 수령자 중 9.6%(14만 명)인 대농·기업농(재배면적 2ha 이상)의 농가당 평균 직불금은 350만 원인 반면 75.8%(114만 명)를 차지하는 영세농가(재배면적 1ha 미만)의 직불금은 28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농이 영세농보다 12배가량 직불금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서울경제 2016.09.26)
이러한 격차는 현재 쌀값 하락 등으로 대농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면적을 더 넓힐 경우 더욱 확대되어 영세 소농들은 획기적인 대책 없이는 앞으로 살아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농업직불금을 친환경 농업 직불금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하나로 통합해 농가에 일률적으로 약 50만 원씩을 지급하는 농가단위 기본소득제 실시를 주장했다. 부족한 재원은 농정 예산 가운데 불필요한 사업성 예산과 행정의 효율화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농업직불금이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사회안전망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독일 등 유럽은 소농이라고 할 수 있는 3~10ha 이하 농가에 일정 수준의 농업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직불금을 기본소득형 방식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있다. 충남도의 <충남농업환경실천사업>이 그것이다. 충청남도는 지난해 농민단체와 협의하여 정부의 농업직불금 외에 자체적으로 추가 지급해왔던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 직불금을 2017년부터 기본소득제 방식으로 개편했다. 이는 기존의 면적 단위 직불금을 기본소득 개념으로 바꾼 최초의 사건이자 획기적인 농업보조금의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편의 배경은 앞서 설명했듯이 농가 내 보조금 수령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충남도는 그동안 벼 재배농가에 직불금 형태로 ha당 41.1만 원(현금 23.1만 원+비료 18만 원)을 지원했다. 그 결과 전체 농가의 65%를 차지하는 1ha 미만 소농가의 직불금은 평균 20만 원인데 반해 전체 농가의 7.6%인 3ha 이상 대농가는 평균 130만 원의 직불금을 받았다. 즉, 3ha 이상 대농가는 1ha 미만 소농가보다 평균 6.5배의 직불금을 받은 것이다.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할 경우 농가 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해 그동안 지급됐던 벼 경영안정 직불금 287억 원과 맞춤형비료 사업 198억 원(일몰제로 인해 발생한 금액)을 합한 485억 원을 농촌 거주 전체 농가를 대상으로 한 가구당 연간 36.7만 원을 균등 지급하기로 했다. 충청남도는 향후 불필요한 사업들을 줄여 나간다면 연간 120만 원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완전히 무상은 아니다. 마을단위 적정시비를 반드시 실천해야 하고 농업환경 보전과 개선, 작물다양화 실천, 농업생태 보전, 농촌경관 개선을 선택적으로 실천하는 <충남농업환경사업> 특성화 이행사업이라는 이행 조건이 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결정은 농촌 내 대농 위주 면적 기준 농업직불제에서 영세 소농을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편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효과와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면 다른 지자체에도 전파하고 나아가 정부의 농업보조금 개편에도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표 5> 충남농업환경실천사업 내용(선택 사항)
항 목 | 참 여 내 용 |
농업환경 보 전 | ❏ 환경친화적 농업활동 등 ∘ 제초제 살포 안하기(논두렁, 밭두렁 등) ∘고품질벼(삼광벼) 재배 확대를 위한 계획 수립 및 이행 |
농업환경 개 선 | ❏ 농업환경 오염 방지 활동 ∘ 농경지, 농업용수의 오염 방지를 위해 농업활동에 따라 발생되는 쓰레기(폐자재, 농약병 등) 공동 처리의 날 운영 * 폐영농자재 등 수집, 처리를 위한 시설물 설치, 관리 |
작물다양화 실 천 | ❏ 토종작물 재배 또는 작물다양화 ∘ 토종종자로 인정되는 작물 재배 ∘ 우리나라 재배면적 및 자급률이 낮은 작물 재배 * 조, 수수, 기장, 팥, 메밀, 귀리, 밀, 녹두 등 |
농업생태 보 전 | ❏ 생물다양성을 위한 생태 보전활동 ∘ 두더지․고라니 공생마을 ∘ 화분매개곤충작물 재배(유채, 산괴불주머니, 라벤다, 바질, 타임 등) ∘ 마을별 공동 풀베기 ∘ 겨울철 논 습지 유지, 둠벙 조성, 논 휴경 |
농촌경관 개 선
| ❏ 농촌마을 경관조성 활동 ∘ 꽃길 조성, 마을폐가정비, 비닐하우스 정비, 마을상징물 정비, 논두렁 및 마을주변 제초, 칡덩굴 제거 등 ∘ 마을 정원, 공원 조성, 방목 및 전래유산 복원 |
2.3.3. 농업‧농촌의 다원적‧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
세계무역기구인 WTO가 농산품에 대해서도 예외 없는 관세화, 즉 자유무역을 견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농업과 농촌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다원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들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가입한 선진국모임인 OECD는 1993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이 임박하자 농축산업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농업의 다양한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을 회원국 전원의 이름으로 선포하였다. 농업이 단지 식량과 섬유를 생산해 내는 일차산업적인 기능만이 아니고, 환경생태계를 보전하며,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식품의 안전성과 국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다원적인 공익기능을 수행하는 기본산업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UR(WTO) 협정은 농업의 다원 기능을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Non-Trade Concerns)”으로 공인하고 공식적으로 농림업을 국가와 민족 형성의 최소한의 기본요소(National Minimum Requirement)임을 공인했다. 그래서 각국은 사정에 따라 UR협상에서 농축산업을 품목별로 예외를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농업과 농촌의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더라도 이러한 가치가 어떻게 존재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막연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기관에서는 이를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는 시도를 해왔다. 