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는 법
文 熙 鳳
요즘 '흙수저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다. 흙수저론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많은 젊은이가 기회의 불평등에 좌절하며 없는 집안에 태어난 불운을 한탄하고 있는 말이다. 누군가는 스스로를 '7포 세대(연애·결혼 등 7가지를 포기)'라 자조했고, 누군가는 절규처럼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을 외쳤다. 한번 약자(弱者)는 평생 약자라는 신분 고착화의 절망 담론이 우리 사회를 휩쓴다. 조물주는 쓸데없는 물건을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도 꼭 무엇인가에 귀하게 쓰일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지혜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터득해서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을 기적이라고들 말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긴 불가능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경영 멘토 맬컴 글래드웰은 그런 통념을 부정한다. 그에 따르면 다윗의 승리는 예상된 것이었다. 이길 싸움을 이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골리앗이 정한 규칙을 거부하고 다윗 자신의 방식대로 싸웠기 때문이었다.
골리앗이 원한 게임의 룰은 근접 백병전(白兵戰)이었다. 골리앗은 청동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다윗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먼 거리에서 투석 주머니로 돌을 날려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시켰다. 칼 든 도수(刀手)에게 총을 쏜 셈이었다. 골리앗은 2m가 넘는 거인이지만 원격(遠隔) 전투에선 오히려 약자였다. 다윗은 일대일 결투의 규칙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을 벌였다.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한 것이다.
보스턴대학의 이반 아레귄-토프트 교수가 내놓은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그가 19세기 이후 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 200여 건을 분석했더니 약소국이 이긴 경우가 28%에 달했다. 이 수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1950~99년엔 놀랍게도 약소국의 승전율이 50%를 넘겼다. 약소국이 승리한 전쟁은 대개 게릴라전 같은 비정규·변칙 전술을 구사한 경우였다. 미국이 패배한 베트남전쟁이 대표적이다. 강자가 정한 전쟁의 룰을 거부하는 순간 약자의 승리 가능성은 높아진다.
산업사(史)에 등장한 강자 대부분은 처음부터 강자였던 것이 아니다. IT의 제왕 애플 역시 2007년 첫 번째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는 약한 신참자에 불과했다. 당시 휴대폰 시장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는 노키아였다. 하지만 노키아의 권좌는 3~4년을 더 못 갔고, 결국 휴대폰을 포기하고 말았다. 애플의 승리는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전장(戰場)을 만들어 싸운 결과였다. 게임 룰이 바뀌면 강자가 지닌 강점은 도리어 약점이 된다. 노키아도, 골리앗도,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
경기도 오산에는 노숙자 출신 서민 갑부가 살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오산의 재래시장에서 가죽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판매하는 박상기(56) 씨다. 한때 가죽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며 백화점 납품에 일본 수출까지 눈앞에 뒀지만 IMF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빚쟁이에 쫓기던 그는 아내와의 이혼, 자녀들과의 이별까지 겪으며 거리로 내몰렸고, 결국 노숙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노숙 생활이 마치 기계 장치가 꺼진 것 같은 느낌이라 말할 정도로 재기를 꿈꾸기는커녕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박상기 씨였다. 노숙 생활 10년 만에 얻은 천금 같은 기회로 좌판에서 장사를 시작, 장사 5년 만에 빚 청산은 물론 서민갑부까지 되었다.
가죽제품이라는 것이 거의 여성용 가방이다.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다. 대량생산 체제의 현대사회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성실과 믿음을 모토로 수제품 가죽가방을 주로 만든다. 무늬도 색상도 하나하나 손수하고 있다. 가게는 아주 조그맣다. 입소문이 퍼져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나도 한 번 가 봤다.
이렇게 약자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기업인의 성공담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행복은 보람 있는 일을 성취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선물이다. 고난이 없다면 인생은 심심해진다. 고난은 은총의 꽃을 데우게 하는 토양이다.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를 향해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그것은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꾸짖는 것은 청년들에게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는다. 흙수저가, 약자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다. 그런 약자의 승리 루트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게 우리 사회가 할 일이다. ‘좋은 대학에 가라.’, ‘좋은 직업을 가져라.’, ‘돈을 많이 벌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먼저 사람이 돼라.’, ‘남을 속이지 마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 ‘늘 정직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요즘 세상은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가 아니다. 어른들의 이런 한마디에 따라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취업 전선에서 고전하는 청년들이 범하는 오해가 있다. 학점, 토익 점수 같은 스펙이 약해서 흙수저가 밀린다는 오해다. 그러나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은 스펙이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스펙보다 열정, 학벌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을 더 본다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와 똑같이 스펙 경쟁을 벌인다면 질 수밖에 없다. 약자는 게임 룰을 달리해야 이긴다. 스펙 쌓느라 애쓰기보다 역경과 싸운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를 만드는 편이 면접장에서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한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활용하는 것, 이것이 약자의 성공 방정식이다.
2000여 년 전 오늘 태어난 예수도 인간으로서 보낸 삶은 약자였다. 빈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권력과 가진 자에게 평생 핍박당했다. 그렇게 시작된 기독교는 오늘날 가장 많은 세계인이 믿는 종교가 됐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예수가 강자의 질서를 거부하고 약자 편에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한 데 있다. 예수의 말씀은 '천국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라는 약자 승리의 복음이었다.
절망에 떠는 이 땅의 모든 약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수은으로 닦아낸 듯한 맑은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