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대담회]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다
권정생과 생텍쥐페리
2022년 12월
“땡~땡~땡~” 차갑고 어두운 우주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하를 떠돌던 낡은 라이트닝 비행기가 그 소리를 찾아 날아오더니 어느 작은 소행성의 예배당 앞에 조심스레 내려앉았다. 항공점퍼에 헬멧을 쓴 남자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종지기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본 뒤에, 종지기가 조종사를 예배당 안으로 초대했다.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에는 그들이 썼던 여러 책이 장식처럼 매달려 있었다.
글. 이명석(문화비평가) 일러스트. 장명진
‘몽실언니’와 ‘어린왕자’의 만남
생텍쥐페리. 반갑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동화를 쓰시면서도 오랫동안 종지기를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죠?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종을 칠 수가 있겠어요.”
권정생. 허허, 부끄럽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비행사이며 작가인 분이 직접 저를 찾아 주셨네요. 이 외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기 위해 우주를 건너오셨군요.
생텍쥐페리. 저는 1900년 프랑스 리옹의 성주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20대에 비행에 흥미를 느껴 조종사 자격을 얻어 육군 항공연대에 들어갔죠. 추락 사고로 의병 전역한 뒤에 자동차 판매원도 해봤는데 실적은 형편없었죠. 다시 조종사 자리를 얻고 그 경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어요.
권정생. 저는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촌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이듬해 고국으로 건너와 안동군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죠. 부모님은 소작농이셨고, 저는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가 폐결핵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제대로 치료할 형편이 안 되어 몸 여기저기가 망가졌습니다. 한쪽 신장과 방광을 떼고 고무호스와 비닐 오줌보를 차고 다녀야 했죠.
생텍쥐페리. 저 역시 건강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번 추락 사고를 당해 나중에는 항공복을 혼자 입지도,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는 몸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비행기로 하늘을 날 때만큼은 자유로웠습니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세네갈의 다카르 사이를 오가는 우편 조종사로 근무하며 <남방우편기>, <야간비행> 등의 책을 썼죠.
어린이 사랑의 마음을 담은 걸작
권정생. 저는 예배당의 종지기가 되어 20년 동안 종을 쳤습니다. 그러다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어울려 동화를 쓰며 큰 안식을 얻었죠. 세상에 가장 쓸데없어 보이는 개똥을 주인공으로 한 <강아지똥>이 상을 받으며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어린왕자>에 가로등 불을 매일 켰다 껐다 하는 점등인이 나오죠. 매일 종일 쳤던 저와 닮았다고 여겼습니다.
생텍쥐페리. 그 점등인의 별이 너무 작아 지구 시간으로 하루 동안 1,440번씩 불을 켰다 껐다 해야 하죠. 작가님이 지금 사시는 별도 그만큼 작아, 무척 힘드시겠어요.
권정생. 시련은 저의 동무와 같다고나 할까요? 특히 전쟁은 가장 무서운 괴물이었어요. 어릴 때 제가 살던 곳을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점령하며 서로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모습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런 아픔을 <몽실언니>라는 소설에 담았어요. 가난한 집안의 맏딸이자 다리가 불편한 몽실이가 전쟁으로 피폐화된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죠. 21세기의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도 수십 년 전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생텍쥐페리. 저의 삶 역시 전쟁의 풍파에 크게 흔들려야 했습니다. 제가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고 문필가로 이름을 날리려던 때에 2차 대전이 터졌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몸을 피했지만, 프랑스에 들어선 독일의 나치정부가 저를 일방적으로 정부 요직에 임명했죠. 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의 비난이 큰 상처가 됐습니다. 저는 치욕을 씻기 위해 알제리로 가서 자유 프랑스군에 재입대했습니다.
권정생. 다행히 저에게는 다정한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복사꽃 외딴집>이라는 동화로 쓴 정다운 노부부, 걸식하던 저에게 매일 밥을 눌러주던 식당 주인, 나무 밑에 쓰러진 제게 물을 떠 와 먹여주신 할머니···. 그런 착한 마음들이 저를 살렸고, 저는 그에 보답하는 마음을 글로 썼습니다.
생텍쥐페리. 저 역시 조국을 탈출해 뉴욕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낼 때 친구들이 큰 도움을 줬습니다. <어린왕자>가 그 덕분에 태어났어요. 친구들은 작업실을 빌려주고 글을 쓰도록 독려했고, 삽화의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죠. 제가 쓴 원고를 들려주면 솔직한 의견을 전해주어 고치고 또 고칠 수 있게도 해줬습니다. 여우의 대사는 그렇게 15번 이상 새로 썼죠.
권정생. 그 여우가 이런 말을 했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안타깝게도 작가님은 파리가 해방되기 몇 주 전인 1944년 정찰 비행을 나간 뒤 세상 사람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셨죠.
생텍쥐페리. 작가님은 오랜 병환에도 꿋꿋이 삶을 이어 나가 2007년에 돌아가셨죠. 동화들이 큰 사랑을 받아 적지 않은 책을 팔았지만 평생 오두막에서 살다 떠나셨고, 수익은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에 쓰셨죠. 마지막까지 아이들에게 모든 걸 주고 떠난 숭고한 삶입니다.
권정생. 허허, 과한 칭찬에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우주에서 새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도, 저의 소행성과 작가님의 비행기를 움직이는 동력도 바로 우리 책을 읽은 아이들의 웃음입니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해야지요.
인물정보
권정생(1937~2007)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강아지똥>, <몽실언니>, <엄마까투리> 등을 썼으며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모습을 동화로 표현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생텍쥐페리(1900~1944)
프랑스의 비행사, 작가. 비행기를 사색과 발견의 도구로 삼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작가로 인정받았다. 대표작 <어린왕자>는 16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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