대표적으로 농촌진흥청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체 가능한 재화와 용역의 가격을 이용하여 비시장 재화의 가치 평가를 실시한 결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82조 5천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 환경보전 기능의 경제적 가치만도 67.7조에 달하는데, 구체적으로 논의 홍수조절 효과가 댐 20개의 효과를 가지고 있고, 논의 대기정화 효과는 1ha당 이산화탄소 22톤 흡수, 산소 16톤 방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적 가치를 굳이 수치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농업은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공급해주는 산업이고 농촌은 우리들의 삶의 뿌리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보금자리이기 때문에 농업과 농촌을 보호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1990년대 시장개방 이후에도 지속적인 재정 투입이 이뤄져왔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재정투자에도 불구하고 농가의 경영여건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향후 농업직불제는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공익적 역할과 가치에 더 많이 투입되어야 하고 이러한 투입은 기존의 농지 면적 기준이 아니라 농촌주민에게 보다 골고루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3. 농민기본소득제 실행 방법
3.1. 농가단위 기본소득제
농민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농가단위가 좋을지 개별 농민단위가 좋을지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 여기에서는 먼저 농가단위로 지급할 경우를 상정하고 논의하고자 한다. 현재 농가단위 농민기본소득제 실시를 주장하는 이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다. 그는 우리나라 농업경제학자이자 전직 농정관료로서 농민기본소득제 실시를 제기한 첫 번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 농업통계, 특히 농가소득 등은 대부분 농가단위로 산출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농가단위 기본소득제 실시가 옳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농가단위로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 소요 예산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농가수는 109만 가구이다. 따라서 매 가구당 매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총 6조 5,4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2016년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이 약 14조 원임을 감안하면 전체 농림수산식품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액수이다. 매 가구당 매월 30만 원을 지급할 경우에는 3조 9,240억 원이 된다. 암튼 적지 않는 예산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김성훈 전 장관은 농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기존 농업직불금제도의 개선을 꼽았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친환경농업직불금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농가단위 기본소득제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김성훈 전 장관의 농가단위 기본소득제의 모델을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면 다음 <그림 7>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현재 농업직불금은 경지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논의 경우 개별 농가의 경우 30ha, 농업법인체의 경우 50ha내로 한정되어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농가 평균 1ha미만 농가가 전체의 69.1%, 2ha미만 농가가 86.1%에 달하기 때문이다. 반면 친환경농업 직불금의 재배 면적이 크지 않을뿐더러 직불금 기한도 무농약은 3년, 유기농업은 5년으로 한정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기간 동안 감내해야 하는 소득 하락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의 공익성을 감안한다면 기간을 굳이 한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기존 농업직불제 방식을 기본소득형 농업직불제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1ha 혹은 2ha 미만 농가에 대해서는 100~200만 원 수준에서 균등한 금액을 지급하고 그 이상의 면적에 대해서는 증가폭을 최소한으로 하되 친환경농업의 경우에는 증가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할 경우 농지규모화로 인한 농촌공동체 해체를 막고 농업의 공익성 증진으로 다원적 가치를 증진시킬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중대농의 소득감소로 인한 저항을 예상하나 농업직불금의 불균형 해소, 중소농 보호, 농촌공동체 유지 등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양보를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기본적으로 농가단위 기본소득제 기준 면적의 단가를 향상시키고 점차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한다면 기존 면적단위 농업직불금제도는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3.2.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는 개별 농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개별성을 강조하는 기본소득의 원칙에 근거하자면 농가 단위보다 농민 단위 농민수당이 훨씬 발전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농가주가 대부분 남성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농가 단위로 농민수당제가 실시될 경우 여성농민은 또다시 정책에서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농민단체에서 특히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제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필자도 여기에 적극 동감한다.