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치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 남해군 서쪽 최남단에 위치한 남면 홍현리, 가천 다랭이 마을은 1024번 지방도에서 만날 수 있는 설흘산(481m)과 응봉산(412m)사이 바다로 내달리는 급경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포기하고 뒤쪽 산비탈 다랭이밭에 삶을 기대고 산다. 망망대해가 바로 눈앞이지만 배 한 척 없는 곳이 바로 다랭이 마을이기도 하다. 앞 바다는 물살이 세고 연중 강한 바람이 불어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한다. 다랭이 밭은 적게는 3평 남짓 삿갓배미부터 기껏해야 100평을 넘지 못하는 마늘밭들이 바닷가 절벽에서부터 설흘산 8부 능선까지 층계를 이루고 있다.
남해대교를 건너 계속 남쪽으로 달리다 월포해수욕장을 지나 꼬불꼬불 산허리를 휘감으며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남해의 섬 끝에 자리잡은 가천마을에 닿는다. 마을 버스주차장이 있는 언덕을 넘어서면 마을이 모습을 보이는데 누구나 이 지점쯤에서 탄성을 발하게 된다.
층층이 계단 모양으로 만들어진 밭과 논이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너머로는 푸른 남해바다가 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처럼 계단 모양의 논은 보통 평지가 없는 산간오지마을의 비탈진 경사에 만들어진다. 가천마을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마을은 설흘산(485m)이 바다로 내리지르는 45도 경사의 비탈에 자리잡고 있다. 말이 평균 45도지 심한 곳은 경사가 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곳도 있다. 이런 논을 지리산 등 내륙에선 다락논, 다랑이 논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가천마을에선 원래 달갱이논으로 부르다가 최근 다랭이논으로 고쳐부르고 있다.
다랭이마을이나 월포쪽에서 숙박을 한다면 이른 아침에 설흘산을 올라볼만하다.설흘산은 다랭이마을 뒷산 이름으로 소흘산 또는 망산 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정상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되었던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앵강만과 노도를 위시한 한려수도의 섬들이 눈아래로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설흘산, 응봉산, 사촌해수욕장, 죽방렴과창선교, 월포/두곡해수욕장, 노도, 망운산, 물미해안관광도로, 용문사, 금산과보리암, 홍현숲
해뜨는집민박(055-862-9395), 조약돌민박(055-862-8166), 비파나무민박(055-862-8190)
자가이용 : 서울에서 대전까지 경부고속도로 이용 - 대전에서 서진주 IC 까지 대전·통영고속도로 이용 - 서진주IC에서 진교IC 까지 남해고속도로 이용 - 진교IC에서 남해대교 까지 1002번 지방도로 이용 - 남해대교에서 이동면 앵강고개까지 19번 국도 이용 - 앵강고개에서부터 1024 지방도로를 타고 월포 두곡 해수욕장을 지나 석교마을 농로길을 지난뒤 좌회전 -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 해안도로를 타고 가천 다랭이 마을 도착.
대중교통 : 고속/시외버스 터미널(남해행 버스 이용) - 남해도착 - 남면 가천행 군내버스 이용 - 가천마을도착(버스 종점)
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3801)
나른한 햇살에 늦겨울 찬 바다도 맥이 풀렸다. 따사로운 남해 금산 산비탈, 층층이 쌓인 다랑논·밭에선 푸성귀들이 아침 저녁으로 새로 돋아 아우성이다. 바구니를 밀고 가는 할머니의 손길이, 이 근질근질한 비탈밭을 다스린다. 은근히 긁어주고 돋워줄 때, 맨살로 자지러지며 봄 향기를 내뿜는 건 냉이·쑥·동초(유채) 들이다.
남해안 바닷가 마을엔 벌써 봄 향기가 어지럽다. 맵고 사나운 겨울 바람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도, 오목볼록 이어지는 해안선을 둘러보는 동안 스르르 풀릴 듯하다. 찾는이가 적어 한적하기 그지없는 바닷가 마을로 간다. 봄빛말고도 볼거리·느낄거리가 널린 동네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良阿里). 남해도에서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금산(錦山)의 남서쪽 자락의 마을로, 금산과 함께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굽이치는 해안선 비탈길을 따라 차를 몰면, 할머니 품속 같기도 하고 겨드랑이 같기도 한 아늑한 포구들이 숨바꼭질하듯 나타나고 사라진다. 여수 쪽에서 오는 물과 앵강만 물이 나뉘는 곳이어서 양아리가 됐다고도 하고, 옛날 임진강가의 양아리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마을 이름을 그대로 썼다고도 전한다.
