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을 풀고
(사도행전 22 : 22-30)
과거에 매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돈에 묶여 종노릇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원한에 사로잡힌 사람도 있습니다.
술에 붙잡혀 있거나 질투에 묶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결박을 그대로 놔두면 점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요.
자신의 힘으로 자기를 얽어맨 사슬을 끊어 자유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묶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결박에서 놓여 자유케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억매인 결박이 풀리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유익한 비상구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당합니다. 많은 군중이 그를 결박하며 때리고 옥에 가두며 야유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그의 결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들은 바울의 변론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서 산헤드린과 벨릭스의 앞에서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 죽음을 각오로 변론합니다. 그리고 그가 변론하는 내용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증거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채찍질 당할수 있습니다.
이제 군중들은 바울을 가죽 줄로 매며 채찍질을 하고 그를 죽이려 듭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바울은 자신의 곁에 서 있던 백부장에게 로마 시민인 자신을 이처럼 아무런 재판도 없이 가죽 줄로 묶고 채찍질하는 것이 합법적이지 않다고 항변합니다. 백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자임을 알고 천부장에게 나아가 이 사실을 알립니다. 25절입니다.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사도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채찍질 당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에수님 때문에 채찍질 당하는 것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채찍은 겟네마네 동산에서 피흘리는 시는 기도에서 옵니다. 기도결론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옵소서입니다.
예수님의 채찍은 십자가 지시면서 로마군병에게 채찍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채찍을 당하시는 것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플때마다 예수님의 채찍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채찍은 가시 면류관에서 흘립니다. 우리의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시고 우리를 구원하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가난이 부요로, 질병이 건강으로 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구나 나는 나음을 받았구나 ! 나는 건강한 사람 이구나 ! 나를 치유하려고 예수님이 채찍을 맞으셨구나 ! 예수님이 나를 구하려고 스스로 십자가를 택하셨구나!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죽으셨구나!
예수님의 채찍은 십자가지심으로 흘리는 피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나의 죄가 용서 받았습니다.
찬송가 540장 내가 매일 십자가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아멘
예수의 피가 나를 살리고 나를 소망가운데 기쁨가운데로 나를 인도합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개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개입하면 환난과 핍박이 와도 수치도 괴로움도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불면증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제 하는 것입니다. 내인생에 하나님을 개입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결박을 당하였기에 나도 결박 당할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이고 나를 구속하였고 나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내것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불가운데로 지날때도,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나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요 부루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은 나의 새로운 창조적인 역사와 두려움이 변하여 거룩한 자와 구원자임을 고백하며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살아 갑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리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2. 로마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은 물론이고 로마인이 아니더라도 국가 유공자에게 주어졌으며, 금전으로도 살수 있었으며 사도행전에서 천부장은 돈을 주고 산 경우이고 사도 바울은 세습받은 경우입니다.
사도바울이 나면서부터 로마 사람이었다는 말은 곧 사도바울의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천부장은 사도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지 알게 되었을 때 적지 않게 놀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 시민권자인 사도바울을 합법적인 재판 없이 불법으로 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천부장은 이전에 많은 돈을 들여서 로마 시민권을 얻었지만, 사도바울은 태어나면서 시민권자이기에 이 사실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실제 로마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직접 선거로 뽑는 모든 선거에 투표권을 가졌습니다.
아울러 피선거권도 함께 있었습니다.
해외여행을 안전하게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세계 곳곳에 파견되어 있는 로마 군대가 있었습니다.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 바로 로마 시민권이었습니다.
지금의 유일한 세계 국가로 군림하는 미국 시민권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미국시민권보다 더 좋은 로마시민권을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권력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고 복음 전하는 일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사랑이요 예수님은 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3. 천국시민권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로마 시민권도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 시민권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태복음 1장을 보면서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 성령으로 잉태하고 성령으로 되어지고, 그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믿음이 생긴 뒤로는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집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에 “예수께서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을 신뢰하면서는 두려움이나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천국이 기다려집니다.
미래를 준비는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받는 기쁨도 있지만 주는 행복도 경험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삶 가운데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명감당하는 삶 가운데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천국 중심의 삶 가운데에 있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다스리는 나라!
나 중심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중요해지는 나라!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나라!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려고 하고, 용서받기 보다는 용서하고,
모으기 보다는 나누려는 사회를 만들 것을 선포하며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심판이 있고 천국이 있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배신과 배척, 배타성의 시대를 배려의 삶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천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죄와 씨름하면서 피를 흘리기까지 해야 합니다.
천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천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꼬이고 힘들어 질때가 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어도 문제가 있습니다.
나의 삶을 주권적인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살고 있는가?
꼬이는 것에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수 있었습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나를 변화시킵니다.
안 열리게 하시는 이유는 나의 교만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 집니다.
하나님, 보셔죠 하나님, 아셔죠 하나님, 들으셔죠.
마태복음 6장 32절에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귀신이 쫓겨나고, 병고침을 받게 하시고,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자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하라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불이 떨어집니다. 기름부음이 임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불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마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꿉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천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거룩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의 일에 힘차게 나가야 합니다. 축복받는 일에 가장 앞장서야 합니다.
영혼구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는 것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