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은 그동안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여성농민을 당당하게 농정의 주체로 인정하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농민수당이 실행된다면 여성농민의 자존감과 자부심 또한 고양될 것이다. 현재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농민권리선언>에서도 가사와 농사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농민의 권리를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만일 개별 농민 단위 농민수당이 지급된다면 여성농민의 권리와 지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와 아울러 농민의 연령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농업기본법 등 법률에서는 농업인의 기준을 20세 이상으로 설정하고 연령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유럽 선진국처럼 일정한 연령(65세 전후)이 되면 농업인의 자격이 사라지고 대신 복지 수혜의 대상이 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무리 연령이 많아도 농업 활동을 하면 농업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또한 65세 이상의 경우 기초노령연금의 혜택도 받는다. 따라서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경우 크게 두 가지 모델로 나뉜다. 첫 번째 모델은 경제활동인구인 20~65세 미만 농업인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나머지 65세 이상은 기초노령연금 확대 대상), 두 번째 모델은 20세 이상 모든 농업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이다.
먼저, 첫 번째 모델인 20~65세 미만 농가 인구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이다.(다음 ①번 모델 참고) 2015년 기준 20~65세 미만 농가 인구는 1,342,799명이다. 이들에게 매월 20만 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연간 3조 2,227억 원이 소요된다. 나머지 65세 이상 농업인은 현재 정부에서 강화하고자 하는 기초노령연금 확대로 충당할 수 있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65세 이상 농업인은 은퇴를 유도해 복지제도로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65세 농업인에 대해서는 기초노령연금제도의 확대를 통해 생계유지를 마련해주고 농업경영에 젊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농업인 조건에 나이 제한이 없다보니 아무리 연령이 들어도 토지만 가지고 있으면 직불금 수혜 대상이 되기 때문에 농지가 젊은층의 농업 활동 참여가 쉽지 않다.
두 번째 모델은 20세 이상 모든 농업인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모델이다.(다음 ②번 모델 참고) 현행법상 농업인의 연령이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 모두 기본소득 수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2015년 기준 20세 이상 농가인구는 2,330,000명으로 이들에게 매달 20만 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질 경우 연간 5조 5,5592억 원이 소요된다. 65세 이상 농업인에게는 별도로 기초노령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실제 수령액은 늘어나는 셈이다.
한편,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도는 전반적인 기본소득제와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선 후보는 생애 맞춤형 기본소득은 모델로 아동,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 등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에게 매월 10만 원의 기본소득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처음으로 농어민을 우리사회의 약자로 포함해 기본소득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모델로 계산해 볼 때, 젊은 농가가 유아 혹은 청년 자식 2명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 경우 기본소득은 한 달에 6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장애인이 한 명이 있을 경우 7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이정도 액수는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농촌에서 고정적으로 60~70만 원의 기본소득(노령기초연금 제외)을 받을 수 있다면 농촌에서의 지속적인 삶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는 특정 계층이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 정책단위 시행도 좋지만 이처럼 국가 전체적인 기본소득체계에서 농민을 포함하는 모델로 가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3.3. 농촌주민 기본소득제
앞의 두 절에서는 농민기본소득을 농가 단위와 개별 농민단위로 구분해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마을 혹은 농촌지역 단위 기본소득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농가단위든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이든 이들 모두는 농업활동에 참여해야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모델이다. 기본소득 논의에서는 이를 참여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이를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기본소득의 원칙이 무조건성이기 때문에 농업활동을 참여해야만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은 광의의 차원에서는 포함될 수는 있지만 엄밀해 말해 기본소득의 원칙에는 부합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농사를 짓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두 기본소득의 대상에 포함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박경철, 2015) 이와 같은 배경은 기본소득의 원칙인 무조건성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농촌의 심각한 인구감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 3482곳 읍면동의 ‘지방소멸위험지수’를 산출한 결과 전국 읍면동 중 3분의 1이 넘는 1383곳이 30년 뒤 사라질 수 있는 소멸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이 중 708곳은 0.2 미만인 ‘소멸고위험 지역’이다. 