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영종진
일본은 조선의 해안을 탐색한다는 구실로 운양호를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침투시키려고 하자, 조선군은 이들의 상륙을 막았다. 이에 불만을 느낀 일본은 남하해 영종진을 공격했다. 일본군은 성내에 불을 질러 관청과 민가를 모두 소멸시켰으며, 35명의 우리군이 전사했다. 영종진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됐다.
이 역사를 재조명하여 영종진에서 죽어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넋을 기리는 마음으로 박성신감독님이 역사 창작극 아! 영종진 뮤지컬을 2011년에 무대에 올렸습니다.
<역사 창작 집체극 [아! 영종진]의 지난 공연장면 ? 사진=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이 작품은 운양호 사건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영종진 피격사건의 진상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됐다고 합니다. 1875년에 일어난 영종진 피격사건은 운양호 포격사건과 연장 선상에서 벌어진 전투라고 합니다. 당시 영종진은 화포30문 포수만 6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던 중요 군사 요충지였고 인천과 강화도, 한강하구로 이어져 수도 한성으로 통하는 인후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불휘깊은 한문화재 한지킴이 인천지부에서는 초, 중, 고 대학생들과 함께 인천의 역사를 운양호사건이 일어났던 영종진이 위치한 영종도를 찾아갔습니다.
<영종진 입구에서 한컷 찍었습니다>
한문화재 한지킴이는 소중한 우리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하는 작은 참여의 손길로 시작된 '대국민참여문화운동'으로 문화재청에서 후원하는 민간자원봉사활동입니다.
<현재 영종도공원과 영종진이 복원되는 현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영종진을 복원할 자리에서 이재기선생님, 서인천고등학교김학곤선생님, 세계문화회회장신현승님께서 영종진을 설명하십니다>
운양호사건은 일본이 해안을 측량한다는 구실로 한반도를 탐색하면서 초지진에 정박했다가 우리 측의 포를 맞고 영종도 앞바다로 후퇴하였다. 1875년 9월 22일날 개항을 하라는 조건과 침략을 하기위한 속셈으로 민간이 있는 영종진을 침범하는 사건이 운양호 사건이라고 세계문화회 회장님은 설명하십니다.
<영종진에서 바라본 영종도 앞바다>
영종도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으며, 영종진을 복원하는데 앞장서는 세계문화회 신현승회장의 비하인드를 들어보겠습니다.
인천광역시의 영종도는 조선시대의 효종임금님때까지 자(붉을자紫) 연(제비연燕)도 였다고 합니다. 제비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지금의 비행기를 뜻한답니다. 영종도는 용마루라는 뜻으로 지금의 활주로를 말하고 용(龍용용)유(游놀유)도는 용이 놀고 있는 형국으로 지금의 비행기라고 합니다.
효종임금님때 경기도 화성의 영종진을 강화도의 입구인 자연도로 옮기면서 영종도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리고 인천의 표상적인 언어는 '해불양수'라면서 빗물, 바닷물, 한강을 통해서 내려오는 모든 강물들을 받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인천은 세계인들의 '기'가 모인는 곳이기에 타지역 사람들도 성공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이 인천에서부터 시작된다면서 선조들의 지혜와 예지가 오늘날 인천을 빛내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물론 운양호사건이 패배는 했지만, 35명의 젊은이들과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대한민국의 요충지로써 영종진을 복원하여 교육, 역사, 문화, 국방의 근거지로 삼아 젊은이들이 미래에 날개를 펴는 곳으로 발전했으면 하신답니다.
<영종진에서 바라본 현재의 작약도>
현재의 작약도는 일본인의 화가가 작약을 닮았다고하여 이름을 작약도라 하였고 우리의 이름은 물치도였다고 합니다.
<영종진에서 바라본 월미도 행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계문화박물관이 세워질 자리입니다>
세계여행문화원이 세워질 자리에 미리 탑방했습니다. 세계여행의 선구자이신 김찬삼교수님의 집터로 인천시에 기증을 하셔서 영종도공원과 영종진 그리고 세계여행문화원이 건립된다고 합니다.
<복원될 영종진 터에서 한 컷 했습니다>
<영종도에서 월미도까지 오는 배에서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현재는 학생들에게 햇볕이 내리쬐는 날의 하루겠지만, 이 곳에 영종진이 복원되고 영종도공원과 세계여행문화원이 건립된다면, 인천의 시민으로써 최초의 방문자가 되었다는 자부심이 더해질 것입니다. 역사를 바로알고 선조들의 지혜로운 사상을 배운 다음날 명량을 관람했습니다. 영종진의 앞바다의 몰아치는 물살과 강화도의 선돌목, 우리나라의 지형이 최대의 재산임을 명량을 보면서 재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천의 역사! 영종진의 운양호 사건을 복원하는 영종진에서 올바르게 후손들에게 이어졌으면 합니다.
<취재 : 청춘예찬 김용옥 어머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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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춘예찬 원문보기 글쓴이: 굳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