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젊었던 날의 여름밤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자냐고, Y가 물었다
아니, 전화받고 있어
내 대답에 그는 쿡쿡 웃더니
그냥 나한테 전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그냥, 그냥만 되풀이하다가
그냥..... 살고 싶지가 않아.....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울고
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다가 그는
툭,
전화를 끊었다
아직 젊었던 날의
계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또 한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 K인데.....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는 K는
어린 여자에게 가버린 애인에 대해
K를 못마땅해하던 애인의 가족에 대해
지운 아기에 대해
물거품이 돼버린 그림 같은 집과
토끼 같은 자식들에 대해
설움과 분노를 토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잠 못 이루다 새벽에
전화로 나를 찾았던 Y와 K는
둘 다 별 연락 없이 지내던
먼 친구였다
그 뒤 Y와 K는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안다
나도 살아 있다
우리를 오래 살리는,
권태와 허무보다 더
그냥 막막한 것들,
미안하지만 사랑보다 훨씬 더
무겁기만 무거운 것들이
있는 것이다
- 황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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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흐린날씨 속에서 휴일날을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오후시간에
좋은글을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오늘의 날씨는 비바람이 불어다 끝쳐다 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무더워던 더위는 태풍영양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함께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