즉 향후 특별한 반전 계기가 없으면 30년 뒤 지역이 사라질 위험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는 일본에서 ‘지역소멸’에 대한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지역소멸에 대한 우려가 크게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촌지역의 농가와 비농가, 농민과 비농민을 나누어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미 농가소득 가운데 농업소득은 1/3에 불과하고 농촌 내에는 농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필요하기 때문에 굳이 농가, 비농가를 나누어 농민기본소득제를 실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군다나 지역소멸위험지역, 즉 과소·고령화로 인해 경제활동과 공동체 유지가 어려운 한계(限界) 농촌지역은 그동안 우리나라 국토정책의 불균형 발전으로 인해 소외를 받아온 지역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이들 지역을 소멸시키겠다는 정책이 아니라면 이러한 지역부터 살려내는 정책 배려가 우선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소멸의 위험이 있는 마을 혹은 면 단위 지역을 대상의 농촌주민 기본소득제를 실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범사업을 실시한 다음 이러한 정책이 효과가 있을 경우 점차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은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전국의 한계지역(면 단위) 가운데 우선적으로 10개 면을 선정해 개별 주민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1개 면의 인구를 대략 2,500명으로 추정할 경우 연간 농촌주민 기본소득은 600억 원이 소요된다. 전국의 한계지역 100개 면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6000억 원이 소요된다.
마을단위 기본소득은 이미 인도의 Madhya지역에서 실험된 적이 있다. 영국의 가이 스탠딩 교수(Guy Standing)는 UNICEF의 기금을 받아 인도의 농촌지역인 Madhya지역의 9개 농촌마을(대조군 12개 마을)을 대상으로 18개월 동안(2010-11년)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그 효과를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주택과 위생시설, 영양상태와 식습관, 건강과 의료서비스, 장애인에 대한 영향, 교육, 경제활동 등 조사항목 대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따라서 가이 스탠딩 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4. 최근 추진 현황
4.1. 강진군의 사례
전남 강진군은 2017년 농가단위 농민수당 도입을 결정하고 작년부터 농민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행한 벼 재배 경영안정자금 지원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되, 추가 재원을 마련해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강진군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5억 원~38억 원의 경영안정자금을 3ha 한도 내에서 면적에 따라 벼 재배 농가 5,000호에 지급했다. 벼 농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직불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진군이 추가로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직불제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현재 쌀생산조정제를 통해 정부가 쌀 생산을 줄이고 있는데 계속해서 벼 재배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다른 하나는 형평성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크게 벼 재배 농가 간 형평성 문제와 벼 재배 농가와 밭작물 재배 농가 간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강진군은 2017년 12월 전면적인 조례 개정을 통해 2017년에 지급됐던 배 재배 경영안정자금 38억 원은 그대로 유지하되 추가 재원으로 마련된 50억 원은 농업인 관련 규정에 근거해 논농사, 밭농사 구분 없이 모든 농가에 농민수당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그래서 강진군의 약 7,100농가는 2018년부터 재배 면적과 재배 작물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연간 70만 원의 경영안정자금(농민수당)을 받는다. 더욱이 강진군은 70만 원 가운데 35만 원은 현금으로 통장에 입금하고 35만 원은 강진사랑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경제도 함께 살린다는 취지다. 강진군청과 지역 농민의 강한 의지와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4.2. 해남군의 사례
전남 해남군의회는 작년 12월말 <해남군 농업보전 등을 위한 농민수당 지원 조례>를 제정해 농가의 면적과 업종 구분 없이 전체 농가에 대한 농민수당 지급을 결정하고 올해부터 실시를 앞두고 있다. 해남군은 당초 농민수당 도입의 목적을 소득보전 측면에서 소농가부터 단계별 대상을 확대하는 첫 번째 방안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 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전체 농가에 대해 지원하는 두 번째 방안을 놓고 논의했는데 최종적으로 두 번째 방안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측면에서 전체 농가에 대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 기준은 해남군내 실제 거주, 실제 경작하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한 농업인(축산업, 임업 포함)이며 면적 제한이 없다.
해남군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농민수당 단가는 연간 60만 원(월 5만 원)이다. 해남군의 전체 농가수가 14,579호이기 때문에 내년 농민수당의 전체 규모는 87.5억 원(14,579호*60만 원) 정도이다. 87.5억 원이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이 액수를 전체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해남군의 개별 농가당에 지급되는 농민수당은 60만 원으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가의 농지면적에 상관없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농민수당 지급을 결정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해남군은 농민수당 60만 원을 지역 상품권으로 연간 2회에 나눠 지급하기로 했다. 농업과 지역경제가 선순환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해남군의 농민수당 사례를 눈여겨 볼 이유이다.
