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장 므리바 물 사건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과 절망의 땅인 광야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 거룩과 정결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들어 광야의 길을 걸었다.
시간은 강물 같이 흘러가고 이스라엘은 38년의 광야 생활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데스 바네아로 다시 돌아왔다. 그간 38년의 모든 일정에 대해 성경은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민33:18-19 하세롯을 떠나 릿마에 진을 치고 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에 진을 치고..
*민33:36 에시온게벨을 떠나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을 치고..
여기서 릿마는 이스라엘이 처음 도착했던 ‘가데스’와 거의 동일한 지역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13장에 이스라엘이 하세롯을 떠난 후에 바로 바란 광야에 진을 쳤다는 사실과, 이어서 곧 바로 가데스 바네아 정탐꾼 사건이 나오기 때문이다.
릿마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일곱 지역에 진을 치고 지냈다가 열여덟 번째 다시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왔다. 그 동안은 ‘진을 쳤다.’라는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아무 사건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사건을 또 다시 경험하게 되는데 즉 미리암의 죽음,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며 원망한 일, 모세와 아론의 가나안 입국 금지 명령 등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조금씩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진군해 가고 있었다.
1. 백성의 원망과 모세의 실수 (20:1-13절)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징계를 받은 가슴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다는 이유로 또 다시 지도자를 원망하는 어리석고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이에 대해 모세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혈기를 부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출애굽 제 40년째 되는 해 1월 아빕월, 오늘 날 3-4월경에 이스라엘은 다시 가나안 땅의 남부 신 광야에 위치한 회한의 땅, 가데스 바네아에 돌아왔다. 저들은 과거에 여기서 하나님께 반역하여 기나긴 방랑 생활에 들어갔고 이제 38년의 징계가 끝나고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여기서 생을 마감했는데 아마 그녀의 나이는 130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리암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기간을 가지기 위해 이곳에서 3-4개월가량 머물렀던 것이다.
‘물이 없으므로’
가데스는 일종의 오아시스 지역으로 본래 좋은 샘들이 여러 곳에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심한 가뭄으로 샘들이 말라버렸다. 따라서 백성들은 목이 말라 큰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시106: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백성들은 적의를 품고 모세에게 대항했다. 다시 말하면 여차하면 반란이라도 일으킬 태세였던 것이다. 저들은 38년 동안 광야에서 형제들이 죽을 때 자신들도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또 다시 이곳으로 인도하여 우리를 죽게 하느냐고 불평했던 것이다.
이곳에는 ‘없고, 없고, 없고, 없고, 없도다.’ 그들의 이러한 말대로 가데스는 사람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죽음의 땅 그 자체였다. 거기에다 물까지 없었으니 저들의 불평은 극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저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으며, 광야 40년의 마지막 기간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나님의 마지막 인내의 시험이 저들을 극한의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끝까지 믿고 현실에 그것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르비딤 물 사건에 사용했던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를 가지고 많은 이적을 행했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을 모으고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는 것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르비딤에서 ‘반석’은 ‘추르’라는 말로 큰 바위였다. 그것이 쪼개지면서 물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반석 ‘셀라’는 바위가 아니라 높은 요새처럼 절벽같이 형성된 높은 암벽으로 하나님은 그곳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만을 하도록 지시하신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명령이었다.
모세는 그 반석 앞에 회중을 모은 후에 반석을 향하여 명령한 것이 아니라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너희 반역자들아’ 로 시작된 모세는 말은 매우 격앙되었고 감정을 최대한 폭발하여 혈기를 부린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반석에게 ‘물을 내라’고 했더라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아졌을 것인데 모세는 하나님을 제치고 자신이 그 권위를 대신하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려 하셨으나 모세가 혈기를 부림으로 여호와의 영광과 권능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하나의 죄목이었다.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모세와 아론의 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신앙적으로 불신앙했다는 말이 아니라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한 것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모세의 혈기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이요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큰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실수가 영적 축복과 하늘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하는 중죄에 해당하는 형벌은 아닌 것이다. 도리어 이 사건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율법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율법은 단지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 하나님의 이 선언은 구속사의 깊은 섭리와 경륜이 깔린 대 선언인 것이다.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곳을 ‘므리바 물’이라 하였는데 이 말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라 므리바라, ‘백성들이 여호와와 다투었다.’고 한 것과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른 것이다.
