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한 두름
'두름'은 '두르다'에서 나온 말
수량 세는 단위로 많이 쓰여
점심 시간이면 아이들은 늘 즐거웠다. 저마다 도시락을 풀어 놓고, 반찬 그릇을 여는 순간이 더 그랬다. 딸깍딸깍, 도시락의 수저들이 구르는 소리, 도시락 뚜껑이 열리는 소리, 아이들은 그 어떤 음악 소리보다 이 소리가 좋았다. 아이들 눈망울들은 우선 다른 친구들의 반찬 그릇이었다.
"와아, 혁이가 오늘은 좋은 반찬 싸 왔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아이들의 눈들이 모두 혁이의 반찬 그릇쪽으로 향했다.
"우리 삼촌이 목포 근처에 사시거든. 어제 서울 올라오시면서 조기 한 두름을 가져 오셨다구."
혁이는 자랑이라도 하듯이 밥술도 뜨기 전에 우선 조기 반찬 한 점을 집어 들며 말했다.
"조기 한 두름? 그럼, 몇 마리란 거야?"
"나도 잘 몰라. 그냥 '한 두름'이라고만 들었거든. 근데, 내가 얼핏 봤더니 조기들을 줄로 주욱 엮은 게 열 마리는 넘는 거 같앴어."
"그럼 '한 두름'이라는 건 열 마리가 아닐까?"
"아니, 스무 마리일지도 몰라."
"아니, 열 마리가 맞을 거야."
아이들은 모두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누구 하나 뚜렷이 아는 애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건 아무래도 선생님께 여쭤 보는 게 좋겠지."
"맞아. 그렇게 하기로 하자. 그건 그렇고, 요 조기 한 점은 내 거다. 아함. 냠냠. 거 고소한 게 맛 좋다."
장난이 심하고 능글맞긴 해도 친구들에게 누구보다 인기가 있는 한결이가 어느 틈에 혁이 도시락의 조기 한 점을 입에 물고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점심을 거의 다 먹을 무렵, 아이들은 '조기 한 두름'에 대해서 알아 보려 선생님께로 다가갔다.
"조기 한 두름? 하하하. 이걸 시험에 냈다면 많이들 틀릴 뻔했네. 그럼 먼저 '두름'이란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부터 말해 주지."
'두름'이라는 말은 생선 같은 것을 셀 때만 쓰는 것이 아니다. 조기 같은 물고기를 길게 엮은 것을 '두름'이라고 하지만, 고사리 같은 나물을 길게 엮어 놓은 것도 '두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조기 한 두름'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것은 조기를 스무 마리 엮은 것을 말한다. 즉, 조기를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을 '한 두름'이라 한다. 따라서, '굴비 두 두름'이라고 한다면, 조기 마흔 마리가 되는 것이다.
산나물 따위를 열 모숭 정도로 엮은 것도 '두름'이라고 한다. '고사리 한 두름'이라 하면 고사리 나물이 열 모숭 정도 엮인 것을 말한다.
'두름'이라는 말은 '두르다'는 말에서 나왔다. 즉, 어떤 줄로 '둘렀다(엮었다)'는 뜻이다.
두르다>두름
여기서, '두르다'는 말은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인데, 우리말에는 이처럼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을 바탕으로 하는 이름씨(명사)의 말들이 아주 많다.
`갈다>갈이(갈+이) (※하루갈이 논)
`꾸리다>꾸리미>꾸러미
`꿰다>꿰미
`싸다>쌈 (※상추쌈을 한 쌈 먹고……)
`안다>안음>아늠>아름
`움키다>움큼(옴큼)
`잡다>자밤 (※깨소금 한 자밤을……)
`쥐다>줌 (※쌀 한 줌을……)
`지다>짐 (※나무 한 짐 잔뜩 지고……)
단위를 나타내는 말 중에 많은 말들이 원래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에서 나왔음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좋은 우리말들을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잊고들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상추쌈을 한 입 물었을 때 지금은 보통 '상추쌈 한 입'이라고 하고 있지만, 전에는 '상추쌈 한 쌈'이라고 했다. '자밤'이라는 말도 지금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꾸리다'는 '꾸러미'란 말의 바탕이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말을 낳아 놓기도 했다. 지금의 말의 '실꾸리'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실을 둥글게 감은 뭉치'라는 뜻이다. 학자들은 이 말도 '꾸리다'란 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을 움직씨(동사)라고 한다. 그리고,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 말을 이름씨(명사)라고 한다. 앞의 여러 경우처럼, 움직씨의 말이 이름씨의 말로도 변하는 우리말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걷다'는 말에서 '걸음'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도 그리 어렵지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쓰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너 선생님께 일러 바칠 거야."
여기서 '일러'의 으뜸꼴은 무엇일까? 누구나 '이르다'임을 잘 알 것이다. 이 '이르다'의 뜻을 사전에서 알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뜻으로 나와 있을 것이다.
`이르다; 무엇이라고 하다, 말하다.
그런데, 이 '이르다'는 말이 위와 같이 이름씨꼴로 된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이름'일 것이라는 해답을 얻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살다'는 말도 이름씨꼴로 된 것이 있다. 무엇일까?
`살다>살음>삶
바로 '삶'이란 말이다.
조기 한 두름.
조기 스무 마리.
"아하, 조기 여러 마리를 새끼줄로 둘러 엮어서 두름이라고 하는구나."
아이들의 눈이 더 초롱초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