4.3. 기타 지자체 사례
현재 각 지자체별로 농민수당 도입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초 지자체로는 전남 강진군이 지난해 처음으로 농민수당을 도입해 올해부터 실시했고, 해남군은 전체 농가에 대한 농민수당제를 도입해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광역 지자체로는 전북도가 2019년 실시를 목표로 준비 중에 있고 전남도는 농민을 포함한 취약계층을 위한 기본소득제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경기도는 이재명 도지사가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적극 시사하고 현재 여주와 양평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여주시는 올해부터 농민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경기도와 협의하고 있다. 그 외 많은 지역에서 농민수당 도입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그 형태 또한 다양하다. 농민수당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논의 중에 있는 지자체는 다음과 같다.
<기초 지자체>
전남: 강진, 해남, 장흥, 순천, 무안, 함평, 나주, 담양, 영광, 화순, 장성
전북: 고창, 정읍, 군산, 김제, 부안, 순창, 익산, 완주, 정읍, 진안
경남: 산청, 의령, 양산, 거창
강원: 춘천, 양구, 홍천
경기: 여주, 양평
경북: 봉화, 안동
충남: 부여 (*굵은 글씨의 지자체: 농민수당 도입됐거나 도입이 거의 확정된 지역임)
<광역 지자체>
전남도: 농민을 포함해 취약계층에 대한 기본소득제 도입을 추진 중
전북도: 2019년부터 농민수당 실시를 위해 준비 중
충남도: 농민수당 개념의 농업환경실천사업 확대 방안 논의 중
충북도: 농민수당 개념의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중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현재 논의 중
경남도: 현 도지사 지방선거 당시 농민수당 도입 긍정 검토 약속
제주도: 전 도민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 중
5. 향후 과제
첫째, 농가, 농민에 대한 개념 정립과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개별 농민단위 농민수당제를 시행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먼저, 우리나라에 농가(농업경영체)등록제는 있어도 농민등록제는 없다. 즉, 농가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만 농민 개별에 관한 사항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물론 농업경영체등록제 또한 문제가 많지만 현재 정부에서 농업경영체등록제를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여기에 개별 농민에 대한 사항까지 포함한다면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충남도는 지난해부터 기존의 벼 경영안정직불금제를 기본소득형 직불금제도로 바꾼 농업환경실천사업을 도입하고 각 농가당 연간 약 36만 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시 과정에서 충남도내 농업경영체가 늘어나(세대 분리 등) 사업 시행에 혼선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개별 농민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해 시행한다면 더 많은 혼선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인 기준에 따른 농민등록을 통한 농민기본소득제 실행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중요한 사항은 농민의 연령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농업인 기준에 연령 상한을 정하고 있지 않다. 즉 80세이든, 90세이든 농사만 지으면 농업인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각종 농업정책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정책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는 보통 65세가 되면 은퇴를 한다. 그 후 이들은 농업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소득과 복지가 보장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물론 최근에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시행되어 농촌고령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농촌에서 소득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기력이 다할 때까지 농사를 짓는다. 얼마 되지 않는 직불금이라도 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촌고령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 방기이자 넓게 말하면 학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권 차원에서도 크게 다뤄져야 할 문제이다.