2. 자국 영토의 통과를 불허한 에돔 (20:14-21절)
가데스 바네아에서 수개월을 지난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에 그들이 정탐했던 코스로 북상하지 않고 다시 사해 남쪽을 돌아 요단 강 동쪽 지경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진입하려고 했다. 그 경로를 지나려면 최단의 코스는 사해 남쪽에 위치한 에돔 족속의 땅에 있는 왕의대로를 지나가야 한다.
모세는 그들의 행군에 있어서 지름길에 있던 에돔 족속을 설득하여 그들의 땅을 통과하려고 사자를 급파한 것이다.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에돔은 이삭의 아들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거주지이다. 이 지역은 가데스에서 동북쪽에 있었으며 사해 남쪽으로 홍해에 미치는 아카바 만의 산악지대였다.
모세가 경로를 우회한 까닭은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겠지만 가데스 북쪽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준하고 가파른 산악지대였기 때문이다.
모세가 에돔과 모압을 통과하는 대로로 행진하기를 원했던 것은 요단 강 동편에는 모압과 암몬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는 가나안 족속인 아모리 족속들이, 암몬의 북쪽에는 북아모리 족속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에돔과 모압이 자신의 요청을 들어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에돔을 통과하여 요단강으로 가려면 두 왕국의 적대국인 아모리 족속들과 충돌할 것이 자명했으며 모세가 이들을 처치하면 두 왕국은 힘들이지 않고 숙적을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이제이의 외교적 실리를 계산하여 에돔 왕이 길을 쉽게 터줄 것이라 생각하고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에돔 왕은 오랜 민족적 감정을 앞세우고 이스라엘의 통과를 불허하고 말았다.
오히려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통과를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에돔의 이러한 적대 행위는 계속되어 결국 여호와의 심판을 자청하고 말았다.
모세는 다시 한 번 에돔 왕에게 간청하였으나 에돔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강한 손으로 막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에돔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이 저들과 전쟁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세일 산을 에서의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형제의 땅을 탐하거나 침범하지 말라고 하셨고, 불필요한 전쟁 때문에 가나안 족속과의 주 전쟁에 사용할 힘을 소모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 아론의 죽음과 엘르아살의 승계 (20:22-29절)
이스라엘은 진군의 향방에 차질이 생겼지만 가데스를 출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 에돔 변경의 호르 산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대제사장 아론이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직을 승계한 것이다.
'호르 산에 이르렀더니’
이곳은 가데스에서 북동쪽으로 약 24km 지점에 있다. 이곳에는 모압으로 곧장 갈 수 있는 왕의대로가 있다. 모세는 에돔 왕이 허락해 줄 것을 기대하고 가데스를 출발하여 이곳에 와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에 대제사장 아론이 죽게 되었는데 그 결정적 이유는 므리바 물 사건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된 것이며 그의 죽음은 자연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호르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아론의 대제사장 옷을 벗겨 그의 아들에게 입히고 난 후 아론은 산꼭대기에서 죽었다. 출애굽시 아론의 나이는 83세였고 그가 출애굽 40년 5월1일에 죽었으므로 그는 123세의 연수를 향유하고 생을 마친 것이다.
아론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 직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를 잃었으므로 애도 기간을 30일 동안 진행하였다. 이는 각별한 예우로서 국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리암은 출애굽 40년 1월에 죽었고 그 후 5개월이 지난 5월에 아론이 죽었다. 또한 모세도 출애굽 40년 11월 1일에 고별 설교를 끝으로 죽었으며 이스라엘을 영도했던 민족의 위대한 세 지도자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