우묵한 골 안에 들어앉은 포구들의 생김새는 찍어낸 듯 서로 닮았다. 한 포구에서 언덕 하나 넘어가면, 언덕길도 다랑논도 논밭 사이의 구불구불한 산길도, 바다 빛깔도 빼닮은 또하나의 포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을마다 몇 그루씩 자라고 있는 듬직한 느티나무 거목들도 같은 모습이고, 시월 보름 나무 아래 밥무덤에서 마을 동제를 지내는 것도 한가지다.
포구 풍경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돌담을 쌓아 일군 다랑논들이다. 다랑논으로 이름나기는 앵강만 건너편, 남면 가천리의 ‘다랭이마을’이지만, 양아리 일대의 비탈밭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파릇파릇 깔린 봄빛의 주인공은 마늘과 동초(겨울초·유채)·시금치·냉이 들이요, 밭마다 흩어져 움직이는 울긋불긋한 점들은 봄빛 더듬어 봄맛을 캐내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주민의 “팔십 파셴뜨가 할매·할배”인 고장이다.
금산 바위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보이는 두모리. 본디 지명은 드므개다. 포구 모습이, 궁궐 처마 밑에 물을 담아 뒀던 큰 항아리인 ‘드므’를 닮았다고 한다. 마을 물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박씨·김씨, 김씨·정씨가 집성촌을 이뤄, 오순도순 살고 있는 마을이다.
다락밭에서 ‘겨울초’를 캐던 김복수(71)·박막달(〃)씨 부부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봄맛도 이런 봄맛 없을끼라예. 잘 따듬어 갖고 겉절이 해 잡사 보이소. 제초제도 한나 치도 않고, 노지재배를 해 노이깨내 맛이 참말 좋십니더.”
81가구가 사는 드므개마을은 지난해부터 농약·제초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부턴 양아리 전체 마을이 의무적으로 친환경농법을 쓰게 된다. 병해충은 논에 우렁이를 논에 넣어 없애고, 잡초 씨앗은 왕겨를 깔아 없앤다. 드므개마을은 지난해 가을 1만5000평의 다랑논에 유채씨를 뿌렸다. 4월껜 산비탈이 온통 노란 유채꽃밭으로 바뀔 전망이다.
다랑논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소량·대량·벽련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벽련마을 포구에서 배를 타면, 10분 거리의 섬 노도(삿갓섬)로 건너갈 수 있다. 노도는 조선 중기의 소설가 서포 김만중이 3년간 유배생활 뒤 생을 마친 곳이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섬에 갇혀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그를 보고 “노자묵자 할배”라 불렀다고 전한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지내는 지식인 유배자의 생활을 가리키는 것이겠으나, 서포는 여기서 놀고 먹지는 않았다. 병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노도에서 한글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써냈다.
노도는 중국의 진시황이 불노초를 구하러 보낸 ‘서불’이라는 사람과 ‘500명의 동남동녀’ 일행이 금산으로 오를 때 처음 도착한 섬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서불이 지나간 흔적을 표시했다는 고대 각석이 두모리에서 금산쪽으로 오르는 산기슭 바위에 새겨져 있다.
드므개 마을 옆의 소량마을은 ‘금연 마을’이다. 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담배 필라카모 딴 동네 가가 피고 오소.” “105명 주민 중 담배 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올해 남해군 보건소에서 ‘금연 마을’로 지정했다. 상주 쪽에서 산길 돌아 넘으며 내려다 보는 포구 풍경이 아름답다.
소량 옆은 대량이다. 양아리의 가장 남쪽 끝 마을이면서 막다른 길 끝에 자리한 조용한 포구다. 차가운 선착장 바닥에선 큼직한 우럭과 돔들이 쾨쾨하면서도 고소하게 말라가는데, 맑고 푸른 파도가 다랑논 주름처럼 자꾸 밀려와 마을에 봄내음을 끼얹고 있다. ?남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leebh99@hani.co.kr
황홀한 해안경치 보며 드라이브
볼거리·즐길거리
드므개 마을 봄맞이 농촌체험 행사=지난해 녹색 농촌체험 마을로 지정된 드므개 마을(두모리)에선 3월부터 도시민 가족을 위한 친환경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반농·반어촌인 마을에서 묵으며 온가족이 채소와 콩·옥수수 씨뿌리기, 유채 생육과정 관찰하기 등의 농촌 체험과 비단조개 캐기, 게 잡기 따위의 어촌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 1㎞ 가량의 해안 산책로가 있어 바다와 노도쪽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드므개마을 배기준 이장은 “체험 행사는 철마다 프로그램을 달리해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며 “고향의 추억과 따뜻한 인심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 단체용 숙소 2개가 있어 40여명이 묵을 수 있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4곳 있다. 일부 집엔 방에 화장실·조리대가 딸렸다. 1박 3만원. 식사 5000원. 마을회관 (055)862-5863.