농촌고령자들은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농사를 지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토지를 내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청장년층이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에 들어가고 싶어도 땅이 없어 농촌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람이 농촌에 들어올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다. 따라서 정부는 농업인의 기준에 연령을 포함하고 한계 연령 이하는 농정의 대상으로, 그 이상은 복지의 대상으로 정해야 농민수당제도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둘째,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농민수당, 즉 농민기본소득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 번째 목적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다. 농업과 농촌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를 사회적으로 보상하자는 뜻이다. 두 번째 목적은 사회적 약자인 농민에 대한 기본적 권리의 보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적인 권리’란 농민에게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존엄의 권리를 그들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실행과정에서 그 중요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실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최근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농민수당제는 첫 번째 목적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농민수당이 더 나은 제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목적을 동시에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 째는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의 개별성이다. 이것은 기본소득의 기본 원칙인 개별성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왜 기본소득을 개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가? 이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 계획인 농가수당은 농가 내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다. 농가 단위 농민수당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겠지만 이러한 방식의 농가수당은 대부분이 남성인 농가주의 권리를 더 강화할 뿐 그 권리를 나누지는 못한다. 따라서 농가 내 구성원의 평등한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는 개별 농민 단위의 농민수당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이다. 이는 기본소득의 원칙 중의 하나인 무조건성과 맞닿아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 계획인 농민수당제에는 조건이 붙는 경우가 있다. 이는 농민수당의 첫 번째 목적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기 때문에 농민수당제의 실시 과정에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 증진을 위한 여러 조건들(의무사항)이 붙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조건이 되지 않고 반대로 강제적인 조건이 된다면 기본소득의 무건조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농민수당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농민수당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합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농민수당의 조건을 제시하되 강제하지 않으며,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최소한의 조건만 제시하는 방법이다. 또한 지자체에서 합의한 조건을 잘 지킬 경우 추가적인 혜택 혹은 표창을 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농민수당제는 지자체와 마을 간 계약을 통해 실시하는 방식이 많다. 따라서 농민수당의 조건을 강제하기보다는 마을에서 자율적으로 농민수당의 조건을 잘 지킬 경우 마을단위의 포상 혹은 표창을 하는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 농민단체, 시민단체 간 지속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농민수당제(농민기본소득제) 실현을 위한 민주적 논의 과정과 제도화가 필요하다.
농민수당제(농민기본소득제)는 단순히 정부가 농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지역에서 다양한 농민수당제가 실시되거나 논의 중에 있듯이 농민수당은 어느 하나만의 모델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역의 여건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될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 맞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자체 내 끊임없는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전남도와 일부 시군, 전북도의 고창군에서는 지자체와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농민수당(기본소득)추진위원회’가 구성이 되어 자신의 지역에 어떤 농민수당제를 도입할 것인가를 위해 시군별 혹은 읍면별 설명회를 통해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필자는 농민수당제(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협의체는 농민수당 도입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농가에게 지급되는 농민수당을 농가가 다 사용하지 않고 농민수당의 일부를 활용해 어떻게 지역을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충북 옥천군 안남면의 경우, 대청호 상류지역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수계기금을 받게 되자 주민들은 이 기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논의는 곧 지역발전위원회의 구성으로 이어져 이후 지역 내 다양한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농민수당제가 확대된다면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모델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이러한 모델들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화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민수당제(농민기본소득제) 실현을 위한 정책적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농민수당제(농민기본소득제) 논의에서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이 예산 확보의 문제이다. 하지만 예산은 농업직불금의 재조정, 불필요한 사업성 예산 축소, 토건사업비 절감, 각종 행정비용 절감, 농특세 확대 또는 균형발전세 등 신설, 무역이득공유제, 재산세와 부동산세(국토보유세) 등을 통해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관건은 정부와 지자체가 얼마만큼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적은 예산일지라도 농민기본소득을 위한 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작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효율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농정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농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책의 틀을 바꾼 후에 점차 예산을 늘려 대다수의 중소농이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농민수당제, 농민기본소득제 도입은 결국 학교급식 모델로 갈 거라 확신한다. 학교급식은 UR 농산물 개방 협상 이후 절망에 빠진 농민들이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해 농가 소득을 향상시킨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중앙정부는 WTO 규정을 들어 오히려 학교급식 시행을 방해했지만 지자체는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므로 지역 농민들의 요구에 따라 해당 조례를 만들어 시행했다. 중앙정부보다 지역 농민의 절박한 심정을 더 잘 아는 지자체 단체장과 지역 의회가 움직인 것이다. 지금도 학교급식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고 지방정부가 대부분 예산을 집행한다. 이제 학교 의무급식을 하지 않는 지자체의 단체장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학교급식은 실행과정에서 행정 전담, 부분 위탁, 완전 위탁 등 그 실행 모델은 다르지만 정부가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좋은 음식을 안정적으로 제공한다는 뜻은 서로 일치한다. 농민기본소득제의 실행모델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 발전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현재 농업, 농촌, 농민의 현실은 참담하다. 이제는 중앙정부의 재정투입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주도해 만든 사업 계획을 통해 하향식으로 내려가는 재정투입 방식에서 벗어나 농민들에게 필요한 소득을 농민들에게 직접 분배할 때가 되었다. 농민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농민들에게 직접 주면 그들이 원하는 농촌과 삶의 방식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이다. 정부는 예산이 골고루 잘 전달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의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이때, 농민수당제, 농민기본소득제의 획기적 도입을 통해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보장되고 농민의 존엄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실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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