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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화장실 딱 한 군데 관리 중
이마저도 불 안 들어오고 문 안 잠기고…
시민사회단체 “혐오 조장 말고 공공화장실 설치하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제출
서울역 2번 출구 근처에 붙은 경고문. ‘ 엘리베이터 내/외부 대소변 금지. 엘리베이터 내/외부에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 바랍니다. 적발 시 CCTV 확인 후 고발조치 예정 -서울(1)역- 02-6110-1331’이라 적혀 있다. 사진 홈리스행동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역 야간 화장실 이용을 금지해 놓고, 노상에서 용변 보는 노숙인을 신고해 달라는 경고문을 붙여 논란이 일고 있다.
홈리스행동은 18일 오전 10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의 ‘노숙인’ 혐오 조장과 차별을 규탄했다.
- “공공이 자행한 평등권 침해”… 인권위 진정
서울역 광장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은 지난 12일, 서울역 2번 출구 근처에 황당한 경고문이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을 목격할 경우 신고해 달라는 내용의 경고문이었다. 현재 서울역 화장실은 야간 이용이 전면 금지된 상태다. 홈리스는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한다.
서울역 광장에서 비장애인 걸음 기준 5분 거리에 공공이 관리하는 조립식 간이화장실이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악취가 심하게 나고 전등이 없어 어두운 데다, 손 씻을 세면대와 출입문 잠금장치도 없어 정상적인 이용이 어렵다. 낮 시간엔 이용할 수 없도록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야간에만 개방한다. 서울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화장실이 아니라, ‘노숙인’만 야간에 이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화장실이라 그런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이 외에 서울역 광장 내 공공화장실은 단 한 곳도 없다.
서울역 근처 간이화장실. 외부(왼쪽)와 내부(오른쪽). 남녀공용 칸과 남성용 소변기 칸이 있다. 남녀공용 칸 출입문의 손잡이는 떨어져 나가 있다. 이 화장실은 낮 시간엔 이용할 수 없도록 출입문을 자물쇠로 잠근다. 화장실 내부에는 전등이 없어 캄캄하다. 사진 홈리스행동
서울교통공사는 야간에 서울역 출입구를 전면 폐쇄해, 홈리스가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사진 홈리스행동
로즈마리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은 “여성홈리스의 경우 하나뿐인 간이화장실마저 이용하기 무섭다. 화장실을 24시간 운영하는 공원에 머무르려 해도 금세 쫓겨난다. 화장실 문 정도는 열어놔야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아닌가”라며 답답해했다.
사정이 이런데,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역에서 용변 보는 노숙인을 고발하겠다는 경고문을 붙였다. 시민에게 감시와 신고를 요청하는 내용이라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서울교통공사는 노숙인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조장했다. 또한 노숙인이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데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했으며 노숙인에게 모멸감을 줬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호에 따른 평등권 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지하철 서울역의 ‘노숙인’ 혐오 조장 행태 규탄 및 차별 진정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참가자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하철역 근처에 머무는 홈리스는 서울교통공사의 인권 침해적 역사 운영으로 인해 많은 차별을 당한다. ‘2020년도 서울시 재난 상황에서 노숙인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많은 홈리스가 인권을 침해한 사람으로 역무원(29.6%)을 꼽았다.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공공공간·공공시설 이용 제한이나 퇴거 요구’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홈리스가 59.5%로 가장 많았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홈리스가 개인위생, 생리현상 등 일상적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공공시설뿐이다. 주거가 없으니 당연한 선택지다. 그러나 공공역사를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홈리스가 생리현상 해결이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건너뛰고 시민에게 홈리스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있다.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역사를 운영하며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서울교통공사는 철도 이용 고객뿐 아니라 역사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의 약자를 고려해, 역사를 공공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또한 “공공성이 혐오와 배제의 앞잡이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화장실도 잘 곳도 막아놓고 사람들을 모욕 주고 쫓아내는 서울교통공사를 고발한다. 누가 누굴 고발 조치해?!’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홈리스는 서울역 근처 광장 내 작은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 광장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홈리스들은 광장에 공공화장실이 최소 두 개는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서울교통공사는 동료 시민에게 홈리스 감시를 하게 함으로써 홈리스 존재를 부정하지 말고 공공화장실을 설치하라. 청소노동자와 홈리스를 대립 구도로 만들어 홈리스 혐오를 부추기는 일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사회단체가 대응에 나서자 서울교통공사는 경고문을 뗀 상태다. 홈리스행동은 기자회견 후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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