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神)의 사자(使者), 여우
시편 147편에 보면, 하나님은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도 먹이를 주시는 긍휼을 베푸신다. 왜 하필 까마귀 새끼였을까? 유대인에게 까마귀는 경멸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워 사람에 의해 하찮게 여겨질 뿐 아니라, 하늘을 날 때쯤이면 어미에게도 버림받는 불결한 날짐승이었다고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살핌에만 의존하는 이러한 미물에게도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떠하실까?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이 서양으로 전승되어서인지 서양에서는 대체로 흉조(凶兆)를 가져다주는 나쁜 새로 여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할까? 고려말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 가던 날 팔순의 노모가 꿈이 흉하여 가지 말라고 말리며 부른 노래가 있고, 이를 들었는지 조선의 개국공신인 이직(李稷)이 반박하는 시조가 있다. 같은 새를 두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양 진영의 평가로 볼 수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시기(猜忌)하니,
청강(淸江)에 기껏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그런데 고구려는 삼족오(三足烏) 즉 까마귀를 태양의 상징으로 보아, 국가의 상징물로 택하였고 전쟁 시 깃발에도 삼족오를 그려 넣었다. 삼족오는 고대 동이족의 태양숭배와 조류숭배(새 토템)신앙이 합치된 것으로 삼신(三神) 신앙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흔히 까마귀를 현조(玄鳥)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늘의 절대자가 보낸 사자(使者), 천조(天鳥)로서 태양 속에 있다는 새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솟대 끝에 있는 새가 까마귀를 뜻한다고도 하는데, 새 중에 유일하게 늙은이를 보살피는 새가 까마귀라는 말도 있어 길조(吉鳥)라고도 한다.
한편 중국의 「시경(詩經)」에도 ’현조‘(玄鳥)란 시가 나오는데, 하늘이 이 새에게 명하여 상(商)나라를 낳게 하신다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하늘의 주관자인 신이 지상에 강림할 때 메신저로 새를 사용하는 전통이 고고학에서 자주 확인된다. 이는 새가 자유롭게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다닐 수 있기에 상징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하늘의 사자(使者)를 여우로 선택한 곳이 있다. 흔히 토요가와이나리(豊川稻荷)라고 불리는, 1441년에 창건된 묘곤지(妙嚴寺) 사찰이 아이치현 토요카와(豊川) 시(市)에 있다. 이 사찰은 오곡, 특히 벼를 관장하는 신인 우가노미다마(倉稻魂)를 모시는 곳으로, 불교가 처음 일본에 전파된 때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졌던, 종교 혼합주의 시대에 창시된 조동(曹洞) 종파의 본원(本院)이며 도쿄에 별원(別院)이 있다. 그 때문인지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신불분리(神佛分離)에 따라 철거되었던 신사(神社)를 상징하는 토리(鳥居)가 사찰 입구와 내부에도 서 있다. 여기서 이나리(いなり,稻荷)라는 말은 오곡(五穀)의 신, 여우(きつね), 유부초밥(いなりずし,稲荷鮨)을 뜻하기도 한다.
이 절에는 본존(本尊)인 천수관음(千手觀音)과 수호신인 토요가와 다키니신텐(豐川吒枳尼眞天)을 모시고 있다. 이 신텐(眞天)의 이야기는 84대 천황인 순덕천황(順德)(天皇)의 셋째 아들인 칸간지인(寒巌義尹, かんがんぎいん)선사(禅師)로 부터 출발한다. 그가 선종에 입문 후 조동(曹洞宗)에서 도원선사(道元禪師)로부터 선종의 법을 배웠다. 700여 년 전 그는 ’시대와 세계를 구한다‘는 큰 신념으로 중국 송(宋)나라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두 번째 방문 귀로에서 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을 때 영신(靈神)이 갑자기 공중에 나타났다. 그 아름다운 영신(靈神)이 쌀 한 다발을 들고 손에 보석을 받치고 휜 여우에 걸터앉아 큰 소리로 진언(眞言)을 외우고 있었다. 이러한 영적 신비를 경험한 그는 귀국 후 영신의 형상을 새겨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자들에게 항상 진언을 암송하고 기도하도록 지시한 것이 토요가와이나리(豊川稻荷)의 이야기이다.
이곳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섬기던 사찰이었고, 에도시대 서민 사이에서 다키니신텐(吒枳尼眞天)이 사업번창(事業繁昌)과 가내안전(家內安全), 복덕(福德), 개운(開運)의 수호신으로 전국에 펴졌으며, 현재에도 연간 5백만 명의 참배객들이 방문한다고 알려져 있다.
흔히 신사(神社)에는 동물의 석상과 조각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동물을 신의 사자(使者)라고 하며, 신과 신사를 보호하고 나쁜 기울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여우가 농경의 신(神)인 이나리 신(稻荷神)의 사자(使者)로 뽑혔다. 그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여우의 꼬리가 노랗게 익은 벼의 모습을 닮았고, 여우가 곡식을 훔치는 쥐의 천적이라는 이유이다, 그러한 이유로 칸간지인(寒巌義尹, かんがんぎいん)선사(禅師)에게 나타난 영신(靈神)이 쌀 한 다발을 들고 여우에 걸터앉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우의 돌조각 중에는 입에 뭔가를 물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벼 이삭은 오곡과 풍요, 두루마리는 지혜, 구슬은 이나리 신의 은덕, 열쇠는 곡식 창고의 열쇠를 상징한다. 이처럼 여우는 약한 영혼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왔다. 흥미로운 것은 여우 목에 붉은 턱받이를 대부분 걸치고 있는데, 붉은색이 신토(神道)에서 신의 색상으로 질병과 약한 기운을 물리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사찰 본전을 지나, 천 개의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뒤편의 나무숲 오솔길인 참배 길을 따라가면, 참배객들이 소원성취의 감사 표시로 봉헌한 약 1천여 개의 여우 석상들이 붉은 꽃이 일제히 핀 것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를 여우의 무덤(靈狐塚)이라고 한다.
흔히들 일본에는 8백만 이상의 신들이 있다고 하니 일본은 과히 신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농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논의 신(さぐじ,三狐神), 음식물을 주재하는 신(みけつかみ,御食津神)들도 농경사회에서는 소중하게 여겨졌던 신들이었다.
사찰 문밖 몬젠마치(門前町)에는 100여 개가 넘은 기념품 상점과 음식점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은 유부초밥(しのだずし信田鮨)의 발상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