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내면과 대면하는 후기 현악사중주의 전조 교향곡이나 피아노소나타 등 베토벤의 모든 장르가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내악의 역사에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는 전대미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악사중주의 체계를 처음 확립한 하이든과 그 뒤를 이었던 모차르트의 결실 위에 베토벤은 더욱 빛나는 실내악 장르에서 현악사중주라는 독립된 체계를 확립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초기 현악사중주는 디베르티멘토와 같이 귀족들을 위한 여흥의 음악이나 유희의 음악에서 인간 본연의 내면을 파고드는 순수 음악으로 그 성격이 변해가고 있었다. 〈사냥〉, 〈불협화음〉 등 모차르트의 `하이든 현악사중주' 시리즈나 〈황제〉, 〈일출〉과 같은 하이든의 현악사중주에 이르면 현악사중주는 장르의 희유적인 색채는 사라지고, 깊은 내면의 소리를 전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이후 베토벤은 현악사중주라는 장르를 형식의 속성상 화려한 겉모습 효과보다는 앙상블의 조화, 기본적 선율이 중시되는 진실한 음악을 만들기를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삼게 된다.
베토벤은 일생동안 열여섯 곡의 현악사중주를 남겼다. 서른 살이 될 무렵, 작품번호 18의 여섯 개의 현악사중주부터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26년에 완성한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135 등이 있으며, 단일 악장으로 출판된 〈대 푸가〉 작품번호 133도 있다. 이 현악사중주 작품들은 세 시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1798년에서 1800년까지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18의 여섯 곡을 초기 현악사중주로, 6년의 공백기 후 1806년에서 1810년까지 〈라주모프스키〉 등 다섯 곡을 중기 현악사중주, 그리고 12년의 공백기 후 1822년에서 1826년까지 만년을 장식하는 다섯 곡과 〈대 푸가〉를 후기 현악사중주로 일컫는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를 듣는다는 것은 심오한 형이상학으로의 초대이다. 그의 내면의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가 음악 속에 반영되어 있어 베토벤의 내면과 단도직입적으로 맞대면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의 심리상태는 복잡하기가 현대음악을 능가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강렬함은 어느 교향곡에 못지않으며,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는 듯하다. 해학적 요소도 틈틈이 섞여 있어 그의 유머러스한 면을 느낄 수 있으며, 리드미컬한 춤곡 분위기로 흥을 돋우기도 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아름다운 서정적 일면을 노출하기도 한다.
현악사중주 제10번 〈하프〉와 제11번 〈세리오소〉는 중기 현악사중주의 끝 부분에 위치하면서 후기 현악사중주의 전조로서 일종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그러나 후기 현악사중주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관문을 꼽자면 제11번 〈세리오소〉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중기를 지나 후기가 시작될 무렵인 1810년 작곡됐다. 초고에는 `Quartett serioso'라고 적혀 있는데 세리오소(진지한, 엄숙한)라는 명칭은 그가 붙인 것이 확실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이 곡은 중기나 후기 양식과는 다른 간결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이 지적이며 정서적인 요소가 합쳐져서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마지막 악장에서는 팽팽하게 긴장감 넘치던 분위기가 이완된다. 그 전까지 세 개의 악장에서는 복잡하고 심각한 내면 심리상태의 표출이 두드러진다. 그는 이 작품을 끝으로 14년간 현악사중주에서 손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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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한주 시원하게 보내세요
@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