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雙花店)
김광한
고려속요에 쌍화점(雙花店)이란 노래가 있다. 고려 충렬왕때 지은 노래로서
악장가사에그 내용이 실려있는데 쌍화란 만두란 뜻이고 만두를 사러갔다가
주인인 회회아비(아랍인)와 눈이맞아서 놀아난다는 내용이다.
쌍화점(雙花店)
雙花店(솽화뎜)에 雙花(솽화) 사라 가고신덴
回回(휘휘)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店(뎜) 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대가티 뎜거츠니 업다
만두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을 뜻한다.
구불리(狗不理) 만두는 淸朝말기(약 1958년)에 빚기 시작한 1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북성 武淸縣(지금은 천진시로 편입돼 있
음)의 고우뿌리(高貴牛)라는 소년이 만두 빚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소년의 어릴 적 별명이 狗不理였던 데서, 손님들은 그가 빚은 만
두를 狗不理라고 불렀다. 한때, 고귀우는 그의 만두를 덕취호(德聚號)라고
불렀기 때문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진 적도 있었다. 다시 狗不理라
고 이름 붙인 이후에 더 많은 손님들이 그의 만두를 사랑해주었
다.
만두를 빚을 때, 속은 별 차이가 없지만, 高가 빚은 만두는 그
모양이 예쁘고, 밑면이 타지 않고, 더군다나 맛이 있었다고 한다.
1900년대초 원세개(袁世凱)가 천진에서 육군을 훈련시키던 중, 구불리
만두를 먹게 되었고, 이를 북경에 있는 서태후에게 선물로 갔다주
었다. 서태후가 구불리 만두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이후 전국적
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천진시내 여기저기에 구불리라는 간판이 붙은 만두집이 있다.
그러나 들어가서 먹어보면 옛날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리 신통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