남해도의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들=남해군은 남해도와 창선도, 두개의 큰 섬과 딸린 작은 섬들로 이뤄졌다. 몇년 전 삼천포와 창선도가 다리로 연결되면서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해안 경치가 아름다워 섬 전체가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로 불리는데, 특히 앵강만 서쪽, 남면의 동남해안을 도는 두곡~홍현~가천 다랭이마을~선구리를 잇는 코스와 삼동면 지족에서 시작해 동남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며 물건리~대지포~항도~초전~미조항에 이르는 해안경치를 즐기는 코스가 이름 높다. 창선도의 서쪽 해안을 따라 도는 창선·삼천포대교~창선교 코스도 둘러볼 만하다.
금산과 보리암=높이 681m의 높지 않은 산이나, 숱한 바위 절경과 빼어난 전망을 갖춘 명산이다. 본디 보광산이었으나, 이성계가 이 산에 와서 기도를 한 뒤 왕위에 오르자,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바꿨다고 한다. 쌍홍문 지나 산 9부 능선쯤에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이 있다.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다. 고려시대의 봉수대가 있는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의 산줄기와 바다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주 해수욕장과 드므개 마을 들머리 사이 국도변의 상주 매표소가 산행 출발지다. 여기서 정상까지 4.6㎞, 왕복 4시간. 복곡 저수지 쪽으론 보리암까지 찻길이 나 있다.
이밖에 남해도의 둘러볼 만한 곳으로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이른바 지족해협에 펼쳐진, 물속에 발을 세워 고기를 잡던 옛 어업방식인 죽방렴, 다랑논과 암수바위 등으로 이름난 가천리 다랭이마을, 물건리 물건방조어부림, 관음포 이순신 전몰 유허지 등이 있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leebh99@hani.co.kr
금산 거북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서불과차’(徐市過此·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글씨를 새긴 것이라고도 하고, 한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화상문자(畵象文字)로 ‘사냥터’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서불기례일출’(徐市起禮日出·서불이 일어나 뜨는 해에 예를 갖추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두모리·벽련리 일대에도 비슷한 흔적이 4곳 있으나 신빙성은 떨어진다.
‘서불’을 ‘서시’로 읽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남해군 향토사학자 김우영씨는 “불로 읽어야 맞다”며 “‘불’(市·4획)은 ‘사람이름 불’ ‘앞치마 불’로, 저잣거리를 이르는 ‘시’(市·5획)와는 다른 글자”라고 말했다.
여행정보(지역번호 055)
가는길=수도권에서 경부·중부고속도로를 이용, 대전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진주 분기점에서 사천쪽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곧바로 사천나들목에서 나가 3번 국도를 따라 삼천포까지 직진한다. 삼천포·창선대교 건너고 창선도 지나 창선교(지족 죽방렴) 건넌 뒤 곧바로 좌회전, 3·77번 해안도로를 따라 간다. 미조항 들머리인 조천에서 직진, 상주해수욕장 쪽으로 간다. 상주면 소재지(상주해수욕장)에서 1㎞쯤 가다 양아리 팻말과 ‘상주해수욕장 우회도로’ 팻말 보고 좌회전, 호젓한 산길 지나 고개 넘고 3㎞를 가면 소량마을 포구가 펼쳐진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700m 가면 대량마을, 직진하면 소량마을 거쳐 드므개마을에 이른다. 드므개에서 국도로 나가 한굽이 돌아내려가면 왼쪽이 벽련마을이다. 노도까지 정기 배편은 없다. 낚싯배를 이용해야 한다.
묵을곳=숙소는 마을 민박을 이용하거나, 남해읍 또는 드라이브코스 곳곳에 나타나는 모텔 등을 이용한다. 창선·삼천포대교 창선도쪽 단항·대벽리 주변에도 나폴리모텔(867-6933) 등 새로 지은 깨끗한 모텔들이 많다. 3만~5만원.
연락처=남해군청 문화관광과 860-3801, 상주면 사무소 860-3603, 드므개마을 배기준 이장 011-565-6467.
남해의 다랭이 마을