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목요일
1독서: 예레 2,1-3.7-8.12-13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복음: 마태 13,10-17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제목: 생수의 원천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
1. 사막에서 시작된 첫사랑의 기억
구약 성경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옛날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 시작된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아득한 첫사랑을 이렇게 전합니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예레 2,2)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 텅 빈 사막은, 오직 하느님 한 분만 의지해야 살아남는 삶과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척박한 곳에서 백성은 세상의 헛된 탐욕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순수한 사막의 신앙은 훗날 수도자들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수도승이란 세속의 번잡함에서 물러나, 홀로 고독과 침묵 속에 하느님을 만나는 친밀한 사랑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내 안의 욕심을 비워내고 오직 주님을 따르는 순결한 마음, 이것이 바로 사막에서 시작된 첫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나, 당신만을 조용히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2. 깨진 저수지를 파는 어리석음
하지만 풍요로운 땅에 들어선 백성은 이 거룩한 첫사랑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저지른 큰 잘못을 보시며 이렇게 아프게 탄식하십니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마르지 않고 샘솟는 생수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물을 모아보겠다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는 인간의 지독한 교만입니다. 세상의 안락함, 눈앞의 이익, 그리고 이기심은 결코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백성을 이끌어야 할 사제들과 지도자들마저 주님을 찾지 않고 헛된 우상을 쫓아다녔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본래 목적을 잊은 채 세상의 수단에만 매달리는 삶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함으로 끝나고 맙니다.
3. 미사 안에서 열리는 신앙의 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의 답답함을 지적하십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육신의 눈은 뜨고 있어도 마음의 문을 닫아걸면, 우리 곁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세상 계산에 눈이 멀어 생수의 원천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어둠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겸손히 귀 기울이고 순명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눈이 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옛 예언자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으나 보지 못했던 구원의 기쁨이, 이제 우리가 바치는 매 미사, 특히 성체성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제대 위에서 쪼개어지는 빵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모시는 자리가 바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빵과 포도주의 모습 너머에 계신 구세주를 알아보는 ‘신앙의 눈’을 뜬 이들은 이미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밑 빠진 독을 파는 허망한 노력을 거두고, 날마다 성사 안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며 주님과 하나 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